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거포스트락

mogwai를 좋아하는데, mogwai를 소위 포스트락이라고 부르네.

 

포스트락.....;; 포스트... 음

모던락에 상대적인 의미인가..?

그럼 모던락은 뭘 지칭하는 걸까...

 

음악장르에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라는 걸 보고

이건 뭥미-가 절로 터져나왔다.

정말 저게 뭐니?

내가 노래를 부른다면 대체 장르가 어떻게 될까?

그로테스크 무규칙 이종 딴따라?

 

 

포스트락 앨범을 모아놨다는 블로그

http://ichosemusic.blogspot.com/2008/10/big-post-rock-collection-part-i.html

 

 

여기서 last vote라는 밴드의 앨범을 다운받아 들어보는데,

mogwai랑 비슷한 분위기네..

2010/01/05 10:20 2010/01/05 10:20

지나간다합숙

또 합숙이 시작됐다.

고등학교, 기숙사에 있던 한달무렵을 제외하면,

무엇을 준비하기 위해 이렇게 오랫동안 합숙하는 건 처음이다.

이제 시험이 열흘 남짓 남았고,

분위기가 엄숙하다.

그 분위기에 질려, 더 농땡이를 피고 있다.

 

 

/

 

기차소리가 들린다.

여기 2주일 넘게 머물렀는데, 기차소리를 엊그제 처음 들었다.

그 동안 왜 안들렸는지 모를일이다. 작은 소리도 아닌데.

한 번 의식하고 나니까,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지 않더라도 드문드문 들리는 것 같다.

평상시 생각하고 있지 않더라도, 특별한 사건으로 지칭된 자극은 마음 속에 남아, 다음번에 비슷한 자극이 있을 때에는 더 쉽게 반응하는 것 같다. 내가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수많은 자극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채 지나가버렸을 거다. 큰 소리라든지, 화려한 볼거리라든지, 이런 것들은 그 자극이 강렬해서가 아니라 그런 자극들에 이름을 붙여놓았기 때문에 쉽게 인지되는 것이지 않을까. 그보다 더 큰 자극들이 둘러싸고 있어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고 말야.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공상중.

 

 

생물심리학 책 살거야.

2010/01/04 12:34 2010/01/04 12:34

지나간다착하게 살기

루시드폴쯔음의 나긋한 목소리에 젖어주고,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채식을 시도하고,

한겨레를 읽고,

수익의 일부는 후원금으로 쓰고,

마음이 아플 땐 눈물흘리고,

그래서 기부를 하기도 하고,

주식이나 펀드는 하지 않고,

그건 정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

- 사려깊은 목소리로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언제나 경계하는 예쁜 삶.

 

 

 

그저 묵묵히, 끝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기.

삶에, 생명에 한도가 없다는 걸 항상 되새기기.

반성하고, 또 노력하고.

눌어언.

2010/01/02 14:50 2010/01/02 14:50

지나간다구글

구글이 이렇게 커진데에는 사람들이 구글에 대해 가진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구글'이라면 뭔가 더 개방적이고, 사용자편에 있을 것 같다. 화려하지 않지만 군더더기 없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다. 이런 이미지들.

 

그런 구글이 내놓고 있는 상품들을 둘러보다 보니, 구글 하나로 정보통신 산업이 귀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섬찟했다. 검색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유투브, picas 같은 스토리지 공간, 구글독스 같은 오피스, 아웃룩을 대체할 캘린더, 쥐메일과 구글 메신져, 크롬 브라우져  - 보통 인터넷 사용자들이 쓰는 모든 서비스들을 제공한다. 구글 appz 엔진 서비스에는 웹에서 실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개발자들을 모으고 있다. 자신의 프로그램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환경을 무료로, 트래픽 걱정없이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게 개발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쨋든 구글도 수익을 만들어내는 기업이다. 주 수익원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광고일 것이다. 개방성 때문에 많은 개발자들이 참여하고,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이나 구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문득 떠오르는데, 조정환 같은 이들은 이런 장면을 두고 소비와 생산(노동)의 구분이 사라졌다며, 상품을 소비하는 이들이 이미 생산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떠들지만 생산적 노동/비생산적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조차 무시하는 망설이다.) 구글 안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가면 늘어갈 수록 구글에 모이는 자본의 양도 늘어날 것이다. 컴퓨터에서 구글 홈페이지만 열수 있으면 다른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없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구글의 OS가 개발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이미 모바일OS는 상용화 되었잖아.) 구글 OS에서 구글 Chrome을 실행시키고, 그 안에서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고 메신져로 채팅을 하고, 오피스 작업을 한다.

 

구글이 컴퓨터 사용자들을 장악하면 할수록 IT부문에서 독점적으로 얻어낼 이윤이 늘어나는데, MS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상품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게 뭐가 있을까? MS의 제품에 대해서는 마지못해 쓰는 것이고 무언가 부당하다는 거부감을 가지면서도, 구글은 IT산업의 산타 마냥 추켜세우는 것을 보면 오히려 더 무섭다. 구글이 사회적 통제를 받지 않는 이상, 구글의 성장이 인터넷 공간의 개방성, 자유로움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2009/12/31 21:52 2009/12/31 21:52

뭔가, 역사에 남을 의미있는 투쟁현장이었던 것 같다.

학생들의 싸움이었고 건물을 점거한 채 농성하고 있었다.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다섯 남짓일까.

난 일종의 관찰자였는데,

어째서인지 그 농성이 나중에 중요하게 평가받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시점이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꿈이니까,

미래에서 왔다는 느낌이랄까.

농성은 곧 진압이 시작될 것이었고, 모든 사람이 연행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갈 사람들은 미리 나가고 결의가 된 사람들만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난 그곳으로 들어갔고, 어떤 방에서 농성 주도자를 만나 인사한다.

20대 학생이고, 여성이다. 아. 그러고 보니 농성자 가운데에는 여성이 많았던 것 같다.

수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그런 느낌이다.

난 그 농성의 주도자와 이미 안면이 있었지만 그 사람은 당연히 내가 초면이다.

난 어디에서 온 누구라고 소개했다.

곧 진압이 시작되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모두가 연행되어야 하는데, 난 몇사람과 경찰들을 피해 도망다닌다.

층계를 뛰어내려가고, 이리저리 피하다 보니 어느새 건물 밖이다.

연행되었어야 하는데... 이 때 전원 연행된 걸로 알고 있는데...

오히려 불안한 마음에 건물 정문쪽으로 돌아가니 장면이 바뀌어 있다.

커다란 파티같은 분위기였는데, 거기 고등학교 때 선생들이 있었다.

어딜 갔다 오느냐고 힐책하는 분위기였나?

 

기억나는 건 여기까지.

그러고 보니, 이날 아침에 용산협상 소식이 들려왔구나.

2009/12/30 22:04 2009/12/30 22:04

지나간다공간

어쩌다 보니, 대학 후반기를 보낸 집들은 꽤 널찍했다.

오래되어 낡은 집을 골라서인데, 그런 집이 방값이 쌌다.

오히려 방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집들은 대개 비싸다. 물론 걔중에는 특별히 비싸 널찍하기까지 한 방도 있다.

 

널따란 방을 고른 건 내 욕심이기도 할 것이다. 경계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이것저것 갖춰놓고 싶은 물욕이 불뚝불뚝 올라오곤 한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르겠는데, 갖춰놓을 공간이 없다면 굳이 갖다놓지 않았을 것들이 많다. 어떤 공간에서 지내느냐는 내 생활방식의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

 

며칠전부터 기숙사에 들어와 지내고 있다. 방 하나에는 침대 두개, 책상 두개, 책장 두개 옷장 두개가 있다. 그러고 나면 두사람정도 누을 수 있는 바닥만 남는다. 이런 넓이의 공간에서 지내는 게 몇년만이라 어색한데, 내가 바라왔던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어 설렌다. 굳이 이것저것 갖춰놓을 필요 없이, 당장 생활에 필요한 옷가지 몇벌, 이불, 세면도구, 컵, 노트북, 읽을 책 정도만 있으면 된다.

 

밥을 해먹고, 빨래를 하기 위해 세탁기, 밥솥, 냉장고, 조리기구 등등을 갖춰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넓은 방을 청소하느라 청소기까지 있었는데도,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면적을 벗어난 것인지 방바닥은 언제나 지저분했다. 기숙사에는 우선 그런 물건들을 안갖춰놓아도 되니 좋다. 방바닥을 쓰고 닦는 것도 두어바퀴 뒹구르면 될 면적이라 그리 어렵지 않다.

 

어차피 물건정리는 워낙 엉망이라 지낸지 1주일 남짓에, 방바닥 군데군데 책과 짐들이 널어져 있지만, 공간이 좁으니 그리 흉해보이지 않는다. 넓다란 방바닥 가득히 짐이 널어져 있는 건 참 심란하다.

 

그냥 나에게 이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좋겠다고..ㅋ

물론, 밥과 빨래는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

이런 재생산노동을 공동으로 처리하면 자원이 훨씬 덜들어가는데 말이다.

수십명이 지내는데 세탁기 몇 대면 된단 말이다.

물론, 식당에서 일하고 건물을 청소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저평가된 노동이 있긴하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그것을 각 가정내로 되돌려보내봤자 여성의 노동은 여전히 저평가 된다.

공동으로 수행하느냐, 개별가정에서 수행하느냐가 여성노동 저평가의 쟁점은 아니다.

공동으로 수행하되, 어떻게 같이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겠지.

2009/12/30 00:50 2009/12/30 00:50

지나간다가진 사람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무렵부터 수능시험 준비를 시작하며 강제로 기숙사에 보내졌다. 밤 12시까지는 잠을 재우지 않고, 아침 6시 반이면 무조건 깨운다. 자율학습이라고 이름붙여진 강제학습 시간이 너무 끔찍했다. 잠이 많은 나는 10시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데, 졸고 있으면 사감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괴롭혔다. 잠이 오는데 잠을 자지 못하고 버텨야 할 때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렀다.

 

이런 것과 더불어 기숙사에 정을 못붙였던 큰 이유는 같이 생활한 사람들에게 있다. 고등학교 기숙사는 성적순으로 강제 입사하는 것이었고, 학교생활에서 중심에 있는 아이들이 모여 지내는 공간이 되었다. 그 아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기숙사 안에서 만들어지고, 자신이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무언가 가진 사람들끼리의 관계를 구축해나간다. 요즘, 그런 생활을 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공간에 형성되었던 관계를 소위 인맥이라고 부른다는 걸 그 아이들이 모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기숙사는 한 방을 6명이 썼었는데, 2층침대 3대가 방 안에 들어가고 나면 남는 공간은 통로 밖에 없었다. 방은 잠을 자는 공간일 뿐이었다. 가뜩이나 잠이 부족해 12시 자율학습이 끝나면 바로 방으로 뛰어들어와 자기 위해 누웠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새벽 1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곤 했다. 방에 혼자 들어와 잠을 청하면 별 탈 없이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미처 잠들기 전에  애인과 통화를 하기 위해 방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곤 했다. 난 한 번 잠이 들면 잘 깨진 않지만, 잠이 들기까지는 꽤나 예민하다.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면 신경이 곤두서고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그렇게 통화를 하던 사람은 어렸을 때 미국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와 영어를 매우 잘했다. 그렇게 유학을 다녀온 걸로 짐작해보면 집에 돈도 꽤 많은 것 같았다. 물론 성적도 좋았다. 축구도 곧 잘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남자학교를 다니는데 애인이 있기까지 했다.(그 무렵 남녀공학이 아닌 학교에서 이성친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곤 했다. 이성애 중심적인 생각이기도 할테고, 성을 비틀어 바라보던 것도 있었지만 어쨋든, 비슷한 기준을 갖고 있던 또래집단 사이에서 이성친구는 뭔가 특별한 것이었다.) 당시 내 기준으로 보나 지금 되짚어 생각해보나, 그 사람은 어느 것 하나 못가진 게 없었다. 기숙사에는 그렇게 뭔가를 잔뜩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벽에 공부를 마치고 잠을 자러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통화도 어느정도 마무리되고, 들어온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나는 그 이야기들 까지 다 들어야 한다. 애인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진로에 대한 이야기, 학교에 대한 이야기 등등 자신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생각들이 오갔다. 지금 기억에 남는 특별한 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화 자체가 공연히 불편해 끼고 싶지 않았다. 설사 그 아이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기숙사 바깥에 있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분명 달랐다. 내가 그 대화에 끼기 위해서는 그런 시선을 이해하거나 이해한 척 해야하는데, 어느 편이든 내가 하기 싫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날은 그 아이들의 대화가 새벽 4시 5시까지 이어진다.  내가 속한 대화가 아닌데 듣고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미 잠든 척 하느라 숨소리 한 번 크게 못내고, 뒤척이지도 못했다. 몇 시간 동안을 머리속으로는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얼마나 곤욕이던지. 차라리 잠을 못자게 하는 고문이 더 낫겠다 싶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 아이들은 서로 유대감을 쌓아갔고, 졸업 후에도 자기들끼리 틈틈이 만날 것이다. 사실 졸업 후에 그 아이들이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었는데, 요즘 시험 준비로 사람들과 합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보았던 그 관계들을 체험했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는 그 기억이 아무 문제 없는 당연한 것인 듯하고, 그 때 유대를 형성했던 사람들을 지금도 연락하고 만나고 있다 했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사시를 패스했고, 어떤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고.... 이들 사이에 형성된 이 유대는 인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면서 이미 많은 것을 가진 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난, 명확하진 않았어도 그게 느껴져서 그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분명히 시선이 서로 다른데, 어느 편에서는 자신의 시선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다른 편에서는 그 시선을 동경한다. 그 때 서발턴 이야기를 알았더라면 진지하게 고민해봤을 것인데..ㅋ

 

기숙사에 머무른지 한달이 조금 넘어 결국 난 퇴사당했다. 12시를 넘어서 하는 자율학습은 선택이긴 했지만 사람들에게는 이미 필수로 받아들여 지고 있었고, 난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같이 방을 쓰는 사람에게도 사감에게도 난 뭔가 삐뚤어지고 건방진 아이였다. 그 안에서 난 혼자였고 - 혼자가 아니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그게 아쉽다 - 그걸 견디고 있기 싫었다. 기숙사 바깥에는 그래도 같은 편이 될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몇 명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때도 지금도 많은 걸 가지고 있다. 내가 더 가지려고 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가지고 있던 걸 놓지도 않았다. 그런 부끄러움이 언제나 나를 괴롭힌다.

2009/12/27 22:59 2009/12/27 22:59

지나간다

티벳 여행을 가기 직전, 향을 피우지 않아도 향 냄새가 났었다.

향을 피울 만한 곳이 없는데도, 길을 걷거나 차를 탈 때면 코 끝에서 은은한 향내가 나는 것이다.

 

손으로 향을 피운다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다.

향나무를 태워 향냄새를 발견한게 아니라, 이미 입력되어 있는 어떤 감각과 비슷한 것을 찾다보니 향나무 냄새를 찾게된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원형에 대한 이야기다. 비교종교학, 고고인류학 등에서 인류가 경험하는 신비체험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유의성이 있다는 언급을 하곤 한다.

 

 

덧.

티벳에 있는 동안, 몸이 별로 힘들지 않고 괜찮았는데, 땅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었다.

얼마전 산 밑에 머무를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을 때도 몸이 참 가벼웠다.

이런 경험들은, 증명할 길 없는, 너무 주관적인 느낌에 불과하다. 자기암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경험들은 재밌다.

2009/12/27 22:27 2009/12/27 22:27

아마 xxxx 같은 모임이었겠지? 논쟁하고, 설득하고, 사람들을 조직하고 -

그러다 그 사람들과 집회를 나갔는데, 인도 위를 행진하다 도로로 나가는 게 계획이었던 것 같다.

선두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는데, 앞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도로로 다 올라갔고 멀리 떨어져 있기 하지만 나도 차도로 나가야할 것 같아서 주변 사람들과 차도로 나섰다. 그런데 멀리 앞에 보이는 건 먼저 차도로 나왔던 사람들이 경찰들에게 쫓겨 이리저리 흩어지고 도망다니는 모습이었다. 들고 있는 죽봉은 끝이 다 갈라졌다. 차도 위로 올라온 우리에게도 경찰들이 달려온다. 허겁지겁 골목길로 도망가는데, 꿈속에서는 한발짝 한발짝 떼는 게 왜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골목길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좀 괜찮을 것 같은데, 코 앞에 있는 모퉁이까지 힘겹게 뛰어간다.

모퉁이를 돌고 나서도 꿈은 계속 이어졌는데,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한동안 쫓기는 꿈을 많이 꾸다 근 몇 년동안 꾸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쫓기는 꿈을 꾼다.

예전에는 쫓기는 상황이 너무 절망스러워, 격한 감정에 잠을 깨곤 했는데, 그래도 이번에 꾼 꿈은 감정이 심란하지는 않았다. 또 뭐가 날 쫓고 있는걸까...

2009/12/27 22:20 2009/12/27 22:20

지나간다음악

집에 mp3를 구워놓은 씨디가 많이 있길래 그 안에 담긴 파일들을 모두 하드에 옮겨보았다. 대학교 1학년 무렵부터 몇년동안 내가 모아놓고 들었던 음악들의 목록을 훑어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CD에 어떤 밴드의 음반이 하나 밖에 안 담겨 있지만, 다음 CD에는 그 음반 외에 다른 음반이 하나 더 담겨 있기도 하고, 이렇듯 어떤 식으로 듣는 음악의 범위를 넓혀나갔는지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보낸 시간과 기억의 조각들을 이런 식으로 뜻밖에 확인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떠올려보면 내가 만들었던 컴필레이션 음반도 있는데, 그걸 주위사람들에게 선물하고 꽤나 뿌듯해 했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난 어느만큼 멀어졌나.

 

CD10장 분량의 mp3가 지금은 DVD 한장에 들어간다. 지금 집에 쌓여있는 수십장의 CD는 정리하고 나면 DVD 몇 장 분량 밖에 안될텐데, 공간을 잔뜩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민망해할까 해서 머쓱하다. 불과 5년전만 해도 DVD를 집에서 굽는 건 꽤 드문 일이었단 말이다.

그만큼 사람마다 쥐고 있는 정보의 양은 끝모르고 많아지는데, 우리는 그 중 어느만큼을 담아내고 있을까? 지금은 예전만큼 음악에 탐닉하지 못하는데, 들을 수 있는 음악들이 많아질 수록 쉽게 물리는게 아닌가 싶다. 나를 살펴보면 고등학교 때보다 듣는 음악의 양은 많아졌을지언정, 어떤 음악 하나를 내 안에 담아내는 깊이는 더 얕아졌다. 몇 년 전엔 음악 하나에 심취해 그 음악을 구석구석 머리속에 그려넣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뭐, 그 땐 아예 mp3플레이어라는 게 없었고, 휴대용 기기는 cdp, mdp, 카세트플레이어 등이었는데, 난 cdp살 돈을 못모아 카세트플레이어로만 음악을 들었었다. 이미 절판돼 구하기 힘든 음반을 사기 위해 시내 모든 음반사를 돌아다니던 게 떠오른다. 지금은 설사 구하기 어려운 음반을 찾아야 한다 하더라도 발품을 팔기보다는 손가락에 일을 더 시켜야 한다. 어렵게, 어렵게 원하는 음악을 찾았다 해도 전선을 타고 온 음악은 발품을 팔아 손에 든것보다는 애착이 떨어진다. 옛날에 대한 향수인건가 질문을 던져보는데, 손과 발, 오감을 통해 촉지한 것과 전선을 타고 와서 모니터에 보이는 것 사이에는 그만한 '물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 우리는 결국 色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2009/12/19 16:39 2009/12/19 1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