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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욱 열사 - 열사예배 120401

김기욱  열사
(1962년~2002년)   당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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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출생
1987년 6월 23일 대우종합기계(전 대우중공업) 입사
1988년 노래패 노둣다리 결성 및 3대, 9대, 11대 회장
1989년~1995년 대우중공업 11~13 노조운영위원,회계감사, 복지실장
1996년 인천지역 금속노동자 노래패연합 ‘철의 노동자’ 결성 및 초대회장
1996년~1998년 대우중공업 14대 노동조합 복지실장
1999년 인천지역 노동자 노래패장회의 2대 회장,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준) 운영위원
2000년 인천지역 노동자 노래패장회의 3대회장
               제13회 인천노동문화제 공동준비위원회 준비위원장
               대우중공업 15대 노동조합 대의원
              간암으로 판정, 투병생활 시작
2002년 4월 2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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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대우종합기계(전 대우중공업)에 입사해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경험하면서 노동자라는 존재가치를 알게 되었고 오랜 기간 노동조합 간부로서 열성적인 활동을 했다. 노동문화운동이 노조운동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영역이길 바랬던 인천 노동문화일꾼들의 노력으로 인천노동자 노래패 연대체계는 차츰 독자적인 사업을 창조해 나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동지는 ‘노둣다리의 일원으로서, 인천 노동문화연대체계의 대표로서 활동했다. 이런 노력 속에서 인천의 노동문화운동은 전국적으로 모범이 되기도 했으나, 동지의 업무는 늘 과중돼 있었다. 동지는 간암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 중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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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거동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어 대우자동차 집회에 몇 번 참석을 하였더니 주변에서 환자가 돌아다닌다고 난리가 아니다. 며칠 전 오랜만에 회사 동료를 만났더니 '아직까지 정신 못차리고 집회 참석한다매'라며 걱정어린 핀잔을 주는 것이 아닌가. 집에서도 아내와 자주 말다툼을 한다. 또 시작이냐고....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들을 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더 건강해지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동지가 남긴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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