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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2/28
    [성명] 비정규직 양산법의 날치기 통과를 투쟁으로 심판하자
    하이에나새끼
  2. 2006/02/14
    짐승의 민족주의
    하이에나새끼
  3. 2006/02/02
    [펌] Munich ( 뮌헨 감상기 )(2)
    하이에나새끼

[성명] 비정규직 양산법의 날치기 통과를 투쟁으로 심판하자

* 2 월 27 일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비정규직 개악안에 대한 '다함께' ( http://alltogether.or.kr/ ) 의 성명을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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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비정규직 양산법의 날치기 통과를 투쟁으로 심판하자

 

노무현 정부와 지배자들이 또다시 더러운 범죄를 저질렀다.


2월 27일 저녁, 열우당과 한나라당의 범죄자들은 국회 환노위에서 경위를 동원해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폭력으로 저지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개악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가증스런 이름과 달리, 이 개악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등골을 빼먹는 재벌과 기업주들을 '보호'하는 법일 뿐이다.

 

개악안은 기간제와 파견제로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 놓은 '비정규직 확대·양산 법안'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조장 조치'들로 가득 차 있다.
노무현 정부는 무려 1년 3개월 동안이나 비정규직 개악안 강행 처리 시도를 거듭하며 노동자들을 우롱해 오다가 마침내 이 더러운 범죄 행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것으로 노무현 정부는 8백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전체 노동자를 벼랑끝으로 내모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 정권임이 다시 확인됐다. 노무현 정부의 임기 5년은 정말이지 너무 길다. 노무현은 당장 물러나야 마땅하다.


 

이 반역사적·반민중적인 범죄 행위를 주도한 노무현 정부와 열우당, 한나라당의 짐승만도 못한 자들 앞에는 이제 노동자·민중의 저주와 투쟁만이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등 노동자·민중 운동은 이 개악안을 결단코 반대해 왔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폭력으로 가로막고 열우당과 한나라당이 야합하여 날치기 통과시킨 이 개악안은 완전 무효이며 정당성이 없다.

 

이제 노동자·민중 운동은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이 개악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노동자 대중이 참여하는 즉각적인 파업과 투쟁이 필요하다.
조준호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은 "만일 비정규법안이 날치기 통과된다면 위력적인 총파업을 통해 이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기업주들은 개악안을 이용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것이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바로 자신의 문제인 개악안 저지를 위해 앞장서 싸워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하는 대중적 파업과 행동으로 비정규직 개악안을 처리한 범죄자들에게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보여주자.

 

2006년 2월 28일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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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민족주의

지금이야 '월드컵 그런거 응원해봐야 무슨 소용이냐. 한국대표팀이 조기탈락 해버려서 정규뉴스 시간 안 잡아먹는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  며 잘난체 하지만, 사실은 지독한 민족주의자 였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때 우연히 서점에서 집어든 '다물' 이라는 소설이 원흉이었는데, 제목에서 짐작하실분 계시겠지만 '다물' 이란 '되찾는다' 라는 뜻의 고대어(?) 로, '고조선 시대에 빼앗긴 우리 땅을 다시 되찾자' 가 이 소설의 주제 되시겠다.


당시에는 그랬다. 대한민국이 그 넓은 중국땅을 차지하고, 일본놈들 혼내주고 미국 눈치 안보는게 그렇게 낭만적으로 느껴질수 없었다. 뚜렷한 비젼은 없었지만 아무튼 대한민국이 이른바 강대국, 선진국이 되면 사람들도 다 잘살것만 같이 느껴졌었다.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에 경악하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와 그 투쟁에 동감, 지지하면서도 대한민국이 강대국이 되면 '다 괜찮아'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한단고기' 니 '대쥬신제국사' 니 하는 책들을 구해보면서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북한은 당연히 같은 민족으로서 통일을 전제로 함께 잘 살아야 할 대상이었고, 일본이나 만주와 요동반도는 물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까지 ( 엄연히 '쥬신' 의 옛땅 이니까 ) 장차 우리땅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이르렀다.


고백하는 김에 다 떠들어보자. 나는 그때 노트뒷장에 (통일)한국군이 요동반도에 상륙하고 저기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4개 부대로 나뉘어 만주땅을 차근차근 점령하는 시나리오를 낙서해가며 혼자만의 망상으로 빠져든적도 있고, 존경하는 사람중에는 '미국에 맞선 위대한 민족주의자' 라는 이유로 그 유명한 아돌프히틀러 도 있었다. 그때의 영향으로 '밀리터리 매니아' 종류의 취미에 빠져들었고 프라모델을 손댄것도 나치 독일의 기갑사단에 대한 호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던것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부터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른바 PD 계열 운동권에 속하기는 커녕 단순한 농땡이일 뿐이었고,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책을 읽어본것도 아니었다. 단지 어느 순간부터 프라모델이, 밀리터리가 재미없어 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아무 의미없는 것으로 변해갔다. 한단고기나 대쥬신제국사 같은 책들이 허황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허황함을 넘어 '만에하나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안의 민족주의에 대한 환상은 그런식으로 깨져나갔던거 같다. 깨져나가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실로 농땡이 다운 변화라고나 할까,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들이 실은 일부 지배계급의 밥그릇을 늘리는것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국익을 앞세운 논리가 짐승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인내만을 강조한다는 사실은 군대에서 몰래 읽었던 책들에서 처음 깨달았었고, 제대이후 IMF 의 영향을 체감하면서 '대한민국 국민' 이라고 하더라도 다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내 안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TV 에서 보았던, 부천 대우자동차 노동자의 피로 범벅된 얼굴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당시 공장에서 내쫓긴 1700 여명의 노동자, 그의 가족들도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금모으기 운동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했었을 것이다.


지난 민주노동당 당직선거를 계기로, 민족주의 운동계열인 이른바 '자민통' 등 NL 계열 운동권에 대한 비판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짐승 역시 그러한 비판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으며 전적으로 지지하는 편이다. 그러나 비판의 방향이 주로 그들 조직의 경직성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그들이 보다 민주적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면 민족주의 운동의 한계가 일정부분 해소될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꼴통' 이라고만 말하는것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애초에 의도했던 취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힘들게 할 수 있다. 


짐승은 이제 진정한 문제인 민족주의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지향점에 대해서 비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 혹은 민족 이라는 단위로 변혁운동을 고민하고 그를 실현하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해당 단위안의 모든 계급은 '같은 편' 으로 생각할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당연히 협조하고 단결할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비록 그 단위 안에서 지배권력을 가진 일부계급이 현상적으로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모습을 보일지라도, 이는 계몽을 거쳐 '친 민중적인 의식을 갖도록 끌어올려야' 할 계급이지 결코 해소시킬 계급은 아닌것이다.


그러나 계급의 차이는 그 존재의 근원적인 것이기 때문에, 의식적인 노력으로 끌어올려 지는 어떤것이 아니다. 자본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착취하는것이 필수 불가결하고, 국가지배자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피지배민중의 존재 역시 필수적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념에 따른 '계급협조주의' 때문에 민족주의 운동계열은 보다 '양심적' 으로 보이는 지배계급의 특정분파에 대해 지지하는 양상을 보이며 해당 분파가 생산하는 사회 경제적인 착취와 모순들은 '부차적인것', 혹은 '현실단계에서 어쩔수 없는 것' 으로 되고 만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태도는 자신이 지지하는 지배계급의 분파가 정치권력을 잡고 권력화 되었을때 일부 동조하는 모습으로 표현될 것이다. 김대중 정권,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대북정책에 대해 이들 세력이 대체로 동조하는 포지션을 취한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북한정권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 역시 민족을 그 단위와 지향으로 하는 근본적인 이념에서 찾을수 있을 것이다.
'자민통 계열' 이 진보진영에 마이너스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이러한 계급협조주의 에서 그 원인을 찾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가지 주의할것은 '계급협조주의' 와 같은 것이 민족주의만의 전매특허는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이들 '자민통' 을 비판하면서도 의회 활동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열린우리당 과의 공조를 염두에 둔다든지,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노동계급에 치중하는것 보다 대중정당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 말하는 이른바 'PD' 계열내의 일부 분파들 역시 국가권력과의 타협과 협상을 중심에 두고 '보다 친민중적인' 지배계급내의 정치파트너를 찾는 이상 결과적으로 '계급협조주의' 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민족주의 운동 세력이 운동권내의 우파라고 한다면, '좌파' 경향 이라고 해도 위에서 말한것과 같이 지배계급과의 타협을 전제로 하는 세력들 역시 우파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들 스스로는 민족주의를 비판하며 좌파에 묻어가려고 한다 할지라도 근본적인 큰 틀에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여 반제국주의, 반전 운동의 의제에 대해서 부차적인 무엇으로 취급하거나 '민족주의적 의제' 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며 회피한다면 그 역시 좌파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것인데, 유감스럽게도 독도문제가 불거졌을때 민주노동당 내의 일부 '좌파' 들이 이러한 태도를 보인바 있다. 비록 군대주둔과 같은 주장은 문제가 많지만, 일본의 군국주의적 야망에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시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었다.


 원래는 짐승이 갖고 있던 민족주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해보려다가 스케일이 넘 커져버린것 같은데, 아무튼 온라인상의 이런 저런 글들을 보다 보니 떠오르는것이 있어 대충 갈겨써봤다. 제 버릇 개 못준다더니, 쓸데없이 길어지는것이 어쩌면 '천성' 인가 하는 불안한 생각도 불현듯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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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Munich ( 뮌헨 감상기 )

언젠가 네이버 블로그 이웃중에 한분이 퍼오신 글을 재밌게 읽었던 적이 있는데, 최근에 뮌헨 영화 개봉광고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길래 기억을 더듬어대다가 진보넷 NeoScrum 님의 블로그 ( http://blog.jinbo.net/neoscrum/ ) 에서 원문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원문이 궁금하시면 여기 를 클릭해주시면 좋겠다.

 

지난번에 '달리는 열차위에 중립은 없다' 라는 책을 소개하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지만, 가치판단을 배재한 '중립' 이란것은 존재할수 없으며 그것을 추구하는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말것이라 생각한다. 흔히들 '편향된 사고는 위험하다' 고 하지만, 이미 사회의 역학관계가 지배계급의 그것에 기울어져 있고, 모든 사회적 요소와 재원들이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와같은 '중립' 적 시각을 갖고자 한다면 이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배계급의 관점에 복무하는 결과만을 나을 뿐이다.

 

한때 진보적이라고 불렸던 학자나 지식인들이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사례가 자주 목격되는 것도 어쩌면 그들의 아카데미즘 적인 자세가 가진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중요한것은 중립적으로 사고한답시고 이것저것 고려해 주는 지식인의 태도가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정당한 댓가를 찾도록 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철저하게 그들의 관점과 입장에서 사고하며 움직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자신이 피지배계급의 일원이라면, 그와 같은 관점을 가지는 것이야 말로 곧 자기자신을 위한 관점이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면서 목이터져라 '대~한민국!!' 외치고, 국가에 긍지를 느끼며 심지어 충성을 다짐하느라 피곤하게 밤을 지새는 바람에 다음날 아침 지각했다 치자. 사장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심이나 월드컵 국가대표팀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아니라 오직 지각한 사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덧붙이면, 지배자들이나 그 동조, 지지세력들은 중립 이란 개념을 이용해서 그들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을 매도하고 탄압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점선아래 퍼온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 역시 그런 사례중에 하나로, 이스라엘의 점령과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강압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한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저항방식중 하나로 선택한 테러와, 그 저항을 억누르기 위한 이스라엘 국가기관의 테러를 동일선상에 놓고 양비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아래 퍼온글에 잘 나와 있지만, 뮌헨은 '테러에 대한 중립적이고 휴머니즘적인 관점' 으로 접근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이스라엘 국가의 관점에 충실하며 결과적으로 그들의 온갖 야만적인 점령정책에 대해서 침묵 하는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헐리웃 오락영화들이 이제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번에도 휴머니즘을 양념으로 지배계급의 관점을 설파하려고 한다. 그러니 '씨바버그' 감독님, 내가 당신의 그 거창한 필름쓰레기를 볼 일이 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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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소개했던 Toronto NOW라는 무가지의 이번주 판을 보다가 영화평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토론토에 개봉중인 영화 중에 NOW로부터 별을 다섯개 받은 영화가 딱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스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 Paradise Now >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스라엘의 테러리스트가 주인공인 스필버그 감독의 < Munich > 였습니다.

 

        
< Munich >는 독일의 도시 '뮌헨'의 영어식 표기입니다. [뮤니크]라고 읽더군요.(실은 영화보기 직전에 사전 찾아봤습니다. 표를 사려면 저 발음을 알아야 하기땀시.. -.-;;;) 이 영화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일어난 '검은 9월단(Black September)'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역테러에 관한 영화입니다.

스필버그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지금까지 미국 주류사회 이데올로그로서의 역할에 극히 충실해왔던 영화감독입니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영화 기술로 '미국의 애국주의'와 '군국주의', '가족주의'를 위한 영화를 끊임없이 만들어왔지요.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이제는 '가해자'로 자리잡은 유태인들이 마치 현재도 '피해자'인 것처럼 이야기해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었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미국 우익의 군국주의적 애국심을 자극하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우주 전쟁> 등은 원작의 의미를 뒤집어 볶아먹으며 '가족주의'와 '애국주의'로 똥칠을 해서 많은 SF 팬들을 분노하게 했었습니다. 특히 H. G. 웰즈의 <우주 전쟁>은 본래 사회주의자인 웰즈가 제국주의를 비난하기 위해 제국주의의 폭력과 공포를 다룬 소설인데, 이것을 테러리즘에 공포를 느끼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로 완전히 뒤집어 놓기도 했지요. 게다가 유태인인 스필버그가 이라크전에 대한 세계 여론이 계속 시끄러운 이 마당에 '검은 9월단'에 대한 영화 <뮌헨>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영화는 개봉되기도 전부터 이미 격렬한 논쟁 속에 휘말려 들어가 있었습니다. 

<뮌헨>의 원작인 조지 조너스(George Jonas)의 <복수(Vengeance)>라는 논픽션 책은 모사드의 테러단에 참가했던 사람의 구술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 친 이스라엘 시각이라는 비난이 있고, 그 내용의 진위여부가 논쟁이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작가인 조지 조너스가 실제로 그 사건의 모사드 테러단원이 아니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책 속 내용을 작가에게 제공해준 인물이 실제로는 당시 모사드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서점에서 책 껍데기만 구경하고 아직 못 읽어봤음) 

그리고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위해 모사드의 테러단과는 인터뷰를 진행했지만(영화 속의 주인공인 테러단의 리더), 검은 9월단 측과는 인터뷰를 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서 현재 검은 9월단의 마지막 생존자로부터 공평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사드에서도 스필버그를 비난하고 있는데, '니가 실체적 진실을 알아? 알지도 못 하는 게 왜 주제넘게 나서서 깝죽대고 그러냐'같은 비난이지요.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스필버그는 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논쟁을 우려해서 사전 홍보도 전혀 하지 않고, 언론용 시사회조차 하지 않은 채 비밀에 붙여서 만들고 개봉했습니다. 12월말 개봉 후 현재 찬사와 비난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도 현재 소수의 개방관에서만 상영중이고, 전국적인 개봉은 1월 6일경이랍니다) 그런데 이렇듯 논쟁의 한 가운데에 놓인 <뮌헨>이 팔레스타인 폭탄 테러리스트가 주인공인 < Paradise Now >와 나란히 NOW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뽑혔다는 사실이 참 흥미로왔습니다. 



검은 9월단

 

그러다 오늘 1월 1일 새해 아침에 어쩌다보니 아침 일찍 밖에 나가서 한동안 방황해야 할 상황이 되서 거리를 헤메며 걸어다니다가 커피숍도 안 열고(한국보다 훨씬 싼 커피값만 내면 하루종일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든 뭘하든 상관 안 하기 때문에, 시간을 보내거나 책을 읽기에 정말 좋은 장소입니다), 서점도 하나도 안 열고, 거리에 앉아 있을 곳도 없어서 뭘 할까 궁리하다가 결국 <뮌헨>을 보기로 했습니다.

< A.I >의 그 어이없는 뒷 부분에 하두 열받아서 앞으로 절대로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이렇게 또 보게 되었네요(사실 그동안 나온 스필버그의 영화들은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서 뒤로만 봤습니다. ㅎㅎㅎ...)

<뮌헨> 한국 공식 홈페이지 : http://www.munich.co.kr

< Munich > 공식 홈페이지 : http://www.munichmovie.com/



 

 



검은 9월단 협상 대표


영화는 앞서 이야기 했듯이 1972년 뮌헨 올림픽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뮌헨 올림픽의 검은 9월단 사건이란,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검은 9월단'의 단원 8명이 올림픽 선수촌에 들어가 이스라엘 선수 2명을 사살하고, 9명을 인질로 잡은 후 구속된 동지들을 석방시켜 달라고 요구했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협상을 거부하자, 검은 9월단은 인질과 함께 공항으로 이동했는데, 공항에서 총격전이 전개되어 이스라엘 선수 전원과 검은 9월단 5명이 죽고 3명이 생포되었습니다. 당시의 실제 보도와 영화를 편집한 장면이 영화의 첫장면으로 펼쳐집니다. (생포된 3명은 추후 검은 9월단이 루푸탄자 비행기를 납치해서 인질과 교환을 통해 전원 석방됩니다)

참고로 검은 9월단은 1970년 9월 요르단 정부군의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토벌로 수천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죽고, PLO가 큰 타격을 입으면서 본부를 레바논으로 옮긴 사건으로부터 유래한 이름입니다. 그 두 달 후 11월 '검은 9월단'이 요르단 총리를 암살하면서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는 '검은 9월단'에 복수를 하기 위해 테러조직(일명 '신의 분노(Wrath of God)')을 파견합니다. 영화에서 5명으로 이루어진 테러단은 검은 9월단의 배후 인물들과 PLO의 지도부를 차례차례 총기 살해, 폭탄 테러 등 갖은 테러 수법을 동원해 살해하는데, 영화는 그 테러단의 리더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사건이 점점 커지면서 KGB, CIA 등 각국 정보기관의 개입, 그리고 이어지는 폭력의 악순환과 이 과정에서 파괴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도 끝부분에 다른 팀도 있다는 것이 살짝 언급되고 지나가는데, 모사드는 당시 'Spring of Youth'라는 두번째 테러 조직도 파견했었습니다)



영화를 본 제 느낌을 아주 간단히 정리하자면 '기계적으로 아주 균형이 잘 잡힌 유태인 영화다'라는 것입니다. 우선 양측에 의해 이루어지는 폭력 그 자체는 아주 중립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폭력장면이 이스라엘 암살단의 테러 장면들이라는 점은 지금까지 테러라고 하면 오로지 아랍인들만 자행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다른 '미국의 영화'들과 큰 차별점을 보여줍니다. 특히, 중간에 이스라엘 테러리스트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혹은 논쟁)는 정말 마음을 쏙 빼앗길 정도였습니다.

스필버그가 '폭력'의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 영화는 그리 공평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이번 농민의 죽음을 다루며 '농민에게 가해진 초국적 자본과 국가의 폭력'이라는 몸통은 빼먹어 버리고 '농민과 경찰간의 폭력 사태'라는 깃털만 다루는 신문 기사들 같았다고나 할까요? 

'농민들이 왜 싸움의 현장으로 내 몰리게 되었는가'하는 진정한 원인은 사라지고, 경찰과 농민 중 누가 먼저 폭력을 행사했느냐를 따지는 상황. 그래서 농민 위에 짖눌려진 거대한 폭력은 사라진 채, 부상당하고 죽어간 농민과 경찰만이 표면에 올라서 '누가 먼저 때렸다', '폭력은 나빠요', '피는 피를 부른다', '그 속에서 인간은 몰락해간다', '폭력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휴머니즘'의 한계를 보는 느낌입니다. 마치 경찰이나 농민의 한측, 혹은 양측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그 사태의 시작은 경찰과 농민간의 폭력도 아니었고, 시위와 진압 과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해소가 현재 농민 항쟁의 해결책도 아닙니다. 거리의 시위를 사라지게 하려면, 우선 농민 위에 짖누르는 저 거대한 자본의 폭력부터 치워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민중들간의 기나긴 폭력의 역사에 다가가려면, 폭력의 원죄를 안고 있는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폭력에 대해 당연히 먼저 이야기 해야합니다. 세대를 넘는 긴 시간 동안 시오니즘의 이름 아래 너무도 공공연하고, 태연하게 펼쳐진 이스라엘의 역사적 폭력은 사라진 채 '국가를 수립하려는 팔레스타인과 그들의 테러에 맞서는 이스라엘의 역테러'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펼치면 참 곤란하지요. 이스라엘의 폭력을 빼버리고 나니까 사건의 본질도 바뀌어버렸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완전히 현실이 역전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마치 팔레스타인인들이 먼저 납치극이라는 도발을 시작했고, 이스라엘이 이에 맞서서 복수하는 형국입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검은 9월단이 문제의 원흉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렇게 놓고 보니 이 영화는 전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 오랜 시간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이 투쟁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과연 그들이 당하는 피해를 알기나 했을까요?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이 투쟁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에게 조국을 돌려줄까요. 누군가 억눌려있는 현재 상태는 그대로 둔 채 그냥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평화만을 설교하는 것은 '현재의 지배자들'이 원하는 그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힘들게 지켜냈다고 소문난 그 영화 속의 '중립'과, '평화를 위한 영화'라는 스필버그의 주장은 그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국 '유태인'의 시각으로 그려낸 지배자의 중립이고, 힘 있는 자의 평화였습니다.

<뮌헨>은 액션영화로서는 꽤 완성도가 높았고, 다른 미국의 영화들보다는 그나마 나은 편이고, 또 지금까지 스필버그가 보여준 편향에 비하면 상당히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만, 제가 볼 때 스필버그의 중립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혹시 제 의견이 스필버그에 대한 평소의 편견 때문에 그렇게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은 1월에 전면 개봉을 한다고 하고, 한국에서는 2월에 개봉된다니 혹시 영화를 보시는 분이 계시거든 저와는 다른 느낌을 또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 글을 올리고 나서 여기저기 신문들의 평을 봤더니, 극찬에 가까운 평들도 많았지만, 아주 냉소적으로 평을 올린 신문들도 꽤 많더군요. 저는 영화를 보통 그냥 뭉뚱그려서 전체적으로 보는 편인데, 평들을 보니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지적하면서 냉소적인 비웃음을 날리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읽다가 '아.. 저런 장면들이 있었지.. 어떻게 저런 장면을 그냥 별 생각 없이 봤을까..' 그러고 있습니다.




얼마전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던 장소에 누군가 붙여놓은 '반전, 평화'의 상징입니다.
올해에는 억눌린 자, 빼앗긴 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평화가 아니라, 억압과 착취가 사라지는 진정한 평화에 한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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