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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대략 일기장이라고 해야 할 듯

5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0/01
    차라리 공산주의가 땡길 때도 있다
    이스
  2. 2006/09/30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다
    이스
  3. 2006/09/23
    엊그제 같았는데
    이스
  4. 2006/09/10
    아버지가 남겨준 숙제(1)
    이스
  5. 2006/09/09
    끊어야 한다는 것
    이스
  6. 2006/09/09
    기문둔갑?
    이스
  7. 2006/09/09
    대접받으면서 살아야 한다
    이스
  8. 2006/08/01
    지금 필요한 노래
    이스
  9. 2006/08/01
    친구?
    이스
  10. 2006/06/09
    월드컵?
    이스

차라리 공산주의가 땡길 때도 있다

녀석과 나는 15년 친구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 5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을 때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녀석과 나는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2를 하면서 친해졌다. 학교가 끝나면 줄창 오락실로 향했고 주말에도 만나서 놀았다. 주말에 우리가 하는 일은 주로 목욕탕에 같이 가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도 같은 학교가 되었고 고등학교 때는 갈라졌지만 내가 대학을 서울로 가기 전까지는 아마도 거의 매주마다 일요일은 녀석과 내가 목욕탕을 가는 날이었던 것이다.  

 

군대를 간 이후 백일휴가 때 이외에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제대하고 난 이후에 연락을 했다. 역시나 우리는 목욕을 함께 했고 맥주를 한 잔 하러 갔다.

 

매일 마다 새벽 3시에 일하러 가고 오후에는 집에서 운영하는 가게 일을 하는 녀석은 맥주라도 한 잔 들어가기 전에는 여전히 밝은 모습이었다. 일하다가 휴가를 냈을 때 바닷가에 놀러가서 수영 강사를 하던 아가씨들이 꼬였었다는 둥, 초등교육 시절부터 역시나 알고 지내던 친구 한 놈이 요즘은 완전 개판이 됐다는 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역시 맥주가 들어가니까 달라졌다.

 

역시 우리의 이야기는 취업이었다. 녀석과 녀석 주변도 역시 일자리가 없었다. 눈높이를 낮춘다는 개념도 성립되지 않았다. 2년제를 취업자리 때문에 일부러 졸업하지 않고 있는 녀석에게서 처음으로 고단함이 풍겨나왔다. 도대체 왜 요즘 세상은 할 일도 만들어주지 않는 건지를 의문하는 녀석의 의문은 정당했다. 잘 사는 사람들은 가면 갈 수록 잘 살게 되는데 왜 내 주변은 가면 갈수록 못 살게 되는지를 말하는 녀석의 분노는 정당했다.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이 안 되는데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냐면서 쓰게 웃는 녀석의 웃음이 씁쓸했다. 녀석이 말했다.

 

"차라리 요즘엔 공산주의가 땡길 때도 있다. 공동분배 하는 거. 적어도 이렇게 생존이 보장이 안 되지는 않을 거 아니냐. 물론 문제야 있겠지만......"

 

:::붙임:::

 

학생운동이건 사회운동이건 근처에도 가 본 적 없이 26년을 자본주의 천하에서 살아온 청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이유는 전적으로 이 사회를 사람이 못 살 곳으로 만들어 놓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책임이다. 공산주의라면 인간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배워 온 젊은이가 갑자기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좌파가 되지는 않았을 터이다. 역사는 점점 더 진보해왔지만, 세상은 요 10년 간 정말 끈질기게 나빠져왔다.

 

:::붙임 2:::

 

지각이 있고 정신이 박힌 청년이라면 신자유주의 천하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청년들에게 희망이 될 깃발 하나를 세우는 게 무엇보다도 절실한 문제다. 더럽게 잘 살아서 미래의 엘리트로써 평생을 살아갈 젊은이들이 아닌, 신자유주의 세상에 살아가는 자체를 힘겨워하는 청년들이 지켜보고 모여들 깃발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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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다

하는 게 없다. 하는 거라고는 부산대학교 도서관에서 일과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밥먹고 컴퓨터 좀 하다가 자는 것? 영화나 좀 보는 것? 그렇게 산 지 일주일이 다 됐다.

 

편하기는 정말 편한 거다. 하지만 편해서 고통스럽다. 자기 한 몸만 신경쓰고 산다는 것은 이토록 자유스러운 것이다.

 

KTX 여성노동자들은 몸에 쇠사슬을 묶고 걸었고, FTA의 위협은 여전하고, 4.19 시절에 자신이 살았다면 일어난다면 거리로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젊은이들의 설문조사 결과는 예상했어도 짜증나고.

 

제대해서 무언가 새로 이것저것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과연 도서관에서 영어책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게 자기 개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제대한지 일주일 밖에 안 돼서 무언가 잡힌 게 없다고 해도, 곧 명절이라서 더 그렇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난 지금 이 순간 제대로 사는 게 맞는 걸까.

 

그런데 하루는 더럽게 빨리 지나가고, 벌써 또 하루가 가버렸다. 제대로 산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지금,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더럽게 편한 책상물림 신세만 하면서도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는 이 비루한 몸뚱이를 안고 말이다.

 

그다지 기분이 좋진 않은데,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열심히 산다면. 머리 속에서 열심히 한다거나 빡씨다거나 하는 쓸데없는 관념 조차 없어질 만큼 산다면. 이런 생각은 안 하게 될까. 학생운동에 복귀하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내 삶에 충실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좀 더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잡아서 실천으로 살아야 한다. 하루는 너무 빨리 가니까.

 

그래서 급한 거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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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같았는데


 

올해 초 였던가, 게이트에 가기 직전에 간부에게 말해서 후임과 찍었던 사진이다. 이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전역했다. 그냥 기억만을 남기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군대 조직과 국가폭력의 폐해를 잠시 잊고, 그냥 힘겨운 적도 편했던 적도 있었던 내 생존의 현장의 기억으로, 그렇게 남기고.

 

그렇게 나는 떠났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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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남겨준 숙제

1리터의 눈물, 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아니, 이제 최종화인 11화를 남겨두고 '다' 보았다. 결국, 진짜 힘겨운 상황이 닥쳤을 때 피를 나눈 가족 밖에는 없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가족이 소중하고, 가족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이것은 드라마 때문이 아닌 실제 삶이 그러하기 때문에 진실이다. 

 

아버지가 입원하셨다. 고질적인 심장질환이다. 다행히도 빠른 조치 덕에 크게 이상은 없겠지만 당분간은 입원치료를 받으셔야 한다. 10년 전의 심장병이 10년 후를 옥죄고 있다. 우리 집은 결코 가난하지는 않다. 하지만,(아니, 어쩌면 그래서) 결코 내가 운동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운동을 하는 그 자체가 아버지의 심화를 돋구는 꼴이 되어버렸다. 내가 학교 다닐 때 하도 속을 썩여대서 아버지가 그렇게 되었다는 말에 입에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혼자 나와서 조용히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 동안 아버지가 병자라는 것을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에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아버지께서는 화를 내셨다. 제대하면 학생운동이니 노동운동이니 그런 건 그만두라는 그 말에, 내가 "예" 라는 대답을 하지 않아서이다. 아버지는 불안하셨던 것이다. 아직도 어리고 과히 똑똑하거나 유능한 구석이 없는 아들이, 누가 보더라도 한 몸의 안위와 거리가 먼 길을 가면서, 아버지의 기준으로 볼 때 - 사실 이 한국 사회에서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볼 때 - 결코 성공적이지는 못한 인생을 사는 것이 싫으셨던 것이다.

 

돈도, 사회적 힘도 없는 인생이 얼마나 무시받는 인생인지, 실질적인 능력 없이는 친구도 동지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아버지께서는 "혹여라도" 내가 좌파운동을 통해서 그러한 길을 갈 우려 자체를 배제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냥 눈 딱 감고 내 한 몸만 잘 챙겨서 공부 열심히 해서 돈 잘 벌고 지위도 좀 있는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괜찮은 아가씨와 결혼하고 떡두꺼비같은 손자 낳아드리겠다는 그런 확답을 받고 싶으셨던 게다.

 

이미 하루 이틀 벌어졌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심장병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론 모든 결정의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지만 적어도 그 결정을 내리는 고민의 과정에서 한 가지 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효도하겠다는 차원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 살아야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인지, 그렇게 사는 데에 있어서 운동이 장애가 된다면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를.

 

그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가족의 마음을 편하게, 가족이 나 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하면서 내가 좌파로서의 삶을 지속시킬 수 있게 하는 것. 아버지의 발병이 내게 남겨 준 진지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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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야 한다는 것

전에 말년휴가를 들어갈 때, 결심한 게 있었다. 그건 두 가지다.

 

하나는 나 자신을 올바르게 세운다. 지금 이대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겠다.

 

하나는, 술을 끊는다. 완전히 끊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석 잔 이상을 마시는 일을 없애야 한다는 것.

 

말년휴가 들어가기 전날, 나는 나 자신이 올곧게 서지 못하고, 뜻이 서지 않아 나와 상관없이 느껴지는 많은 이야기들이 서러웠고,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인간적으로 내가 의지할 대상이기를 바랬지만, 그들 자신도 버거운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의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오히려 내가 오히려 여유가 있는 편일 것이다.

 

스스로를 올곧게 세워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끊어야 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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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둔갑?

자식이 유산 때문에 아버지를 죽이고 아내가 보험금 때문에 남편을 죽이고 정부가 한-미 FTA라는 이름으로 제 나라 사람들의 인생을 박살내려 한다. 이 정도면 심각한 정신착란증세인데 스스로는 그걸 모른다. 스스로는 그렇게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하는 게 그런 범죄적 결과를 부른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조진행 씨의 기문둔갑 이라는 무협지에서는 정신의 착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모산파의 기문둔갑술이 나온다. 분명히 자기 동료는 죽었지만 그 기문둔갑술은 자기 동료의 죽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 못하게 한다. 바로 자기 스스로 옆에, 동료는 그대로 살아있고 똑같이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정신착란의 무서움 아닌가.

 

발전 노조의 파업은 15시간 만에 접었고 사람들은 자신들도 노동자 신세고 사회의 귀족과 이익관계를 달리 하지만 그들의 눈은 귀족의 눈이다. 이 또한 심각한 정신착란 증세다. 도대체 보통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보고 노동귀족이라고 욕해대면서 이건희 회장님께는 간이라도 빼줄 듯이 떠드는 그 엄청난 인간존엄 포기란,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기문둔갑술에 걸려 있는 것이다. 알고 보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들도 다 하나의 허깨비에 불과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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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받으면서 살아야 한다

이제 제대할 때가 되었고,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고,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복잡한 일들이 다가왔다.

 

안에서 대접 못 받으면 바깥에서도 대접 받기 힘들다.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야만이 결국에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자기가 무엇을 하던 간에.

 

군대 다녀왔다고 자만할 게 아니다. 군대에서 고참이 되면 건들 사람이 없는 관계로 정신을 못 차리고 사니까.

 

자기 자신을 제대로 세워내지 못하고서 어찌 인민해방이니 노동자 민중이니 하는 거창한 소리를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두 가지만 없애더라도, 내 삶은 지금보다 진보할 것이다.

 

말은 필요없다. 단지, 대접받고 사는 것. 대접받기 위해서 해야 할 것. 그것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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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노래

희망

(도종환/시, 이희진/가락)


 


그대 때문에 사는데 그대를 떠나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돌아서듯

이제는 그대를 떠나라 한다

 

겨울숲같은 우리 삶의 벌판에

언제나 새순으로 돋는 그대를

 

이세상 모든 길이 얼어붙어 있을 때

그 길을 흘러 내게 오던 그대를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다시 또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던 그대를

눈물과 아픔도 쉽게 이겨낼 수 있도록

지켜주던 그대를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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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친구를 만났다. 어쩌다 보니 모였다. 이야기를 했다. 반가웠다. 그리고 어색했다.

 

어릴 때 일본 하위문화, 판타지에 심취하는 것 만으로도 그토록 할 말이 많았던 시절의 친구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가 되기 위해 매진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 다가서 있었다. 4학년. 어느 새 그들도 그 시절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는데 나 홀로 묵묵히 말이 없다. 제대도 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그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는 나와 너무나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가 별로 열심히 떠들어 댈 만한 이야기는 아니어서이기도 했다.

 

박정희 시대를 예찬하고 황우석을 보호해야 했다며 민주화 세력이 나라 다 말아먹었고 노동자 새끼들 때문에 못살겠다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그냥 지쳐서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들이 내 눈치를 보더니 조용해진다. 그들은 말한다. "선거나가면 한 표 찍어줄께" 내 운동의 이야기와 인민해방을 말하던 내 열정은 그렇게 밖에 비치지 않았었던 건지, 내가 운동을 잘못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적인 문제로 인해 2년 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었다. 진심으로 반가웠다. 하지만 불편함도 역시 존재했다. 진짜로 운동은 그렇게 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는지,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었다. 이미 나는, 그들과 너무 달라져 있었고 그들을 설득할 힘도 생각도 갖지 못했다. 이미 그렇게 달라져서 모든 것이 변해버린 지금 나는 그 만남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냥, 잠시의 속좁음이기만을 바래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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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진짜 없나?

 

월드컵에 의해서 묻혀가고 있는 많은 일들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는 무언가들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월드컵에 의해서 묻혀가고 있는 많은 일들 때문에,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축제는 광기의 그늘 아래 이루어진다. 국가의 이름 아래, 국익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눈감아주고 있는 많은 일들, 국익을 위해서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태극전사들에 대한 찬양이 단 한 사람의 반대를 찾기 힘든 - 정확히는 그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매장되어버리고 마는 - 상황 그것이 곧 파시즘이다.

 

한일 월드컵 때 중학생 둘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고, 비정규직의 문제는 그저 외면당할 뿐이었다. 월드컵에 미치지 않은, 미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어쩌면 월드컵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과연 이 월드컵은 축구를 위한 월드컵인가, 국가를 위한 월드컵인가, 즐거운 축제를 위한 월드컵인가.

 

어쩌면 셋 다 빙자한 집단광기 표출을 위한, 너와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동질감 하나를 확인하는 통과의례로 존재하는 게 아닐지 의심스럽다. 월드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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