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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8 :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과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8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과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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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혁명을 통해 탄생한 노동자국가는 1920년대 후반까지는 노동자 권력 아래 사회주의로 이행을 위한 시도들이 수행되었지만스탈린주의 반혁명 이후 1930년대부터는 노동자계급에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우리는 러시아혁명 이후 몇 달 안에 이루어진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제도적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 1917년 신분제 폐지철도노동자 노동시간 1일 8시간 실시군대 계급 폐지, 1,886개 전략회사 몰수종교의식을 하지 않는 결혼제도 실시낙태법 제정모자보호 연구소 개소, 1918년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공화국 선포사회주의 적군 창설을 위한 법령 선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위와 같은 법적제도적인 혁명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노동자계급은 소비에트 생산 주체권력 주체가 되지 못했다최초 프롤레타리아 혁명인 러시아 10월 혁명이 주요 유럽 국가들에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물결이 패배하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고립되면서 사회주의로 이행이 실패하게 된 것이다. 1918년 봄 테일러주의 재도입과 1인 경영 강제 그리고 혁명 성과를 방어하려는 임시조치들즉 정치반대 분쇄짜르 관료 재고용자본주의 생산방식과 인센티브 재부과는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실질적 권력을 깨뜨리고 노동자정부와 노동자 사이 틈새를 벌려놓고 말았다이 과정은 3년간의 내전 동안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죽음으로 더욱 굳어졌고세계혁명의 연이은 실패는 볼셰비키를 고립시켰다.

 

결과적으로당시 러시아는 1차 대전 패배와 내전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세계분업 내 후진적이고 종속적 지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일부 자본주의적 이행 형식을 들여와 이행을 추구한 것이다이러한 상황을 이어받은 스탈린은 5개년 계획 도입과 농업 집산화로 소련이 사회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지만오히려 일국사회주의와 반노동자 계급적인 당 독재 강화를 가져왔다당이 곧 계급이라는 잘못된 판단 속에 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고당이 노동자계급을 대신하는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레닌 죽음과 세계혁명의 명백한 침체에 힘입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선언은 국제주의와의 공개적 단절이었으며 세계 제국주의 권력으로 러시아를 건설하는 약속이었다이것은 사회주의가 승리한 세계혁명 열매임을 주장한 1917년의 볼셰비즘과 완전한 대조를 이루었다그러나 볼셰비키가 러시아 국가와 경제경영에서 엉키면 엉킬수록 고립되고 낙후한 상황에서라도 성취할 수 있는 사회주의를 향한 단계를 더욱더 이론화하기 시작했고그중 하나인 원시적 사회주의 축적이론은 산업 성장을 노동계급 이해와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다실제로 러시아의 산업 성장은 노동계급 착취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한마디로원시적 사회주의 축적은 본질에서 자본축적을 의미했다유럽 혁명운동 패배와 러시아에서 반혁명 과정은 코민테른을 구성하는 당들에 러시아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을 부과하고동시에 그 당들이 사회민주주의 전략과 전술로 후퇴하도록 하면서 코민테른에 반영되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일국사회주의는 생산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법률상의 소유형식만을 바꾸어 놓았다그것들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의 진정한 성격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단지 개인 소유의 법률상 측면만을 폐지한다노동자는 생산수단 사용에 있어서 어떤 진정한 통제력도 소유하지 않으며생산수단들은 그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결국생산수단들은그것들을 소유하고 공동으로 담당하는 관료 조직을 위해 단지 집산화 되었을 뿐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일반화된 상품생산 체제이며자본주의 생산 목적은 잉여가치 획득과 축적이다여기서 자본주의가 단순히 상품생산과 시장의 무정부성에 기반을 둔 이윤추구 체제라는 기본인식을 넘어자본주의 핵심이 자본의 사회적 관계 지배이며자본은 본질에서 소외된 노동의 자기 확장임을 인식해야 한다소련 노동자들은 임금을 위한 교환을 위해 일했으며그들은 자신의 노동을 소외시켰고 자본을 생산했다소련에서 잉여가치는 사적 자본주의와 같이 새로운 잉여가치를 추출하기 위하여 생산과정에 재투자되었다소련은 이러한 자본과 임노동의 사회관계가 생산수단과 생존수단의 국가 소유 제도로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으며스탈린주의 옹호자들의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국유화)가 전체인구에 의한 소유를 의미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허위임이 밝혀졌고이것은 단지 소유형태의 법적인 형식이었을 뿐 전혀 노동자계급 소유가 아니었다결국국가와 그 관료 조직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집중화와 계획화는 소유 폐지를 향한 한 걸음 진전이 아니라단지 이것을 더 효과적으로 성형하기 위한착취강화를 위한 한 수단에 불과했다따라서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양립할 수 없지만사적 소유의 부재(사회주의 경제 창조를 위한 필요 불가결한 전제조건임에도)는 그것 자체로 사회주의와 동의어가 아니다.

 

러시아에서 반혁명은 국가가 주도하고 명령하는 특수한 형식을 취했고이것은 10월 혁명 이행과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핑계로 민족경제 재조직화로 나타났다이 과정은 그 후 중국동유럽쿠바북한 등등에서 추진되었고이들 모든 국가는 사회주의적인 요소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평의회 권력의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다사회주의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를 참칭하며 타도해야 할 대상인 자본과 관료 독재가 가장 쇠퇴한 형식으로 지배할 뿐이다특히 중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제국주의 동맹체제 안에서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는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중국은 러시아와 다르게 프롤레타리아혁명을 한 적이 없고따라서 단 한 번도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가진 적이 없어 현재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과거의 마오주의 이데올로기 모두 자국 자본 이익을 위해 프롤레타리아를 희생시키면서오히려 그들을 탄압하는 데에 사용되었음을 되새겨야 한다.

 

소련 경험은 첫째일국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국가 이름으로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소련에서의 국가는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부르주아지가 축출되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일국사회주의 가능성에 대한 스탈린주의 이론 및 소위 사회주의 국가들이나 노동자국가에 대한 환상은 이러한 은폐에 모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둘째명령경제는 사회주의가 아니며사적 소유 철폐와 국가 소유로 전환만이 아니라생산수단 사회화와 국가 권력이 노동자계급의 지배 아래 존재하는 노동자평의회 체제이어야 한다셋째러시아혁명 교훈은 국가기구가 반혁명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이며이행기에 계급과 국가 사이 관계 문제의 복잡성과 난해성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앞으로도 프롤레타리아와 혁명가들은 이 문제를 우회할 수 없으며이것을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넷째, 노동자국가, 코뮤니스트 사회와 전혀 관련이 없는 중국, 쿠바, 북한과 같은 부르주아 착취체제는 계급투쟁과 세계혁명을 통해 전복하고 진정한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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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즘은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으로아래로부터 노동자평의회 권력 창출과 강화를 통해 가능하다코뮤니스트 혁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당 역할은 필수적이다하지만 당이 노동자평의회를 대신할 수 없으며노동자계급의 집단적 권력을 당이 가질 수 없다따라서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은 혁명 시작과 함께 사회 모든 권력을 노동자계급이 집단으로 행사하는 노동자평의회 권력을 수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노동자평의회가 모든 정치와 경제와 산업을 장악하고 노동자평의회가 전 사회에 걸쳐 모든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코뮤니즘 생산 관계는 생산수단 국유화와 사적 소유 철폐를 넘는 생산수단 사회화이며생산수단 사회화는 노동자평의회의 전 사회적 권력이라는 전제가 되어야 가능하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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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호] 소련,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세계혁명

소련, (국가자본주의그리고 세계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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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맑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2012년 故 김수행은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라는 의미 있는 책을 쉽게 풀어 출간했다그는 한국에 맑스의 자본을 처음으로 번역하여 대중화시킨 원로 맑스주의 경제학자로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쳤다그는 그때까지 러시아 혁명 이후 존재했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그 성격을 규정한 적이 없다맑스주의자들 사이의 토론과 논쟁에서도 그들의 국가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앞으로 올 세계혁명에 대한 실천적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고 언급하지 않았다당시 <사회실천연구소>가 개설한 자본」 강의가 끝난 후 수강생들과 함께 종강 뒤풀이를 하는 시간에 막역한 친구이며 동지인 그와 함께 그의 책 이야기를 하며 비로소 현실 사회주의와 미래사회에 관한 입장을 같이하게 되었다그의 책에서 몇 단락을 옮겨보자.

 

노동자가 해방되니 자본가도 해방되어 인간이 해방되는 새로운 사회가 공산주의이고 사회주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실상 소련이나 동유럽 나라들은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당과 정부의 관료들이 점점 더 인민 대중을 옥죄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을 조금만 읽었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결국 소련식 자본주의가 내부의 위기 때문에 일반적 자본주의로 성장 전환한 것이 바로 1990년의 소련 사회의 붕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김수행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한울아카데미, p.4)

 

노동하는 개인들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노동력을 국영기업이나 콜호스에즉 국가 자본에 판매하여 화폐를 얻고 이 화폐로 상품을 사기 때문에소련의 상품과 화폐는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상품·화폐와 같은 것이었습니다생산수단이 국가 소유로 되었기 때문에 사적 소유는 없어지고 사회적 소유로 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추론입니다… 이 경우 [사회적 소유] ‘사회는 개인들을 초월하여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문제가 아니라자각한 개인들의 연합을 가리키거나 연합한 개인들 그 자체입니다따라서 소련의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폐기되어이런 연합한 개인들의 사회적 소유가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국가 소유는 실질적으로 노멘클라투라의 소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앞의 책, pp. 158159)

 

나는 2008년 8월 <아우프헤벤그룹의 소련은 무엇이었나를 번역하는 도중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건으로 잡혀가는 바람에 번역이 지연되어 2009년 6월에 그 책을 발간하면서 다음과 같이 옮긴이의 말을 적었다.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실 사회주의가 진정한 사회주의였는지에 대해서도 분석하지 않고 반혁명적 스탈린주의에 대한 옹호로 갇혀있는 맹목주의자들이 있는가 하면, 1930년대에 가졌던 소련에 대한 방어 논리의 미련을 못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머지않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코뮤니스트들이 혁명으로 쟁취해야 할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이러한 문제가 정리되지 않는다면반혁명의 참담한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를 아직도 혁명의 허상으로 붙들고 있거나스탈린주의를 교조로 삼는 사람들이 맑스주의자들이라면이 글과 같은 분석을 내놓기를 바랄 뿐이다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자.”(아우프헤벤오세철 옮김소련은 무엇이었나빛나는전망, pp. 5~7)

 

 

2. 소련은 무엇이었나 코뮤니스트 좌파

 

나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좌익공산주의자로 불렀고코뮤니스트 좌파 정치적 입장과 혁명 전략에 동의해 왔다소련을 국가 자본주의로 보는 그들의 입장과 분석에 원칙적으로 지지를 보냈지만위에 번역한 <아우프헤벤그룹의 자본주의로 보는 견해에도 비판적 지지를 하게 되었다그러면서 이 그룹의 글이 지니는 강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맑스주의 역사를 철저하게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면서 맑스의 가치론으로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를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트로츠키의 고뇌와 한계를 넘어서서 소련을 분석한 신트로츠키주의 이론가인 틱틴의 분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셋째국가 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로 보는 견해(코뮤니스트 좌파와 제2인터내셔널과 코민테른 중심 입장)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소련이 본질에서 자본주의 상품생산에 기초하지만자본주의로 강제적 이행한 역사적 형식의 결과로써 생산의 자본주의적 본질과 상품교환에 기초한 사회로서의 외양 사이에는 탈구가 있었다고 본다그리고 이 탈구는 가치 불구화와 사용가치 불량을 가져왔으며 이 두 가지는 소련의 비자본주의적 특성을 유지하는 기초가 되었고결국 소련의 궁극적 쇠퇴와 해체로 이끌었다고 본다. (앞의 책, pp. 6~7)

 

우선 코뮤니스트 좌파가 보는 자본주의와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기로 하자먼저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은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가 제국주의 시대 자본의 실질적 형식인 금융자본 재산으로서 자본주의 본질을 바꾸지 않았다고 보면서 엥겔스가 반뒤링에서 … 주식회사로 전환도국가 소유로 전환도생산력 자본주의로서 성질을 지양하지 못한다… 그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현대 국가는 본질적으로 자본가 기관자본가 국가관념상 총자본가이다현대 국가가 생산력을 더 많이 자기 소유로 떠맡으면 떠맡을수록그것은 더욱더 현실적 총자본가가 되며국민을 더욱더 착취하게 된다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노동자로프롤레타리아로 남는다자본 관계는 폐기되기는커녕 오히려 정점으로 치닫는다라고 한 말을 강조하고 있다. (오세철 편저좌익공산주의빛나는 전망, pp. 499~500)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 국가는 국가 자본주의 특수한 형식이었고 국가는 생산의 물질적 수단을 직접 통제하고 시장에 대한 독점을 장악했으며소련의 비참한 종말은 10월 혁명을 러시아 블록 몰락과 분리된 오랜 세월 동안 코뮤니스트 좌파가 발전시킨정치경제학 비판이나 맑스주의에 근거한 분석을 입증시키고 있다고 보았다따라서 국가 소유와 사회주의를 동일시한 비극은 이른바 소비에트 사회가 고전적(곧 서구자본주의의 조직적이고 법적인 구성으로 돌아온 종말을 보여주었다고 결론짓는다.

 

국가 자본주의에 기반한 러시아에서 반혁명은 유럽 혁명운동의 패배와 맞물렸다반혁명 과정은 당에 러시아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을 부여했으며 동시에 그들 당이 사회민주주의 전략과 전술로 후퇴하게 했다당 없는 혁명의식을 생각할 수 없지만러시아 경험의 교훈은 가장 계급의식적인 당일지라도 소비에트와 고립되어 혁명을 유지할 수 없음을 입증했다지치고 죽은 노동계급에서 고립되었을 때 볼셰비키 지도부의 손에 남은 권력은 자본주의 국가 권력이었다. (앞의 책, pp. 503~4)

 

한편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자본주의의 쇠퇴기 보편적 경향으로 국가 자본주의 출현을 설명한다쇠퇴기에는 어떤 민족자본도 제한 없이 발전할 수 없고각각의 민족자본 모두 무자비한 제국주의적 경쟁에 직면해 있어서 밖으로는 경쟁자들에 대항해 자신을 경제·군사적으로 가장 잘 방어하기 위해안으로는 증대하는 사회모순의 첨예화에 대응하기 위해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조직화한 것이 국가라고 설명한다경제 영역에서 국가 자본주의로의 이러한 경향은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적인 특징들인 가치법칙경쟁 또는 생산 무질서를 소멸시키지 않는다생산 무질서가 국가적인 계획화 때문에 감소하는 것처럼 보인다면그것은 세계적 차원에서는특히 국가 자본주의가 방지할 수 없는 심각한 체계 위기 동안에는그만큼 더 강화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국가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합리화이기는커녕자본주의의 붕괴 표현에 불과하다. (앞의 책, pp. 458~460) 또한 정치적·사회적 영역에서 국가자본주의로 경향은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와 같은 극도의 전체주의적 형식 속에서든 또는 민주주의 가면 아래 은폐된 형식들 속에서든국가기구와 특히 그 집행력이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 막강한 통제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통해 표현된다.

 

국가 손에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국가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부르주아지가 축출되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일국 사회주의’ 가능성에 대한 스탈린주의 이론 및 사회주의’, ‘코뮤니즘’ 국가들이나 사회주의로 노정에 있는’ 국가들에 대한 허구는 이러한 은폐에 모두 뿌리를 두고 있다국가 자본주의로의 경향에 의해 초래된 변화들은 생산 관계의 수준에서가 아니라법률상 소유형식에서 발생한다또한프롤레타리아 잉여노동 점유 및 국가 자본 축적이라는 특수한 기능을 행사하는 국가 관료조직은 일종의 계급을 이룬다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계급이 아니라 기능에 있어서 국가의 형태를 띤 낡은 부르주아지에 불과하다국가와 그 관료조직에 의한 자본주의적 생산 집중화와 계획화는 소유의 폐지를 향한 진전이 아니라 착취 강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국제코뮤니스트흐름은 이를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러시아에서 반혁명 승리는국가 자본주의의 가장 발전된 형식들을 적용했고이러한 혁명들은 ‘10월 혁명 속행으로서’, 그리고 사회주의 건설로서 냉소적으로 제시했던 일종의 민족경제 재조직화로서 표현되었다이러한 예는 그 후 다른 곳에서도 추구되었다중국동유럽쿠바북한인도차이나 등등 … 이들 모든 국가에서 코뮤니스트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프롤레타리아적인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으며역사상 가장 커다란 허위의 무게 아래에 자본 독재가 가장 쇠퇴한 형식으로 지배할 뿐이다이 나라들을 위한 그 어떤 비판적또는 조건부의’ 변호도 전적으로 반혁명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앞의 책, p.462)

 

 

3. 소련을 탐구하다

 

바로 이 시기에 소련을 탐구하다1)라는 방대한 소련 연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우리말로 옮겨져 출간되었다. <사회실천연구소>를 맑스주의 연구자들과 함께 만들면서 우리는 번역 시대를 다시 열자고 했다훌륭한 맑스주의 연구논문들을 번역 소개하여 맑스주의 사상이론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 맑스주의적 실천에 이바지하자는 것이었다그 글들은 실천지에 계속 실렸다이 책을 옮긴 황동하는 실천지에 린던의 책을 번역 연재했고드디어 이를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은 북아메리카와 서유럽 출신 서구 맑스주의자와 동유럽·소련 저자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장기 전망으로 1917년에서 2005년까지 서구 맑스주의 사상을 따르면서만일 더 짧은 시간 축을 적용했다면 모호해졌을 연속성과 변화를 확증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90년 동안 이루어진 소련에 관한 탐구를 망라하여 정리한 저작은 처음 있는 작업이며 연구 역사와 구조를 큰 틀에서 인식하게 하는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맑스주의자이거나 맑스주의자가 되려는 모든 연구자와 실천 활동가는 자신이 특정한 정치 노선을 선택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지침서로 손색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그러나 이 책에 망라된 연구에 직접 다가가 꼼꼼하게 검토하는 몫은 저자의 몫이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들 몫이다.

 

저자는 특히 서구 자본주의 안정과 활력에 대한 인식을 1917년부터 4단계로 구분하면서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있는데첫 번째 단계는 1917년부터 1950년대 초까지로 일반화된 상품생산이 지배했던 체제 쇠퇴하락붕괴를 강조하는 인식 유형두 번째는 1950년 초부터 1960년대 말까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역사적으로 보기 드물 만큼 경제가 성장하고 번영한 시기세 번째로 1960년대 말부터 자본주의가 해결할 수 없는 경제위기에 빠졌다는 믿음이 지배하는 시기그리고 네 번째로 그 위기 속에서도 자본주의가 당분간 세계를 계속 지배할 것이라는 인식의 시기이다이 책이 2005년까지 연구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2009년부터 진행된 대공황과 자본주의의 쇠퇴와 파국의 경향을 고려한다면 아마 우리는 다섯 번째 단계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2장 10월 혁명에서 스탈린 시기까지(19171929), 3장 스탈린의 대도약에서 대조국전쟁까지(19291941), 4장 대조국전쟁에서 동유럽의 구조적 융합까지(19411956), 5장 소련 공산당 20차 당 대회에서 프라하의 봄’ 탄압까지(19561968), 6장 프라하의 봄 탄압에서 페레스트로이카까지(19681985), 7장 소련 붕괴와 그 여파(1985년에서 현재까지), 8장 결론을 대신하며, 9장 메타 이론적 주석으로 짜여있다.

 

출판물 수는 28(19171928), 53(19291940), 130(19411956), 63(19571968), 402(19681985), 107(19862004)으로 총 783편이며 이를 시기별로 자본주의관료적 집산주의타락한 노동자국가 그리고 다른 이론으로 분류하여 연구자별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저자에 따르면 1917년부터 논쟁의 규모는 차츰 증가했고, 19571968년 동안에는 얼마간 줄어들었으며, 1968년 뒤 폭발적으로 늘었고, 1980년대 뒤부터는 다시 꽤 줄었다. (마르셀 판 데르 린던 지음황동하 옮김서구 마르크스주의소련을 탐구하다서해문집, p.373)

 

그는 서론에서 소련에 대한 이론화에 영향을 준 세 가지 요소로 서구에 대한 인식소련에 대한 인식그리고 맑스주의적 사회분석에 대한 해석을 꼽았는데 그 세 가지 영향도 여러 단계를 거쳤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도표로 정리하고 있다. (앞의 책,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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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론적으로 소련에 대한 이론 전개가 네 가지의 분명히 다른 단계로 구분된다고 정리한다.

 

1) 1917~1929년은 고전적 단선주의가 지배했다혁명 이후 사회가 성공적이든 또는 역사적으로 불가능하든그도 아니면 실패로 끝날 운명이든 사회주의로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던 시기였다.

 

2) 1929~1968년은스탈린주의적 전환의 결과로서일반적으로 새로운 사회형태가 소련에서 출현했다고 인식하던 시기였다세 가지 중요한 변종이 이 기간에 제시되었다즉 ① 국가 자본주의 이론과 ② 타락한 노동자 국가 이론이다두 가지 이론 모두 여전히 단선적 도식을 고수했다그뿐만 아니라 ③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도 나왔는데이 이론에 따르면 관료집단은 새로운 지배계급으로서 기능했다그 이외에 주의 깊게 네 번째 접근을 한 시도(‘이름표 없는 이론들’)가 1940년대 초기에 (페드호사힐퍼딩), 그리고 특히 1950년대 초 서독에서 출현했으나이것들은 상대적으로 고립되었고 다시 잊혔다.

 

3) 1968~1985년의 시기에는 논쟁이 다시 활기를 띠었고네 번째 접근법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으며세 가지 오래된 접근법은 정체하는 경향을 보였다.

 

4) 1985년 뒤부터는 논쟁의 강도가 약해졌다그런데도 특별히 새로운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수가 많이 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앞의 책, p.376)

 

그러면서도 저자는 (국가자본주의 이론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면서 타락한 노동자 국가이론과 관료적 집산주의론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먼저 정통 맑스주의 관점에서 타락한 노동자 국가론의 몇 가지 근본적 문제들을 지적하는데 첫째관료적 현상의 일시적 본질에 대한 의문둘째생산 영역과 분배 영역 구분이 맑스와 모순되는 점셋째분배와 관련된 기생적 기능을 관료 것이라고 봄으로써 관료가 생산 영역에 뿌리를 둘 수 있음을 부인했다는 점넷째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의 분리 모순을 들고 있다.

 

그는 노동자 국가 이론은 부분적으로는 정통에 어긋나고 부분적으로는 비논리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결론 짓는다. (앞의 책, pp.382~385) 이어서 소련을 지배계급이 있는 새로운 사회형태로 보는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에 대해 그는 첫째이론 전체가 맑스 틀에 맞지 않는다는 점즉 자본주의 뒤에 다른 추가적이고 온전한 역사적 단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맑스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고 잘라 말한다둘째관료계급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와 관련하여 논자들이 서로 모순적인 해석을 제시하고 있음을 들었고셋째이 이론이 옳다면 권력을 잡기 전에는 존재한 적도 없었던 지배계급이 출현했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점 때문에 맑스의 정설과 일치할 수 없다고 본다. (앞의 책, pp. 385~387) 또한저자는 1968년 이후 이름표 없는’ 이론의 급속한 확산과 정교화가 옛 이론들의 강점과 약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결과는 아닐지라도소련이 독특한 생산양식을 가진다는 점을 부인했던 네 번째 경향의 출현은 이해할만하다고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저자가 지적한 대로 1985년 이후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며특히 소련 붕괴 이후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이 책 37장 소련 붕괴와 그 여파(1985년에서 현재까지)에서 저자는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제시한 몇몇 그룹을 간략하게 소개한다우선 <혁명당 동맹(LRP)>의 이론가인 월터 다음을 들 수 있는데그는 1990년 그의 책 스탈린주의의 삶과 죽음에서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이행에 대한 새로운 시대 구분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다.

 

그는 1930년대 중반까지 트로츠키가 소련의 전개 과정을 분석했던 것처럼 소련이 발전했지만전환점이 된 1936년부터 몇 년 동안 자본주의 복원에서 정점에 다다른 반혁명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그는 이를 국가화된 자본주의라고 불렀으며경쟁을 자본주의 본질로 보지 않았다그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추진력을 축적 노동자본과 노동 사이의 투쟁근본적으로는 임금체계를 통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로 규정했다. (앞의 책, pp. 320~322)

 

두 번째 영국의 반-볼셰비키 코뮤니스트 프로젝트에서 활동한 페르난데스는 그의 책 소련의 자본주의와 계급투쟁(1997)에서 자본주의 세 가지 결정적 특징(상품과 임노동과 이윤을 위한 생산)으로 생각한 것이 모두 소련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이 책 요약은 소련은 무엇이었나(아우프헤벤 지금오세철 옮김빛나는 전망)의 부록에 실려 있다. 219~233쪽을 볼 것)

 

세 번째는 <아우프헤벤그룹은 자본주의를 사적 소유와 시장의 무정부 상태를 기초로 한 이윤 추구체계로 보는 정통 맑스주의의 진부한 해석을 거부하고 자본주의 본질이 소외된 노동의 자기 확장이라고 보았다소련에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소련 노동자는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라는 것이다이 그룹은 틱틴을 따를 것을그리고 소련을 이행기 사회구성체로 여길 것을” 제안했다그러나 보르디가와 이탈리아 좌파의 통찰을 따르는 우리는 소련을 자본주의로부터 이행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로 이행기에 있는 사회구성체로 파악할 것을 제안한다라고 말해 코뮤니스트 좌파의 국가 자본주의론과 차별성을 보인다. (더 자세한 것은 위에 언급한 책 소련은 무엇이었나를 볼 것)

 

7장 결론에서 저자는 비록 소련이 초기에 광범위한 공업화 방법과 경제외적 강제를 사용하는 데 성공했지만소련은 비효율성이 늘어나고 집중적인 성장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지구화하는’ 세계 자본주의와 경쟁에서 경제적·군사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제성장 모델이었다이러한 생각은 모든 사상 경향에서 차츰 지배적으로 되었다.”(앞의 책, p.369)고 결론짓는다.

 

타락한 노동자국가 이론과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이 정통 맑스주의 원칙에서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저자의 평가와 국가 자본주의 이론에 대한 그의 평가는 다르다그의 평가를 점검해 보자첫 번째 국가 자본주의 이론가들이 (국가자본주의 본질을 해석하는데 네 가지 관점을 지녔다고 보았다① 노동계급의 존재(제임스매틱레오), 또는 잉여가치 생산(위럴), 생산수단의 임금노동자 착취(홀룸베리), ② 이윤을 실현하고 시장계약을 통해 그들 사이 재화를 교환하려고 시도하는 개별 기업 사이의 분리(보르디가베틀랭샤토파디야), ③ 임금이 최소화되어 있고잉여가치가 투자와 비생산적 소비를 위해 사용될 경우(그란디소), ④ 이윤 극대화를 통해 유발된 자본 사이의 경쟁(클리프)이 그것이다그러면서 그는 자본주의 본질을 임노동에 초점을 맞추는 대부분 이론이 마르크스 일면만을 강조했다고 해석한다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맑스가 보기에몇몇 요소를 구성요소로 하나의 통합체를 구성한다이때 임금노동은 몇몇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만일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언급된 저자들은 맑스의 의미에서즉 체제에 내재하는 논리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생기는 소련에서 기업경쟁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고따라서 소련 국가 자본주의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어쨌든 임노동은 자본론」 1권에서 다루어졌지만경쟁은 자본론」 3권에서 폭넓게 다루어졌다.”(앞의 책, p.380)

 

그러나 일부 저자가 임노동을 가장 중요한 유일 조건으로 보았다고 해서 국가 자본주의 이론 전체를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그의 결론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이는 1985년 이후 제기된 국가 자본주의 이론(다음페르난데스아우프헤벤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저자는 국가 자본주의 이론 문제를 지배계급 존재 문제로 본다몇몇 저자들이 이와 관련해서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고 사적 자본가 존재만을 부인했지만대다수 저자는 부르주아지가 러시아 자본주의를 지배했다는 것을 부인했다는 것이다이는 맑스가 자본가 계급이 자본주의를 위한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한 것과 모순된다는 의미이다다만 클리프와 베틀랭만이 소련에서 부르주아지 존재를 상정했고 경쟁이 존재한다고 믿었다고 보았다그러면서 그는 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어느 한 가지 이론도 사실과 일치하면서 정통 맑스주의에 부합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라고 결론짓는다.

 

위에 언급한 이론들에 대한 평가를 통해 저자는 열 한가지의 잠정적 관점을 확인하고 있다.

 

① 볼셰비키 체제와 나중에 스탈린 체제는 근대화 독재 정권을 만들어냈다.

② 소련은 아시아적 생산양식과 유사점을 나타냈다.

③ 소련 사회는 잡종’ 사회구성체, ‘비논리적’ 현상인간 역사 도중에 있는 막다른 길이었다.

④ 볼셰비키주의 그리고/또는 스탈린주의는 역사적으로 제한된일시적 현상이었다.

⑤ 소련 사회는 계급 사회와 무계급 사회 사이의 이행기 단계의 한 예가 되었다.

⑥ 스탈린주의와 파시즘 또는 국가 사회주의는 같은 사회형태의 두 가지 변종이다.

⑦ 소련은 정치에 대한 경제의 종속 또는 완전히 자율권을 획득한 국가가 되었다.

⑧ 지배 엘리트 권력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분리에 기반을 두었다.

⑨ 소련에서 노동자는 자유로운 임금노동자가 아니었다.

⑩ 소련이 오래 존속하면 할수록 비효율성이 더욱 증가하거나생산력과 생산 관계 모순이 더욱 커졌다.

⑪ 소련의 역동성은 서구와 경쟁하면서 만들어졌다. (앞의 책, pp. 388~390)

 

저자는 서구 맑스주의가 탐구한 소련 연구의 역사를 검토한 후 내린 열한 가지 잠정 결론에서 명시적으로 소련이 (국가자본주의인지타락한 노동자국가인지 관료적 집산주의인지아니면 또 다른 사회구성체인지를 밝히지 않았지만, (국가자본주의 이론에서 본 소련 사회분석과 상당 부분 공통된 인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 책은 1917년부터 지금까지의 소련에 관한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소개한 최초의 연구 성과로서 소련 연구의 지침서적이자 사전이라고 볼 수 있기에 주요 논쟁을 자세하고 깊게 다루지 않았고 각각의 연구에 대한 접근을 역사를 공부하는 맑스주의자 몫으로 남겨 놓았다.

 

 

4. 소련, (국가자본주의그리고 세계혁명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쇠퇴의 마지막 단계를 지나는 위기와 모순을 보면서 100년 만에 제대로 된 세계혁명의 가능성과 코뮤니스트 사회 건설을 위해 계급투쟁의 주체적 조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그런데도 자본주의사회주의코뮤니즘에 대한 맑스주의적 접근과 이해에 무지하거나 왜곡된 주관주의적 교조와 자의적 해석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아직도 스탈린주의 망령에 갇혀 반혁명과 파시즘을 방어하는 또 다른 파시스트의 모습을 본다코뮤니스트와 노동계급의 투쟁 역사와 러시아 혁명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그 성과를 받아드리면서도 스탈린 체제 이후 반혁명 역사에 대한 반성과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에 대한 반성이 충분하지 않다.

 

소련은 무엇이었나에 대한 과학적이고 명쾌한 분석 없이 세계혁명은 불가능하다우리는 다시 한번 코뮤니스트 좌파를 포함한 맑스주의자들이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분석한 입장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프롤레타리아트 자기 해방을 향한 세계혁명과 코뮤니스트 사회 건설 강령과 세부적 실천계획을 세워야 한다소련을 자본주의로의 이행으로 볼 것인가국가자본주의로 볼 것인가의 토론과 논쟁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1917년부터 1989년까지의 소련 역사 속에서 진행된 주체적 사실을 바탕으로 연구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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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셀 판 데르 린던 지음황동하 옮김서구 마르크스주의소련을 탐구하다서해문집,

 

국제코뮤니스트전망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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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이 아니라 부르주아 억압 기구-검찰 폐지!

 검찰 개혁이 아니라 부르주아 억압 기구-검찰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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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부르주아 정부인 문재인 정부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검찰은 정치적으로 독립할 수 없는 권력이지만, 계급적으로는 가장 정치적인 집단 중 하나이다.
 
  검찰과 같이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중요한 부분인 '기생' 지배권력은 지배계급에 속하면서도 독립적인 사회 계층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바로 입법, 사법, 행정부와 국가기관에 속한 (고위직) 공직자들로 판사, 검사, 국정원, 경찰, 군인뿐 아니라 그곳에 파견(포섭)된 교수, 노동자대표도 포함된다. 이들은 자신만의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사회의 '기생충'으로 살아가는데, 이들의 배타적인 이해의 영역은 '국가 기관'의 것이다.
 
  이러한 사회 계층은 지배계급의 손에서 사회의 공직자로 시작하여 그 규모와 무엇보다도 국가 기구의 상층에 있다는 위치 때문에 자신을 점점 더 자유롭게 하여 결국 사회의 지배자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배계급을 자신들의 경향에 동화시킨다. 이 계층은 공공 재정을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다수의 공무원(공공) 노동자를 통제-지배하고, 법을 명령하고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법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게 적용할 물리적 폭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이 이들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 맞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물질적 존재를 국가의 존재로부터 끌어낸 이 기생적인 특권 계층의 계급적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이들은 사회 존재 측면에서 기생적이고, 정치적 본질에서는 반동적인 계층으로 국가의 영속화에 관심이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독립적이지만, 언제나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이 계급의 경제적 체계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에 기초하고 있으며, 인간 착취의 영속화와 경제적. 사회적 특권의 보호를 주요한 원칙으로 하는 계급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의 지도층으로 그에 맞는 권위와 명예를 가지며, '언제까지나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기에 다수의 선망이 된다. 따라서 그들에게 '계급적 중립'이나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계급적 본질을 흐리게 하는 환상할 뿐이다. 
 
  현재의 검찰 개혁 요구 역시 환상이다. 검찰을 개혁하고 그것을 ‘덜 부패한’ 기관으로 교체하는 것이 억압 기구의 폐지는 아니다. 그것은 통제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은 검찰을 정권에 맞게 통제하려는 시도 이상이 아니다. 여기서 노동자들은 어느 편도 들어서는 안 된다. 누가 이기든 노동자들은 이용만 당할 뿐이고, 노동자의 통제력 강화가 아닌 지배계급의 독재(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 갇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개혁은 코뮤니즘으로 향하는 ‘점진적 변화'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계급 자신의 조직과 혁명당을 통해서만 전복할 수 있다. 정치 검찰, 부패한 검찰을 청렴한 기관으로 교체하는 것으로는 검찰의 반(反)노동자성이나 노동자계급에 대한 국가 폭력을 종식시킬수 없다. ‘덜 해로운’ 정치인을 권력의 자리에 앉힌다고 부르주아 정부가 기능하는 방식을 바꿀 수 없듯이, 검찰을 개혁하고 그것에 새로운 위상을 부여한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자본의 이해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일 뿐이라는 사실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사회의 피착취, 피억압계급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폭력으로 통치하는 그들은 견인이나 포섭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 검찰과 사법기관이 구조적으로 저질러 온 범죄행위는 '사건재조사와 진상규명',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것과 책임자 처벌'만으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그들과 적대하는 사회 계급인 노동자계급이 스스로의 물리적 힘과 집단이성으로 그들이 독점하고 남용하는 모든 특권을 폐지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폐지 없이 당장 그들의 특권만을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가 없어져야만 이러한 기생 계급과 특권을 없앨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지배계급 내의 여러 분파와 그들의 계급적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들을 개혁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벋어나, 국가기구에 의탁하지 않고 독립적 투쟁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세상에서도 기생계급이 존재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개인과 특정 집단이 갖는 모든 특권을 폐지하고, 모든 공직자들이 노동자 평균급여를 받으며, 사회 전체의 통제(선출자의 소환)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검찰 개혁이 아니라
부르주아 억압 기구-검찰 폐지!
노동자 권력-평의회 기구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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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건설] 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에 대하여 2

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에 대하여
 
2. 노동자운동에서 분파의 역사와 좌익분파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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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올가을 본격적으로 진행될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이른바 '좌파' 또는 '사회주의 자임 세력'과 분명히 구분되는)의 '당 건설' 논의를 앞두고, 당(분파)에 대한 기본 개념과 당 건설 원칙을 정립하기 위해 ICP를 포함한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의 입장과 자료를 공유합니다.
 
앞으로의 연재에는 과거 '사회주의당 건설 운동' 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과 성찰 없는 조직보존 도구로서의 (사이비) 당건설 논의 흐름, 혁명적 주체와 전망이 부재한 후퇴한 당 건설 경로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2 인터내셔널의 배신과 분파의 출현

 

19세기 동안 맑스와 엥겔스가 이룩한 거대한 이론적 성취의 상속자들은 제2 인터내셔널의 좌파였다. 20세기 초, 이들 사회민주주의의 좌파는 건강하게 제2 인터내셔널의 테제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새롭게 열리고 있는 시대를 인식하고 그 시기에 비추어 혁명가들의 역할을 명확히 했다. 그들의 첫 번째 행동은 베른슈타인, 카우츠키와 그 동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경제 투쟁과 코뮤니스트 혁명이라는 궁극적인 목적 사이의 분리에 집중되었다.

레닌은, 사회민주주의당의 일부로서 러시아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객관적인 조건을 보지 못했던 '멘셰비키에 반대하여 맹렬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그는 대중 정당이라는 사회민주주의적 개념을 버렸다. 레닌에게 투쟁의 새로운 조건은 경제적 투쟁을 정치적 투쟁으로 변환시킬 소수 전위 정당이 필요함을 의미했다.

로자 룩셈부르크 또한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적이고 반혁명적 일탈에 대해 반대했다. 룩셈부르크는 경제적 투쟁과 정치적 투쟁의 통일을 주장했고, 방어적인 투쟁은 오직 권력 쟁취를 위한 최종적 정치 투쟁을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만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의 좌파는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시대에 의해 의제가 된 코뮤니스트 혁명의 필요성을 단언했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초기에 제2 인터내셔널과 노동조합을 결정적으로 삼켜버린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에 반대하여 1915년 침머발트에서, 그리고 1916년 키엔탈에서 단호하게 일어났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진전은 대부분의 국제주의자들이 함께 모여서 독립적인 좌파를 조직했다는 것이다. 침머발트를 떠나기 전에 그들은 레닌, 지노비에프와 라덱으로 구성된 침버발트 좌파 서기국을 설립했다. 1916년 전쟁으로 인한 위기와 레닌이 예측한 위기는 유럽 전역에서 첨예화되었다. 사회민주당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하지 않는 침머발트 다수와 좌파 사이의 큰 차이는 균열이 되었다.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난 후 레닌은 침머발트의 늪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좌파로만 구성된’,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을 즉시 건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침머발트에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창설까지, 코뮤니스트 9, 이형로)

 

2 인터내셔널의 반동적 퇴행 속에서 최초로 진정한 분파가 출현했다. 최초의 분파는 볼셰비키분파로서, 1903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대회 이후 처음에는 조직에 관한 문제를 놓고 그다음에는, 러시아와 같이 반봉건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임무와 관련된 전술 문제를 놓고 기회주의에 대항한 투쟁을 벌였다. 1917년까지는 볼셰비키분파와 멘셰비키분파가 서로 독자적으로 자신의 정책을 수행하긴 했어도 형식적으로는 동일한 당, 즉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ussian Social Democratic Labour Party)에 속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트리뷴을 중심으로 발전한 맑스주의 경향이 1907년부터 네덜란드사회민주노동자당(Dutch Social Democratic Workers Party) 내부에서 비슷한 작업에 관여했다. 이 경향은 당내의 기회주의적 기류에 대항해 싸웠고, 1909 3월 새로운 당, 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을 결성하게 된다. 1918 11월 사회민주당은 네덜란드 코뮤니스트당(Communsit Party of the Netherlands)이라는 당명을 (독일 코뮤니스트당의 창립 이전에) 채택한다.

 

2 인터내셔널의 내부 분파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세 번째 경향은 독일 코뮤니스트당을 창립하게 된다. 제국의회에서 사회민주당 의원들을 포함해서 만장일치로 전쟁차관을 통과시킨 1914 8 4일 저녁, 국제주의자 투쟁가들은 당내에서 이러한 지도부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 로자 룩셈부르크의 거처에 모인다. 1914~1915년 겨울부터 불법 전단지가 유포되었다. 불법이라는 조건 하에서 탄압에 노출된 채, ‘스파르타쿠스그룹(Spartakusgruppe)’을 그다음엔 스파르타쿠스동맹(Spartakusbund)’을 이름으로 채택한 극히 작은 그룹은 전쟁과 정부에 반대한 투쟁뿐만 아니라 사회민주당의 우파와 중앙파에 대항한 투쟁을 벌였다. 스파르타쿠스 멤버들이 혼자는 아니었다. 다른 그룹, 특히 함부르크와 브레멘에서의 다른 그룹은 스파르타쿠스동맹의 멤버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국제주의적 정책을 옹호했다. 이러한 다른 경향은 1918 12 31, 독일 코뮤니스트당의 창립 순간에 함께 결집하지만, 새로운 당의 근간을 이룬 것은 명백하게 스파르타쿠스동맹 멤버들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좌파분파가 러시아, 네덜란드, 독일에서 보다 약간 뒤늦게 형성되었다. 이 분파는 나폴리에서 보르디가(Bordiga)와 그의 동지들이 1918 12월부터 간행한 신문, ‘소비에트(Il Soviet)’를 중심으로 한 기권주의자 분파(Abstentionist Fraction)’이었는데, 공식적으로는 1919 10월 이탈리아사회당(Italian Socialist Pary)의 당대회에서 한 분파를 이루었다. 1920 10월 밀라노에서 통합코뮤니스트분파가 결성되었다. 투라티의 우익을 배제하고 코뮤니스트당을 건설할 것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내놓았고, 코민테른의 제2차 대회의 결정에 따라서 선거 보이콧을 포기한다. 1920 12월 이몰라(Imola)대회에서 분열 원칙이 결정되었고, 1921 1 21일에 시작된 리보르노(Livorno)대회에서 소수는 대회를 떠나서 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Communist Party of Italy)으로 정착하고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한 지부가 될 것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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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좌익분파의 투쟁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1919 3월에 창설되었다. 3 인터내셔널은 자본주의가 새로운 세기에 진입했음을 선언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제3 인터내셔널은 하나의 먼 전망으로서가 아니라 즉각적이고 긴급한 그리고 실천적인 필요성으로서. 노동자의 권력 장악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프롤레타리아계급의 하나의 세계적으로 집중화된 정치조직의 건설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코민테른은 너무 늦게 창설되었고, 국제 혁명의 물결은 패배하고 쇠퇴했으며,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점점 고립되었다. 이러한 고립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의 퇴행에서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러한 사태 때문에 코민테른은 기회주의의 성장에 저항할 수 없었다. 반대로 코민테른은 죽었다.

 

코민테른을 평가할 때, 우리는 그것이 국제코뮤니스트당이었다고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것의 실질적 퇴행 때문에 그것을 부르주아 조직으로만 보려는 사람은 그걸 제대로 평가할 수 없고, 그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끌어낼 수도 없다. 트로츠키주의는 초기 4차 대회를 계승해야 한다고 무비판적으로 주장한다. 창립대회가 제2 인터내셔널과 단절했던 지점에서, 그 후속 대회는 퇴행했다는 점을 그들은 결코 보지 못했다. 1차 대회는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분리했다. 그런데 3차 대회는 그에 반대해 통일전선 속에서 사회민주주의와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사회민주주의가 부르주아 진영으로 결정적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인식한 후인데도, 코민테른은 3차 대회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부활시켰다. 사민주의당과의 동맹정책은 1930년대에 트로츠키주의가 입당주의 정책을 채택하게 했다. 입당주의란 곧 코민테른 1차 대회의 원칙을 정면으로 무시하면서, 사회민주주의당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미 1920년대에 코민테른 내부에서 이러한 퇴행에 맞서 투쟁하려는 새로운 좌파가 만들어졌다. 그들은 특히 이탈리아, 네덜란드 그리고 독일 좌파였다. 1920년대 동안 배제된 이러한 좌익 분파들은 코민테른과 혁명적 물결을 비판적으로 재평가함으로써 죽어가는 코민테른과 미래의 당 사이에서 연속성을 보증할 정치투쟁을 지속했다.” (1919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창설, International Review 57,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코민테른 안에서 이러한 코뮤니스트좌파의 전투는 특히 노동자운동의 가장 암흑의 시기,  1920년대 말에 시작한 역사상 가장 길고 가장 끔찍했던 반혁명의 시기 동안 싸웠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반혁명의 상황 속에서, 노동자운동의 강력한 쇠퇴기 속에서 코민테른의 좌파 혁명가는 잊지 못할 투쟁을 수행했다. 이 점을 상기 하면서 코민테른 내부의 좌익분파의 투쟁을 살펴보겠다.

 

러시아 좌익분파의 투쟁

 

1918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 안에서부터 좌익 분파가 등장했는데, 이는 볼셰비키의 정치에 대한 의견 차이의 표현이었다. 이것은 그 자체로 볼셰비키주의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의 증거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생생한 표현이었으며,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실천에 대해 급진적이고 지속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는 혁명적 분파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이에 저항하는 당 내부의 타락한 목소리가 제시될 때마다, 볼셰비키주의의 원래의 강령에 대한 배신을 비판하기 위해 당 내부에서 분파들이 생기거나 해체되었다. 스탈린주의가 당을 무덤에 묻고 나서야 이러한 분파의 발생은 멈추었다. 당시 러시아의 코뮤니스트좌파는 모두 볼셰비키였다.

 

볼셰비키당 내부 분파 중 가장 선명했던 노동자그룹 1922~23년에 결성되었다. 그룹을 주도한 것은 우랄지방의 노동자 미아스니코프(Miasnikov)였는데, 그는 노동자계급 출신의 다른 투쟁가들과 함께 러시아코뮤니스트당의 노동자그룹을 창설했고 당의 12차 대회에서 그룹의 선언문을 배포했다. 이 그룹은 당과 노동자 사이에서 불법 활동을 시작했고, 1923년 여름의 파업 물결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이 그룹은 대대적인 시위를 요구했고, 일차적으로 방어적인 계급 운동의 정치화를 시도했다. 이 시위로 게페우(GPU, 국가정치보안부)는 당에 위협이 된다고 확신하게 되고, 미아스니코프를 포함한 그룹의 주도자들은 수감되었다. 하지만 그룹의 활동은 1920년대 말까지 불법적인 방법으로 계속되었다. 이때 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를 탈출해서 파리로 망명했고,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D)의 입장에 가까운 입장을 옹호하는 코뮤니스트노동자(L´Ouvrière Communiste)의 간행에 참여한다.

볼셰비키당의 퇴행에 맞서 투쟁을 벌인 모든 경향 중에서 노동자그룹이 가장 정치적으로 명확했다. 특히, 당이 추구하는 정책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혁명의 국제적인 전망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 점에서 그들은 (당과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민주주의의 문제와 경제 관리에 중점을 두었던 다른 그룹과는 상반되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코민테른의 첫 4번의 대회를 참조점으로 삼는 트로츠키주의 경향과는 달리 코민테른의 제3차 및 4차 대회의 통일전선 정책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트로츠키주의 경향의 좌익과 노동자그룹의 인자 사이에 (특히 망명 중에) 토론이 있었다.

노동자그룹은 볼셰비키당 내부에서 일관되게 하나의 분파처럼 활동했던 유일한 경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스탈린의 혹독한 탄압은 혁명가들이 이들의 경로를 따라 발전할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로 돌아갈 것을 결정했다. 예상대로 그는 즉시 실종되었고, 코뮤니스트좌파의 미약한 역량은 가장 용감한 투사를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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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민테른 5차 대회 이후 시기는 코뮤니스트당의 지속적 볼셰비키화와 코민테른 우선회로 특징지어졌다. 당 대회에서의 논쟁 밖에서 노동자운동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레닌이 정치 활동을 포기하게 만든 이래 코민테른과 소련코뮤니스트당을 이끈 3두 체제(스탈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1925년 말 와해된 것이었다. 1929년 봄 소련코뮤니스트당 15차 당 대회 준비를 위해, 트로츠키의 최초의 반대파와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크룹스카야가 합세한 통일반대파가 결성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반대파 결성에 스탈린은 억압을 강화했다. 게페우는 지도자를 당에서 축출함으로써 반대파의 지역조직을 폐쇄했다. 1927 10월 트로츠키와 지노비예프는 소련코뮤니스트당 중앙위에서 축출되었다. 지노비예프와 그 지지자들의 항복은 러시아 좌파가 투쟁을 계속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모욕, 위협, 당으로부터의 추방도 노동계급의 진정한 투사를 막을 수 없었다. 연속되는 새로운 타격에도 불구하고, 반대파 성원과 그 대표인 라코프스키는 계속되는 투항과 소련에서의 트로츠키의 추방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는 투쟁을 계속했다. 함정, 협박, 암살에도 불구하고 라코프스키와 반대파 중핵은 1934년까지 조직화된 투쟁을 지속했다. 그들 대부분은 진영 내에서 저항을 계속했다. 라코프스키가 투쟁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지노비예프와 그 추종자들이 했던 부끄러운 방식이 아니었다.

 

독일과 네덜란드 코뮤니스트좌파

 

다른 나라에서 코뮤니스트좌파의 투쟁은 불가피하게 러시아와는 다른 형태를 취했지만, 이들도 아주 일찍부터 코민테른 내부에서 투쟁을 시작했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노동자운동은 지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두 나라에서 혁명적 맑스주의 경향사이의 관계 측면에서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독일·네덜란드 코뮤니스트좌파의 입장은 판네쿡, 호르터 및 얀 아펠과 같은 혁명가들로 대표된다. 그들은 처음부터 독일 노동자계급의 혁명 투쟁의 열기 속에서 단련되어 반동적인 차리즘에 대항해서가 아니라 독일혁명의 사회민주주의적 사형집행인과 그들의 노동조합 심복에 대항했다. 이들은 제국주의 전쟁과 러시아와 독일에서의 혁명으로 나타난 시대변화의 여러 의미를 가장 먼저 파악하게 된다. 노동자계급 이해의 옹호를 위한 의회의 이용 불가능성, 사회민주주의의 배반과 반동적 본질,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국가의 옹호자이자 제국주의 전쟁의 신병모집하사관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 새로운 시대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와 같은 원칙에 근거한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독일·네덜란드 좌파의 투쟁은 혁명 물결의 퇴조와 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의 실패와 함께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이들은 정치조직 자체의 문제와 역사적 진로(계급 간의 힘의 균형)의 문제에 있어서 취약했다이들의 최종적인 실패는 프롤레타리아계급과 부르주아계급 사이에 힘의 균형의 진화에 대해 명확한 전망을 혁명가들이 가질 필요가 있음을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

 

1921 7월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 지도부는 호르터의 지원을 받으며,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의 모든 연결을 단절하고 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 Kommunistische Arbeiterinternationale : KAI)’의 창설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

호르터와 그의 지지자들의 오류는, 하나의 국제적인 좌파코뮤니스트 경향으로 재편성될 수 있는 코뮤니스트좌파 분파들이 코민테른 내부에 여전히 남아있을 때 인위적으로 코뮤니스트노동자 인터내셔널(KAI)을 선언한 것이었다. 이 실수는 독일혁명 운동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 1921년 즈음 세계혁명의 퇴조는 유럽에서 명백했고 이러한 퇴조로 인해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창설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 경로가 여전히 혁명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위기라는 이론을 가진 호르터와 에쎈 경향의 KAI 선언에는 특정 논리가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의 전제가 틀렸다.” (독일과 네덜란드좌파, Philippe Bourrinet)

 

이후 독일·네덜란드 코뮤니스트좌파 일부는 1930년대 동안러시아에서의 혁명의 패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결정적인 문제와 직면하여, 볼셰비키당이 국가자본주의의 기관으로 변형된 것을 혁명 패배의 결과이기보다는 원인이라고 잘못 파악했다그래서 불가피하게 당의 반혁명적 본질을 이론화하고 노동자평의회를 현시기에 유일하게 가능한 프롤레타리아조직 형태로 간주했다. 결국, ‘평의회주의 경향으로 된 그들은 노동운동에 대한 자신의 무용성을 이론화하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이탈리아 좌파의 투쟁과 교훈

 

독일·네덜란드 좌파와는 반대로 이탈리아 좌파는 전쟁 동안 그리고 코민테른의 창설까지는 볼셰비키의 특징과 같은 비타협성을 계속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이들에게는 원칙에 대해 타협하고 원칙을 흐리게 만들어 혁명을 향한 지름길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가치도 없었고, 그러한 지름길은 패배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사실상 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의 선두에 있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의 비타협성은 1920년 계급투쟁의 패배에 뒤이어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파시즘의 등장을 대항해 모범적으로 표현했다. 실천적인 수준에서 이러한 비타협성은 파시스트의 위협에 직면해서 (진보적이든 사회주의적이든) 부르주아의 어떤 당과도 동맹을 맺는 것을 완전히 거부한 점에서 나타났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오직 자신의 영역에서, 경제파업과 자기방어를 위한 노동자민병대의 조직을 통해서만 파시즘에 맞서 싸울 수 있었다. 이론적인 수준에서 보르디가는 파시스트 현상에 대한 (오늘날까지 유효하게 남아있는) 최초의 진지한 분석을 했다. 그는 이 분석을 코민테른 제4차 대회의 대표단에 제시하며 코민테른의 분석을 거부했다.

 

파시즘은 중간계급의 산물도 아니고 부르주아 지주의 산물도 아니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겪은 패배의 산물로서, 그 패배는 우유부단한 쁘띠-부르주아 계층이 파시스트 반동 세력을 지원하게 만들었다. (...)

파시즘은 봉건적 반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밀라노와 같이 모든 산업대도시에서 최초로 생겨났다. (...)

파시즘은 민주주의와 상반되지 않았다. 이것은 국가가 부르주아계급의 권력을 더 이상 방어할 수 없을 때 그것을 필수 불가결하게 보완했다.”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이러한 비타협성은 통일전선정책, 사회당과 그 부수체에 대한 관대정책과 관련해서도 표현했는데, 보르디가는 노동자의 정부라는 구호는 코뮤니즘의 정치강령을, 즉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독재를 위해 투쟁하도록 대중을 준비할 필요성을 사실상 부정한다.” 고 비판했다. 또한, 비타협성은 1924 7월 코민테른 5차대회에서 추진된 코뮤니스트당(CP) 볼셰비키화정책에 반대한 것에서도 표현되었다.

보르디가는 1926 2월부터 3월까지 코민테른의 제6대 확대 행정위원회 동안 마지막 전투를 벌인다. 그는 코민테른의 기회주의적 표류를 비난했고, 분파의 역사는 레닌의 역사이고 분파는 병도 아니고 병의 증상도 아니라 기회주의적 영향에 맞선 방어 반응임을 시인하면서 이 문제가 당장의 사안이 될 것으로는 내다보지 않으면서 분파의 문제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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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부터 이탈리아 좌파의 투쟁은 프랑스와 벨기에에서의 망명지에서 계속되었다. 이탈리아를 떠날 수 없었던 활동가는 감옥에 있거나 보르디가처럼 섬에 갇혀 있었다. 좌파는 활동가 다수가 축출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코뮤니스트당과 코민테른 내에서 싸웠다. 그들의 기본목적은 퇴행을 향한 피할 수 없는 경로를 바로잡기 위해 이들 조직 내에 개입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탈리아 좌파의 교훈은 아래 글에 잘 정리되어 있다.

 

코뮤니스트 소수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혁명적 운명의 한 표현으로서 영구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소수가 노동자계급의 즉각적인 투쟁에 갖는 영향력은 그것의 수준과 노동자 대중 의식성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공개적이고 점점 더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시기에 만이 소수는 영향력을 갖기를 바랄 수 있다. 오직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만 코뮤니스트 소수는 하나의 당으로서 표현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프롤레타리아 투쟁이 역사적으로 퇴조하고 반혁명이 승리하는 그러한 시기에 혁명적 입장이 중요성을 띠고 계급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런 시기에는 유일하게 가능하지만, 극히 중요한 일은 바로 분파의 일이다, 즉 계급 역량의 균형이 또다시 코뮤니스트 입장이 프롤레타리아계급 전체에게 영향력을 갖도록 가능하게 만들 그때를 대비해 미래의 당 건설을 위한 정치적 조건을 준비하는 것이다.”

 

좌파 분파는 프롤레타리아당이 기회주의의 영향으로, 다시 말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그 당에 침투함으로써 퇴행되어갈 때 형성된다. 혁명적 강령을 지지하는 분파의 책무는 당내에서 승리하기 위해 조직된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 분파가 성공한다면 그것의 원칙이 승리하고 당이 구출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당은 퇴행을 계속하여 무기와 짐을 모두 넘겨주고 결국 부르주아 진영 안으로 전향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당이 부르주아 진영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전향의 가장 중요한 징후의 하나는 프롤레타리아적인 정치생활이 당 안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좌파 분파의 책무는 당을 바로잡을 희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당 내부에서 투쟁을 계속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에 좌파 경향은 코민테른의 당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런 당은 종종 야비한 술책까지 동원해서 이들을 제명했다. 프롤레타리아당이 일단 자본주의 진영으로 넘어가 버리면 회귀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프롤레타리아계급은 혁명을 향한 길로 되돌아가기 위해 새로운 당을 건설해야 하고, 분파의 역할은 적에게로 넘어가 버린 낡은 당과 미래의 당 사이에 놓인 가교가 되는 것으로, 미래의 당을 위해 강령적 기초를 세워야 하고, 당의 골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이 일단 부르주아 진영으로 넘어가 버리면 당 안에는 어떤 프롤레타리아적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분파와 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 International Review 90,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이후 이탈리아 좌파의 이론적 발전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를 떠나서 프랑스와 벨기에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이탈리아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스탈린주의화된 이탈리아코뮤니스트당에서 축출된 채 그들은 미래의 당을 위한 이론적 틀을 준비하기 위해 러시아 혁명의 패배로부터 교훈을 배운다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1933년 빌랑(Bilan)그룹을 형성했다. 빌랑은 러시아혁명의 변질에 대한 분석과 미래의 이행기의 문제에 대한 탐구, 경제 위기와 자본주의 쇠퇴의 토대에 대한 작업을 수행했다. 빌랑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당과 분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점이었다. 빌랑은 당을 계급의식의 능동적 인자이자 동시에 계급 전체 내에서의 의식 발전의 표현으로서 파악했다. 빌랑이 혁명은 당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했을 때, 이것은 혁명이 가능해지기 위해서 당을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의 건설 자체가 혁명 문제를 제기하는 프롤레타리아계급 전체의 능력의 표현이라는 의미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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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건설] 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에 대하여 1

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에 대하여
 
1. 노동자계급에게 당(혁명조직)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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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올가을 본격적으로 진행될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이른바 '좌파' 또는 '사회주의 자임 세력'과 분명히 구분되는)의 '당 건설' 논의를 앞두고, 당(분파)에 대한 기본 개념과 당 건설 원칙을 정립하기 위해 ICP를 포함한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의 입장과 자료를 공유합니다.
 
앞으로의 연재에는 과거 '사회주의당 건설 운동' 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과 성찰 없는 조직보존 도구로서의 (사이비) 당건설 논의 흐름, 혁명적 주체와 전망이 부재한 후퇴한 당 건설 경로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상 최초로 계급투쟁에 대한 자신감과 세계혁명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던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창설된 지 100년이 지난 오늘, 여전히 혁명적 소수는 세계혁명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프롤레타리아트는 100년 전과 다르게 자본주의의 심각한 위기 속에서 전쟁, 긴축, 환경파괴, 증가하는 빈곤에 맞서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되고 해체된 상태로 생존의 위험에 빠져 있다.
 
이러한 현실을 뛰어넘어 미래의 세계혁명당(인터내셔널) 건설 경로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몇 가지 전제조건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한다.
 
미래의 세계혁명당은 (국가별) 당의 연합 수준이 아니라 ‘국제적인 당’이어야 하고, 당 건설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의식과 투쟁력의 발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당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혁명당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정치적 강령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를 포함하여 현존하는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세력이 「세계혁명당」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쇠퇴기 계급투쟁과 정세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단일한 국제적 혁명 조직을 의미한다.
 
세계 혁명당 건설의 전제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혁명조직)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당’ 개념은 노동자운동의 경험(코뮤니스트동맹, 국제노동자협회, 제2 인터내셔널의 당, 코뮤니스트당)을 통해 이론적 실천적으로 조금씩 정련되어 나아갔지만, 결정적인 개념은 코민테른 시기까지 혼란이 계속되었다. 보기를 들어 1920~1921년 코민테른의 당에 대한 테제와 이론들은 1917년 볼셰비키의 실천을 진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졸렬한 모방이나 변형에 불과했다. 이러한 혼란은 심지어 코민테른의 타락에 반대하여 투쟁한 좌익 분파마저도 명료화하지 못했을 정도로 심각했다. 이것이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전망하는 글에서 코민테른의 테제를 해답으로 제시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당은 무엇이었나? 당과 계급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알아보자.
 
필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계급투쟁, 혁명과 관련된) 조직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이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목적이 다른 두 가지 조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나는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단일)조직으로 전체 노동자를 공동의 투쟁으로 결집시키고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를 방어하는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다른 하나는 당과 같은 정치조직으로 이 조직의 목적은 계급의식의 발전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신의 혁명적 본성과 목표를 인식해 혁명적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유형의 조직은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역사적 조건 변화와 함께 자신도 변화하면서 계급투쟁의 역사 속에 (목적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했을지라도) 항상 존재했다.
 
먼저 대중조직의 진화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19세기 동안에는 노동자계급의 출현과 상승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 향상을 위해 여러 형태의 대중조직이 발달하게 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었지만, 실업이나 병환 시의 상호부조를 위한 친목회인 노동자협회, 그리고 스포츠클럽이나 문화협회와 같은 모임까지 발달했는데, 이들은 노동자 대중의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20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계급투쟁의 역사적 조건이 변화하면서 계급조직의 형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1905년, 1917년의 러시아혁명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이 시기는 프롤레타리아계급과 부르주아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이 첨예화되었다. 이제는 노동자계급의 생활 조건 방어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계급과 인류 자체의 파멸을 초래할 제국주의 전쟁이냐, 아니면 세계 노동자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과 코뮤니즘의 건설이냐, 라는 역사적 선택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때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노동자 권력을 향한 혁명 투쟁에는 부적절할 것으로 판명되었다. 대신에 프롤레타리아계급은 1905년과 1917년 러시아에서 새로운 대중(단일)조직을 창조했다.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 노동자들의 이해를 옹호하기 위한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과 자본주의 질서의 전복을 위한 조직으로써 노동자소비에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자본주의가 상승기에서 쇠퇴기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계급의 대중조직도 변화한 것이다. 노동자의 대중조직과 마찬가지로 정치조직의 형태와 역할도 물질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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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뮤니스트동맹, 제1 인터내셔널 시기의 ‘당’ 개념
 
자본주의 초기,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진 개별적인 계급으로 자각하지만, 자본주의 전복을 위한 전망을 갖지 못한 채 처음으로 독립된 행동체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당시 노동자계급이 만들어 낸 정치조직은 아주 작고 사실상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즉자적인 계급투쟁을 넘어 노동자계급 자체에 내포하고 있는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었고, 이러한 경향의 가장 분명하고 역사적인 표현이 코뮤니스트동맹(Communist League)이었다.
 
근대 자본주의가 동틀 무렵인 19세기의 전반부에는 여전히 형성 단계에 있던 노동자계급은 지역적이고 고립적인 투쟁을 벌였고, 교조적인 학파, 종파 그리고 연맹을 탄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코뮤니스트동맹은 이 시기의 가장 선진적인 표현이었던 한편, 동시에 그들의 선언문은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구호와 함께 앞으로 다가올 시기를 예고했다.” (프롤레타리아계급당의 본질과 역할, 「Internationalisme」 38호, Gauche Commune de France(프랑스 코뮤니스트좌파), 1948년 10월)

 

그 이후는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 대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노동자계급이 쁘띠부르주아계급의 영향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던 시기이자, 노동자들이 투쟁 속에서 다양한 새로운 조직 형태를 실험했던 시기이다. 이 시기 최고의 표현은 파업하는 동안 파업파괴자들의 수입에 저항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노동자들이 설립한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men’ Association, IWA)이다. 국제노동자협회의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는 “노동자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은 소그룹의 헌신적인 혁명가들이 (인민을 위해)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점이다. 블랑키와 바쿠닌과 같은 인물과 그룹이 갖고 있던 이러한 시각에 반대해 제1 인터내셔널은 1864년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이 쟁취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제1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유럽 주요 나라에서 사회적 정치적 투쟁의 무대 위에 효과적으로 등장한 것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모든 조직화된 역량을, 계급의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경향을 함께 결집했다. 제1 인터내셔널은 경제적, 교육적, 정치적 그리고 이론적인 노동자 투쟁의 모든 흐름과 모든 우발적 측면 두 가지 모두를 함께 모이게 했다. 그것은 모든 다양성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단일 조직의 최고점이었다." (같은 글)

 

불법조직이었던 코뮤니스트동맹은 여전히 종파의 시기에 활동했다. 하지만, 국제노동자협회(IWA)의 임무는 바로, 이러한 종파를 넘어서서 유럽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결집과 그들의 의식에 내재한 수많은 혼란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제1 인터내셔널은 이질적인 구성(노동조합, 협동조합, 선동그룹 등)으로 인해 제2 인터내셔널의 당이 가졌던 근대적인 의미의 당은 아니었다.
 
제2 인터내셔널은 임금노동의 경제투쟁과 사회적 정치투쟁 사이 분화의 시기를 나타냈다. 자본주의사회가 완전히 꽃핀 이 시기에 제2 인터내셔널은 개혁 투쟁의 조직이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확인을 위한 정치적 정복의 조직이었던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역사적이고 혁명적 사명의 이론적 기초를 명확히 하고 정련함으로써 계급의 이데올로기적인 구분에서 더 높은 단계를 나타냈다.” (같은 글)

 

위와 같이 계급의 대중조직(노동조합)과 정치조직(당) 사이의 구분은 제2 인터내셔널에서 분명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구분은 제3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이 창립될 당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최초로 역사의 현안으로 된 순간에 더욱더 분명해졌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에 있어서 계급의 대중조직은 더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노동자평의회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코뮤니스트동맹에서 코뮤니스트당까지 다양한 조직 사이의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들은 계급투쟁의 진로에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당’이라는 명칭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뮤니스트동맹이 민주주의 운동의 좌익으로서 활동했던 혁명 시기(1848~1849년)에 영향력은 여전히 미약했지만, 국제노동자협회의 영향력은 훨씬 커졌고, 무엇보다도 제2 인터내셔널이야말로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대중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졌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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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2 인터내셔널의 ‘당’ 개념
 
제1 인터내셔널은 1871년의 파리 코뮨의 패배와 이에 뒤이은 반동의 물결에 따라 사라졌다. 코뮤니스트동맹이 해체되었을 때, 미래의 새로운 당을 향한 가교 역할을 할 어떤 형식적 조직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하지만, 국제노동자협회가 사라졌을 때, 제2 인터내셔널 창립의 기원이 될 조직이 남아있었는데, 독일의 사회당이 그중 하나였다.
 
당시 사회당은 혁명적 전망이 멀어진 시기에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특히 독일에서) 영향력을 얻었다. 대부분 노동자의 의식이 혁명적이지 않던 시기에 사회당이 얻은 영향력은, 그들의 강령 안에 사회주의의 전망을 포함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의 개혁이라는 ‘최소강령’을 옹호했다. 당시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코뮤니스트 혁명을 위한 시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노동조합의 임무를 강조하고 당이 의회의 임무에 전념할 필요를 강조했다. 1902년에 벌써 카우츠키는 “점진적인 운동, 민주주의적이며 거의 알아차릴 수 없는 수단을 통해,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를 주창했다.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유일한 임무는, 이러한 점진적인 운동을 강제할 목적으로 의회에 참가하는 것뿐이었다. 권력 쟁취는 더는 노동자 스스로가 부르주아 국가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는 것, ‘노동자들의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당의 책무로서, 부르주아 국가를 평화적으로 정복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맑스주의가 이렇게 완전히 왜곡됨으로써, 또 다른 왜곡이 나타났다. 즉, 프롤레타리아트당은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준비하는 필수적인 분파로 간주되지 않았다. 대신에 당은 통치 기구가 되었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적으로 당을 신뢰하며 당에 투표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활동과 권력을 당에 위임해야만 했다.
 
이렇게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의 ‘수정주의’가 탄생하고, 노동자의 (노동조합이 이끄는) 경제적 활동과 그들의 (의회 대중정당에 위임된) 정치적 활동 사이의 점점 더 날카로운 분리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은 노동자 투쟁의 최종 목적의 포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민주주의는 공공연한 목표로 부르주아 국가의 ‘정복’을 내세웠지만, 노동자계급의 대중 정치 기관에 대한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유일한 정치 기구는 당이었다. 만약 국가가 프롤레타리아당의 통제 아래에서 프롤레타리아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면, 권력 쟁취는 오직 당에 의해 조직되고, 수행되며, 지도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논리적이었다. 이러한 책무를 위해, 특히 개량을 위한 투쟁을 이끌기 위해, 당은 대중적이고, 극도로 규율 잡히고 위계적인 조직이어야 했다. 부르주아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유산이 이렇게 사회민주주의의 발상에 심각하게 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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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당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혁명을 독립적인 정치적 당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관점을 단호히 거부한다.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 투쟁이다. 내전이 될 수밖에 없는 이 투쟁의 목적은 정치권력의 장악이다. 정치권력은 오직 당에 의해서만 장악되고, 조직되고, 지도될 수 있다. 다른 방도는 있을 수 없다.” (당의 역할에 대한 테제)

 

코민테른 2차 대회는 당의 역할에 대해 위와 같이 정의했다. 이 입장은 특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 시기 대다수 혁명가의 입장이었다.
 
볼셰비키는 노동자계급 안에서 단호하게 행동했지만, 처음부터 노동자를 대신해서 권력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 노동자계급, 국가 사이 관계의 본질과 당의 역할에 대한 이론적 혼란이 존재했다. 1918년부터 계속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은 볼셰비키당이 정상에 앉아있는 국가기구에 의해 제한되고 억압되어 왔다. 권력 장악 후, 볼셰비키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기관(소비에트)과 갈등하게 되고, ‘통치’ 당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렇게 당의 권력이 소비에트 권력을 대체하는 것은 1920년대 초 트로츠키의 저작 「테러리즘과 코뮤니즘」에서도 이론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우리는 소비에트 독재를 당 독재로 대체했다고 여러 번 비난받았다. 그러나 소비에트 독재는 오직 당 독재를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었다고 완전히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 당의 이론적 전망의 명확함과 그 강력한 혁명조직 바로 그 덕분에, 당은 소비에트가 볼품없는 노동자의 의회로부터 노동자들이 우위를 갖는 기관으로 변화될 가능성을 제공했다.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당의 권력이 이렇게 ‘대체’하는 것에, 우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사실상, 대체란 전혀 없다. 코뮤니스트들은 노동자계급의 근본적인 이해관계를 표현한다. 역사가 그러한 이해관계를 전적으로 당대의 질서가 되도록 만든 시기에, 코뮤니스트들이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표성을 자각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테러리즘과 코뮤니즘」, 1920, 트로츠키)

 

일단 당과 국가가 노동자계급 전체의 공언된 ‘대표자’가 되고 나자, 그들은 절대 틀릴 수가 없었고, 전체 노동자계급에 맞서게 될지라도, 심지어 학살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항상 옳았다. 그 순간부터, 사회주의 자체는 당과 국가의 과업이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러시아 국가는 소비에트를 파괴하기 시작했고, 이는 혁명의 힘을 파괴하고 반혁명으로 빠져드는 것을 의미했다.
 
독일 혁명가들도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 대해 전적으로 명확하지는 않았다. 코뮤니스트들은 대체로 노동자평의회를 권력 장악을 위한 기관으로 보았다. 1920년까지 모든 경우에서, 코민테른은 혁명에서, 권력의 실천에서 평의회(소비에트)의 탁월한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코뮤니스트도, 어떤 혁명적 조직도, 지역 소비에트(이행기 국가의 토대)와 노동자평의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바라보지 못했다. 국가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사이의 혼란 또한 존재했다.
 
이러한 심각한 혼란과 함께, 코민테른은 통일전선의 개념, 대중 정당을 통해 최소 강령을 보호한다는 생각, 노동조합 과업의 필요성, 혁명적 의회주의 입장 등을 발전시켜갔다. 코민테른은 혁명적 물결의 퇴조에 저항하며 코뮤니스트 원칙을 그대로 지키려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더 이러한 후퇴에 전념하고 이러한 실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전술과 원칙 사이의 차이는 제2 인터내셔널의 안에서 그랬던 만큼이나 커졌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이해를 항상 염두에 두기보다, 코민테른은 더욱 러시아 국가의 대변자가 되었고, 일국 사회주의 이론을 선택했을 때 조종을 울렸다. 코민테른이 옹호한 이러한 테제들은 단지 러시아 국가자본주의의 강화를 옹호하기 위해서 제출되었을 뿐이었다. 바로 그 지점부터 볼셰비키당은 반혁명의 가장 유순한 도구가 되었다.  <계속>
 
(「실천 복간 3호」, 이형로, 2019.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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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를 내면서

코뮤니스트」 12호를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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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8개월세계 자본가계급의 모든 처방에도 재앙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겨울을 앞둔 지금은 새로운 대유행이 시작되었다지금의 위기는 코로나19 위기 이전부터 존재했고팬데믹이 방아쇠를 당겨 세계 자본주의를 강타했다위기가 폭발한 지 채 몇 개월이 되지도 않아 자본주의 체제의 분열과 무능력이 확인되었다.

 

이 재앙의 부담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에 무겁게 떨어졌다자본주의 세계는 온갖 종류의 사회적 반란과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고세계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이 위기는 계급 대결의 새롭고 전례 없는 가능성과 경로를 열어주었다이번에도 코뮤니스트 혁명이냐 야만이냐의 의제가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선 투쟁은 세계 곳곳에서 지금보다 훨씬 자주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여기에는 사회 반란은 시도조차 못 하고 K방역에 방어적 계급 행동마저 제한당하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의 한복판에서 한국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이했다물론 2년 전 러시아혁명 100주년/87년 노동자 대투쟁 30년에도 (반성이나 성찰이 없었고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여전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투쟁하는 소수 노동자만이 노동계급다운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코뮤니스트」 12호는 지난 호와 마찬가지로 국제주의-코뮤니스트의 원칙으로 지금의 정세를 바라보고 투쟁의 전망을 제시하려고 한다우리는 세계의 혁명 세력(특히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과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 흐름에 주목하면서도 한국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발전과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위해 길고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으려 한다계급투쟁이 고조되고 집중되는 곳에서부터 일상의 계급의식과 내부 모순이 생기는 곳까지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투쟁의 최종 목표를 밝힐 것이다.

 

 

□ 전태일 열사 50주기노동운동 전망에서는 민주노조운동을 넘어선 코뮤니스트 노동자 운동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필자는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원인 분석과 노동조합 수준을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자 운동을 제안한다.

 

"50년 전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열사의 외침은 노동운동에서는 민주노조운동으로 이어진 계기가 되었다. [ … ]

 

하지만 이제 민주노조는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 대신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 … ]

 

50년 전 전태일 열사의 항거가 민주노조운동으로 이어졌듯이계급적 소수파의 투쟁과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직접행동만이 민주노조운동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 맞설 코뮤니스트 노동자 운동당 건설의 기반이 될 것이다."

 

  □ 특집자본주의 위기 코로나19 팬데믹과 계급투쟁 전망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맞아 다소 무겁지만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었다현 정세를 이해하기 위해 자본주의와 전쟁’, ‘전염병’, ‘백신 전쟁’, ‘자본주의 해체기’ 등에 관한 세 편의 글을 정독하기를 권유한다'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선 계급투쟁'과 '계급투쟁 전망'에서는 노동계급만이 위기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또한모든 투쟁은 위기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으로 발전해야 하고()자본주의가 아닌 코뮤니즘을 대안으로 투쟁하자고 주장한다.

 

"노동계급의 주적은 부르주아 국가에 있고 진정한 바이러스는 자본주의 체제다그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상황에서도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에게 위기를 전가하는 자본가와 그 대리인들이다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위기와 고통바이러스 대유행의 치명적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다모든 민족주의애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국제적으로 연대하여노동계급 공동의 이해관계를 위해 국제적으로 투쟁하는 것이다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를 위해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닌 인간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사회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 국제정세에서는 '미국 대선'에 관한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입장을 번역해서 실었다이 입장은 선거 이전에 작성되었지만, ‘당선 예측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서커스)의 본질을 밝힌 글이라서 선거 이후 계급투쟁에 계속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경찰 개혁에 반대한다자본주의의 종식을 위하여'는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이후 벌어진 반(경찰 투쟁에 대한 코뮤니스트 관점의 글이다.

 

"경찰을 해체하여 다른 이름으로 하는 다른 기관으로 대체하는 것은 급진적인 어떤 것으로 보인다결국이것은 근본적 개혁이 아니라 폐지와 다를 바 없다경찰 폐지 운동이 지닌 문제점은 폐지에 대한 관념이 아닌그러한 구조가 자본주의 내에서 폐지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이는 경찰이 그것의 자본주의적 본질과 분리될 수 있으며자본주의 내에서 파괴될 수 있는 조직이라는 가정을 필요로 한다경찰은 단지 부르주아지의 도구로서 존재할 뿐이며자본의 이해관계를 변호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코뮤니스트는 알고 있다따라서 자본주의가 그 기능을 필요로 하는 한 경찰은 존속해 나갈 것이다경찰 폐지론은 별개의 목표가 될 수 없으며혹은 코뮤니즘의 점진적 발전으로 나아가는 어떤 것이 될 수 없다자본주의가 붕괴하여야만 비로소 경찰이 폐지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계급적 노선을 따라 조직되어야만 한다경찰 폭력을 계급 문제라기보다 인종 문제로만 다루는 것은 본질적으로 계급협조를 수반한다이는 흑인을 계급 지위와 상관없이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거대한 덩어리로 간주하는 것이다. [ … ]

 

경찰 폭력을 계급적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인종 문제의 결과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사실 우리는 노동자계급과 기타 소수 민중의 이해를 노동자 전체의 문제로 바라봐야만 한다."

 

"자본주의가 종식되어야만 경찰이 폐지될 수 있다노동자계급이 스스로 조직하고국제주의 혁명당을 창설함으로써만 자본주의는 무너질 수 있다점진적 개혁이라든지 투표를 통해서가 아니다우리는 코뮤니스트로서 경찰 폭력으로부터 투쟁하는 이들을 지지한다그러나 조직화한 노동자계급투쟁이 없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지금은 중요하다시위에서 계급투쟁의 요소가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언제나 긍정이지만단결하지 않으면 물거품이 되고해방을 위한 어떤 장기적인 목표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 특집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부 논쟁(3)에서는 그동안의 논쟁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토론논쟁 그리고 연대단결을 전망했다이번 호에도 이 글이 가장 깊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하지만 이 논쟁이야말로 현재 세계 혁명 세력의 수준과 코뮤니스트 운동의 쟁점을 보여주기에 어려운 글이지만정독해줄 것을 권한다.

 

"이번 논쟁(3)에서는 코뮤니스트」 11(2020년 4이후 5~6개월 동안 팬데믹 위기가 중첩되면서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부의 논쟁도 이와 무관하지 않고그동안 대립 구도가 절충을 통하지 않고 더욱 깊고 첨예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몇 가지 특징적 논쟁을 살펴보자. [ … ]

 

셋째, ICC가 다른 코뮤니스트 좌파 그룹특히 ICT에 대해 계급 정체성 문제와 당 문제를 직접 제기하며 핵심적 논쟁 의제를 쏟아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넷째그러나 논쟁이 시작된 혁명인가 전쟁인가의 중심의제는 ICC가 전쟁을 세계적 혼돈으로 대체하면서 이윤을 강조한 ICT 등의 입장과 혼돈야만 등의 질적인 차원이라는 인류 문명 차원의 ICC 대립구조는 앞으로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다섯째팬데믹 위기가 자본주의 위기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전망맑스주의와 코뮤니즘 원칙에 굳건히 서 있는 젊은 코뮤니스트들의 성장과 발전계급 정체성을 회복하는 혁명적 노동계급의 복원은 적어도 앞으로 10년은 그 과정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와 코뮤니스트들의 연대단결통일을 위한 자기반성상호비판이 계속될 것이다."

 

이외에도 코뮤니스트」 12호에는 코뮤니스트 정치코뮤니스트 정신 계승현장의 목소리까지 많은 글이 실려 있다.

 

 

자본주의 쇠퇴기-코로나19 재앙의 시대에 코뮤니스트를 발행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코뮤니스트 정신을 강조한다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제대로 부활시킬 것을 다짐한다.

 

모든 지배계급을 코뮤니스트 혁명 앞에 떨게 하라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전 세계의 노동자여단결하라! (1848코뮤니스트 선언)

 

모든 국경과 조국을 넘어서서영원한 봉화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비칠 것이다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단결하라! (1920독일 코뮤니스트 노동자당 강령)

 

미래는 코뮤니즘의 것이다! (1933코뮤니스트 좌파빌랑)

 

 

 

2020년 1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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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개소식"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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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개소식"에 초대합니다.
(사단법인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중구지부)
 
 
소중한 진보적 장애운동을 서울 중구에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의 아낌없는 응원과 지지 속에서 중구 지역 장애인자립생활과
모두가 평등한 권리확보를 위해 힘차게 활동하고 싶습니다!!
 
 
가능한 발걸음으로 또는 연대의 마음으로 저희의 출발을 지지해 주세요~♡
 
 
+++++  개소식 안내  +++++
 
 
일시: 2020.11.19.(목) 오후 3시
 
장소: 서울시 중구 소공로35 남산롯데캐슬아이리스상가 321호
 
전화: 02)774-0420/ 010-6608-8349 (김경민)
 
후원계좌: 3333-04-8951211  카카오뱅크/ 예금주)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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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청 사항  +++++
 
 
#사단법인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중구지부 
#중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개소했음을 알립니다~♡
 
 
중구센터 개소식을 앞두고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어 마음이 심란하네요~
많은 분의 축하와 격려속에서 진행하고자 했던 개소식인지라
그래도 서로가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는 시기니 
센터에서는 꼭 "2인 이내로 참석"을 요청드리며, 
음식은 포장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참석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구글설문지 작성을 요청드립니다!  
 
 
 
 
+++++  우리의 입장  +++++
 
 
차별에 저항하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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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0년 12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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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0년 12호가 나왔습니다.

 

 

"미래는 코뮤니즘의 것이다!"

 

 

□ 코뮤니스트 12호를 내면서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전태일 열사 50주기, 노동운동 전망    

▸민주노조운동을 넘어선 코뮤니스트 노동자운동을 위하여   | 윤태상 

▸수많은 김용균이 있던 그 자리   | 김경진

 

 

□ 특집. 자본주의 위기 : 코로나19 팬데믹과 계급투쟁 전망

▸자본주의 위기 : 코로나19 팬데믹과 계급투쟁 전망   | 이형로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선 계급투쟁   | 해방 

▸자본주의, 전쟁, 그리고 전염병   | A Free Retriever

▸백신 전쟁: 자본주의는 치료법 개발에 방해   | 국제코뮤니스트흐름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본주의 해체기에 관한 보고서   | 국제코뮤니스트흐름   

 

 

□ 국제정세

▸트럼프와 바이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잘못된 선택   | 국제코뮤니스트흐름   

▸[미국 대선] 선거 서커스 반대! 계급투쟁을 위해!   | 국제코뮤니스트당 

▸경찰 개혁에 반대한다. 자본주의의 종식을 위하여   | 국제주의노동자그룹

▸노동자계급이 핵심인 이유   |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 코뮤니스트 정치

▸임신중지를 범죄로 낙인찍는 부르주아 정부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부르주아 정부의 부동산정책 허구   | 윤태상 

▸부르주아 정부의 디지털/그린 뉴딜은 전형적인 자본의 이윤추구 정책   | 윤태상 

 

 

□ 코뮤니스트 정치 원칙

▸노동자정당의 반혁명적 본질과 공동전선 비판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공동전선 비판과 혁명조직의 역할   | 이형로 

 

 

□ 문화. 김용균 동지 2주기 

▸김용균이라는 빛   | 우창수

▸비극을 위하여   | 임성용

▸나에게 돈은 목숨이다   | 봉윤숙

▸비정규   | 최지인

 

 

□ 특집.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부 논쟁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3)   | 오세철 

 

 

□ 세계혁명당 건설을 위하여

▸우리는 모든 제도권 정당에 반대한다   | 국제코뮤니스트경향

▸프롤레타리아 국제정당을 위해   | 국제코뮤니스트경향 

 

 

□ 이론. 서평

▸카피에로와 맑스: 요약된 「자본」?   | 국제코뮤니스트경향 

 

 

□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

▸1940년: 레온 트로츠키 암살 - 우리가 잊지 못하는 날   | 국제코뮤니스트경향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   | 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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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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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선거 서커스 반대! 계급투쟁을 위해!

 선거 서커스 반대계급투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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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노동자를 똑같이 속인다투표가 이 자본주의 정치경제사회 체제의 틀 안에서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는 것이다.

 

거짓말에는 항상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붙는다하지만 정치권력은 지배계급즉 대기업금융지주 같은 부르주아지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어떠한 것도 지배할 수 없다.

 

정치권력은 이 사회를 통치하는 계급인 부르주아지가 국가기구를 통해 주로 노동계급에 행사한다여기서 국가기구는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중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의 지배와 억압의 도구로서 주인인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해 행사된다.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 국회의원시의원의 숫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그들은 지금과 같은 인류 재앙의 시기에 프롤레타리아에 불리한 법(사회보장코로나19 재난지원금 등)을 통과시켰고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의 국가기구와 언론에 대한 조종통제는 선거와 선거 참여 정당들이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는 다음 정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지배계급에 보장한다.

 

지금까지 선거전에 뛰어들었거나 참여하고 싶은 정당들은 부르주아지 편에 서기 위한 유일한 선택을 했음을 공표해왔다.

 

하지만 우리 혁명적 코뮤니스트들은 선거 준비냐혁명 준비냐를 현수막으로 내걸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한 표가 삶의 조건을 개선할 것이라는 사기에 속으면 안 된다투쟁이 아닌 투표로 우리의 주장(임금삭감 반대실업증가 반대인종차별반대 등)을 관철시킬 수 있다고 속이는 자들의 거짓 약속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설령 노동자 편에 서서 수백만 표를 얻는 정당이 있다 하더라도 현 정치사회 체제의 본질을 바꾸기에는 한참 부족하다그들은 항상 의회 내에서 소수에 속할 것이고만약 그들이 터무니없이 다수가 된다면지배계급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 독재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의회 자체를 폐쇄하고민주적 가면을 버릴 것이다.

 

이것이 파시즘의 교훈이었다.

 

부르주아 선거에서 노동자가 던진 수백만 표는 쓸모가 없다그러나 수십만의 노동자들이 벌인 파업 투쟁은 임금 인상과 선거 참여로는 해낼 수 없는 생활 조건의 실질적 향상을 며칠 만에 이룰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부르주아지의 심각한 경제적정치적 위기의 시기코뮤니스트 노동자와 노동자 투사들은 코로나19-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파업 투쟁을 확산시켜야 한다노동자들의 가장 의식적인 부분인 코뮤니스트 노동자들과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이 함께 만들어 낼 대대적인 파업 투쟁은 노동계급이 부르주아지로부터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고자본주의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2020년 10

국제코뮤니스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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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부르주아 선거(서커스)의 본질을 밝히면서, ‘투표가 아닌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입장을 지지하며지난 대선(2017년)에서의 우리 입장을 다시 싣는다.

 

 

정권교체의 본질은 야권세력이 과거 노무현 정권의 반노동자 정책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아서 그들을 지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계급이 최고 권력자의 얼굴만 바꾼 채 계속 노동자·민중을 지배한다는 것에 있다촛불의 민심이 정권교체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실제로는 이 체제의 지배자인 자본가계급의 이윤추구를 보장하고 이 사회의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을 지키기 위한 정권교체이다지배계급은 이러한 정권교체의 본질을 숨기기 위해 자신들과 적대적인 노동자계급을 국가의 일부인 시민사회로 통합시키려 촛불 투쟁을 시민혁명이라 칭송하고 노동자계급을 시민으로 머물게 한다촛불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시민이 되어 자본가계급과 함께 투표소에서 정권교체를 이루어 내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 혁명이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 진영에서는 대선을 맞이해 정권교체론에 대한 비판을 넘어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환상까지 넘어서는 투쟁을 해야 한다.

 

노동존중은커녕 최소한의 노동 삼권과 생존을 위한 최저임금도 보장하지 않은 반노동자 악법과 제도를 만든 주역이 규칙을 정한 자본주의 선거에서 노동자는 승리할 수도 권력을 가질 수도 없다어디에도 노동자를 위한 자본주의 선거는 존재하지 않으며그런 선거는 유일하게 노동자 고유의 투쟁이 지금의 촛불 투쟁과 같이 대대적으로 전 사회를 뒤덮을 때나 가능하다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절대 불리한 부르주아 선거에 뛰어들어 자본가 정치세력의 들러리를 서거나 권력에 구걸하지 말고노동자들에게 선거의 본질을 제대로 알리고 노동자 정치의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선거가 아닌 투쟁으로 노동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노동자 정치는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자본에 포섭된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으로는 불가능하다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왼편에 자리 잡는 노동자 정치그들의 민주주의 방식을 따르는 가짜 노동자 민주주의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그것은 오직 자본과 국가권력그리고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된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노동자 정치는 대대적인 계급투쟁 속에서 다수 노동자 대중이 참여하는 정치광장에서 탄생한다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열정적이고 대대적인 토론과 직접행동계급적 연대가 그것을 확장시킬 것이다.

 

노동자 정치는 노동자 민주주의노동자 혁명노동자 권력이 실현되는 정치이며이것을 목표로 현실에서 투쟁하는 행동의 정치이다노동자들이 이러한 목표로 향하는 모든 곳에 부르주아 민주주의부르주아 정치부르주아 독재 권력이 막아서고 있다그것은 하나의 체제이다그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폭력이며노동자를 착취하는 생산양식이며전쟁과 학살과 굶주림과 환경재앙과 인간 파괴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이다노동자 정치는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는 혁명적 정치이다.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보듯이 주권자가 직접 권력을 끌어내리지 못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는 선출된 권력을 언제든 소환할 수 있어 선출한 자에 의해 통제되고모든 대표자의 특권을 폐지하여 위임받지 않은 권한을 행사할 수 없고소수()가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조건으로 향하며선출되지 않은 관료제는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노동자가 직접 정치와 행정에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직접 민주주의이다이러한 민주주의만이 노동자의 생산과 일상을 스스로 조절하고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이것은 노동자들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법 제도에 맡기지 않고 투쟁으로 돌파하면서 스스로 조직하고 민주주의를 창조해 나갈 때 가능하다촛불 투쟁과 노동자 투쟁이 나아갈 길은 바로 지배계급의 민주주의 환상을 깨고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가는 것모든 권력을 누구에게도 위임하지 말고 스스로 권력에 참여하고 행사하는 것정권교체를 넘어 선거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무게에 눌려 후퇴하고 움츠렸던 노동자 운동과 혁명운동세력은 이제 반격에 나서야 한다자본가계급과의 협력은 노동자 투쟁의 무덤이다노동자가 시민으로 후퇴하는 자본주의 선거는 노동자 투쟁의 독약이다자본주의 체제와 싸우지 않고 재벌해체와 자본주의를 개량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현재 위기와 참상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인 것을 가리고 건강한 자본주의 환상을 퍼뜨린다.

 

우리 앞에 이러한 걸림돌은 늘 있었다우리가 후퇴할수록 걸림돌은 더 늘어만 갔다하지만 우리가 길을 돌아가지 않고 정면 돌파할 때 길은 다시 열릴 것이다둑은 큰 물결에 허물어진다그러나 작지만 곧고 강한 물살이 먼저 균열을 내지 않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비록 우리는 지금 소수지만곧고 강한 물살이 되어 싸울 것이고촛불 투쟁보다 더 크고 높은 투쟁의 물결과 만나 세상을 바꿀 것이다.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노동자를 위한 자본주의 선거는 없다.

정권교체를 넘어 선거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 전면적으로 투쟁하자!

노동자민주주의노동자혁명노동자 권력을 향한 노동자 정치 실현하자!!!

 

2017년 4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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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트럼프와 바이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잘못된 선택

 트럼프와 바이든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잘못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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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지구상의 모든 국가를 지배하는 생산체제인 자본주의는 깊은 쇠퇴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한 세기의 쇠퇴기가 마지막 단계에 도달해 광적인 전쟁의 소용돌이경제 불황환경 재난 및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구상 모든 국가는 이 죽어가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공공연한 친()자본주의 정부든 가짜 사회주의’ 정부든민주적이든 독재의 옷을 걸쳤든모든 정부는 자본의 진정한 목표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인간의 필요 충족이라는 단 하나의 생산 목표를 가진 세계 공동체인 우리 종()에게 하나뿐인 미래를 희생하면서 이윤을 확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당과 대통령이 정권을 잡느냐를 선택하는 것은 자본주의 문명을 재앙으로 향하는 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이다이는 다른 선거 서커스와 마찬가지로 다가올 미국 대선에도 적용된다.

 

트럼프는 노동자의 친구가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트럼프는 코로나-19의 현실과 기후 위기에 대한 부정에서부터 법과 질서라는 이름의 경찰 폭력에 대한 사과인종주의자와 극우세력에 대한 구애그리고 그의 측근 여성에 대한 역겨운 개인적인 대우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썩어가는 모든 것에 대한 공공연한 옹호자임이 분명하다그러나 그의 저격수 마이클 코헨(전 변호사)의 말에 따른 거짓말쟁이사기꾼인종주의자라는 사실이 자본가계급의 중요한 파벌들이 그를 지지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왜냐하면그의 노골적인 국가주의적 경제와 환경 및 보건 서비스 규제 완화가 그들의 이윤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선거에서 트럼프는 많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미국 우선’ 보호주의가 일자리를 구하고 전통 산업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다하지만 코로나19 위기 이전부터 중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는 이미 새로운 불황에 빠져들고 있었고대유행의 경제적 결과는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보호주의는 어떤 경제도 세계 시장의 무자비한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환상이며트럼프의 미국 노동자에 대한 약속은 2019년 불황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공허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에 따르면 조 바이든은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일한 오마르(Ilhan Omar) 등 주변의 '스쿼드()'가 체현한 '급진 좌파'의 손에 있는 꼭두각시일 뿐이기 때문에 미국을 '사회주의 유토피아'로 만들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1)

 

사실 바이든은 트럼프와 공통점이 많은 오바마와 클린턴의 주류 민주당 정책의 지속성을 대변하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로 선택되었다중국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동양으로 회귀"는 오바마 정권하에서 시작되었는데오바마는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접근법 때문에 최고의 추방자로도 알려져 있었다물론 민주당은 트럼프와 차이가 있다그들은 푸틴 러시아에 대한 트럼프의 아첨을 의심하는 군사 및 안보 기득권 세력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트럼프의 무분별한 국제조약과 동맹 파기로 미국의 외교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 때문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그러나 이것은 미 제국주의를 위한 최선의 전략에 대한 차이점이다마찬가지로그들은 민주주의적 신비화가 사회질서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에 트럼프가 민주주의’ 규범을 경시하는 것에 반대한다.

 

민주당은 미국 자본주의의 양자택일 정당에 지나지 않는다지난 몇 년간 민주사회주의동맹과 같은 내부 압력 단체와 그린뉴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BLM), 그리고 공식 정당 안팎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체성 정치 옹호자들이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이 급진 좌파는 위기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에서 자유기업 우파와 광신도를 포함한 지배계급의 모든 파벌이 고수해야 하는 국가자본주의보다 좌파적 버전만을 제공한다좌파의 어떤 정책도 자본주의의 본질이자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의 근원인 민족국가이윤을 위한 생산임금 체제의 존재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노동계급이 미래의 열쇠를 쥐고 있다

 

자본주의 정치인이나 정당은 체제의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제시할 수 없다세계의 미래는 우리가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는 계급에 달려있으며그들은 모든 나라에서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고모든 곳에서 똑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진정한 사회주의또는 맑스가 그것을 코뮤니즘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했던 것처럼인류는 마침내 국가국경그리고 임금 노예제도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이것은 아주 먼 전망으로 보일런지도 모른다일상생활 속에서 노동계급은 수천 가지 방식으로 분열된다일자리 경쟁국경성별인종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예제도와 인종주의의 해로운 유산을 가진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말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집단으로 일하고 집단으로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연합의 계급이기도 하다그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 패배를 피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계급의 분열을 극복하는 경향이 있다인종주의와 민족주의는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강력한 도구지만계급투쟁이 전진하려면 극복할 수 있고극복해야 한다코로나19 대유행이 처음 발생했을 때미국 노동자들은 자동차공장병원슈퍼마켓 또는 창고에서 감염 보호 대책 없이 일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에 반발했다그리고 백인’, ‘흑인’, ‘라틴계’ 또는 다른 모든 노동자가 피켓 라인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한 단결의 순간은 백인 우월주의와 자본주의의 썩어가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파시스트 운동과 같은 인종 분열의 고전적’ 표현과 상반된다그러나 그들은 또한 인종을 계급보다 우선시하고 민주당에 의해맥도날드나 애플과 같은 대기업의 이익에 의해노동조합에 의해 한마디로 국가 체제에 의해 완전히 도구화하여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동원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인종에 기반을 둔 투쟁은 노동계급의 통일로 이어질 수 없다.: 지배계급 일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사회로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현실을 감추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꺼이 무릎을 꿇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축복한다.

 

미국 노동계급은 선거를 앞두고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직면해 있는데정치인과 미디어 슈퍼스타들은 진정한 권력이 투표소가 아닌 작업장과 거리에 있는 게 아니라 유일한 희망은 투표할 때뿐이라고 주장한다또한최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서 보았듯이흑인과 백인의 무장 '민병대사이 폭력적인 충돌에 휘말릴 위험에도 직면해 있다미국 사회는 베트남 전쟁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양극화되고 있으며특히 트럼프가 이미 암시한 대로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전체 부르주아 지형에서 내전’ 위험은 선거 이후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이는 노동자들이 좌우 사이렌 소리를 거부하고민주적 슈퍼마켓(부르주아 투표)의 잘못된 선택을 거부하고자신의 계급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할 뿐이다.

 

2020년 9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1] 참조 : “트럼프 대 스쿼드()” : 미국 정치기구의 악화 세계혁명 384, 2019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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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부르주아 선거(서커스)의 본질을 밝히면서, ‘투표가 아닌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의 입장을 지지하며지난 총선에서의 우리 입장을 다시 싣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전 세계적인 재앙이면서도 노동자계급에게 더욱 큰 고통과 희생을 예고하고 있다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선거 이후 그 결과와 관계없이 자본가계급과 정부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를 상대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다는 선전에는 노동자계급의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자본주의는 이미 오랜 기간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고코로나19 사태는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최신 경보 신호일 뿐이다자본주의 위기를 막을 수 없는 부르주아 정치의 무능은 포퓰리즘과 파시즘에 이어 인종주의와 배외주의를 부추기면서 노동자들을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자본주의는 인류의 평화와 공존이라는 보편적 가치마저 공식적으로 내팽개쳤다코로나19는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지만지배계급은 이윤 창출을 위해 착취를 멈추지 않고 있고오히려 위기를 노동자계급에 전가하고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야만으로 질주하는 것은 착취 체제 자체가 작동한 결과이다이것은 선거를 통해 지도자나 대표를 잘못 선출해서가 아니라 명백하게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다해결책은 오로지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생산노동인간 자원과 자연 자원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직해 소수의 착취자에게 봉사하는 이윤의 법칙을 대체하는 것뿐이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자의 해방이 대통령 당선/의회 장악이나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비록 지금 소수이지만선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이 우리의 희망이다자신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정치에 맡기지 않고투쟁을 통해 스스로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사람들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노동자계급의 미래이다.

 

 

 

자본주의 쇠퇴기 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사기와 다름없다매일 세계 곳곳에서 수백 번 넘는 투쟁이 일어나고노동자들은 1년에만 수만 번의 투쟁을 벌인다하지만고작 몇 년에 한 번 치루는 선거만으로 노동자계급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력을 빼앗기고일상의 대부분을 지배받는다이것이 노동자들이 선거를 통해 노예가 되는 민주적인 권리의 실체다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와 선거제도에 복종하는 한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정치는 투표소가 아니라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계급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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