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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0/31
    [도종환] 저녁무렵
    젤소미나
  2. 2005/10/31
    [윤동주] 돌아와 보는 밤
    젤소미나
  3. 2005/10/31
    박재삼 시인 작품 두수
    젤소미나
  4. 2005/10/31
    [도종환]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젤소미나
  5. 2005/10/31
    [브레히트] 호수나 강에서 헤엄치기
    젤소미나
  6. 2005/10/31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젤소미나
  7. 2005/10/31
    [윤동주] 새로운 길
    젤소미나
  8. 2005/10/31
    [푸쉬킨] 젊고 달콤한 희망에 숨쉬며
    젤소미나
  9. 2005/10/31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젤소미나
  10. 2005/10/31
    [이원규] 근황 1992
    젤소미나

[도종환] 저녁무렵

올해, 풍파가 많았다. 다시는 보지 않았음 했던 사람들 사이의 분란..
그것이 죄악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관계와 노선(무엇이 옳다 갈무리 되어 있지 않은)...
선택을 요구하는 많은 말들, 찔러대는 대못들..눈감고 외면해도 덮쳐오는 상처가 되었다. 나로 인해 그렇게 느낀 사람들도 있겠지..
모두가 못할 노릇이다. 그깟 노선이 뭔데, 그것이 절대절명이라고 누가 장담하랴..단 1년 앞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인데..
그들과 또다른 그들과 그들속의 나와 또다른 그들 속의 나에게 빈술잔 얹어놓고 저녁과 밤을 맞이하여 이시를 읊는다.(2004. 11.5)

저녁무렵

도종환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있다
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
부둥켜안고 가야 할 사람이 있다

끓어오르던 체온을 식히며
고요히 눈감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로
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
사라진 것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란 풀 다 시들고
잎이란 잎 다 진 뒤에도
떠나야 할 길이 있고

이정표 잃은 뒤에도
찾아가야 할 땅이 있다

뜨겁던 날들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거기서부터 또 시작해야 할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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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돌아와 보는 밤

돌아와 보는 밤

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_____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비 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 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가옵니다.

 

 

빨래를 널며 바람에 물기가 느껴지길래, 설마 비가 오지는 않겠지...
왠지 비가 올 것 같았는데, 그냥 집을 나섰다.(나이 먹을 수록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감각으로 아는 일기예보가 점점 더 정확해진다.)
공부방에 갔다가 끝날 때 즈음..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짐을 잔뜩 들고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걷고, 한참을 타고 집에 왔다.
시를 뒤적뒤적...윤동주의 시가 꼭 오늘의 나 같다.

(2004.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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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시인 작품 두수

감기기운 때문에 아침에 일찍 눈을 떴는데도 계속 FM만 들어놓고 오전 내내 뒹굴거렸다.
시계를 보니 12시. 슬슬 일어나 늦은 아침인지 이른 점심인지 구분을 못할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어제 저녁 대충 끓여 놓은 김치찌개와 실패한 고구마 현미밥을 놓고 젓가락으로 깔짝 거렸다. 밥맛도 그다지 없고 읽으려고 빼놓고 보지 않은 박재삼 시집이 눈에 띄여 한 손에는 시집을 한손에는 젓가락을 들었다.
'98년, 찬주언니의 권유, 종로서적에서'
아, 찬주언니 수유리 살 때 였나 보다. 종로서적, 이제 없어져 버린 그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쑤신다. 종로의 세서점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장사치 냄새가 덜 났던 그곳..대자본의 힘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할아버지의 시선이어서인가, 아니면 시조도 해서인지 마지막 행이 아주 고전적이다.
스치고 말 한 장면을 쨍하게 잡아내다가 마지막에 슬 풀어버리는 쥐고 펴는 힘이 있는데, 그것이 힘으로 느껴지기보다 그저 시선을 그곳에 한번 고정했다가 다시 하늘을 본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예전에 봤을 텐데 기억이 안나는 것은 그때는 별로 였나보다.
지금은 아주 편하고 괜찮은데..
시인의 96년 당시의 심정이었을 것 같은 두시(비슷하지만)를 옮겨 적어본다.
"햇빛 하나는 잘 받아/그 이마가 빛나는/이 사실이 부럽네"

나는 이구절이 참 좋다. 그 이마가 빛난다라...




虛無의 내력

늘 돈은 조금만 있고
머리맡엔 책만 쌓이고
그 책도 이제는
있으나마나한데
땅 밑에
갈 생각만 하면
나는 빈 것뿐이네.






아득한 靑山을 보며

죽도록 부지런히 쓴다만
詩를 쓰는 것은
돈과는 거리가 멀고
그러면서 그 짧은 행간에
짜릿한 共感을 심는 일은
늘 아득하기만 하네

그러나 靑山은
아무 일도 안하고
늘 그 자리에 놓여 있건만
햇빛 하나는 잘 받아
그 이마가 빛나는
이 사실이 부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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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도종환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함께 잡은 손으로 따스하게 번져오는
온기를 주고 받으며
겉옷을 벗어 그대에게 가는 찬바람 막아주고
얼어붙은 내 볼을 그대의 볼로 감싸며
겨울을 이겨내는
그렇게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겨울 숲 같은 우리 삶의 벌판에
언제나 새순으로 돋는 그대
이 세상 모든 길이
겨울강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때
그 밑을 흐르는 물소리 되어
내게 오곤 하던 그대여

세상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무엇을 하기에도
너무 늦은 나이라고 말할 때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조그맣게 속삭여오는 그대
그대와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너무 큰 것은 아니고
그저 소박한 나날의 삶을 함께하며
땀흘려 일하는 기쁨의 사이사이에
함께 있음을 확인하고

이것이 비록 고통일지라도
그래서 다시 보람임을 믿을 수 있는
맑은 웃음소리로 여러 밤의
눈물을 잊을 수 있게 하는 그대여 희망이여
그대와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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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호수나 강에서 헤엄치기

호수나 강에서 헤엄치기

1
창백한 여름에는, 바람이 저 위의
커다란 나무들 잎 속에서만 살랑거릴 때는
강이나 못 속에 누워 있어야 한다.
헤히트가 서식하는 수초처럼.
몸은 물 속에서 가벼워진다. 팔을
물에서부터 하늘 쪽으로 가볍게 떨어뜨리면
산들바람은 팔을 갈색의 나무가지인 줄로
잘못 알고 흔들어 준다.

2
하늘은 한낮이면 굉장한 고요함을 마련해 준다.
제비들이 날아오면, 눈을 감는다.
바닥의 진흙은 따스하다. 서늘한 물거품이 방울방울 솟아 올라오면
물고기가 우리들 사이로 지나간 것을 알게 된다.
나의 몸, 다리와 가만히 있는 팔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우리는 물 속에 꼼짝않고 누워 있다.
서늘한 물고기들이 우리들 사이로 지나갈 때만
나는 웅덩이 위로 햇빛이 비치는 것을 느낀다.

3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저녁 때
사지가 쑤시고, 아주 게을러지면
흘러가는 푸른 강물 속에 철퍼덕거리면서
모든 것을 거리낌없이 던져 버려야 한다.
저녁 때까지 버티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면 강과 수풀 위로 창백한 상어와 같은 하늘이
심술궂고 탐욕스럽게 나타나고
모든 사물이 그에 알맞게 되기 때문이다.

4
물론 흔히 그렇듯이 등을 밑으로 하여
누워야 한다. 그리고 떠내려 가도록 내러벼두는 것이다.
헤엄을 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 그저 그렇게 하고 있으면 된다.
마치 조약돌 더미의 한 부분인 것처럼 말이다.
여편넹가 안고 있는 아이와 같은 자세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된다.
저녁에 하느님이 자기의 강물에서 헤엄칠 때
그러는 것처럼, 전혀 큰 활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베르톨트 블레히트.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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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도리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따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20대 초엽에는 긴 시가 싫었고, 이 시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10년이 지난 지금 이 시 귀절귀절이 가슴을 때린다. 김수영이 이 시를 썼던 때, 그때의 나이로 있는 살고 있는 나여서인지..분간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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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새로운 길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래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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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킨] 젊고 달콤한 희망에 숨쉬며

젊고 달콤한 희망에 숨쉬며
--푸쉬킨

젊고 달콤한 희망에 숨쉬며
언젠가 영혼이 썩는 육신에서 빠져나와
한결같은 그리움, 기억, 사랑을 끝없는 창공으로
가져간다고 믿는다면 ----
맹세코! 난 오래전에 이 세상을 버렸으리:
삶을, 흉한 우상을 부수고
자유와 즐거움의 나라로 떠났으리
죽음이 없고, 편견도 없는 나라,
오직 창공의 순수함 속에 그리움만이 흐르는 그곳으로...

그러나 이 바램은 헛것이고 무력한 것을
내 이성은 고집스레 내 희망을 경멸하고...
무덤 뒤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전연 아무 것도 없다고! 그리움도, 첫사랑조차도!
무섭다... 슬프게 다시 삶을 바라보며
나는 오래 살고 싶어진다.
내 우울한 영혼 속에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 감추어져 오래 불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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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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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 근황 1992

어떤 술자리에서 지금은 지리산에 들어가서 산다는 시인을 만났다.
노동해방문학이 사노맹 기관지가 되기 전, 초기 편집하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는 얘기도 언뜻하면서...박노해를 씹었던 기억이..

근황1992

말하자면
한때 새벽까지 마시던 소주를
커피로 바꾸고
가끔 새벽녘이면 터지던 울음도
한숨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통째 뿌리뽑힌 무들이
한겨울 광 속에 처박힌 채
시린 바람만 품에 안고도
어쩔 수 없이 샛노란 싹을 피우듯
좀더 절망에 익숙해졌을 뿐이다

얼핏 선 채로 잠이 들어도
그칠 줄 모르는 폭설
꿈 속에서마저 가야할 길은 먼데
먼저 코피부터 쏟아졌다

- 詩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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