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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넘치는 우리 마을 TAFARA

자연이 넘치는 우리 마을 TAFARA 

막연히 귀농을 꿈꿨던 적이 있다. 귀농만이 살 길이라며, 도시의 삶들을 타박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원하는 길인 것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한 길이었다는 걸, 밭을 가는 것보다 관계 속에서 훨씬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었다.

전 진정 대안적이지 못한 인간일까요? 전 세속에 찌든 사람일까요?

이렇게 나 자신에게 만족스럽지 못했던 때, 어느 분이 말씀해주셨다. '사람도 자연이다.'라고.

그래. 맞다. 사람도 자연.

TAFARA 마을에 정착하던 초기에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다른 활동가들이 그저 부러웠었다.

난 아무리 사진 잘 찍으려 해도 저 나라 사진 한 방엔 그저 올킬이구나. 라며 부러워했더랬다.

우리 마을은 왜 이렇게 큰 거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짐바브웨에서 가장 큰 타운쉽 중의 하나, 적당한 이름 없어 도시빈민지역이라 이름 붙이는 우리 마을.

아마 그 땐 사람이라는 자연을 보지 못했던 때였나 보다.

지금은 사람이 보인다.

이름을 부르고 인사하고 포옹할 때마다 가지각색의 얼굴이 보이고,

같은 흑인이지만 더 까맣거나, 덜 까만 사람들이 보인다.

산등성이처럼 굴곡진 얼굴의 개성이 보이고,

계곡처럼 패인 얼굴의 주름이 보이고,

호수처럼 깊은 눈동자가 보인다.

높다란 산등성이의 웅장함도 멋있지만,

우리가 한평생 만들어나가는 자연, 얼굴들, 관계들. 위대한 삶의 증명들.!!!

사람이 많은 우리 마을. 삶의 위대함으로 넘쳐 나는 우리 마을. 그래. 맞다. 사람도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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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가 원하는 것

지금 내가 사는 마을인 TAFARA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큰 바람이 되고 싶었다.

것이 내가 이 곳에 온 이유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내 스스로를 낮추고 낮추어,

이제는 잔잔한 물결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들이 너무 소중해서 내가 감히 개인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제가 당신의 삶에 조금 끼어들어도 되겠습니까?"

라고 주민의 가슴의 문을 열기 전 공손히 여쭤보기라도 해야할 것 같다.

아마 나의 브릿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떠나간 뒤에도 마을 사람들이 가끔씩 중국에서 왔던 Rudo를 떠올리면 그냥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지길.

사실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힘이 되는 건,

그런 따뜻한 온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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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씨앗.

브릿지 국내훈련 때, 아마 많이들 되뇌어 본 말일 것이다.

'주민의 삶에 스며들기.' 그 때는 암~ 그래야지~! 했던 것이,

지금 8개월 남짓 되는 짐바브웨 삶을 돌이켜보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름을 알고, 친구가 되고, 인사하고, 포옹하고, 함께 식사하고, 기쁜 일 함께 축하하기, 슬픈 일 함께 위로하기...

18명 모두 그리는 브릿지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의 부릿지는 주민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내 모습, 어떤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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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없는 삶

재작년 겨울이었다.

워크나인 친구들과 마포 한 지하방에서 서로의 꿈에 대해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난 '경계가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했었다.

꾸듯,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왔는데. 내가 그 의미를 제대로 알기나 하고 말한 건지 싶을 정도로, 그냥 내 입에서 툭 터져 나온 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말한 말의 의미를 몸으로 알아간다.

지금 나는 나로 인해, 타인으로 인해, 겹겹의 경계로 둘러싸인 삶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경계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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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에서 면생리대를 만들고 있어요!!!

내가 자주 가는 마을의 센터(성당)에는

 

재봉틀로 센터 옷도 만들고, 주문을 받아 옷을 만들어 팔아

 

센터 살림에 보태시는

 

tailoring 아줌마 그룹이 있다.

 

나도 옆에서 바느질이나 하면서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에

 

면생리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침 짐바브웨 천가게에서 융 천을 발견한 쾌거가 있었으니!!!

 

으하핳

 

 

내가 바느질하는 모습도 괜히 재밌는데

 

요상한 걸 만드니, 아줌마들의 관심이 높다.

 

시실리아 : "루도, 뭘 만드는 거야?"

 

루도 : "여자들한테 달마다 필요한 거. 피를 흡수하는 걸 만들고 있어."

(생리대가 영어로 뭔지 몰라서,,, 이렇게 설명...ㅎㅎㅎ)

 

루도 : "이걸 하면 일회용 생리대를 사지 않아도 돼. 한 번 쓰고 빤 다음에 다시 쓸 수 있으니깐 돈도 많이 절약할 수 있어. 난 5년 전에 만든 생리대를 아직도 쓰고 있거든."

 

시실리아 : "이걸 다른 여자애들에게 가르쳐주는 게 어때? 생리대를 사기 위해 여자애들은 한 달에 3달러 이상을 쓴다구!! 이건 정말 좋은 아이디어야. 이건 하나의 프로젝트가 될 수 있어. 만들어서 팔 수도 있다구!"

 

으하하...

 

그래서 요새 나의 관심사는 어떻게 센터 여성들과 면생리대를 만들 것인가! 이다.

 

Youth leader 말리안에게 물어보니, 여자애들이 많은 관심을 보일 거라고 하는데...

 

워낙 사적인 것이라 공공연히 말은 못하지만 돈이 없어서 생리대를 못 사는 친구들도 많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아주머니는

 

자기는 생리가 끝났지만, 이걸 하고 있으면 따뜻할 것 같아서 사고 싶다고 하셨고,

 

장거리 여행갈 때 속옷 대신에 교체해주는 용도로 쓰면 좋을 것 같다고도 하셨다.

 

 

그 동안 마을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떤 걸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이렇게 내가 조그맣게 알고 있던 것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그리하여, 1년 반 남은 나의 활동 컨셉을 정했으니! 그것은 바로 "대안!" "얼터너티브"다!

 

배운 게 그거라고,

 

대안생리대 만들고 써 보고, 브릿지 훈련 때도 활동가들과 공유했던 경험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생리대 만드는 모임이 잘 꾸려지면,

 

그 후에는 태양열 조리기(solar oven) 만드는 모임을 꾸려보고 싶다.

 

이 역시, 대안기술센터에서 자원활동했던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사는 타파라는 전기도 자주 나가니깐,, solar oven!! 이거이거!! 대박나면 어떡하지??? 으항항...

 

벌써부터 행복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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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찾기 사이드바에 보이게 하는 방법 아시는 분!!

오....

제 즐겨찾기 친구들이 많은데

사이드바에 보이지가 않네요?

어떻게 해야 보이게 할 수 있죵??

친절한 분들의 답변 기다립니당..^0^

아하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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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에서 농사를 시작한 붕자. 그 속에 감춰진 은밀한.. 검은 의도의 정체는??

아.. 농사라고 하기엔 굉장히 조그만 텃밭이예요.

 

옥수수 수확철이 끝나고 남은 땅을

 

집주인으로부터 조금 빌려서

 

옥수수 대를 열심히 건어내고

 

저처럼 아주 귀여운 >.< 텃밭을 일구었어요.

 

한국아주머니가 주신 부추를 옮겨 심었고,

 

당근과 배추 씨앗을 심었어요.

 

한국에서 살 때 주변에서 농사짓는 모습을 많이 보아 와서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하며 시작했는데

 

씨앗을 어떻게 심어야 할지조차 몰랐었지 뭐예요.

 

이래서, 실천이 중요한 거라는 거 또 한 번 배웠습니다.

 

한국에서는 둑을 높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그렇게 했다가 집주인 아들에게 비웃음을 샀답니다.-_-

 

이건 한국 스탈이라고!!! 짐바브웨 스탈도 있지만, 난 둘 다 해보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배우고 싶다구!!

 

그랬으나,,, 그래도 짐바브웨에 사니 짐바브웨 스탈을 열심히 배워야겠죠.^^

 

농사의 '농'자도 모른다는 식으로 날 비웃고, 가르치려드는 태도가 얄미워서

 

묵묵히 내 고집을 피우다가

 

결국엔

 

물이 부족한 이 곳에선 집주인 아들의 방식을 따를 수 뿐이 없었어요.

 

으헹헹.. 생각보다 배추 씨앗이 겁내 빨리 새싹을 드러냈어요!!! 아우 신기해!!!!!

 

당근은 달아서 개미가 많이 꼬인다고 하던데, 걱정처럼 개미 떼가 집을 지은 것 같아

 

조금 걱정이고요..

 

물을 자주 못 줘서 집을 비울 때면 얘네가 비실비실대는 건 아닐까 걱정이지만,,

 

그래도 어려운 환경인 만큼 강인하게 자라주지 않을까? 그래서 훨씬 더 맛있지 않을까?(이렇게 말하니,, 야채들에게 좀 미안해지지만..^^;;;) 하는 생각도 있고요..

 

호호호..

 

한국에서 가져 온 몸빼 바지를 입고 열심히 텃밭을 만드니깐

 

이웃들이 신기해하고 좋아해주네요..

 

네~ 저 이렇게 당신들과 똑같이 농사도 짓습니다. 저 이거 다 키우고 먹을 때까진 여기 주욱 살 겁니다!!!

 

이래도 날 주민으로 인정해주지 않을 건가요???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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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 사람

도의 사람

 

 

도 안에서 걸림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으며

또 그런 개인적인 이해에 얽매여 있는 사람을 경멸하지도 않는다.

그는 재물을 모으고자 애쓰지 않으며

그렇다고 청빈의 덕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는 남에게 의존함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또한 홀로 걸어감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대중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대중을 따르는 자를 비난하지 않는다.

어떤 지위와 보상도 그의 마음을 끌지 못하며

불명예와 부끄러움도 그의 길을 가로막지 못한다.

그는 매사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으며

긍정과 부정에 좌우되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을 도의 사람이라 부른다.

 

 

 

---------- 장자. 토머스 머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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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움을 안고 사는 울 엄마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지만

참 좋다.

 

우리 엄마는 때론 나쁘다.

욕도 잘 하고

화도 잘 내고

어렸을 때는 나를 많이도 때렸다.

 

나는 엄마를 참 안 닮았다.

엄마는 화를 잘 낸다.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우리 엄마는

잘 울고 잘 웃는다.

 

한마디로

엄마는 뜨거움을 가진 사람이다.

 

브릿지 프로그램 때 주민조직(Community Organizing) 수업을 들으면서

지도자에 대해 배울 때

난 우리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부당함에 대해 비판하고 화낼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이목에 신경씀 없이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안다.

그리고 추진력이 있고 사람들을 모으는 힘이 있다.

 

버스에서 침 뱉는 사람이 있으면 항의하고

형식적인 농협 조합장과의 모임에 가서는 지난 조합장들의 부당함에 대해 얘기하며 혁신적인 조합장이 되어줄 것을 얘기하고

마을에 수도 놓는 일을 정부에서 해 주지 않았을 때 직접 담당 회사와 만나 담판을 짓고

마을 사람들을 모아 수도를 놓았다.

 

적극적인 엄마 때문에 때론 아빠가 피곤해하시기도 하시지만^^;

 

우리 집은 장미 농사를 짓는다.

2개의 농장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 부모님이 직접 관리하시고

다른 하나는 필리핀 부부가 관리한다.

 

필리핀 부부에게는 다운증후군이 걸린 어린 아들과 학교갈 나이가 된 어린 딸이 있다.

다운증후군이 걸린 아들은 병원에 자주 가야하는데

차도 없고, 어느 병원에 가야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직접 병원에 데려다 주면서 치료를 했었다.

 

그 필리핀 아줌마, 아저씨는 우리 부모님께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릴 존중해 줘서 고맙다고.

그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우리 부모님이 그저 너무 고마웠다.

사람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대우를 한 것이지만

그런 당연함을 잃지 않은 부모님이 존경스러웠었다.

 

얼마 전 엄마랑 통화를 했다.

필리핀 부부의 딸 이름이 장미인데

장미 학교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장미는 학교 다닐 나이가 지났어도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었다.

배우고 싶어하는데도 집에만 있어야 하는 장미를 보면서

그저,, 가난한 나라에 태어난 죄인가.. 라며 속상해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교육을 못 받아 가난을 대물림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었다.

 

그 때 우리 엄마는

빨간펜 선생님을 소개시켜주시기도 하셨었는데

 

얼마 전 통화에서는

이제 장미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학교를 알아봐주셨고

마침 학부모 모임이 있는 날이라

엄마가 대신 가서 엄마 스타일대로 하고 싶은 말 죄 하고 오셨다 한다.

 

아....

우리 엄마가 너무 예뻤다.

 

마음 속 뜨거움을 가진 우리 엄마

 

장미는 이제 학교에 다닌다.

공부를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적극적인 성격의 장미는

뭐든 잘 해낼 것이다.

장미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 지

정말 기대된다.

 

단순히 돕는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면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까지 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언제나 성실하고 주인된 마음으로

농장을 봐주시는 필리핀 아줌마, 아저씨가 고마워서,

똘똘한 장미가 예뻐서,

엄마, 아빠가 마음 하나를 줄 때마다

그 이상으로 고마워하며 마음으로 보답해주는 그 가족들 때문에

엄마, 아빠도 행복해서

하시는 일이실 것이다.

 

따뜻함을 서로 나누는 두 가족.

 

짐바브웨에 와서

흑인을 비하하는 한국인들을 더러 본다.

그런 모습은 그들의 자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흑인들의 나라인 짐바브웨에 살면서

철저히 스스로 격리되어 살기도 한다.

 

우린 다 같은 인간이라는 당연한 명제.

이 당연함을 다시 찾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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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치유

예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벌써 7년이 넘었다.

 

3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었기 때문에

헤어진 후에도 계속 친구로 만나고 싶었다.

 

내 찬란한 청춘 중 3년이라니!

얼마나 귀한지.

 

근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헤어진 남자친구와 친구가 된다는 것.

 

어물쩡 어물쩡

같은 모임을 하는 게 있어서

두어 번 만나긴 했는데

그 이상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짐바브웨에 오고 나서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나의 결정에, 그 결정까지 오게 한 나의 고민에

많은 응원을 해 주었다.

그리고

비슷한 고민과 살고 싶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히 나눠 주었다.

 

그리고

그의 엄마와 누나들에게

내가 아주 좋은 아이로 남아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고마웠다.

나를 좋은 아이로 기억해주는 그 분들.

 

이때였던 것 같다.

그와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것.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치유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

 

많이들

애인과 헤어지면 다른 애인을 만나야 한다고 얘기한다.

관계의 상실을 채우기 위해

 

그런데 그게 관계의 상실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건 아니었나 보다.

적어도 나에겐 그런 것 같다.

 

헤어짐이라는 이유로

그와 관계를 끊고

그리고 나에게 잘해 주셨던 그의 가족들과도 관계를 끊고

그러면서

내 마음 한 켠은 내내 아렸던 것 같다.

 

요새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짐바브웨에 와서

전혀 모르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더라도 관계를 맺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곳에서의 관계 맺음은

내가 친숙했던 공간에서의 관계맺음과 달리

나를 한 발짝 물러서게 한다.

 

그래서 서툴고, 더디다.

 

참 좋은 관계도 있고

어려운 관계도 있다.

 

어려운 사람은 그냥 보지 않는 것도 좋다... 라고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라는 인간이 그렇게 안 되는 것 같다.

 

어려워, 어려워,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아도

사실은 다시 잘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숨어 있다.

 

브릿지 프로그램으로 이 곳에 있는 나.

무엇을 성공이라 하고, 무엇을 실패라 할까.

나에게

실패는 결단코 관계 맺음의 실패다.

 

아마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예전 남자친구와는 7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나는

관계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에

나를 믿고

상대를 믿고

주욱~~~ 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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