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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가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데.. 의사 양반이 사연을 들어보더니 호통을 치더란다..
'아니 당신이 잘못한 거 없구 상대가 잘못한 건데 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고 문제의 모든 원인이 당신이라고 생각하는거냐? 그러니까 계속 같은 문제를 몇 년씩 끌어안고 전전긍긍하는 거 아니냐.. 상대가 잘못되었을 때는 일단은 그 상대를 욕하고 봐야하는거다.. 운동이라는 걸 했다는 인간들은 이게 문제다.. 자기들이 무슨 신인줄 알어..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한다.. 일반인들도 누군가를 구원하려는 심리가 있기는 한데 운동권들이 특히 심해.. 그러니까 우울증에 잘 걸리지.. 세상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걸 인정해라'
이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당황했었다..
'우린 불만투성이 아웃사이더에 가깝지 않나?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선도 일반인들 보다 강하고.. '라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의사 말이 어느 정도 맞는 듯도 하다.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선은 분명하지만 그 타협가능성을 넘지 않은 상황이나 인간에 대해서는 한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특히 얼마간이라도 인연이라는 걸 맺은 관계일 때는 더욱이 그런 구원심리의 작용이 심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같고..
흠..
구원자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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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나이 들수록 나의 성품은 더욱 온화해지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욱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런데 내 예상을 훨씬 빗겨나서 살아온 날들이 늘어날수록 내 상식과 타인의 상식의 간극이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상식의 간극이 점점 벌어진다는 것을 느낄 때 그 상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정도도 심해지고.. 어째 더욱 쫀쫀한 인간이 되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며칠 전에 함께 합의했던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상대에게는 더이상 상식이 아님을 확인했다. 본인은 그런걸 알지도 못한다는 반응에 뜨악해서 말문이 탁 막혀버렸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해보라고 충고까지 한다. 그 충고를 충실히 따라 몇몇 사람들에게 이런 경우가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라고 했더니 '말도 안되는 어이없는 일에 뭐하러 그리 신경쓰시오 무시해버리시오'라는 반응들이다. 나의 상식이 보편성을 띤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의기양양해지기는 커녕 이제는 그 비상식적인 언행을 한 자가 불쌍해지는 것이다. 어떻게 이해를 시키고 서운한 마음을 풀게 할것인가?를 고민했는데 나온 답은 설득 가능성은 5%미만이 아닐까? 라는 것이다. 휴가기간내내 편치 않은 마음으로 요모조모 생각해보는데 그 자를 무시하거나 포기하는 것도 되지 않고 서로 합의했던 원칙과 상식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이해시키는 것이 가능할거라는 확신도 들지 않는다.
사람이라는 게 자신이 처한 자리와 상황에 따라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뭔가를 해석하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면 멀어진 간극 자체를 받아들여야 정신건강에 좋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한편에서는 그렇게 처신하는 것은 상대를 방치하는 게 아닌가 라는 양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그런게 바로 왕따라는 거 아닌가라는 비상식적인 논리비약까지 들고..
이거야말로 망할 구원자 심리가 아닌가?
남들 다 무시하라는 것을 왜 무시하지 못하고 계속 부여잡고 있는건가?
스스로를 너무 잘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가? 착한 척!하는 건 아닌가?
뭐가 문제야.. 그렇게 힘든 관계이면 안보면 되지.. <-- 얼마나 쿨한가? 멋지잖아..쩝 난 역시 쿨한 인간은 아닌가봐
그런데 데스노트의 L이나 M은 5%의 가능성에 시작해서 100%의 가능성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난 차라리 라이또 같은 인간이 더 멋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어째 사는 건 L이나 M에 가깝게 1%의 가능성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걔들처럼 머리가 명석하지도 결단성이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케발랄한 '케로로 중사'나 다시 빌려봐야겠다. 아주 멋져 케로로 중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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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상식이라는 게 거창한 명분을 내건 혁명보다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끔 넌 어떤 세상을 원하니? 라고 질문 받을 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가 '이것저것 다 빼고 그냥 지금 일반적인 상식이라도 통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곤 한다. 어떤 이는 이 말에 '그게 바로 혁명이야' 라고 대꾸하기도 하는데 살수록 점점 더 그 말이 맞는 거 같다는 아주 비관적인 인정이 되기도 하고.. 게다가 내가 사는 이 땅에는 일반적인 상식이라는 게 너무나 희소성을 띠고 있고 다른 땅에서는 당연히 상식인 것들이 이 땅에서는 아주 특별한 진보로 취급받곤 하는 게다. 그마저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경우에 따라 제각각 해석하고..
내가 아주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이 땅의 민주주의 천박성'이라는 건데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많다. 내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지만 타인이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은 인정받기 힘들다. 나보다 더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나만큼의 권리 인정은 누구나 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뭐가 그리 어려운건지..
여튼 살아가면서 서로의 상식의 간극이 좁혀지고 더욱 많은 것들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인정되었으면 하는데 세상은 거꾸로 돌아간다는 거..
결국 상당히 암울한 결론이네.. 운동을 한다는 건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는 건데 왜 이렇게 점점 암담해지는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