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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2/19
    김진숙 동지가 박근혜에게 보내는 편지
    하이에나새끼
  2. 2005/12/19
    "'쇼핑천국' 홍콩의 진실 알려줘 고마워요"
    하이에나새끼

김진숙 동지가 박근혜에게 보내는 편지

민지네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 원문클릭 ) '편지' 를 쓰신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은 제작년 10 월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의 추모제에서 눈물겨운 추모사로 알려지신 분이죠 ( 김주익 열사 추도사 전문 입니다. )

 

지난 정기국회에서 몸싸움 끝에 통과된 열우당의 사립학교법은 개방형 이사의 비중 축소, 교사 임명권 ― 교원 채용 비리의 핵심 ― 을 학교장이 아닌 재단이사회에 그대로 두어 그 법으로 과연 사학재단의 병폐들이 척결될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수준입니다. 게다가 친족이사의 정수를 4분의 1로, 비리자들의 복귀시한을 5년으로 한 규정은 한나라당 안과 별 다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 마져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전교조가 교육을 말아먹는다' 며 이른바 장외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이 주되게 비난하는 대상이 법안통과를 강행한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전교조 라는 점, 지난 APEC 의 참 모습을 알리기 위해 전교조 부산시지부가 제작한 'APEC 기동대' 동영상에 대해서 '위험한 이념교육' 이라며 여론을 부추기고 마녀사냥한 점 등은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것이 교육의 민주화, 정상화가 아니라 사립재단들을 보호하여 그동안 부당하게 누려온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기지 않는것과 동시에 교육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속셈임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때마침 김진숙 지도위원이 적절하게 발언해주어 속이 시원하네요. 한나라당 의원 여러분들도 시원하게 물대포라도 한번 맞아보시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적어도 살을 에이는 추위가 어떤지는 겪어봐야 하지 않겠' 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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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씨.가관도 길어지면 민폐라 한마디 하오.

 

근혜씨네 패밀리가 생산해 낸 불가사의가 한둘이 아니오만 그 중 대표적인 게,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을 그 당시에는 너무나 진지하게 엄수했다는 건데,그건 아마도 나쁜 일도 집단적으로 오래 하다보면 직업이 되기도 하는 그런 이치일거요.

거짓말이나 사기치는 일 같은 걸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거울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거요.

근혜씨 아버지 시절.우리는 이 땅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아침마다 큰소리로 태어나야 했던 일이나,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자를 눈 부릅뜨고 색출하러 다녔던 일이나,토요일마다 모의간첩이 되어 배회하던 선생을 생포해서 경찰서에 갖다 바쳤던 일이나,그 일로 표창장을 받았던 일이나..로보트나 컴퓨터 게임이 없던 시절에도 우린 참 기발하게 놀았소.

그 중에서도 위문편지라는 게 있었는데, 걸핏하면 위로를 해야 할 만큼 그 무수한 국군장병 아저씨들을 내가 군대로 보낸 것도 아닌데,그럼에도 어린 내가 추운 날이거나 더운 날이거나 낮이거나 밤이거나 불철주야 나라를 지켜주시는 그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오늘도 또한 내일도 사시사철 불구하고 용맹하게 북한괴뢰도당으로 부터 나라를 잘 지켜 주십사는 고무와 오늘밤도 우리 국민들은 아저씨들 덕분에 발 뻗고 잔다는 사생활의 보고를 수시로 해야 했는데,숱하게 썼던 위문편지 중에,근혜씨 엄마 돌아가시고 슬픔에 빠진 영식,영애분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숙제로 내 준 위문편지를 쓴 건 압권일 듯 하오.

그 이후 두 번째 편지요.

평생을 일만 했던 우리 엄마가 입원도 못하고 돌아가셨을 때는 근혜씨로부터 어떤 위로도 받은 적이 없긴 하오만.

 

박근혜씨.진지하게 묻겠소.

50년도 진즉에 넘어 선 나이를 살면서 선거 때 말고,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러 본 적이 있으시오?

내가 아는 전교조 선생들은 걸핏하면 우는 못나빠진 사람들이오.

단지 불편한 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는 가난 탓에 엄마는 집을 나가고 술만 먹으면 매질을 하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가출을 일삼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쥐어주며 배고프면 전화하거라 무력한 당부를 해놓고는 돌아서서는 찔찔 짜는 사람들이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세상으로 부터 받았던 상처 탓에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를 집에 데려다가 씻기고 재워놓고는 그 아이의 성마른 이마 위에 눈물을 떨구는 그런 사람들이오.

스승의 날.그 아이가 제 손으로 꼬깃 꼬깃 접어 책상 위에 놓고 간 종이학 천 마리를 품고는 기어이 닭똥같은 눈물을 쏟는 대책없이 여려빠진 사람들이오.

공장에 실습을 나갔다가 손가락이 잘려 돌아 온 아이를 보며 자신의 멀쩡한 손가락이 죄스러워 혼자 술을 마시며 훌쩍거리는 때때로 쓸쓸하기도 한 사람들이오.

이 넓은 세상에 아이에게 남았던 한 점 혈육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빈소에서 문상객 노릇에 상주 노릇에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할머니의 유골을 흩뿌리는 법까지 가르쳐야 하는 그런 전천후의 선생들이오.

 

박근혜씨.다시 진지하게 묻겠소.

지금까지 살면서 나와바리를 지키거나 더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누군가를 위해 단 하루라도 바쳐본 적이 있으시오?

여태껏 살면서,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제 발로는 서울구경 한 번 못해 볼 장애아이들을 데리고 제 돈들여 홍성에서 서울 나들이를 하는 선생들이 있는 조직이 전교조요.

제빵사가 되는 게 꿈이라는 아이를 위해 일요일 제 시간 흔쾌히 바쳐 제빵 박람회가 열리는 서울까지 물어 물어 기꺼이 발품을 파는 선생들이 만들어가는 조직이 전교조요.

자기 집처럼 편안해야 아이들이 마음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겠다 싶어 제 집에 있는 커텐 뜯고 액자 떼어다 상담실을 꾸미고,난로 하나를 상담실에 놓기 위해 교장실 행정실을 겨울이 다 가도록 드나들며 수십장의 똑같은 공문을 보내다가 결국은 제 돈으로 난로를 들여놓는 선생들이 조합원인 조직이 전교조요.

왜 그런 걸 자기 돈으로 하냐고 묻고 싶소?

근혜씨가 장내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날 세워 투쟁하게 될 예산삭감 대상의 대부분은 그런 힘없는 예산들이기 때문이오.

그래서 근혜씨는 밖에 있으나 안에 있으나 참 근심이오.

 

어떻게 하면 산만한 아이가 학교에 재미를 붙일까 제 돈,제 시간들여 마술을 배우기도 하고,컴퓨터 게임이 놀이의 전부인 줄 아는 아이들에게 우리 놀이와 우리 노래를 가르치기 위해 이런 저런 단체들을 찾아다니고,퇴근 후에는 이런 저런 교과 모임을 일주일에도 두어 차례,쉴 틈 없는 각종 연수에 방학이 짧은 게 전교조 선생들이오.

그래서 전교조는 안 무너져요.

그렇게 사는 게 전부인 줄 아는 선생들을 근혜씨 작은 아버지가 1500명이 넘게 학교에서 쫒아냈어도 전교조는 안 무너졌잖소?

그렇게 사는 게 선생의 삶인 줄 아는 선생들의 머리채를 잡아 패대기를 쳐가며 닭장차 차떼기로 실어 나르고 징역을 살게 했어도 전교조는 안 무너졌잖소?

근혜씨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영남대를 비롯하여 비리의 종합셋트 같은 사학에서 눈 밝은 선생들을 그렇게 짤라 냈는데도 전교조 무너집디까?

그런 선생들에게 빨갱이에 좌경에 용공에 칠갑을해서 17년 째 "계란이 왔어요.계란이 왔습니다~" 만큼이나 똑같이 외쳐도 전교조 무너집디까?

그런 선생들이 아이들에겐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꼽히고,그런 조직에 조합원이 줄지 않는다면 방법을 바꿀 때도 되지 않았소?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하기야 근혜씨가 참교육을 어찌 알겠소?

빌어먹게 길기도 하던 국민교육헌장을 아침마다 외어서 한 자가 틀릴 때마다 한대 씩 맞아야 했던 기억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육성회비 가져오기 전에는 학교에 오지말라는 선생의 명령에 등 떠밀려 학교를 나서면서 운동장이 얼마나 아득하게 넓은지 눈물로 흔들리던 운동장 구석에 막막히 서 본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엄마를 찾아 큰 고무신에 작은 발이 자꾸 미끄러지던 논둑길을 걸어 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가 왜 논둑길을 비칠거리며 저렇게 한참을 걸어오는지 알면서도 모포기만 헤집던 엄마의 보푸레기처럼 살껍질이 일어난 새까만 목덜미에 흙을 집어 던지며 울어본 날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소풍 날.너 때문에 소풍도 못가는 거..우리 같이 죽을래? 눈만 꿈뻑거리던 애꿎은 소를 쥐어박아 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외양간이 텅 비어 있던 날.소가 매어있던 기둥을 쓸고 또 쓸며 미안하다.진짜루 미안하다.소야..울며 불며 소한테 편지를 써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여름내내 복숭아 밭에서 봉다리 씌우고 절 앞에서 아이스케키 팔아 모은 돈으로 겨울에 엄마 털신을 사들고 신작로를 한 달음에 내달려보지 않은 자가 참교육이 뭔지 어찌 짐작이나 하겠소?

 

근혜씨랑 내가 유일하게 공통점이 있다면 우린 둘 다 참스승을 만날 수가 없었다는거요.

학교마저 병영을 삼았던 근혜씨 아버지 덕에 공주님 앞에선 선생들마저 설설 기었을테고,내가 만난 선생들은 다 근혜씨 아버지 같은 사람들 뿐이었으니까.

그 때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권력 앞에 굴종하지 않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존경하오.

근혜씨 아버지 시절과는 반대의 삶을 사시는,강한 자 앞에서는 더욱 강하고 약한 자와는 함께 할 줄 알며 나눌 줄 아시는 그 분들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오.

...129일을 크레인 위에 매달려 있던 노동자가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매는 세상에서도..농민이 전경의 방패에 맞아 죽는 세상에서도..그래도 내가 희망을 말하게 되는 건,아이들에게 길가에 핀 민들레를 허리굽혀 내려다보는 법을 가르치는 그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오.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을 하신다 했소?

우리 아이들..부디 진심으로 지켜주시오.

생존권 때문에 목을 매거나..제 몸에 불을 붙이거나..농약을 마시거나..투신을 하거나..맞아 죽거나..그런 기가 막힌 이유들로 어린 아이들이 더 이상은 상주가 되는 일이 없게끔..그 올망 졸망한 상주들과 맞절을 해야 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게끔..

부모가 일하러 나간 빈 집에서 불타 죽는 아이들이 없게끔..

혼자 살던 빈 집에서 굶주린 개에게 물려 죽는 아이가 더 이상은 없게끔..

그 아홉 살 아이의 친구가 영인아.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편지를 쓰는 일이 없게끔..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엄마 대신 맡아 키우던 보모의 남편에게 맞아 죽는 아이가 더 이상은 없게끔..

대물림 되는 가난 때문에 실습나간 공장에서 죽어나가는 아이가 없게끔..

알바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의 먹잇감으로 성적노리개로 너무나 일찍 체념을 배우는 아이들이 없게끔..

 

그리하여 지금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자리가 아니오.

아무도 없는 비닐 하우스에 개와 함께 어린 제자에게 수시로 라면을 사들고 찾아가야 했던 건 그 가난한 선생이 아니라 당신이었소.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가 걱정이 되어 아이의 집에 갔다가 개에게 물어 뜯겨 죽은 아이를 보고 충격과 자책감에 입원을 해야 했던 건 그 착한 선생이 아니라 당신이었소.

혼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밤에 일해야 했던 엄마 대신 세 살짜리 하나를 맡아 키워야 했던 건 자기 새끼들 키우기도 버거워 피폐해졌던 그 포악한 보모의 가족이 아니라 바로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는 당신들의 한나라당 이었소.

근혜씨가 지닌 힘과 돈과 권력을 제대로만 쓴다면 그토록 목청 높여 외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은 저절로 지켜질거요.

 

내심으로야 이왕 나간 김에 물대포도 맞아보고 방패에도 찍혀보면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늘그막에나마 철이 좀 들려나 싶기도 하지만 무현씨가 연정을 품은 이에게 그럴리는 만무할테니 이제 그만 집에 가시오.

한겨울에도 치마입고 빨각다리로 궁궐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공주님한테야 장외에서의 장장 한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오?

대권이 걸린 일이라 사나흘만에 접기 뻘쭘하면 그건 어떻겠소?

눈만 내놓은 채 천원짜리 장갑하나를 팔기 위해 혹은 배추 한 포기를 팔기 위해 또는 신발 한 켤레를 팔기 위해 간절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어 보는 건..

근혜씨도 이 나라에서 60번 가까운 겨울을 지내면서 적어도 살을 에이는 추위가 어떤지는 겪어봐야 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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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천국' 홍콩의 진실 알려줘 고마워요"

프레시안에 실린 홍콩 WTO 원정 투쟁단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다양하고 열정적인 투쟁으로 홍콩 현지 사람들에게는 물론 세계적인 포커스를 받았던 원정투쟁단이기에 더욱 자랑스럽고 연행된 분들의 안부가 걱정스럽네요. 다들 무사히 돌아오셔야 할텐데요... 

 

WTO 에 반대하는 세계 각국의 시위대들 가운데서도 한국 원정투쟁단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지지를 끌어낼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이번 투쟁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운동의 중요한 자산으로 작용되었으면 좋겠네요. ^^; 

 

아울러, 지난 11월 15일 여의도 농민대회에서 경찰에게 폭행당해 돌아가신 전용철 열사의 시신을 언땅에 묻기도 전에 역시 그날 경찰의 난동때문에 전신마비로 한달 가까이 고생하시던 김제농민회의 홍덕표 씨도 결국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민중의 삶을 짓밟고 죽음으로 내모는것도 모자라 이제 때려죽이기 까지 하는 것이 바로 노무현 정권의 실체입니다. 부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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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민들은 불공ㅗ?세계무역기구(WTO)에 맞서서 싸우는 시위자들을 지지합니다. 세계에서 온 여러분들, 홍콩에 와줘서 감사합니다. 당신들로 인해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많은 홍콩 시민들이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이어진 격렬한 시위에도 한국의 농민 등 반세계화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았다.
  
  시위를 보며 자신들의 삶 '성찰'하는 홍콩 시민들
  
  일부 홍콩 시민들은 시위대의 '불법 행위'를 비난하기는커녕 시위 현장을 떠나지 않고 같이 최루탄 가스를 마셔가며 대신 나서서 경찰에 항의하기도 했다.
  
  한국 시위대의 삼보일배가 홍콩 시민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지만, 그들이 시위대를 단순히 '진기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집단으로만 여겼던 건 아니었다.
  
  WTO에 항의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시위자들의 절박한 외침은 '99% 도시인으로 이루어진' 홍콩의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된 듯했다.
  

홍콩 시민들이 밤까지 계속된 시위 현장을 떠나지 않으며 한국 시위대를 응원하고 있다(위). 일부 시민들은 최루탄을 뿌리는 경찰에게 항의하기도 했다(아래). ⓒ프레시안

  "당신들은 우리에게 '쇼핑 천국의 진실'을 알려주었다"
  
  일부 홍콩 시민들이 시위자들에게 건넨 '세계의 친구들에게 드리는 우리들의 감사 편지(A thank you letter to our international friends)'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계에서 온 여러분들, 홍콩에 와줘서 고마워요. 먼 곳에서 달려와 당신들이 들려준 삶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이 '쇼핑 천국' 홍콩이 실은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의 피와 땀 위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세계의 친구들에게 드리는 감사편지' 피켓을 들고 있는 홍콩 시민(왼쪽), 한 홍콩 시민이 시위대에 물을 건네고 있다(가운데), 지지 피켓을 들고 있는 이 시민은 시위자들에게 일일이 "와줘서 고마워요(Thank you for coming here)!"라고 외쳤다(오른쪽). ⓒ프레시안

  이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17일 시위는 뭔가 달랐다. 많은 홍콩 시민들은 시위자들에게 물과 간식을 건네거나 같이 사진 찍기를 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글을 써넣은 피켓이나 북 등을 들고 나와 직접 시위에 합류했다.
  
'홍콩 시민들이 지지의 뜻으로 보낸 물 1500병이 빅토리아 공원 한 켠에 쌓여 있다(왼쪽), 홍콩 시민들의 끊임없는 '사진 찍기 요청'으로 일부 한국 시위대는 계속 같은 자리에 서 있어야 할 정도였다(가운데), 영남대 학생들인 데이지 주(Daizy Chu), 제이 찬(Jay Chan), 이들은 한국 시위대로부터 '사회 공공성 강화' 머리띠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오른쪽). ⓒ프레시안

  '지지 단식'도 있었다. 홍콩 중문?학생과 영남대 학생 등 5명은 완짜이 항구에서 사흘 동안 반세계화 시위대를 지지하는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날 기자가 빅토리아 공원에서 만난 영남대의 외국인 학생들인 데이지 주, 제이 찬, 캐슬린 한은 "한국 농민들로부터 왜 자신들?여기까지 왔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홍콩에서 보지 못하는 것들을 알려준 그들에게 감사와 지지를 표시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홍콩 언론들, '삼보일배' 계기로 호의적 기사 쏟아내"
  
  이들은 홍콩 시민들이 시위대에 뜨거운 관심을 갖게 된 요인 중 하나로 '홍콩 언론의 보도'를 꼽았다. 언론에서 한국인 시위대의 삼보일배를 계기로 시위뿐 아니라 세계 농민의 삶에 대한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면서 시위대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이해가 깊어졌다는 것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 기사의 한 장면 "공포 대신 한국 시위대에 대한 환호와 눈물"이라는 제목 하에 농민에게 악수를 청하는 어린이의 사진이 크게 실렸다. (왼쪽), 한 농민의 심층 인터뷰를 다룬 기사.(오른쪽). ⓒ프레시안

  그러나 홍콩 케이블TV 기자인 륭와이체 씨는 홍콩의 시민의식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나도 기자이지만 언론이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는 않았다. 그냥 어디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다는 파편적인 정보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홍콩 시민들이 직접 관심을 갖고 스스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스스로 시위자들을 이해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이렇게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상시위, 삼보일배, 촛불시위, 풍물패 공연 등 한국인들이 구사한 다양한 시위방법에 대해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그는 '쉬는 날'임에도 "홍콩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위자들에게 나의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 농민들과 사진 찍는 기자들(왼쪽), 홍콩 케이블 TV 기자인 륭와이체씨는 '쉬는 날'임에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위에 대한 연대(solidarity)를 표시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오른쪽). ⓒ프레시안

  한국에서도 '도시인의 연대' 느끼고픈 농민들
  
  한국에서 온 농민 김주일 씨는 "반응이 이렇게 좋은데 한국에서도 진작 삼보일배를 해볼 걸 그랬다"는 기자의 말에 "허허…. 한국에서는 경찰이 우릴 가둬놓고 꼼짝도 못 하게 하는데 삼보일배를 어떻게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홍콩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에 마냥 즐거워 할 것만은 아니라는 심경이 묻어났다.
  
  정작 한국에서는 농민들이 아무리 시위에 나서도 이번 홍콩에서처럼 "우리에게 농민은 소중한 존재이고, 그들 없이는 도시인의 삶도 가능하지 않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부안군 농민회의 김성곤 씨는 "홍콩 시민들의 지지에 마음이 푸근하긴 하지만, 뭐라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기분이 든다. 농민들이 여기 와서 몸이 부서져라 싸우고 외치는데, 한국의 한 일간지는 정부가 홍콩에 시위하러 가는 농민들에게 뒷돈을 대줬다는, 말도 안 되는 의혹을 제기하지 않나, 한 국회의원은 농민 350만 명 중에 진짜 농민은 100만 명밖에 안 된다는 소릴 하지 않나…. 정말 가슴이 찢어진다"고 털어놨다.
  
  홍콩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지지를 한몸에 받은 한국 시위대는 홍콩 각료회의 폐막일인 18일부터 하나둘 다시 '싸늘한' 고국으로 돌아간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들이 세계적 맥락 속에서 우리의 농업을 살리고 반세계화의 기치를 다시 들기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마련할지 궁금하다. 부쩍 성장한 한국 농민운동의 대응이 주목된다.
  
홍콩 시민들이 시위대에게 전달한 '감사 편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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