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네덜란드 총선 결과에 대해 한국 언론들은 주로 우파 진영의 승리에 주목하는 듯하다. 외신을 인용해 '네덜란드의 해리 포터 총선 승리'(<조선일보>), '네덜란드 총선 반이슬람 극우정당 돌풍'(<한겨레>) 등을 주요 제목으로 뽑아 해리 포터라는 별명을 가진 기독민주당 소속 총리 발컨엔더의 승리와 '이슬람 쓰나미'의 도래를 자극적으로 전하며 신당 창당 2년 만에 9석으로 의회에 입성한 자유의 당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니 말이다.
관심사야 제 각각일 수 있지만 한국 언론들의 반응은 네덜란드 국내 분위기와는 확실히 동떨어진 것이다. 네덜란드 언론들은 이번 총선의 최대 승자를 사회당으로 꼽고 있다. 네덜란드의 사회당은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노동당보다 좌파 성향이 훨씬 강한 정당으로 정치 스펙트럼 상 가장 왼쪽 정당으로 분류되는데 이번 총선을 통해 9석짜리 소수당에서 25석으로 단숨에 성장해 제3당이 되는 돌풍을 일으켰다. 돌풍 치고는 조용한 편이라 외신들의 특별한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사회당은 선거기간 중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1, 2위를 달리며 돌풍을 예고해 왔다.
네덜란드, 유로 쟁점이 부글대는 정치적 용광로
한국의 독자들은 서유럽의 한 나라 선거가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네덜란드는 현재 유럽사회의 정치쟁점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나라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년 6월 1일, 유럽헌법 비준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네덜란드 국민들은 61.6%가 반대표를 던져 유럽헌법을 냉장고 속으로 집어 넣어버렸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2002년으로 올라가면, 대화와 타협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네덜란드 사회는 당시 총선에서 반 외국인 정서를 부채질하며 혜성 같이 등장했던 우파 논객 핌 포르타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유럽사회를 충격으로 몰아 넣기도 했다. 핌 포르타운이 총선 9일 전 암살된 사건은 평화로운 섬 같던 네덜란드 정치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그가 총선 직전 출범시켰던 우파 신당은 26석을 얻어 단숨에 제2당이 되는 기염을 토하며 네덜란드 정치를 급격히 우경화 시켰다.
그 이후 네덜란드 사회 저변에 잠복해 있던 외국인과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기 시작했고 소수인종 전반에 대한 공공연한 반감이 증가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런 혼란은 이슬람에 극단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던 영화감독이자 신문 칼럼리스트였던 테오 반 고호가 이슬람교의 여성 억압을 고발한 서브미션(복종)이라는 영화를 만든 후, 한 회교도 청년에 의해 암살됨으로써 극에 달했다. 당시 그의 죽음에 분노한 백인 청년들이 이슬람교계 학교를 불태우고, 이슬람 여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등 인종주의적인 행동이 급속히 퍼져 사회혼란은 극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이슬람 비판의 선봉에 섰던 인사들이 삼엄한 경호를 받게 되었고, 이슬람 테러에 대한 공포가 광범하게 퍼져 나갔다.
현 네덜란드 정치를 규정하는 키워드, '포크'
이처럼 2002년과 2006년의 두 번의 총선거를 거치며 네덜란드 사회를 이전 사회와 구분되게 가르는 키워드는 '포크(volk)'라고 말할 수 있다.
'포크'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인민'이라고 할 수 있다. 인민(volk)은 엘리트(elite)과 대별된다. 핌 포르타운은 2002년 당시 네덜란드를 좌지우지하는 헤이그의 엘리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인민이 정치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지적했었다. 정치가 인민들의 생각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2002년 당시만 해도 정치적 망명객이 너무 많이 들어오고 있다든가, 모로코계 청소년들이 문제라는 말을 하는 것은 인종주의적인 발언으로 치부돼 금기시되는 경향이 강했었다. 2차대전 당시 안네 프랑크를 비롯해 유태인들이 제일 많이 잡혀가 수용소에서 죽었던 나라라는 점 때문에 인종주의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얘기였던 것이다.
인민들은 이런 문제들에 심각한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정치인들은 인종주의자로 몰릴 것을 우려해 아무도 그 문제를 꺼내지 못했던 상황이 계속되던 가운데 핌 포르타운은 외국인 난민 수의 제한, 모로코계 청소년 범죄문제 해결 등을 전면에 내걸고 정치 무대로 나왔던 것이다.
그의 주장은 당연히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그런 공격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의 인기는 상승했고, 네덜란드의 총리가 되겠다는 그의 호언장담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실현될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선거 9일 전 한 환경운동가의 총격을 받아 숨지고, 그는 정치적 순교자가 되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당 핌 포르타운당은 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제2당이 됐다. 비록 수장이 없어진 가운데 제1당 기독민주당(CDA) 및 전통의 자유당(VVD)과 함께 우파연정을 구성하기도 했다. 그 뒤 당내 주도권을 놓고 내분을 벌이다 타당의 신뢰를 잃고 연정출범 석 달 만에 연정에서 축출되긴 했지만 말이다.
2006년, '포크'의 선택은?
2006년 선거 역시 인민은 다시 선거 결과를 좌우한 키워드가 됐다. 그러나 2002년 인민의 목소리를 대표한 것이 핌 포르타운의 신우파였다면, 2006년 선거에서는 얀 마라이네스의 사회당(SP)이다.
사회당은 보통 유럽의 좌파를 대표하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정당이 아니다. 네덜란드에서 그간 좌파를 대표해온 당은 노동당(PvdA)이었다. 이 당은 사회민주주의 성향을 대표하고, 2차대전 이후 좌파를 대표하여 우파의 기독민주당이나 자유당과 함께 연정의 파트너로 여러 차례 집권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사회당은 94년 처음 단 두 석으로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사회당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에 속한다. 이 당은 유럽에서 처음으로 대중적인 신자유주의 반대시위가 있었던 이탈리아 제노바의 G8 정상회담에 의원을 파견하고, 신자유주의 유럽에 대항하여 '사회적 유럽' 건설을 위해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만든 유럽사회포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사회당은 90년대 이래 지속돼 온 사회보장제도 축소에 반대하고, 대기업과 시장 주도의 유럽통합에 반대하고, 나토와 미국이 주도한 유고전쟁(199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 이라크 전쟁(2003년)에 반대하며, 우경화된 노동당에 실망한 인민들의 표를 얻으며 계속 성장해 왔다. 특히 기성정당들과 달리 의회 내에서뿐 아니라 거리에서 인민들에게 직접 다가가 대중적 저항을 조직하면서 '좌파다운 좌파' 정당의 등장을 바라던 좌파 성향의 활동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2002년 이후 정권을 장악한 우파정부의 강도 높은 우파 정책도 사회당의 성장에 일조했다.
2004년 초반, 우파정부는 연금, 해고요건, 노동시간, 산재보험, 임금인상 억제 등 노동부문 전반에 우파식 개혁을 밀어붙였다. 정부의 개혁안은 그 규모와 폭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컸고, 노조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80년대 이후 노사간의 신뢰 속에서 지켜 온 사회적 합의모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사회적 합의 모델은 노사간의 대화와 협력기구인 사회경제협의회(SER)에서 노사 간의 타협과 합의방안을 내고, 정부는 이런 방안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유지돼 왔다. 정부가 노사 간의 자율적인 합의를 최대한 존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2004년에는 달랐다. 정부는 노동정책 전반에 대한 급진적인 개혁을 들고 나왔고, 사측은 두 손 들어 환영했다. 노조들은 극렬하게 저항했지만 정부는 개혁을 밀어붙인다는 입장을 표했다. 이제는 대화의 장이 아니라 거리에서 승부가 나게 된 것이다.
그 해 가을 네덜란드의 3대 노조는 예고했던 대로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10월 2일 노조는 최대의 조직동원을 목표로 하고, 지역별 간담회와 도시별 파업을 조직하며 투쟁 수위를 높였다. 10월 2일 노조 집회에는 30만 명을 동원했다. 이는 네덜란드 노조 역사상 최대의 인원동원이었다. 노동조합은 과거의 조직이고, 퇴직을 앞둔 소수의 노동자들밖에 조직하지 못할 것이라고 봤던 정부와 언론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네덜란드는 거리를 덮은 노동자들의 물결로 '뜨거운 가을'을 연출했다.
결국 정부는 노조의 힘 앞에 굴복해 일부 사안에서 양보하게 됐고 네덜란드 사회는 우파와 좌파로 격하게 양분됐다. 노조를 압박한 우파와 노조를 지지한 좌파 간의 불신의 골은 심했고, 노조의 저항 속에 좌파정당들은 여론조사에서 우파정당을 압도했다. 역사상 최초로 좌파 단독 집권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2005년의 유럽연합 헌법 비준을 위한 국민투표 역시 인민들의 우려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보여줬다. 우파정당뿐 아니라 노동당, 녹색좌파당, 노조들 모두 찬성 입장을 표했다. 미국에 맞서는 하나의 유럽, 강력한 경제블록 건설을 위해서 유럽헌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인민들은 이런 장밋빛 청사진을 믿지 않았다. 유럽연합의 관료주의, 자신들의 찬반의견에 관계 없이 급격히 늘어나는 회원국들, 인민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의 등장,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유럽연합의 부정과 비리 소식은 지금 식대로 유럽연합이 계속 가면 불행한 결과가 올 것이라는 판단밖에는 서지 않게 만들었다.
국민투표에서 네덜란드 인민들은 61.6%가 반대표를 던졌다. 사회당은 기성 정당 중 유일하게 유럽헌법 부결을 위해 반대운동을 벌였다. 물론 터키의 EU가입에 반대하는 반이슬람 정당 '자유의 당'의 빌더스 역시 반대운동을 했지만, 유럽헌법 반대는 터키 가입 문제보다는 신자유주의적인 유럽에 대한 인민들의 반대 성격이 강했다.
어정쩡한 좌파에 염증 난 인민,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2006년 3월의 지방선거는 이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우파 정당들은 지방선거에서 대패했고, 좌파정당들은 선전했다. 총리 발컨엔더의 지지도는 30%대로 떨어지며, 2차대전 이후 가장 인기 없는 총리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좌파가 총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우파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2001년 9.11 이후 지속되어 온 불경기가 끝나고 경기 회복이 시작된 것. 발컨엔더 총리는 드디어 구조조정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2006년 선거는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갔다. 강도 높은 우파 개혁은 사회의 밑바닥 계층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었다. 인민들의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했던 사회보장제도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빈곤층이 10%에 이르렀다. 저소득 노동자, 서민들에게 미래는 더 나아지는 게 아니라 암울해 보였다. 반면에 회복되는 경제는 우파정권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고, 우파 지지자들이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다.
인민들은 자신의 의지를 표출할 당을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노동당에 기대가 모아졌다. 노동당은 전통적인 좌파당이고, 정부의 노동정책에 반대입장을 보였으며, 반(反) 외국인적이고 반(反) 이슬람적인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소수인종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노동당은 우파에 대한 확실한 반대입장을 지키지 못했다. 노동당의 젊은 당수 바우터 보스는 새로운 노동당의 상으로 블레어의 제3의 길에 기울어져 있었다. 노동당은 제1당이 되기 위해서는 중산층의 지지 확보가 필요하다고 보고 방향 수정에 나섰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우파식 연금제도 개혁안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네덜란드 정치에서 연금 문제는 상당히 민감하다. 연금은 65세가 되면 누구나 받는 노인연금(AOW)과 급여에서 적립한 근로연금(Pension)의 두 가지가 있어, 노인연금을 기본으로 하고, 근로연금이 덧붙여지는데, 바우터 보스는 고령화 사회에 나타날 연금 재정 부족문제 해결을 위해 근로연금을 많이 받는 소위 '잘 사는 퇴직자들'도 연금 기금 일부를 내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주장은 노동당의 주요지지기반인 노동조합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고령화에 따른 연금 재정 부족은 우파들이 90년대부터 줄기차게 주장해 온 단골 메뉴였지만, 노동당은 그 동안 그런 우려는 근거 없는 것이라면서 반박하는 입장이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꿔 우파와 마찬가지로 연금 고갈 문제를 인정하자, 노동자들은 노동당이 우파와 다를 게 없다고 보게 된 것이다.
또 한가지 노동당의 전략적 실수는 좌파연정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네덜란드는 좌우의 구분이 분명해져 있었다. 선거의 관심 역시 우파 연정이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좌파로 바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좌파 소수당인 사회당과 녹색좌파당은 좌파연정의 가능성을 높이 보고, 노동당에게 좌파연정을 제안했지만, 노동당은 중산층 표를 얻기 위해서는 좌파 색채를 너무 강하게 표시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으로 좌파연정에 미온적인 입장을 표하고, 선거 결과가 나온 다음에 좌파연정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노동당이 제1당이 되더라도 우파정당과 연정을 구성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파정책에 질린 인민들은 노동당을 찍어도 좌파정부가 들어서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사회당의 당수 얀 마라이네스는 '노동당을 찍으면 기독민주당과의 연정이 기다린다, 그걸 막으려면 사회당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투표를 호소했다.
네덜란드 정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2002년과 2006년 사이 네덜란드 정치판의 변화를 인민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해 보았다. 민주주의 제도가 잘 발달된 나라에서는 인민의 의사는 여론이나 선거를 통해 반영되고 그 결과 사회가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제도 하에서도 실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엘리트들이고 인민들은 정치 과정에서 소외되기 십상이다.
특히 유럽사회에서는 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시장경제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데 우파나 좌파 모두 이견이 없었다. 그런 합의를 기초로, 유럽통합이 가속화돼 유럽 단일통화가 도입되고,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속속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있으며,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토에 가입하면서 유럽화의 길을 걸어 왔다. 서유럽 자본은 보다 좋은 생산기지를 찾아 동유럽으로, 아시아로 진출하고 있으며, 유럽 내부에서도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유럽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변화 와중에 인민들은 갑작스런 대량해고, 사회보장제도의 지속적인 축소, 저임금의 동유럽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 유로화 도입 이후 소비자 물가의 급격한 상승 등과 같은 경제적 위협을 피부로 느끼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에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이런 불안과 불만은 반 외국인 정서와 인종주의에 기대 성장하려는 극우적 정치세력에 의해 이용될 수도 있지만, 우파적인 세계화, 신자유주의 공세에 피해를 보고 있는 인민들을 대표하는 새로운 좌파정당들의 성장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근래 4년 여 간의 네덜란드 정치판 변화는 우리들에게 이런 생동적인 변화를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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