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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대략 일기장이라고 해야 할 듯

5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3/16
    인연
    이스
  2. 2007/02/28
    다시 대학생이 되는 길로
    이스
  3. 2007/02/12
    피곤
    이스
  4. 2007/02/04
    설날을 기다리며??
    이스
  5. 2007/01/25
    무엇을 모르는가?
    이스
  6. 2006/12/10
    내 가난하던 26살의 12월
    이스
  7. 2006/10/30
    드디어 오늘(1)
    이스
  8. 2006/10/15
    잡생각들
    이스
  9. 2006/10/13
    방을 잡았다(1)
    이스
  10. 2006/10/05
    등화관제(1)
    이스

인연

어제와 오늘,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하면서 움직이고 움직이고 또 움직여 왔지만, 자신을 돌아볼 새가 없다가 문득 어쩌다가 돌아보게 되는 순간, 하나의 인연이 드디어 그 생을 다하였음을 알았다.

 

나를 구성하고 있던 하나의 인연이, 실타래처럼 얽혀들었던 그 인연이 마침내 그 실타래의 생명력을 다한채 썩어 끊어졌음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알고 보면 그렇게 생을 다한 인연이 하나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제까지의 살아왔던 내 삶의 구성요소는 어쩌면 너무나도 많이 달라진 것이 아닐까 싶었다.

 

끊어진 인연에 대한 장례식을, 홀로 어떻게 치러내야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아니, 올바른 것이 있을까.

 

먼 곳으로, 떠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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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학생이 되는 길로

4년 만에 대학생으로 돌아간다. 휴학하고 활동을 결의했지만 이도 저도 제대로 하기 힘든 조건들이 닥쳤던 2003년, 군에 있었던 2004년부터 2006년 가을까지의 시간, 그리고 또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활동을 하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려 하는 2007년.  여하튼, 4년 만의 대학생으로의 복귀.

 

일주일이 못 되어 스러져버릴 되도 않는 설레임.

 

언제나 그랬듯이, 대학이라는 곳은 전혀 나를 즐겁게 만들어 주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정말 이건 확실한 것 같다. 아마도, 활동 공간이라고 여겨지는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그 어떤 공간도 나에겐 실망만을 주겠지. 아마도, 정말 확실하게.

 

벌써 대학에선 그렇게 노회한 나이가 되고 말았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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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

피곤하다. 피곤. 피곤.

 

집에 들어가서 자야 하는데 작업은 완료한 게 없고 -_-;

 

에라 모르겠다. 인생이야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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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기다리며??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시험공부 따위는 단 하나도 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만 줄창 앉고 책이나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집에 갈까 여기서 그냥 잘까를 고민하고 있다. 1,2월의 내 삶이란 타율이던 자율이던 간에 그렇게 성실하지만은 않았고 그 여파는 지금도 이어진다. 그래도 이번 주는 전반적으로 좀 열심히 산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좌파 학생운동을 고민하고 있는 나와 어학원을 다니는 예비 졸업생으로서의 내가 중첩되면서 스스로 살아감에 있어서 생각보다 여러 가지 버거움들이 도출되고 있는데, 이러한 버거움들을 버거움으로 끝내고 있다는 것이 나의 오류이다. 무엇을 하던 즐거워야 하는데 나 스스로 창조적인 즐거움들을 점점 상대화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의 삶을 소모적인 즐거움들을 채워가는 것이 아닐까.

 

요즘 나의 고민은 내가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 혓바닥이 적정선에서 돌아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어떻게 나의 이야기를 전달할 지, 그리고 어떤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상대적으로 내가 따뜻하고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하나의 무능력이다. 삶의 이야기 속에서 운동의 이야기가 도출될 수 있고 나의 삶을 이야기해 주는 것도 상대방의 삶을 듣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일 텐데 그러한 것이 원활하지 못하기에 내 스스로 그들과 나의 삶의 접합점을 만들지 못한 채 집회 현장에 함께 했던 안 했던 간에 사실 관계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파편적인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작은 실망들과 더불어서 학생운동을 넘어서서 가야 할 여러 가지 길들에 대한 작은 두려움 역시도 스스로를 잠식하는 것이다. 문제는 삶이고, 나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내가 하고 싶어하며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지금 이 공간에서 학생운동이라는 하나의 과제를 부여잡고 있는 것이 중요한 일일까? 그러고 보면 비케이는 대단한 놈이 아닐 수 없다. 녀석은 그렇게 게으르기 그지 없지만 내가 없었던 3년 간 건대 학생운동을 지켜왔던 것이다. 녀석도 나와 같은 그런 작은 실망을 수도 없이 겪지 않았을까.

 

자료집도 만들 것도 수없이 많은데 도대체가 영 뭔가를 할 수가 없다. 내가 뭔가 잡고 가는 것들이 늘어날 수록 요즘엔 부담만 늘어나고 있다.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일들이다.

 

이거 원 빨리 설날 돼서 본가에라도 갔다 와야지 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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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모르는가?

나는 알고 있다.

 

무언가 잘 안 된다고 느낄 때 그 우울함에 빠져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의 차이를 말했듯이.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어떤 과제가 던져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답에 대해서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을 뿐이기에,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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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난하던 26살의 12월

실로 오래간만에 블로그를 돌아보는 지금 이 시간, 나는 시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라면이라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감지덕지 해야 할 정도로 나는 지금 이 순간 돈이 없다. 그러나 돈이 있고 없음 자체보다도, 내가 지금 가난하게 느끼는 것은 내 마음이겠다.

 

쓸데없이 센치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노사관계 로드맵의 통과를 알았을 때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내가 집회 현장에서 스쳐가듯 만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모두의 비통한 얼굴보다도,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나는 그 어떤 의미에서도 제대로 된 후배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나는 어떤 의미에서도 제대로 살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나를 필요로 했던 사람이 있었던 시절, 나는 상처 받기도 주기도 싫어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피하려 했다. 그 사람은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나에게 맞추어야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길을 선택했어도, 그 사람이 상처받은 것은 똑같다.

 

이 학교에서 동지라고 말할 수 있는 몇 명이 있다. 어떻든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내 스스로가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예전에 했던 실수를 그대로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일에 치여 살려고 노력했다. 일하지 않는 단 하나의 시간은 내 사적인 공부던, 아니면 이론을 쌓는 과정으로 삼건 여유있어 보이는 그 어떤 작태도 내 삶의 움직임 그 자체를 멈춤으로서 무용해지는 것 같은 모든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 다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일단의 강박관념이 남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예전에 그랬듯, 그래서 나는 인간적인 사람이 되지 못했고 그 당시 함께 했던 동지에게 냉정하기 그지없는 인간으로 인식된 것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에 아주 작은 항거를 하려고 할 때, 내 마음이 가난하다면 그 항거는 가난한 항거로 밖에 자리매김 되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를 내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난하게 느껴지는 내 마음부터 조금 풍족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가난하던 26살의 12월아, 이제는 가난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금의 가난한 마음을 잊을 수 있도록, 그래서 어느 샌가 깨달았을 때 더 이상 내 마음이 가난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조금씩 조금씩 너를 보내려 한다. 너와 이별을 준비하려 한다.

 

 

문제는 추상에서 구체로, 도대체 어떻게, 라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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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

복귀한 지 2주 정도. 그 간 움직이고 노력했던 일단의 성과이자 새로운 시작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 결코 두려워 말고 움직여야 한다.

 

이제까지는 장난일 뿐이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단 한 시도, 쉬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재건은 이룰 수 없고 내 스스로도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술이 너무 부족하다. 더 많은 기술을, 더 많은 이론을, 더 많은 열정과 더 많은 조직력을 필요로 한다.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주 약간, 육체적으로는 피로하지만, 그래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단 일푼의 변명도 없이 그렇게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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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들

#1 안 될 때는 한 번 쉬고 좀 돌아가기도 하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인터넷으로 고스톱을 치는 일이 어머니의 작은 일상의 부분이 되어버렸다. 고스톱 포카 훌라 등 카드로 하는 놀이, 특히 사이버 머니고 나발이고 간에 돈 놓고 하는 모든 종류의 놀이에 통 관심이 없는 나 조차도 옆에서 한 두번 본 게 아니다 보니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답시고 어느 정도는 패를 보고 이건 뭐고 저건 뭐겠군 하는 얄팍한 짐작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가 시작한 이 인터넷 고스톱은 어느 새 아버지까지도 여파를 미쳐서 항상 내가 바깥에서 공부를 하건 술을 마셨건 간에 뭔가를 하고 저녁에 들어오면 거의 매일 같이 켜져 있는 컴퓨터에 고스톱 화면이 쫙 펼쳐져 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보니까 판이 안 풀리는 날이다. 세 명이서 고스톱 치고 있으려니 어머니는 무슨 수를 써도 잃기만 한다. 패가 안 나온다고 아버지와 함께 신경이 날카로워지신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기서 날라가는 돈이 진짜 돈이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오싹해진다. 얼마 전 타짜를 보고 나니까 괜스럽게 공포심이 더 하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 때는 하시면 하시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었는데 오늘은 뭔가 그만 하시게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타짜를 본 지가 언젠데 왜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말이냐 -

 

"도박에서는 원래 이렇게 안 될 때는 한 번 쉬어가야 된다던데요."

"맞는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그만 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들, 근데 그게 어렵다. 되고 안 되고는 다 때가 있는데 지금도 때를 놓쳤으니까 이러고 있지. 봐봐, 갑자기 지금 또 잘 되기 시작했다."

 

그 말대로 갑자기 패가 또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쓰리고 피박 광박 다 먹이면서 한 큐에 54만원의 사이버 머니가 굴러들어온다. 그렇게 몇 판 따자 아버지가 씨익 웃으면서 말씀하신다.

 

"도박 만이 아니라 인생사가 다 그렇다. 원래 뭐가 안 된다 싶고 어렵다 싶으면 한 번 쉬고 좀 돌아가야 돼. 물론 지금 우리야 게임이고 운이 또 돌아와서 지금 또 땄지만 인생은 그런 식으론 안 돌아간다."

 

#2 넌 나를 배신해서 죽는 게 아니라 너 자신을 배신해서 죽는 거야

 

나는 참 무협지를 좋아한다. 정말이지, 이건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지 솔찮게 무협지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이 무협지라는 게 말 그대로의 팝콘 문학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세상에 있는 뭐라도 배울 게 한 가지 쯤 있다는 데 남들 다 쓸데 없다 해도 나는 무협지에서 가끔은 인생의 도리도 생각해 보게 되곤 하는 것이다.

 

천뢰무한, 이라는 무협지를 보다가 주인공을 배신한 인물의 대화는 그렇게 인상이 깊었다. 무슨 글이건 간에 읽고 생각을 다시 해 볼 수 있는 거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가 죽는 이유? 당신을 배신했기 때문이 아니오?"

"아니, 틀렸소. 당신이 나를 배신한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소."

"그럼 무슨 이유요?"

"당신은 자기 자신을 배신했소. 그게 중요한 것이오."

"내 자신?"

"당신이 처음 강호로 나올 때의 마음을 생각해 보시오."

 

처음 강호에 출도할 때 강호 정기를 세우는 대협객이 되고자 했던 마음은 어디론가 떠나고 살다 보니 돈과 여자에만 탐닉하고 사는 꼴이야 말로 스스로를 배신한 것 아니던가, 라는 주인공의 질타에 정말이지 순순히 납득하고 죽는 배신자도 배신자 지만 - 아무리 그래도 저런 게 칼맞아 죽을 이유라니 - 어쨌든 지금의 나로서는 마음 속에 담고 갈 만한 그런 한 토막 글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다 이루었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오는 뉴스 메일 따위도 꼬박 꼬박 읽어주는 편인데 웬 가을도서 추천이 날라왔다. 그냥 대부분의 책이 그다지 눈에 안 들어 오다가 갑자기 <최후의 유혹> 이라는 소설책이 눈에 띄었다. 

 

"유신 말기, 대학 교정은 전경과 사복 형사들로 그득했다. 스무 살 초입 우리의 낮은 죽음처럼 음산했다. 저녁이 오면 막걸리집과 자취방은 담배 연기와 빈 술병으로 그들먹했다. 철학을 얘기하고, 시절을 얘기하고, 농촌과 공장을 얘기했다. 그리고 각자의 결심을 얘기했다."  

 

아마도 서평 시작이 요걸로 시작해서 그럴 게다. 지금은 물론 유신 말기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이 비스무리하게 20대 초반의 시간을 보냈기에 그 서평 시작이 눈에 띄었을 게다. 알고 보니까 예수의 일생에 대한 일종의 전기 소설 같다.

 

그리고 마지막 유혹.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라”는 로마 병사의 말. 아직도 늦지 않은 서른세 살 나이. 굳이 십자가의 ‘쓴잔’을 마실 것 없이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살아 고종명하는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유혹을 이겨냈기에 “다 이루었다”는 말로 생을 마칠 수 있었다. 그 한마디에 그의 서른세 해 전 생애가 압축돼 있다. 치열하게 살았기에 할 수 있는 말.

 

예수는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논해지는 자신의 희생에 대한 일종의 카타르시스 때문에 그렇게 다 이루었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것은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갔느냐의 문제라고 말하는 듯 해서, 갑자기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아들로서 인민과 의를 위해서 살아갔던 젊은이의 인생을 말이다. 물론 책 한 두권 가지고 뭘 논할 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읽어보고 생각해 보고 약간은 그대로 추종해 보는 것도 괜찮은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뭘 어떻게 살겠다고 대단한 자부심과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어찌 되었건 정말이지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항상 다짐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한 권쯤 쓸만한 소설책을 증정해도 나쁘지는 않지 않을까.

 

#4 쓸데없이 센치해 질 필요도 없다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다 보니까 벌써 제대한 지도 20일 쯤 된 것 같은데, 역시 고민만 해봤자 나아질 일은 단 한 푼도 없다. 주변의 소리들에 다 신경쓰다가는 제 명에 살지도 못할 일이다. 일단은 결정내린 그대로, 정말이지 뭐든지 빡씨게 살아보는 게 능사가 아닐까. 적어도 일단 눈 앞에 닥친 일들 부터 시작해 볼 일이다.

 

자, 일단 뭐든지 잘 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격려나 한 방 때려야 겠다. 이스, 넌 지금 잘 하고 있어. 괜한 자기 최면이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정말로 잘 하고 있고 새로이 다시 시작하는 모든 일 다 잘 할 수 있다고. 정말로. 자기가 하겠다고 다짐한 것들에 의심 따위 품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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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잡았다

어제 방을 잡았다. 그곳이 이제 서울에서 내가 생활을 꾸려야 할 내 집이다. 물론 그 방에서 할 것이라고는 사실상 짐짝 놔두는 것과 잠자는 것 밖에는 없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밖에 못할 방이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가장 싼 방이다. 정말로. 현실적으로 내게 그 이상의 방은 필요하지도 않다.

 

역시나 이것도 저것도 상황은 어렵다. 단지 제대를 했기 때문에 무서운 것 만은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상의 무서움이 정말 피부로 와닿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 무서운 세상에서 몸부림 치는 수 밖에 없다. 자기의 존재적 가치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수 밖에 없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했지만 의식이 존재를 배신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내가 학생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의식이 존재를 배신함으로 인하여 자본의 욕망을 담지하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대학 시절이 끝나서 사회로 나갔을 때에도 적어도 자본이 욕망하는 대로 강요하는 생각들을 내 생각인양 하면서 그대로 적응을 잘 하고 사는 것이 똑똑한 인간의 길이라며 강변하는 인간이 된다면 도대체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

 

정말 무엇이던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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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화관제

등화관제

 

-서홍관

모른다고 하라.
네가 눈뜨고 본 일을
끝내 모른다고 하라.
등화관제의 어둠속이어서
한 길 앞도 분간 못한 채
먼지만 꿈속같이 일어
불 끄라는 고함소리에
이불 속에 엎드려 고개만 처박다가
입과 코가 막히고
눈과 귀가 가리워져서
누이가 도적에게 끌려간 것도 모르고
애비가 매맞고 피흘리는 것도 모르고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신음소리 비명소리와
멀리서 다그치는
붉은 빛 구조신호를
어둠을 찢는 듯한 호루라기 소리에 기가 질려
아아 우리는 끝내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하라.

 

영리하지 못한 나는 매일 처럼 주변과 사소한 불화를 일으키고 아버지는 내게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하라 매일처럼 말씀하신다. 가난하게 살아오지 못한 내가 진실을 말할 자격도 들을 자격도 없다 하며 거짓된 세상을 등화관제 속에 보지 않는 것이 영리한 길이라고  매일처럼 그렇게, 우려와 걱정과 내 아들이 빨갱이가 되는 꼴을 못 보겠다는 분노를 섞어서, 그렇게.

 

운동에 대해서 고민했던 청년이라면 거의 누구나 다 겪는 일이지만 그 보편적인 것이라도 내 문제가 되면 안타깝고, 그래서 아프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중요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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