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너머

사업 제안서를 쓰기 위해 비슷한 주제로 썼던 옛 기획서들을 찾다가 발견한 글..

원래는 노동자와 노동문화에 대한 주제로 시리즈로 쓰려고 했던 글이어서 쓰다만 글이 되어버렸는데..

지금 보니 과유불급이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넘치다보니 먼저 귀기울이려는 노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운이 넘치던 시절이라 그랬다고 핑계되기엔 좀 민망하다.

 

언제나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할 때 경계해야 할 태도. 더 듣고 또 듣자...

세월 더 살았다고 더 성숙해졌을리 만무하고... 그래도 항상 스스로를 살피고자 애써야겠지.

 

오늘의 사자성어는 '법고창신(法古創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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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세계

제목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러나

작성자 : 민정연(꽃다지 대표,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운영위원)

 

# 에피소드 1.

몇 해 전 노동가요의 대부인 김호철 선배가 모노동조합에서 해마다 주는 조합원선물로 민중가요 음반세트를 추천한 적이 있다. 결론은 1차 선정물품 대상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 에피소드 2.

꽃다지는 3년 전부터 꾸준하게 노동조합에 점심시간이나 퇴근길에 조합원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현장순회콘서트’를 제안해왔다. 200인 이하의 영세 사업장에 대해서는 음향 일체를 꽃다지가 준비하고 공연비도 받지 않는 꽤 좋은 조건이었음에도 단한차례도 성사되지 않았다.

 

위의 에피소드 외에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노동문화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 뒤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은 노동문화는 투쟁의 현장에서 팔뚝질하며 부르는 투쟁의 문화라고 규정짓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순간에,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는 것처럼 꼼작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할 때, 일상에 지쳐 고단할 때, 작은 성과에 기뻐할 때,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해왔고 할 수 있는 것이 노동문화이다. 물론 노동문화에는 넋 놓고 바라보게 하는 이효리의 멋진 몸매와 댄스도 없고, 송혜교의 화사한 미소도 없다. 그러나 접하면 접할수록 내 삶과 희망을 형상화하고 있는 노래 한자락에 내 삶이 녹아 있음을 느끼고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노동문화이다.

 

투쟁을 통해 더 많은 임금과 더 좋은 노동조건을 쟁취하면 뭐하는가? 그 성과가 함께 사는 건강한 삶으로 귀결되지 않고, 소비할수록 더 욕망을 부추기며 살찐 돼지가 되도록 강요하는 자본문화의 소비로만 국한되어진다면 말이다.

 

자, 이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옆을 돌아보자. 나보다 더 낮은 곳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 나를 풍요롭게 하는 삶의 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반문해보자.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가 무엇이 있는지 찾아본다면 내 삶을 건강하게 살찌울 수 있는 노동문화가 의외로 가까이 있음을 알 것이다. 그것을 찾았다면 노동문화에 내 삶을 투영시켜 보자. 이전보다 훨씬 행복해져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면 거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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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4 17:41 2012/02/0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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