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집에 들리면, 슬픔이 한 덩어리씩 불어난다.

애초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 일어나는 정동은 무기력하게 만든다.

 

집에 있는 차는 햇수로 16년째 타고 있다.

낡을대로 낡아, 지금껏 굴러다닌 게 용할정도다. 그런데 얼마전 차가 고장났나보다.

 

이 차를 고치는데 돈이 얼마나 들지, 고친다고 해도 또 고장나지 않을지 - 부모님은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차를 하나 새로 사는게 낫겠다고 생각하신다. 그리고 차를 새로 사야한다는 생각에는, 이제 나이도 지긋한데 친척집에 가든 어디를 가든 이 차를 가지고 다니는게 남사스럽다는 이유도 있었다. 무슨 명물 보듯 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쓰이고, 위신 같은 걸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게다.

그래서 새차를 살까 하는데, xx는 1000만원 대이고.... -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차종들은 겉보기라는 면에서 생각한다면 너무 초라한 것들이었다. 나야 차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걸로 서열을 매기려는 생각도 없지만, 어쨋든 부모님은 차에 대한 사회일반의 기준에 따르고 싶은 건데, 그 욕망에 따라 편입해봐야 가장 아래층이라는 거다. 위신을 생각해서 선택할 수 있는 게, 기껏 그렇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부모님은 그게 또 얼마나 씁쓸할까를 생각하면 슬픔이 비 젖은 종이쪼가리 처럼 무겁고 질척거리게 내려앉는다.

아에 그런 기준따위 생각치 않고, 필요만 생각하고 차를 산다하면 즐겁고 들뜰 수도 있을텐데. 겉보기 따위에 끄달리지 않겠다는 어릴적 부터의 다짐, 하지만 이건 나를 자유롭게 할지 모르지만 저것들이 충족되길 바라는 부모님은 어떻게하나? 소위, 평범한 집이었다면, 내가 이렇게 가슴 저미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부모님이 그 끄달림에서 자유로워진다면, 그것은 놓음(放)이 아니라 체념일테니까. 그동안 쌓여온 상실감들을 메워낼 방법을 모르겠다. 알아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 속만 태운다.

 

 

 

 

내가 거리두기를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거리는 둘 지언정 언제나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해결되지 않는 짐은 삶을 회의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