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밑자락에서 시험공부하고 있다. 단체로 합숙중인데, 이것도 며칠지나니 긴장이 풀려 매일 댕강댕강이다. 그래도 산밑에 있어서인지 나를 돌아보는 게 잘된다.
밤 에 일과가 끝나고 근처에 있는 갑사를 올라가봤다. 밤중에, 가로등이 모두 꺼져 캄캄한 길을 별빛과 달빛이 희미하게 밝혀줬다. 별빛도 어두운 길에선 꽤나 밝다. 옛날엔 더 밝았겠지? 이 추운 날, 츄리닝 차림으로 걸어올라갔더니 얼굴, 손, 다리가 꽁꽁 어는 것 같았다.
늦은 시간에 올라가서 절은 너무 조용했고, 감히 경내에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근처에 약사여래상이 있대서 거길 찾아가봤다. 고려 때 만들어진 걸로 추정된다는 약사여래상은 비바람에 많이 닳아있었다.
작 년 초, 실상사에 들렀을 때, 그 때도 약사여래불 앞에서 여러 서원을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 날의 서원을 흐트러트리지 않기를 서원했다. 약사여래와 인연이 깊은가보다. 몇 번 절을 하다, 너무 추워 손에 감각도 없어지고 해서 돌아서 내려왔다.
난 언제나, 작고 약하다. 그리고 작고 약한 모습을 인정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건, 내 약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때이다.
그나저나 공부는 제대로 안하고, 큰일이네..
지나간다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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