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아먹으려고 사놓은 바지락이 냉장고에 있는데, 물을 마시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무심코 바지락이 담긴 비닐봉지를 보니 바지락이 꿈틀거렸다. 잘못본게 아닌가 싶어 계속 지켜보니까 그 안에서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다. 순간 마음이 찡해지면서 내가 이것들을 먹어도 될것인지에 대해 자못 진지한 의문이 생겼다. 떠올려보면 대야 가득 살아있는 바지락을 삶아 먹기도 했었는데, 냉장고 안에서 꿈틀거리는 바지락에 이렇게 마음이 아픈걸까. 이 억척스러운 곳에서 살려고 바둥거리는 몸짓이 내가 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곳의 이들의 몸짓과 닮아있다. 그런 장면을 볼 때 항상 동동거리는 것은 내가 제대로 알 수 없는 의식의 영역에 존재하는, 어떤 근원적인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몸짓들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다.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파리도, 그냥 지나가고 나면 가슴에 남아 한동안 괴롭힌다. 더 생각해보면, 내가 위해를 가했는지 여부가 마음을 내리누르는 것은 아니다. 내가 위해를 가하는 순간까지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그 위해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존재의 모습을 깨달을 때 마음이 무너내린다.(내 눈에 보이지 않게 내가 상처입힌 존재들이 얼마나 많을지를 생각하면 이런 거스럭거림이 자기만족을 위한 알량한 치장에 불과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나 에게 원죄같이 따라붙는 이미지가 있는데, 오래전에 할머니가 꾸셨다던 꿈의 장면이다. 어디론가 먼길을 떠나는 나에게 색동옷을 입은 아이가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조른다. 같이가면 안될 길이라는 것을 알지만, 난 그 아이를 내치지 못하고 데리고 떠난다. 할머니는 그 꿈 이야기를 하시며, 저걸 떼어놓아야하는 데 못 떼어놓았다며 애석해 하셨다. 내가 꾼 꿈도 아니지만 그 이미지가 생생하게 나에게 입혀져 원형인 것 마냥 나의 한 조각으로 엉켜있다. 내가 이번 생에서 풀거나 지고 가야할 과제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적인 정보라 글로 풀어놓기가 어렵지만, 나의 원형이 내가 어떤 자극을 수용했을 때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그것이 내 삶의 방향을 대략적으로 붙들어 매는 것 같다는 거다.
;;;;;; 그래서 난 융심리학에 관심이 많고, 핵심감정 이론도 공부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