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영화제 준비한다고 아주 개난리를 치고 있다.
돈없이 해보자고 덤볐는데 여간 힘든게 아니다. 매일 모여 12시간씩은 준비작업을 하는 것 같다. 포스터를 수작업으로 만들어 붙이려니 다른 곳에서 붙이는 포스터에 비해 물량이 밀린다. 한창 동아리 행사들이 많은 시기인지라 여러곳에서 포스터를 붙이는데, 우리것은 아무리 만들어 붙여도 붙인 티도 안난다.
그래도 깐에 리플렛 까지 만들었는데, 영화 보러와서 리플렛 받아갈 사람이 몇이나 있으려나 싶다.
원래 주된 목적은 용산을 선전하는 거였으니, 떡고물 바라지 않고 묵묵히 선전하면 될일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해야 사람을 모을 수 있을까? 기다리면 될까? 아닐텐데.. 도무지 자신이 없다.
마음 맞는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중얼거렸었지만, 한 사람 있으면 두 사람 있었으면 싶고, 세 사람 있었으면 싶어진다. 숫자가 결정적인 건 아니지만, 꽤 중요하다. 열명과 열한명은 별 차이 없을지 모르지만, 세 사람이서 할 수 있는 것과 네 사람이서 할 수 있는 것은 배 이상 차이난다.
지금 하는 것들이 너무 일이 되는 건 좋지 않다. 모여서 무언가를 같이 했다는 기억으로 남는게 필요한데.. 뭐, 지나면 그러겠지? 모든 걸 일로 접근하는 나는, 너무 쉽게 성과를 계산하고 비판을 가한다.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에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날씨도 추워지는데, 톡톡거리던 시절의 나를 풍성하게 해줬던 영화제가 떠오른다. 그 때에도 찬 바람 맞으며 열심히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었는데. 봄철의 영화제도 설레지만, 늦가을의 설레임에 비할바가 아니다. 가을과 겨울이 좋은 건, 무엇인가 마무리되는 듯한 포근함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것들이 마무리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손에 들려있는 것에 매진할 수 있다. 내가 살아낸 삶에 대한, 그러니까 내 시간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뿌듯함. 봄에는 아무래도 내 손에 들린 것들이 온전히 내 것이기 어렵다.
어느새 가을이다. 올해 어지간히 했다. 주체적 조건이 갖춰지더라도 객관적 정세가 안받쳐주면, 어쩔 수 없는 거다. 내년에 올해만큼 할 수 있을까? - 나태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특히 내년. 올해에도 충분하지 않던 것들이 여럿 있었다. 적당히 넘기지 말고 날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