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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의 '투수혹사 금지 권고'를 지지하며

  • 등록일
    2008/04/02 14:02
  • 수정일
    2017/10/11 10:54

 

인권위 "투수혹사는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침해" 권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3월26일 대한야구협회장에게 “고교 야구대회에서 투수들이 과다한 투구 및 연투로 인해 신체가 혹사당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라”는 내용의 권고를 내렸다고 한다.

인권위는 이번 권고의 근거로 “고등학교 야구투수들이 무리한 투구로 인하여 선수생명을 위협․단축 당하게 된다면, 이러한 결과는 헌법 제12조의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의 침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란 점을 들었다. 인권위는 아울러 함께 제기된 “고교 투수들의 혹사 이유가 비정규직 감독신분 문제로부터 비롯된다”는 진정내용에 대해서는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 또는 비정규직 보호 법안에 의해 다루어져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투수 잡아먹는 감독 '빵집 아저씨' 더스티 베이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혹사 피해자’의 대명사처럼 불리고 있는 두 투수는 Mark Prior와 Kerry Wood다.

Prior는 2002년 혜성처럼 등장해 19번의 선발등판에서 6승6패를 거두며 그 해 신인왕 투표 7위에 오르고 기대를 한 몸에 받기 시작했다. 이어 2003년 30경기에 선발등판하며 211.3이닝 투구의 강행군을 펼친 Prior는 18승을 쓸어 담으며 사이영상 투표 3위에 등극, 전성기를 알리는 듯 했으나, 급격히 늘어난 투구수로 인한 부상에 허덕이기 시작하며 2004년엔 118이닝 6승4패에 그치게 된다. 2005년에는 11승7패(166.7이닝)을 기록하며 부활 조짐을 보였으나, 역시나 무리를 이기지 못하고 2006년 43.7이닝 투구 1승6패를 기록하며 추락했고 결국엔 2007년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Wood의 개인사도 비슷하다. 98년 신인왕 데뷔(13승6패, 166.2이닝), 2002년(12승11패) 213.2이닝, 2003년(14승11패) 211이닝 기록. 2004년부터 내리막 시작. 2005년(66이닝), 2006년(19.2이닝), 2007년(24.1이닝) 투구이닝 급감.

두 선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두 선수 모두 전성기를 시카고 컵스에서 보냈으며, 당시 감독은 ‘투수 잡아먹는 감독’ 더스티 베이커였다.

또 두 선수 모두 2003년 9~10월 등판한 9경기에서 모두 100개가 넘는 공을 뿌리며 혹사당했다. 이 기간 Prior는 최대 133구까지 그리고 Wood는 125구까지 던졌고, 각각 최소 110구와 109구를 기록했다.

 

[사진] '걸리면, 죽는다' 상대팀보다 자기팀 투수가 더 무서워하는 감독, 더스티 베이커

 

불펜투수 역시 ‘혹사의 피해자’가 되긴 마찬가지다. 가장 최근의 예는 뉴욕 양키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Scott Proctor는 2006년 뉴욕 양키스 시절 불펜투수로는 드물게 100이닝 이상(102.이닝)을 투구한 뒤 2007년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참고로 지난 시즌 불펜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선수는 샌디에고 파드레스의 Heath Bell로, 그가 던진 이닝수는 93.2였다. 불펜투수가 100이닝을 넘게 투구한 경우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고작 3명에 불과하다(최고는 2004년 LA 에인절스의 Scott Shields가 기록한 105.1이닝).

 

과도한 투구수, 성적감소-부상위험 초래

 

물론, ‘많은 투구수’가 부상과 부진의 모든 이유라고 할 순 없다. 예컨대 Prior는 부상위험이 높은 구질로 알려진 커브의 구사율이 20% 가깝게 나타나고 있다. Wood도 손목 부담이 많은 슬라이더를 20~25%의 비율로 사용한다. 투구시 손목에 부담이 적어 통상적으로 많은 투구수를 보장하는 체인지업에 비해 직구-커브와 직구-슬라이더 조합은 분명 부상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하지만 백보 양보한다 해도, 지나치게 많은 투구수가 화를 불러오는데 일조한 것만은 사실이다. 오죽하면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성공이 한국에서의 선수 시절 ‘넘버 쓰리’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겠는가(박찬호와 92학번 동기로 당시 ‘1인자와 2인자’로 혹사당했던 조성민과 임선동의 오늘날 모습을 보라).

 

 

[사진] 혹사에 따른 부상 등 우여곡절 끝에 2008년 시즌 클로져로 보직을 변경한 Kerry Wood의 투구모습

 

 


미국의 야구 통계전문가 키스 울너가 고안한 ‘투수혹사도’ 공식을 들여다보면 부상과 투구이닝의 상관관계가 더 잘 보인다. 울너에 따르면, Wood의 경우 120구 이상을 던진 뒤 다음 경기의 기록은, 120구 미만을 던졌을 때에 비해 15% 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수 구하기(Saving the Pitchers)'의 저자 짐 캐럴은 투구수와 투구 속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려는 시도를 했는데, 그에 따르면 Prior의 경우 최고 구속은 7회에 가장 높지만, 평균 속도는 5회부터 급감한다고 한다. 캐럴은 또 투수의 피로도는 투구 속도가 5% 감소하기 시작할 때부터 높아지며, 부상 위험도 이와 함께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즉, 과도한 투구수는 성적감소와 부상위험 두 가지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

 

진화하는 야구, 투수의 분업화

 

한국 야구에서야 ‘투수혹사’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고교와 프로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이지만(2006년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 시즌 2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모두 74명이다. 다행히도 1982~1993년 사이에 47명이 나온 반면, 1994~2006년엔 27명에 그쳤다), 메이저리그 역시 지금과 같은 투수분업 체계가 확립되기 전에는 ‘묻지마 등판’이 횡행했다. 역대 투구이닝 500걸을 보면, 1위 Will White는 1879년 시즌에 무려 680이닝을 던졌다. 500걸 안에 드는 ‘최후의 선수’는 1977년 330이닝을 던진 Phil Niekro다. Niekro의 경우 많은 투구수가 가능한 너클볼러이기 때문에 예외로 친다면, 1974년 시즌의 Noral Ryan이 332이닝으로 최고라 할 수 있다.

이같은 경이로운 투구수가 가능할 수 있었던 건, 1900년대 초반까지 ‘선발과 구원의 역할분담’이 명확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나올 수 있을 때 나오고, 던질 수 있는 만큼 던지는 게 좋은 투수의 미덕’이었던 시절이다. 실제 위 ‘투구이닝 500걸’에 1900년대 선수는 217위에 이르러서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선발-구원 체제’와 함께 투수보호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5선발 로테이션 체계’가 등장한 건 1969년에 이르러서다. 뉴욕 매츠의 길 호지스 감독과 루브 워커 투수코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고 독창적이었던 ‘5인 선발 로테이션 체제’를 발동했고, 매츠는 결국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에 이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어메이징 매츠’를 실현한다.

이에 다른 팀에서도 기존의 ‘4인 로테이션’ 체제 대신 앞다투어 5인 선발 로테이션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이는 오늘날 야구의 ‘불문율’처럼 지켜지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도 있었다. 1971년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과거의 4인 로테이션 체계를 고집했다. 결국 볼티모어 4인 선발 중 한 명이었던 데이브 맥낼 리가 혹사와 무리한 등판요구에 반기를 들었고, 이는 선수 권리보호를 위한 법정투쟁으로까지 발전했다.

 

오늘날 '좋은 투수‘의 덕목은 통상 ‘경기당 100개 투구수, 시즌당 200이닝 소화’로 표현된다.

하지만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200이닝 이상을 소화한 선발투수는 고작 38명(1위는 241이닝을 던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C.C. Sabathia)에 불과하다. 리그 소속 30개 팀이 5선발 로테이션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선발투수 숫자가 150명인데 비하면, 그야말로 적은 수치다.

더불어 이 숫자는 앞으로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다. 투수의 분업화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야구에서 한명의 투수가 100개를 훨씬 넘는 투구수를 기록하며 9회 경기를 셧아웃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비디오를 이용한 투구분석을 통해 특정 투수의 구질별 투구폼 변화까지 잡아내는 오늘날의 야구경기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변화된 야구 환경, 불펜의 분업화는 빨랐다. ‘선발투수만큼의 능력이 부족한 투수’로 여겨지던 ‘구원투수진’의 분업화는 이제 △원포인트 릴리프 △좌-우완 스페셜리스트 △스윙맨 △롱릴리프 △클로져 등으로 갈수록 세부화되고 있다. 야구는 진화한다.
 

 

 

  [사진] 한국시리즈 '원맨쇼'를 선보였던 최동원의 선수시절 모습
 

“동원아, 우짜노, 이까지 왔는데...”

 

 

이 말은 롯데 자이언트 강병철 전 감독이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을 다섯 번째 경기에 등판시키며 한 말이다. 당시 최동원은 1-3-5-7차전에 잇따라 선발등판했고, 6차전에서는 4회 구원투수로 투입되기도 했다. 결국 최동원은 이 해 한국시리즈에서 40이닝 4승1패를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거, 코미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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