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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기억속에서 길을 잃다.(2)

  • 등록일
    2005/03/06 14:22
  • 수정일
    2005/03/06 14:22

사람들이 어쩌면

자신의 존재 혹은 삶의 의미를 기억 혹은 추억속에서 찾는 경향이 두드러 질수록

허리우드의 영화속 한장면처럼

인간은 자신들의 기억 혹은 추억들을 조작 혹은 재구성하는 등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노력처럼 기억들도 그런 상황들이 가능할까 ?

 

어쩌면이 아니라 우린 영화속에서 이런 것들을 자주 보곤한다.

가령 과거의 어떤 시점의 기억들속에서

맺어진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혹은 사건들이

자신의 무의적이든 아니면 의식적이든

그러한 노력들에 의해 재구성되곤 한다.

 

가령

일본영화 [라쇼몽]에서처럼

아내와 사무라이 남편과, 지나가는 산적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

각자의 삶에 나름대로의 영향들을 끼치듯이

결국 각자의 사적인 이해에 기반하여 인식되어지고

이러한 것들이 결국 자신의 기억들을 자신의 사적이해를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재구성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

 

 

홍상수 감독의 [오 ! 수정]에서처럼

과거의 어느 한시점에서의 연애라는 것은

어떤 오해라는 것이 아닌 자신의 기억 혹은 추억을

오로지 자신의 입맛대로 재구성하는데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

 

아니면 [생활의 발견]에서 처럼, 혹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처럼

어떤 형태로든 결국 자신의 기억들은 스스로의 자기이해들에 의해

조작되고 재구성되어지는 것 같다.

 

     

 

실제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과 존재의의미를 찾게되는 그런 기억들을

수동적인 무의식이 아닌 적극적인 행위로써의 몸에 밴 무의식으로

재구성하는지도 모른다.

특히, 스스로 그런 기억들이 남과 상관없다라고 생각되어지는

연애니, 생활속에서의 자잘한 기억들, 학창시절, 여행담 속에서는

더욱더 진하게 조작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기억들이 보다 사회적이고 공적인 문제에서는 어떨까 ?

 

혹시 사회적이고 공적인 부분에서마저도

이러한 기억의 재구성이나 조작은 가능하지 않을까 ?

 

가령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에서 보여지는 기억의 부재에 따른 단편적인 메모에 의한 재구성은

어쩌면 왜 사람들이 이러한 기억의 재구성 혹은 조작이라는 것에 적극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주인공이 눈뜨는 순간부터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기위한 자신의 기억에 대한 재구성은

진실에 대하여 접근할수록 점점더 광적으로 혹은 자신 스스로의 조작에 의해서라도

전혀 다른 의미를 자신에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메모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자신의 진실을 감추고

새로운 기억을 집어넣어서라도

재구성하려는 이러한 기억에 대한 욕망은

어쩌면 자신의 단순한 사적 이해차원보다도 확대되어진

공적인 영역에서의 기억 조작들이 가능함과 그것이 어던식으로든

광폭함을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령

롤랑 죠페 감독의 [미션]에서 보여지는

남미의 선교과정에서의 개인적 욕망과 그 초월에 의한 인간의 정신적인 성숙이라는 기억은

사람들에게 어쩌면 종교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진 끔직한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들을

재구성한다.

즉,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온갖 범죄들을

개인들의 희생 그리고 성숙이라는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당시의 범죄가 마치 종교적 차원이 아닌 그저 단순한 사람 즉, 개인의 미성숙에의한

철저한 개인의 잘못으로 재구성되어지면서

사람들 기억에 여전히 종교는 선한 것,

그리고 신은 여전히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식으로

영화가 끝나고 남는 기억을

사람은 없어지고 신과 종교만이 남도록 재구성한다.

 

 

이와 유사한 영화가 난 플래툰으로 본다.

언제나 이러한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대중적 인기도 그리고 작가(?)로써의 명망도 얻으려 시도하는

전형적인 허리우드 영화의 선봉장인 올리버 스톤 감독은

미국사회 혹은 월남전과 관계된 모든 세계인들에게

철저히 사회의 집단적 기억들을 조작하여

참여한 몇몇 군인들의 잘못으로 월남전의 그 수많은 인명살상의 기억들을 몰아감으로써

독보적인 감독으로

그리고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플래툰에서

전쟁은 당시 미국도 그리고 전쟁터에서 살아가야 했던 베트남사람들에게도

아무상관없는 그야말로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문제로

그리고 그들의 미성숙과 광기로 인한 문제로 취부되는 듯하다.

 

즉, 사람들은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자신이 참여했던 그 광기어린 시대의 아픈 기억들

스스로의 자괴감에 빠져들게하는 범죄 방조자로서의 자각들을 버리고

갑자기 성숙한 정신적 문제에 골몰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사회집단적 기억의 재구성으로 한발 나아간다.

 

이런 사회전체의 집단적 기억의 재조작은

결국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알량한 사적 이익에 기반한

그 수많은 인류애적 범죄들을 오히려 앞서서 실천하게 만드는

전체주의적 경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는 최근 일본에서의 전쟁범죄가 희석화되고 재구성되고

결국 똑같은 일들의 반복가능성까지 내비치는 일본 사회를 보면

이런 기억의 조작들이 왜 사회전체에 집단적으로 진행되었을때의

광폭함이 두려운지 알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재의 의미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을 할까 ?

 

영화속에서 보면

로베르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처럼

전쟁이라는 그리고 전쟁상황속에서의 수용소라는 막다른 골목에서조차도

자식에게는 전혀 다른 인생의 아름다운 기억들만을 물려주려 노력하는

눈물겨운(?) 노력들을 볼 수 있다.

 

그 아들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과연 어떠한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갈까 ?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죽어간 그 수용소를 떠올릴때마다

과연 무슨 생각들 무슨 의미들을 찾을 수 있을까 ?

 

아마도 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평론가의 말처럼

전쟁의 고아기속에서도 보여지는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까 ?

 

이러한 기억의 조작 혹은 재구성 아니면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보여지는

그러한 어른들에 의한 기억의 간섭적 조작들은

실은 어떤 사건에 대한 정확한 사실들 혹은 기억들을 방해하고

자신들의 가치관 즉, 기성사회의 가치관에 맞는 그러한 사실들로 재 조직된 기억들은

실은 사실을 은폐하고 훨씬더 작은 단위의 개인 기억들로 파편화시키는 경향은 아닐까 ?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아임 낫 스퀘어드]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의 홍보문구처럼

악이 넘치는 어른세계와는 다르게 순수한 동심의 우정을 그렸다고 보기엔

왠지 찜찜한 영화이다.

차라리

어린 아이들마저

자신의 어린시절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몸부림이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 ?

 

누구나 보아도 알수있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

심지어는 모든 마을사람들이

인신매매범인 상황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동심의 순수한 눈으로 보이던

마을사람들과 자신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지키기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안타가운 아이의 몸부림이 아닐까 ?

 

 

이런 몸부림에 솔직히 우리들

소위 진보적이고 운동권적인(?) 사람들마저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

 

모든 운동권 선배들이 어저면 그렇게 똑같이

추억속의 기억속의 운동들은 그렇게 열정적이고

심신을 다해 활동했다고 이야기 할까 ?

 

최근에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라는 체 게바라의 영화를 보면서

왠지 어줍잖이 향수에 젖어드는

아 ! 나도 한때는 저런 열정과 저런 사회에 대한 인식들

민중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스스로의 생각들을 조작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아닐지 ......!!

 

나 스스로도

이러한 자기만족적이고

자기 정당화의 한 방편적인 자기 기억 조작의 길에

접어든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내가 스스로 그런 자기 합리화 자기 미화의 길에 젖어들었다면

차라리 씨네마 천국의 주인공처럼

그저 세월에 짤린

무수한 조각난 필름들을 감상하며 눈물 흘리기 보단

오늘부터 쌓이게 되는 나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나의 미래, 지향하는 바대로 재구성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과거에 대한 편리이라면

이제부터의 기억은 차라리 내 삶에 대한 능동적인 개입이 되기를 바란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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