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 정말 제대로 놀았다.

12월 20일 공연을 끝으로 여태 놀고 있으니 정말 많이 놀았다.

아마도 지난 이십여년간을 통틀어 가장 길게 가장 게으르게 놀았던 시간이 아닐까 싶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놀면서도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 그저 좋았다.

허나 요즈음 서서히 불안해진다.

사실은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하지 않았고

그러니 다시 시작하는데에는 분명 시동 걸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잘 해낼 자신은 없는데 해야만 하는것이라......

불안하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더욱 불안한 마음이 커진다.

인간은 누구나,

일하지 않으면 굶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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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8 00:03 2012/02/08 00:03

2011/11/10

다시 쓰는 일기 2011/11/10 15:53

집 이사하고 진서 학교 들어가고  많은 일들이 있는 동안에 내가 여길 너무 오래 비웠구나.

아주 잊고 있었던건 아니야. 글쎄...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을지도.....

낯설지만 낯익은 이 느낌이 좋네.

지난 밤에 집에 들어오는데 마당으로 올라가는 작은 계단이 하나하나 다 보일만큼

달이 밝았다.

보름달이었다. 어제가 정확히 보름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리만치 크고 환한 달.

'달이 휘영청 밝다'는게 어떤건지 알겠더라.

그러고보니 양재대로도 강변북로도, 청담대교도, 다른날보다 훨씬 잘 보였어.

순전히 달 때문이었던거다.

내 눈이 조금이라도 좋아져서가 아니고.

 

할일이 많은데 심심하다.

이건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일이 산더미같은데....안해버려도 그만인것 같고...하기도 싫고....그래서 심심한 이 마음을.

하하...

뇌가 산산이 흩어지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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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0 15:53 2011/11/10 15:53

지난 7일  담양에 다녀왔어요.

대나무축제가  한창이더군요. 축제를 보려고 일부러 간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좀 많이 남는김에 둘러보았습니다.

1박2일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죽녹원'을 가운데 두고 종합체육관 앞 특설무대와 향토특산물 장터, 그리고 천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각종 먹거리 장터가 축제의 주요 장소더군요.

종합체육관 앞의 특설 무대에선 하루종일 공연이 펼쳐졌어요.

우리가 갔을때는 태권도 시범을 하고 있었더라죠^^

죽녹원은 그야말로 대나무밭인데 겉으로 보기엔 아주 작은 동산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대나무 숲이 울창하고 전시관도 잘 되어있습니다.

다만 모기가 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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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 장터를 구경하다가 특유의 떠들썩함에 질릴 지경이 되었을때 우연히 발견한 '대담 미술관 & 카페'!!!

완전 대박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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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런곳에 왠 카페가 있네.....하고만 생각했는데 제대로 전시가 진행중인 미술관이었습니다.

물론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있구요.

우리가 갔을때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세 분의  작가가 공동전시를 열고 있었는데 주제가 대나무와 소나무였습니다.

그중 특히 인상적이었던건 대나무의 사계절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 작품이었어요.

바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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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움직이고 있는것을 보여드리고 싶군요. 그냥 평면적인 그림이 아니라 움직이는 미디어 아트랍니다.

담양 대나무축제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주제였습니다. 작품속의 대나무는 죽녹원에서 보았던 대나무와는 또 다른 감흥을 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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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 전시관은 이렇게 생겼어요.

하지만 차를 마시는 공간 여기저기에도 어김없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자유로이 오가며 감상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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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어디를 둘러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인테리어와 자연 풍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역 축제라고 하면 흔히 떠들썩한 트롯선율과 엿장수, 특산물 홍보와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장터가 연상되고, 정작 그 지역을 제대로 보여주는 색깔이나 문화적 향취는 느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 여기 담양에는 대담미술관이 있어 비로소 담양만의 축제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멋진 공간이었습니다.

 

죽녹원과 대담미술관이 나란히 있는 이곳은 담양군에서도 향교리 라는 마을입니다.

어주 작고 아담한 시골 마을 그대로입니다. 미술관 주변으로는 대나무를 가공하는 작은 공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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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향교리 마을 입구에 자리한 마을회관인가봐요^^

창문 너머 들여다보니 주민들 몇분이 주무시고 계시더라구요.

대숲에 부는 바람을 껴안고 납작하게 엎드린 향교리 마을은 한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아랫쪽 천변의 소란스러움은 아랑곳 없이 하늘 맑고 공기 좋고....

나중에 이런 곳에 내려와 살까...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마을회관 앞에 '예술인 마을' 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던데 대담 미술관을 중심으로 아마도 예술가 분들이 많이 살고 계신가보죠?

아니면 마을 주민들 모두가 예술가 못지않은 감수성을 지닌 분들인건가요?^^

 

일정이 여의치 않아 좀 더 오랫동안 축제를 즐기지 못하고 서울로 와야했지만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지역문화가 많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도 대도시에 편중되어 지역 주민들께는 다양한 문화생활의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것이 늘 안타까웠는데, 그런 점에서 담양은 작지만 큰 고장이었어요.

담양만의 문화 예술공간을 만들고 지켜가시는 담양군과 마을 주민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대담 미술관이 없었다면 저는 '담양 대나무 축제'도 또 하나의 그저그런 지역 축제로 생각하고 말았을테니까요.

 꼭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다시 갈 일이 있으면 들러보려구요^^

또 어떤 아기자기한 담양의 향취가 저를 반겨줄지 기대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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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10:23 2011/05/10 10:23

2010/11/30

다시 쓰는 일기 2010/11/30 10:24
요즘 무려 왕복 네시간씩 전철을 타고 충무아트홀에 출퇴근 하면서 뮤지컬 연습을 하고있다. 온에어라는 뮤지컬이 지난해 장사가 좀 된 모양인데 그걸 라이브버전으로 바꿔서 올리는 것이란다. 난 순전히 얼떨결에 하게됐는데 정말 뼈아프게 다시는 '얼떨결에' 뭘 하게되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하고있다. 왜 언제나 '네'하고 말해놓고 나중에 가서야 사태의 본질을 알게되는것일까. 그리고는 '내가 하겠다고 약속한 일이니 내가 책임을져야지' 라는 말도안되는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황망한 진상을 참고 견디는건 뭔가. 아무도 그것이 이사람의 정녕 순박하고 이타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생각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그럴만해서 그런다고 생각한다. 내 수준이 그것이라 그런다고 생각한다. 아무말도 안하니까 나한테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짜증나ㅠㅠ. 내가 정말로 성숙한 인간이라면 이런 경우에 화병비슷하게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가질게 아니라 정확하게 내게 가해지는 부당함에 대해 얘기하고 해결을 요구해야한다는 것은 알고있다. 그러나 인생이 아는만큼 다 실제가 되지는 않는다는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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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30 10:24 2010/11/30 10:24

청춘 간다

분류없음 2010/10/21 18:36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삭신이 내려앉듯 아프고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어이구어이구 곡소리가 난다.

멀어지는게 다만 마음의 청춘은 아니었다.

육신이 녹아녹아....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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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18:36 2010/10/21 18:36

대학로에서

분류없음 2010/10/19 21:07
연극하는 사람들은 스케줄을 잡을때 누가 어디 사는지 체력은 남아나는지 밤잠이 많은지 적은지 그런것들은 일체 고려하지 않는 모양이다. 피엠 열시부터 에이엠 두시까지 연습을 잡는걸 보면...ㅠㅠ 덕분에 대체 몇시에 집에서 나가야하나 전전긍긍하다 차막히는것까지 고려해서 길을 나서다보니 무려 한시간 반이나 일찍 왔다. 대학로에서 혼자 뭘 할 수 있으리......게다가 엄청 피곤해...지난 주말 유종화선생님 살고계시는 정읍에 가서 다섯시간 호미질했더니 후유증이 아주 심각하다. 입술이 부르텄다구.....하지만 덕분에 고구마를 얼마나 많이 캐왔는지 모른다. 식구들에게도 푸지게 나눠줄 수 있을만큼이나....농약을 치지 않은 흙속에선 움직일 수 있는 벌레란 벌레는 모조리 튀어나오는것 같았다. 어쩜 가짓수도 생긴것도 그렇게 여러가진지....아...좀 잘까? 그것도 좋은생각....한시간은 잘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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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9 21:07 2010/10/19 21:07

2010/10/13

분류없음 2010/10/13 14:28

초등학교때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기억나니? 개봉동 뒷산~

지금은 개웅산이라구하더라~그 산에 다녀오는 길인데 어릴때 생각나더라~'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개봉3동 중앙시장 앞이 우리집이었고 그 위가 산이었다.

산 바로 밑에는 지금도 있을까 모르겠지만 개봉아파트가 있었다.

방학때는 매일, 학교에 가는 날에도 자주 아침이면 그 산에 올랐다.

개봉동에 사는 모든 주민들이 그 산에 올랐다.

약수를 떠다 먹었고 배드민턴을 치러 다녔다.

뒷산 치고는 꽤 큰 산이었다.

우리에게는 몇군데 비밀의 장소도 있었다.

열살무렵부터 열세살이 될때까지 그 산에서 놀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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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3 14:28 2010/10/13 14:28

이런..

분류없음 2010/10/07 15:02
와우..오랜만에 와보니 진불이 싹 바뀌었네..적응이 안됨.... 스마트폰으로 블로그질하기... 좀 복잡하지만 가능하군..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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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7 15:02 2010/10/07 15:02

나에게는 두가지 운명이 있다.

집이 있으나 그 집에 깃들지 못하고 겉도는  집 밖의 운명과...

밖으로 나가고 싶으나 죽자고 한 곳에 스며있어야 하는 어떤 인사이드한 운명....

그러니 늘 어떤 느낌이 드냐면..

이십사시간 한 공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난적이 없으면서 아무데도 있지 않은듯한 느낌....

집 안에서 집을 잃어버리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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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2 23:47 2010/08/12 23:47

위인전

다시 쓰는 일기 2010/04/27 03:54

훌륭한 사람의 일생을 적은 글을 위인전이라고 하지....

그 위인전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참 많은 자극을 받았었다.

이런 인격을 가져야겠다...이런 철학을 배워야겠다.... 이런 감수성을 닮아야겠다....

무슨무슨 평전들이 아직도 귀하게 읽히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런데 꼭 글로  읽지 않아도 햇살처럼 계시처럼 다가오는 일상의 위인전이 있다.

내게는 2002년의 한 여배우의 모습이 그랬다.

지금은 아르코 예술극장으로 개명한 그 시절의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정극 '수릉'을 공연하고 있을 때였다.

정극에 라이브 반주가 어찌나 생뚱맞았는지 모르지만...음악감독님께서 열의 충만하셨기에

어쩔 수 없이 한달내내 대학로로 출퇴근을 했다.

대극장 공연이었고 배우도 많았고 스텝도 많아서 매일 먹는 일이 큰일이었는데

지금도 도무지 생각 안나는 이름의 그 극단은 한달동안 매일 식사로 컵라면을 제공했다.

생각난다. 연습실 한 구석에 늘 쌓여있던 라면 박스들...

어느날 부터인가 아무런 간도 없이 뚱뚱하게 김에 말린 밥과 갓 담근 김치가 컵라면과 함께

제공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게 왠 목메이는 시츄에이션인가 싶다가 죽도록 컵라면이 질리기 시작할 무렵부턴 없어선 안될 주요식량이 되었다.

그건 별로 비중이 많지도 않은 한 중견 여배우가 개인적으로 싸들고 오는 음식이었는데

그 많은 밥과 김치를 매일 싸들고 오신 그 여배우가 바로 박재동화백의 부인 되시는 김선화씨였다.

참으로 대학로의 삶이 비참하다고 느끼던 바로 그 순간에 맛보았던 뚱뚱한 김밥의 기억은

나에게는 어떤 계시같은 것이었다.

김선화선생님을 보면서...그 엄청난 양의 밥과 김치를 보면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보람없고 힘겨운 사람들에게 밥과 김치같은 사람이 되고싶다고...생각했다.

요즘 나는 겨우 열명도 안되는 식구들의 밥을, 김치를 챙기면서 이름도 잘 모르는 스텝들의 식사까지 아낌없이 걱정하셨던 그 여배우를 생각한다. 나를 절대 기억 못하시겠지만....나는 그분의 밥을 기억한다.

밥을 나누는 기쁨을 가르쳐주신 그분의 마음을 기억한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기억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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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7 03:54 2010/04/27 0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