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을 엮어내는 것, 그 이야기들에 삶의 한편을 담아내는 것, 표현들 모두 놀랍다. 숨막히게 읽었다.
내가 만난 사람이 남파공작원인지 안기부 직원인지, '원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일까. 내가 보았던 야바위꾼은 애초 그곳에 없던 게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를 확인할 수 없는 존재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다. 고문을 받으며 호접지몽을 떠올렸다면, 일상이 호접지몽이 아니어야 할 필연은 없다. "인생이 이다지도 짧은 건 우리가 항상 세상에 없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이 외로운 사람들은 서로에게 손을 내뻗고 있다. 보아줄 이를 만나기 위해 수십억 광년을 건너온 별빛처럼, 들어줄 이를 만나기 위해 산과 바다를 넘어온 라디오 전파처럼. 하지만 이 손들은 서로 맞닿지 않아 엉뚱한 곳에 가닿기도 한다. 우주는 손들이 빈틈없이 가득차 허허로운 공간이다. 손과 손이 엇갈려 스치기도 맞닿기도 하는 곳. 우리의 인연은 애초 그런 것일지 모른다. 방향을 잃은 내 빛과 너의 빛이 우연히 만난 것. 하지만 그 우연은 입체누드사진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애초 어느것이 우연이고 어느것이 필연일지 알수 없는 노릇이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순수한' 개인이란 이데올로그들의 강변에 불과하므로" 누군지 알 수 없는 나와, 우연인지 필연인지도 모를 관계들이 오히려 나에 대한 본질에 더 가깝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나를 나라고 정의해주던 모든 것들이 의미없는 것임을 깨달을 때, '마치 지금 막 태어나 처음으로 그것들을 느끼듯이', '막 태어나 바다를 마주한 갓난아기처럼' 나의 감각만으로 나를 둘러싼 세상을 느끼고, 새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든 세상은 오롯이 내 것이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그것이 우연이었든, 필연이었든,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어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평생을 내달린다. "우리의 감각은 가끔씩 우리 자신의 바깥에 존재한다." 그 순간을 기약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우리. 아무리 내 정체가 의심스러워도, 보증해 줄 이 하나 있다면. 그 끈과 끈들이 얽히면 살아갈만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평생 540000번 웃고, 3000번 운다. 우리의 삶을 있는대로 그린다면, 180번 웃은 뒤에야 겨우 한 번 웃을 수 있다는 것을 빼먹어서는 안된다. 김하경씨의 '송어의 꿈'을 덧붙이자면.
노동현장 얘기만 나오면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린다. 표정이 굳어진다…… 나도 그랬다. 살림살이가 스산한 철거현장을 찾아가기 전에도 그랬고, 구사대에게 두들겨 맞은 조합원들을 방문하기 전에도, 열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전에도 그랬다. 솔직히 피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참 묘하다. 막상 현장을 찾아가보면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참담한 비극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붕대 감은 손으로 여전히 먹고 마신다. 다리를 절룩이며 웃고 떠들고 농담까지 나눈다. 슬픔, 분노, 절규만이 가득 차 있을 거라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순간이다.
다음으로 '밤은 노래한다'를 읽어야겠다. 김연수 작가, 훌륭해.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