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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열사 - 열사예배 120401

허세욱 열사

1953~2007) 당시 5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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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5월 9일 경기도 안성 출생
1994년   봉천6동 철거반대투쟁
1995년~ 관악주민연대 창립회원으로 가입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독운수분회 조합원(대의원)
1999년~ 참여연대 회원
2000년~ (사) 관악사회복지 회원
                 민주노동당 입당
2004년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
2006년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 대의원
2007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
2007년 4월 1일 한미 FTA협상을 반대하며 분신
2007년 4월 15일 오전 11시 23분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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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봉천동 달동네 막걸리 장사, 꽃배달, 택시기사로 쉰 네 해의 생을 끝맺기까지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공부하고, 고된 노동과 박봉의 일상을 실천의 장으로 삼았던 아름다운 노동자였다. 동지의 실천은 철거반대투쟁에서 노동운동, 시민운동, 진보정당운동, 평화통일운동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왔으며, 동지들 앞에선 겸손하고, 투쟁의 장에선 최전선을 지켰던 우리시대 민중의 표상이다. 효순이 미선이를 죽인 미군 처벌을 위한 촛불을 하루도 빠짐없이 들고, 12시간 고된 택시노동을 끝내고 귀가하는 길, 집집마다 유인물을 뿌렸던 동지의 실천은 우리의 활동을 돌아보게 한다.
동지는 유서에 '단 한 번도 자신을 버린 적 없다','모두가 비정규직이니까 모금하지 말라'.'나를 태운 재를 전국의 미군기지에 뿌려 내 혼으로라도 미군들을 괴롭히겠다'고 하여 자신과, 이 땅 민중과, 이 겨레를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을 토로했다.
2007년 4월 1일, 동지는 한미 FTA 폐지하라','굴욕 졸속 반민주적 협상을 중지하라','숭고한 민중을 우롱하지 마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한미FTA협상 중단"을 외치며 분신했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보름 동안의 투병 끝에 운명했고,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 동지 장례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장례를 마친 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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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15일 허세욱 열사 5주기 추모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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