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에 대한 욕구

from monologue 2011/01/23 23:07

생협에 있다보면

많은 아이들과 마주치는데,

문득 과거의 나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단 한번도 유쾌하게 들어본 일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예뻐하거나 귀여워 해 준적도 없었던 듯 하다.

 

헌데 왜일까.

지금에 와서야 애들이 예뻐 보이는 건

좋아서, 결혼까지 한 주제에. 너무도 사람 사는 문제에 무심했었나.

 

아마도, 둘 사이에 하나의 관계가 늘어나고

하나가 늘면 그 뒤로 따라 붙는 몇 십배의 관계들이 생기기 때문에 

게다가, 거기에 대한 전적인 책임까지 져야 하는 서로의 처지 때문에

남편은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리라.

 

쉽게 가져질 줄로만 알았던 아이는,

생각처럼 가져지지 않는다.

내가 아파한 경험을 남편은 알기 때문에

혹여나 갖게 되면 지우자고 하지도 못할 것 같다.

 

운동한다는 사실 이외에 남편은 부모에게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고

혈기왕성한 시절, 그 흔한 반항조차 해본 사실이 없었다.

그럼에도, 출산과 양육에 대한 남편의 태도는 확고하다. 

그러나 나는....

 

결혼 전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을 가지고

고민해보리라 생각지도 않았다.

누군가 출산에 대해 물어보면, 심지어 시가의 제일 연세 많은 할아버지한테도

나는 계획해서 낳을 거고 여튼 지금은 낳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다고 대답해왔다.

 

아주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는 남편과는 다르게,

왜 출산에 대한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 걸까.

왜 초연한 남편을 보면 화딱지가 나고 굳이 나를 출산과 육아의 틀로 옭아매려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고민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하고 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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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23:07 2011/01/2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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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자체가 문제가 되는 세상, 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소위 섹슈얼리티의 정상성이라는 걸, 신화처럼 믿기 시작한 것부터도... 

 

존재 자체의 심화된 고민이라기보다는.

다름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몸에 배인 사람들의 삶

 

혼돈 속에서도 기분 나쁘게 오열하지 않는,

그래서 맘에 들었던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멀리 여행이나 가고 싶다. 매번 마음만 먹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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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13:21 2011/01/2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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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경제

 

여성주의에 경제학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이유.

맑스주의적 여성주의, 혹은 사회주의적 여성주의가 대안이라고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고전경제학이 예측하지 못한 빈곤의 문제, 즉 성적, 연령, 학력, 인/종적, 다양한 착취 체제가 경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설명이 필요한 것, 여성들이 빈곤한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으려면 ‘페미니즘 경제학’이 필요한 것이다.

 

1. 가족

제도, 이데올로기로 묶여 있는 1차적인 관계가 가족 -> 가족은 혈연관계에 기반한 친족일 뿐인가. 누구에게는 휴식과 사랑이 넘쳐나지만 누구에게는 노동과 지겨움이 넘쳐나는, 여하간 책임질 게 너무나도 많은 공간, 가족은 여성들에게 마찬가지로 자신의 노동력을 소비하는 공간으로써 존재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가족이란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관계의 틀을 결정하며 중요한 관계를 해주고 있는 사적 공간.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가족을 필요로 하는 것, 생산양식과 가족의 형태는 맞물려간다. 일면적이기는 하나 여성억압의 근원을 가족제도에서 찾는 것이 핵심.

 

2. 생산과 재생산

생산과 재생산은 분리될 수 없다. 재화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노동력, 이 노동력을 충전시키는 모든 행위, 활동, 제도와 인간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동-소위 ‘재생산’이라 이름 붙여졌던-도 생산 활동의 일환이다. 하지만 사회는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노동을 구분하며 후자에 종사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무급으로 부리면서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가족제도가 변화해온 양태를 살펴보면 가부장이 가내 재산을 소유, 통제, 권력 장악했던 시대에서 일하는 사람과 생산수단이 분리되고 임금의 형태가 개인화되면서 노동자 가족으로 넘어오기 시작. 노동력이 다량으로 필요했던 자본의 호황기에는 여성, 남성, 아이들이 다 생산적 노동에 참여하지만 사회는 다시 남성에게 권력을 쥐어준다. 가족과 생산 현장을 분리시키면서 남성을 생산적 노동에 참여하게 하고, 이들의 임금을 높게 책정해주면서 남성 생계부양모델(이성애 핵가족)을 정착시켜 나가기 시작한다. -> 가족임금제 강화

 

3. 자본주의

한국 사회 산업화, 공장 상품 생산 시장에서 화폐로 교환되는 것 생산적인 경제활동, 뿌리깊은 제조업 중심주의, 여성들은 무급으로 남성 노동력을 잘 가꿔 일터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시장에서 교환되는 남성 노동력의 생존이야말로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달려있다. Motherhood ‘모성’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정착된 곳 어디서나 여성의 부지런하고 섬세한 노동-어머니의 무조건적인 노동-에 의존해 사회의 생산은 유지되고 있다. 허나 여성의 노동은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적’인 것으로 규정됨으로써 남성에의 종속, 자본의 초과 착취 강화되고 있다. 여성의 노동은 주로 서비스, 공공 영역 등 소위 ‘보살핌 노동’이라는 소비형 서비스업에 집중된다. 성별 분업을 철저하게 하고, 성별 역할(젠더)를 강화하는 자본주의.

 

4. 가부장제

학생, 여성, 다국적 노동자 모두가 생산적 노동에 참여하고 있다면 다자가 평등해야 한다. 헌데 아직도 이들에 대한 차별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여성들에 대한 차별은 명백하게 실존하고 있다. 남성 임금의 절반, 성폭력과 희롱 근절되지 않고 있음, 여성에 대한 살인과 적대 여전함, 가부장제의 뿌리 깊은 관습이 전해져 내려오는 상황. 가부장 문화가 아니라 체제라 부르는 것은 문화처럼 언제든지 수용되고 변화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점점 공고화되는 지배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지불되지 않는 여성의 노동, 무시되고 있는 여성들의 존엄성, 성적 모멸감과 착취, 전 세계에서 다른 형태와 수위로 반복되며 여성차별은 ‘역사화’되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가 이름만 사라졌다 해서 사라지는가. 가부장제의 완전한 혁파는 무엇을 통해서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5. 대안

 

문제의 핵심은 여성과 남성사이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어느 한 쪽의 성을 가진 이들에게 사회적 기회가 없다는 것. 사회적 기회를 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문제, 그런 면에서 여전히 여성 운동이 필요하다.

노동에 각종(젠더*섹슈얼리티/장애/연령/학력/외모/계급 등등)위계가 없는 사회, 예컨대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가 가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성노동도 마찬가지) 사회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는 개인이 알아서 만들어나가기 힘들다. 전 사회적으로 교육되고, 구조를 만들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체계적으로 조직되어야 하는 문제다. 사회적으로 조직되는 것이 하나의 방식-이것이 사회주의로 이름 붙여진다면 사회주의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고, 다른 이름이 붙여지면 다른 사회가 될 것이다-이라 한다면 교육의 ‘내용’은 여성주의-적녹보라?-정도가 되지 않을까, 획일적인 사회화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욕구가 존중되는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꾸준한 의식적/실천적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생각할 수 있는 단기적 대안

- 현 사회가 규정짓는 생산과 재생산의 구분을 무화시켜야 한다. 가족임금제를 강화하는 노동조합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를(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도 함께 봤으면 좋겠다. 여성노동자는 비춰지지도 않으며, 투쟁의 정당성을 지지하며 싸우는 모습이 먼저가 아니라 남편과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모습으로만 비춰지는 가대위의 모습도 안타깝다)냈으면 좋겠다.

- 여성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생리휴가 등 각종 제도의 확대), 동일노동 동일임금, 성차별(폭력) 근절, 여성인권에 대한 각종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높여야 한다.

- 나아가 궁극적으로 현행과 같은 가족제도/일부일처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모두가 자신의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다자가 평등하게 노동하고, 어떤 일을 하든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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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11:55 2010/12/1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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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 결혼기념일

from 분류없음 2010/12/12 00:59

3년차 결혼기념일

 

남편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한지에 붓펜으로 빽빽이 정성들여 쓴

편지였다.

보자마자 눈물을 훔치느라 정신없어하며,

편지 글을 단숨에 읽어내렸다.

 

타인 앞에서도 거리낄 것 없이 싸웠다.

아주 유치한 문제로도, 아주 사소한 문제로도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나보다.

 

나를 아프게 한 이들의 흔적들이 생각나

도저히 그 곳에는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책임을 온전히 남편에게 돌리며

뻔뻔하게 살아왔다.

 

지금은 둘 사이가 너무 고요하다.

마치 수 세기가 지난 것마냥.

지난 2년의 시간이

우리를 이렇게 키웠나보다.

 

가까이 있다고, 내 남편부터 보이는데

다음 차례는 누가 될까.

온전히 그대에게만 집중할 수 있기를,

그럼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던 깊은 상처가

더 선명히 보일 수 있을 것 같아.

 

곁에 있어줘서, 못난 내 곁을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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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2 00:59 2010/12/1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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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코아 점장 출신의,

생리휴가를 없애겠다던 매니저가 잘렸다.

 

뉴코아 점장 출신의 매니저를 고용한 것부터가 이상했지만

수습 기간 떼기전에 너 그만두세요 하며

밥줄 자르는 형태를 생협도 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지역 사람들과 활발하게 대안적인 경제를 조직해보자는 환상이 가차없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름만 협동조합이지 돈벌레나 다름 없는 생협, 이토록 '바닥'이었다.

 

개인으로써 노동조합에 가입할지

혹은 다른 통로를 통해 이 사건을 알려낼지

고민 중이다.

 

중립적인 체 하며 생협을 편드는 생각만 진보적인 짜증나는 인간들 때문에

어쩌면 나도 그런 군상들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게,

모든 게 짜증이 난다.

 

내가 추구하던 가치관은,

왜 너와 나는 다른가. 라는 질문보다

왜 너와 나는 다를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 천착하게 했다.

여기서 제발 좀 벗어나자고 택한 공간도 생협이었다.

헌데 다시 내게 묻는 질문은 후자로 돌아온다.

 

된장, 아무 곳도 아니더라.

피와 살이 튀어나가는 살벌한 공간이었다, 여기도.

끈질기게 장기적인 전망을 안고 버틸 것인가.

대립각 세우며 들이밀고 싸우다가,

기어코 박차고 나갈 것인가.

무엇부터 변화시켜야 하나.

변화를 수용할 사람들이라 상정하는 것부터 무리였나.

 

그들과 똑같이 되지는 말자, 적어도.

오늘 하루도 내게 거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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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2 00:35 2010/12/1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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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데로 갈까나. 흠.

지난 크리스마스 때 갔던 부석사가 자꾸 떠오른다.

이 엄혹한 시절에...크리스마스 케잌도 미리 예약했다.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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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5 02:29 2010/12/05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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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ang님의 [다다 프로젝트]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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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21:14 2010/12/0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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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서 사람이 불에 타는 시대는 아직도 반복되고 있건만,

여전히 한참이나 지난 추억으로 그 시대를 간직하고 있는 나.

 

모두가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나는 고작

내가 처해져 있는 환경을 바꾸는 일이 우선이 되어버렸다.

 

물론 내가 있는 환경을 바꾸는 일 또한, 내 중요한 '운동'이고,

밖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날선 투쟁 역시 내 운동일 수 있는데

몸과 마음 모두가 멀어져 있는 듯 하다, 지금은.

노랫말마따나 '단사에 갇힌 노동자의 장벽'이란 게 이런 것일까.

 

이윤을 가져가지 않는 착한 자본가들,

혹은 소액 출자로 모두가 똑같은 목소리를 내며 존재하는 집단적 자본가들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들

자본가들의 노무관리 시스템을 들여오는 중간 관리자들, 그 속에 섞여 다닥다닥 잔소리하며 긴장을 주는 이들

시설에 투자하고 노동자들은 쥐어짜는 생협 시스템,

유치한 광고까지 더해져 결국 자본주의적 운영 방식에 한 치도 거스름이 없는

소위,'자본주의' 속에서 '대안경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극렬한 모순,

나 역시도 '노자간의 대립'을 겪으며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무력해져있는 걸까. 혹은 너무 많은 휴식을 나에게 주었나.

여기저기서 난리인데 나는 미동조차 하고 있지 않구나.

 

울산에 있을 때는 느끼지조차 못했던 노동자들의 활기가 이제야 전해지고 있다.

아마 내가 지금 울산에 있었다고 한다면 이주노동자들 조직해서 지지하게 하고, 어떤 집회든 동참하게 하고, 파업할 권리라도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한 줌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나 지껄이며 너희들도 그런 방식으로는 싸우지 말라고, 감히 충고했을 것이다.

 

헌데 지금의 나는 그저, 존 레전드의 목소리에 심취해 학교에 제출할 글이나 고민하고 있다.

 

왜 버티어야 하는지, 혹은 왜 그만두면 안 되는 것인지, 어떤 쟁점을 제기하며 어떤 논의를 이끌어낼지,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묵묵히 내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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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7 13:38 2010/11/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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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from 분류없음 2010/11/14 00:54

guro님의 [혁명을 향해 나아가자] 에 관련된 글.

 

멋진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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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4 00:54 2010/11/14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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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학교 동기와

from 분류없음 2010/11/14 00:50

기륭 문화제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나,

남편과 민속촌으로 쌩 하니 가버렸다.

 

수요일마다 지역 집회에 가보고

뭐? G20이든 어디든, 여기저기 가봐야지 하는 다짐은

금세 이렇게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고립되었다는 느낌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근래에는 바빴다.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그런 외로움들이 일상에서 진동할 때마다

반가운 연락들이 한 두번씩 오곤 한다.

 

이틀 전, 그이의 연락이 그러했는데...

 

만나고 싶은,

만나야 풀릴 것 같은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움을 품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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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4 00:50 2010/11/14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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