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20100508

전주에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암으로 투병중인 분이 계신다는 제보를 받고, 반올림 활동가들이 직접 만나기 위해 내려왔다. 만나는 자리에 나도 따라가봤다.

한겨레21 기자, 추적60분 피디도 같이 왔다. 삼성에 대한 공분은 커지는데, 정작 일하는 노동자들이 직접 싸우고 있는 현장은 아니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달려올 수 있는 게 아닐까. 정작 사람이 있는 금타 같은 곳은 가지 않는다.

 

항암치료 때문에 많이 약해진 몸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피해자의 언니께서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곳에서 일하게 떠밀었다며, 당연히 자기가 돌봐야 한다고 하셨다. 몸이 힘들어 일하기 싫다는 걸 억지로 계속 하게했는데, 그렇게 안좋은 건 줄 알았으면 그러지 말걸 그랬다며 울먹이셨다.

박지연씨의 죽음 이후 많은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분도 우연히 텔레비젼에서 삼성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죽었다는 내용의 보도를 보고 번쩍했다고 한다. 다른 가족들 모두 그저 젊은 나이에 암이 생긴 것으로만 생각하고 무심히 지나갔는데, 노동과 연관되어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없었다고 한다. 분명히 이런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을거라고.

이렇게 일하다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일할지 말지를 선택하는 건 최소한의 권리가 아니느냐고 하셨다. 애초에 일하다 죽어서도 안되지만, 더 억울한 것은 일하다 병든 것 자체보다 자신에게 아무런 정보가 없었고 아무런 선택권도 없다는 데 있다. 자신이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만큼 무기력해지고 초라해지는 게 또 어딨을까.

말씀하시는 내용들이 그동안 다른 피해자들이 얘기했던 것과 너무나 똑같아, 미리 읽어보고 말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겪은 일도, 느끼는 감정도, 너무 똑같다.

생리불순, 불임, 유산이 잦았다고 한다. 임신 예정이거나 임신한 여성은 배치를 바꿔버린다고 한다. 그 작업환경이 사람 몸에 얼마나 나쁜지를 뻔히 알고 있고, 그래서 가장 영향을 크게 받을 태아에게 까지 그 환경을 노출시키지는 못한 것일게다. 자신들의 뒷감당만 궁리하고 있다.

일하다 구토도 있었고, 제품을 버리지 않기 위해 비닐봉투를 준비해 그곳에 내용물을 쏟기도 했단다. 다루는 약품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역해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힘들어 하신다고 한다.

공장 주변이 뿌옇게 보이기까지 한다고 한다. 공장 주변이 뿌옇다는 증언도 다른 피해자들에게서도 똑같이 나오는 거라고 한다.

사람보다 제품을 더 애지중지 한 것에 대해 크게 분노하셨다. 취직한 곳이 삼성이었고, 남들이 다 부러워 했기 때문에 더욱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 설마 삼성같이 큰 기업의 공장에서 사람 몸에 안 좋은 걸 계속 마시게 했겠느냐고 생각하셨단다.

강연에서 들은,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 듯 내 귀에 들리는 게 너무 어색했다. 그래서 말씀하시는 게 현실의 이야기가 아닌 것만 같았다. 이렇게, 이렇게 커다란 비극이, 범죄가 어딨단 말인가. 잊을만 하면 연쇄살인범이니 뭐니 떠들석하며 그를 단죄하기 바쁘지만, 정작 더 많은 사람을 연쇄살인 하고 있는 사람들은 경영 실적을 올린 유능한 관리자로 칭찬받는다.

 

방안에서 반올림 활동가와 기자, pd가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고 난 방 밖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감정이 복받쳐와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분은 인터뷰 중 몸이 너무 힘들어져 구토를 하셨다. 눈물을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입술을 자근자근 씹으며 계속 먼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이 참 파랬다. 만약, 내가 이 활동의 실무를 하게 된다면, 그래서 방안에 있어야 한다면 이럴 때 울어서는 안되겠지. 슬프면 울지,로 느긋해 할수만은 없다는 걸 문득 깨닫고 나니, 어떻게든 눈물을 참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 기자는 노동OTL도 썼었던 임지선씨였다.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너무 쉽게 판단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뭔가 기자의 냄새가 났다. 그러니까, 어느정도의 보호막을 갖고 있고, 자신감이 거기에서 비롯한다는 느낌. 그냥 내가 기자들을 신뢰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른다. 고민이나 활동은 나보다 훨씬 치열할지도 모를일이다. 노동OTL 기사는 치열했다.

2010/05/08 21:00 2010/05/08 21:00

김연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우연과 우연이 만나면 필연이 되는걸까?

필연으로 보이는 것들은 실상 우연에 불과할 뿐.

어쩌면 우연으로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필연이었을지도.

기표가 기의에 미끄러지듯,

내가 닿고자 했던 필연은 다른 우연으로 미끄러지고,

그 우연은 다시금 필연으로.

 

내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일 뿐,

내 마음도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서로 사랑했어요, 하지만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

그러나, 난

죽을만큼 노력하면 한덩이 진심은 전달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죽을만큼.

2010/05/08 00:16 2010/05/08 00:16

지나간다20100507

기다리다, 연습했다.

당췌, 노래 하나 익히는데 몇년이 걸리는걸까?

 

회의를 했고,

밥을 먹었고,

얘기를 하다,

또 회의를 하고,

기타를 치고,

세미나를 하고.

 

/

이야기 하다 정리되고, 고민이 드는건

 

사회를 통칭하든, 집단을 가르키든,

'몇 년 몇 월 몇 일, 누구누구, 무엇을, 어떻게...'와 같이

단면을 잘라 들여다 보는 건 위험하다.

흐름을 좇아야 하는데,

구체적 인간에게 가지는 분노, 사랑, 헌신은

결코 그 구체적 인간에게로 환원될 수 없고

그 구체적 인간이 놓여져 있는 맥락 속에서

추상화된 범주에게 적용된다.

결국 스파르타쿠스, 만적, 1894년의 누구, 1980년의 누구가

겪은 구체적 인간은 모두 다르지만

그네들이 지향한 이념은 같은 대상을 향한 것이다.

 

추상적 인류를 바라보느라, 구체적 개인을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왔었는데, 곰곰이 따져보니, 구체적 개인을 인식할 때 이미-항상 어떤 껍데기를 씌우고 있다. 그 껍데기가 로빈슨크루소인지 앙상블인지의 차이일 뿐. 껍데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껍데기일 뿐. 그래서 이념은, 현실의 구체적 개인에게 적용되어야 하나, 그 자체로는 사고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다. 현실의 대상과 사고의 대상을 분리할 것. 사고에서 구체인지, 추상인지는 헷갈린다.

2010/05/07 21:00 2010/05/07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