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잡기

- 요며칠 집에와선 컴퓨터에 손을 대지 않았다. 구태여 할 일이 있지도 않았고, 피곤해서 누우면 바로 잠들기 일수였고, 컴퓨터로 뭔가 뒤적거리기 보다는 차라리 책을 읽자는 생각에. 오늘은 늦게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뭔가 조금이라도 끄적거리고 싶어서 노트북을 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잠은 안자고. 쯧.

 

- 손으로 기록 남기는 게 잘 안된다. 귀찮음이려나. 귀찮음이 갈수록 는다. 한층 아래 다녀오는 게 귀찮다. 해야할 일을 하는 것도, 손을 움직이는 것도.

 

- 음악을 들어도, 그닥 신통한게 없다. 꽂힌다,는 느낌이 드는게 없다. 갈수록, 그럴 기회는 더 적어질 것 같다. 무언가에 미친듯이 매달리는 게 희미하다. 게다가, 생각은 퇴보하는 것 같다.

 

- 가냘프고, 괴롭고, 슬픈 사람들 투성이다.

 

- 되돌아보면, 지금 이곳에 있지 않을 수 있을 기로들이 여러번 있었다. 대체로 내가 선택한 것이겠지만, 어떤 것들은 조건이 가려져 있는 상황에서의 선택이라 내 선택이지 않았다. 지금 와서는 상황에 몰려, 되돌릴 수 없는, 그 전환점이 간간이 떠오른다.

 

- 나를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 프린터를 샀는데, 하루를 못버티고 돌아가셨다. 우리 출력량을 견딜 프린터 어디 없을까.

2010/04/15 02:30 2010/04/15 02:30

지나간다시껍한 기억

누가 힐러리에게 자필로 편지를 보냈다는 기사제목을 보고, '저게 무슨의미임', '왜 저런게 기사가 되는거임', ' 등등 생각하다가, 어렸을 적 학교에서 시키던 대통령에게 편지보내기 같은 뻘짓이 떠올랐다. 한번 떠오르고 나니 점점 구체적인 뼈대가 갖춰지는데, 이 기억을 지우지 않고 지금까지 어느 구석에 구겨뒀다 이제사 꺼내는 게 신기했다. 의식 바닥에 가라앚아있으면서도 지워지지 않고 오래가는 기억이 정말 있구나.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고,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기억들 중에도 그런 게 많겠지?

 

 

 

아무튼, 그 땐 초등학교를 다닐 때 였을 건데, 한국의 대통령이나 미국의 대통령 같은 세계의 '위인'. '훌륭한 지도자' 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시간이 있었다. 그 때도, 이런 편지를 쓴다고 전달이 될까?, 읽어보기나 할까? 미국대통령은 한글을 알까? 라는 의문은 있었지만 써야하니까 썼다.(참, 때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국군장병들에게도 편지를 썼구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국군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만하면 언제든지 관계맺을 수 있다는 건 참 그럴듯한 일이구나. 쩝) 

난 미국대통령에게 썼는데, 그 때 걸프전이 일어난 무렵이었나보다. 지금 얼핏 떠오르는 편지 내용은 세계 평화를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는 미국 대통령님하, 이라크에서 전쟁을 하느라 걱정이 많으시겠다, 열심히 싸워 세계평화를 지켜달라 - 였을것.

 

떠오르고 나니, 손발이 오그라들고, 저런 내용을 아무 의심없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썼을 걸 생각하니 섬찟하고. 지금 교육은 뭐 얼마나 바뀌었을까?

 

 

 

언젠가는 초등학교 때 써논 글묶음이 집구석에 있어 펼쳐봤는데, kal기 폭파시킨 악마 김현희... 운운하는 내용이 있어 시껍했었다.(아마도 초등학교 1, 2학년 무렵 썼던듯?) 난 매우 훌륭한 반공어린이였던 것이다.

 

 

 

 

/요즘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사회주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가난해지고 게을러진다고 나온다던데.

2010/04/08 08:16 2010/04/08 08:16

보는거경계도시2

길게 썼는데 두번이나 날아갔다.

더 쓸 의욕이 안생긴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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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두율씨는 한국사회에 무엇을 바란걸까?

비전향 장기수가 30년 감옥에 갇혀 있는 사회에서 비전향 경계인이 가능하다고 생각한걸까? 바꾸겠다고 생각한걸까?

 

- 송두율씨를 이용하려던 사람들은 무엇을 바란걸까?

애초 어떤 판단을 했던 걸까? 그 판단이 어떻게 변한걸까? 그 판단들을 송두율씨와 공유했을까?

 

- 개인의 실존적 비극에서 운동이 연유한다. 송두율씨는 자신의 행동이 실존적 요구에서 비롯한 것임을 헤아려 달라고 항변하는 것 같다. 그를 이용하려던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배신감을 느낀다. 그런데 나도 송두율씨를 헤아릴 수 없는게, 그는 한국사회에 대해 알고 있었고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을 갖고 있었다. 그는 지식인이다.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부딪히는 이들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할 수 없다. 그가 쥐고 있고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옳고/그름을 아는 게 운동은 아니다. 그 입장이 어떤 효과를 남기는지 보는거지.

 

- 대법원의 판결이 한국사회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송두율씨 주변 사람들은 여론을 읽고, 여론을 바꾸기 위해 궁리한다. 법원의 판결까지 통틀어, 조선일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운동과 조선일보는 같은 편에 있다.(BG철학을 공유한다.) 화면을 가득 메운 진보/보수 프레임이 답답했다. 그들은 서로 적인가? 공생관계이지 않은가? 송두율씨 주변으로 조선일보, 한나라당 치들이 달려들었고, 역시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는 민족주의 세력들이 모이는 건 당연하다. 그 운동이 자신의 적과 닮는 것도 당연하다. 잘 모르겠지만, 이데올로기에서의 계급투쟁은 그런 식으로 벌여내서는 안될 것 같다. 동떨어져 보이지만 스티브 제이 굴드의 작업처럼 목적론적인 진화론과 싸우는 게 훨씬 더 계급적이지 않은가?

2010/04/06 01:15 2010/04/06 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