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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섬

 

 

내가 일하는 사무실 벽에는 세계지도 하나가 붙어 있다.

 

그냥 멍하니 그 지도를 보면서 태평양은 참으로 넓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태평양 한 귀퉁이에 조그만 점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스터섬을 보았다.

 

이스터섬,한번도 그 섬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적이 없던 나는

 

처음으로 이스터섬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은 대체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고 그네들의 문명을 이루다 사라졌을까

 

그저 막연히, 또 발견이라는 용어를 쓰는 어느 유럽의 탐험가들의 표현이나 만나겠지 하고 검색을 시작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학자들이 이스터섬에 대한 연구와 고찰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들은 흔히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표현하곤 한다. 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거를 선택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믿고 싶은 과거 즉 기억하고 싶은 과거만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모든 합리화의 근거로 활용하게 된다. 이러고 싶지 않지만  나또한 이렇다.    

 

하지만  과거는 모든 것의 과거이다

 

 

 

그래서 역사는 무엇의 역사라고 하지 않고 무엇을 위한 역사인가 하고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역사가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이유, 단절을 피할 수 있다.

 

컴퓨터 리셋하듯이 새로 부팅할 수 있는 세상이면 역사는 필요없다.

 

우리에게 역사가 필요한 것은  누군가와 계속 관계를 맺어가고 있고

 

누군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길 바라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어느 시험지에 빈칸을 채우려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스터 섬의 문명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무분별한 채벌과 식량채집으로 그 비옥하던 토양을 황폐화 시키고 식량 부족 사태를 맞딱드려 서서히 도태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95년  디스커버리 지에 이스터 섬에 관한 글을 썻던 제리드 다이어먼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왜 그들은 그들 행위의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보고, 너무 늦기 전에 그만두지 않았을까? 대체 마지막 나무를 베어 넘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나는 재난이 갑자기 닥친 것이 아니라 아주 서서히 다가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버려진 채 방치되어 있는 수백개의 석상들을 생각해보아도 그렇다. 섬의 숲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매우 천천히, 수십년에 걸쳐서 사라졌다. 어쩌면 전쟁이 석상을 옮기는 작업을 방해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석상을 완성하고 나니까 섬의 줄이 동이 났을 수도 있다. 벌목의 위험을 경고하려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조각가나 관리 또는 족장들과 같이 계속 숲을 벌목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자들에 의해 억압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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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공통교육

내용인즉슨

 

"특위의 시안을 살펴보면, 국민공통 기본 교육과정이 현행 10년에서 9년으로 줄어드는 대신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 2년에서 3년으로 1년 늘어난다.

 

학년으로 치면 초등 1학년에서 중 3학년까지가 국민공통 교육과정이 되고, 고교 1~3학년은 선택 교육과정으로 바뀌는 것이다. 국민공통 기본 교육과정이란 국민 누구나 공통으로 배워야 할 교육과정을 말한다.

 

특위는 또 현재 10개로 돼 있는 국민공통 교육과정상의 교과군을 7개로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국어·도덕·사회·수학·과학·실기·체육·음악·미술·외국어(영어) 등 10개 교과군을 국어·수학·사회(도덕)·과학기술·외국어·체육·예술(음악·미술) 등 7개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특위 관계자는 “학생이 한 학기에 이수하는 교과목 수를 줄여 학습 부담을 줄이고, 수업의 집중도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 아무나랑 인터뷰 단 한번만이라도 해도 저딴 헛소리는 나오지 않을텐데

 

하긴 이런걸 기대하는 내가 바보지

 

 

 

졸업작품을 촬영할때 10년만에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찾아갔었다.

 

뭔가 엄청나게 바뀌었다고는 생각안했지만 적어도 새페인트칠한 건물 외관이 번듯하길래 조금은 나아졌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바뀌긴 커녕 수업시간에 앉아있는 후배들의 눈은 썩은 동태의 그 것이었다.

 

비록 이들을 담으려고 오진 않았지만 카메라를 이고 수업중인 교실을 천천히 지나가면서 나는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구현된 예술 공간을 지켜봐야 했다.  

 

고개를 푹숙인 학생들, 혼자 떠들고 있는 선생님들, 새로들여논 커다란 TV와 스크린 그리고 에어컨은

 

대체 저곳에 뭘 넣으라는 것인지 상상력을 발휘해야하는 조그만 사물함과

그 흔한 학급 신문 조차 걸려 있지않은 녹색바탕의 게시판 그리고  발한번 잘못 올렸다가는

누가 그랬냐고 당장 불려나갈 법한 너무나 하얀 벽 그리고 시간표 위에 항상 그랬다는 듯이 걸려 있는

교훈과 버무러져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행위예술이 이 모든 것을 완성하고 있었다.

 

TO 부정사의 용법이 칠판위에 써 있는 것을 본 순간

 

마침내 완성된 작품을 마주했다.

 

 

'지랄!'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른 감상평이었다.

 

모더니즘 감수성에 사로잡힌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고차원적인 작품이라 그럴거라 생각했다.

 

 

혼자서 학교의 모습을 촬영한답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닌거 부터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부감을 잡아보겠다는 욕심에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이 학교의 리얼리즘 예술을 보게됐다.

 

낙서

 

옥상 출입구 근처에는 새로칠한 페인트위에 다시 새로쓴 낙서들이 가득했다.

 

예술이란 이런거다. 끊임없는 저항과 반복...

 

어쨌든 낙서들의 내용은 지난 10년동안 대체 무엇이 변하였는지를 묻게 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삶에 대한 인정과 미래에 대한 긍정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공포와 경멸 그리고 자학과 분노로 가득찬 학생들의 배설물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 공부잘하는 몇명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학교 엿이나 먹어라"

" **(학교이름)은 죽었다. 선생들도 죽었다. 그리고 나도 죽었다."

 

그리고 특정 선생과 학생을 거론하는 욕설들

 

그중에는 시도 있고 짧은 구호도 있었다.

 

우열반이 있었고 서울에 올라가서 엘리트 코스를 밟을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들의 대우또한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때 처음 우열반이 생겼다가 그 놀라운 폐단앞에 결국 철회했었는데

 

결국 다시 생겼다니...

 

 

뭐가 문젤까 (이제와서 한번 해보고 싶었는지) 나는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꼬나물고는 생각에 잠겼다. ㅎㅎ

 

 

하고싶은 공부를 하게끔 해주면 될까? 학생들이 무얼 하고 싶어하는지 알고 있을까?

다 커버린 고등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웃긴일은 아닐까?

입시제도가 문제긴 문제야...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서열화된 대학제도를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

학군별로 대학평준화를 해야되나? 서울대를 없애면 되나?

역시 철학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넣어야 하나?

선생을 늘려야 하나? 사립고등학교를 폐지해야 하나?

그럼 뭐하나 또 직장서열에 따라 등급이 매겨질텐데...

아 모르겠다.

 

 

 

나 같이 교육에 교 자도 모르는 놈도 이러고 있었는데

 

뭐 국민공통교육? 이 무슨 공통 수학의 정석도 아니고

 

야 이 멍청이들아 제발 학교에 한번 가서 조사좀 하고 정책을 세우든가 말든가 해라

 

교과목이 많아서 학습부담이 많다고?

 

어느 고등학교에서 미술 음악 체육수업이 제대로 진행된 적이나 있나

 

모든 교과목이 2학년이면 끝난다.

 

왜?, 3학년때는 입시 준비해야 되기때문에

 

 

어디서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문제지를 선생이 교재로 선택하면 사야 되고

 

기술이나 교련 시간에는 자율학습하고

 

입시가 다가오면 다들 자기 못하는 과목 공부하느라 다른 과목선생 눈치봐가며 무슨 공식외우고 있다.

 

여기저기 단어장과 무슨 사전, 몇일만에 끝내는 땡땡땡들이 바퀴벌레마냥 바닥에 나뒹기고

 

아예 포기한 누군가의 사물함에는 무협지와 만화책들이 즐비한게

 

이 나라 교육의 현실인데

 

뭐? 도덕을 사회로 통합하고 미술과 음악을 예술로 합쳐서 수업의 집중도를 높이겠다고?

 

 

언제부터 우리나라 미술계와 음악계가 그렇게 친해가지고 서로 교과목까지 통합해야 할정도로 친분을 과시했으며

 

얼마나 이나라의 도덕이 땅에 떨어졌으면 자기 이름 두글자도 존속못할 정도가 되버렸는가(헙 이건 아닌가?^^;)

 

 

여튼 가뜩이나 나라가 뒤숭숭해서 머리가 복잡한데

 

별 개뼈다구 같은 정책을 마주하려니 아주 내가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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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 않는 옷

옷장을 열었다.

 

검은 내가 서있다.

 

옷이 맞지 않는다.

 

 

이상하다.

 

난 더이상 자라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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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지 못한 사람

뻔뻔함이란 적어도 이런게 아닐까?

 

대통령직을 그만두는게 너무 싫어 헌법을 유린하거나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시민을 살해하는 것조차도 당연한 일이고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서라면 정치적 소신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며

 

시민들에 의해 물러나는 것조차도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수사를 다는 따위들

 

 

전직 대통령이 죽었다는 사실이 황당함으로 다가오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

 

 

내가 알고 지내는  소위 진보적인 지식인이라 일컬어 지는 어떤 교수는 노무현을 싫어하고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물론 죽기전에 일이지만) 

 

마치 그런 개량적인 정치인에 낚였던 자기자신에 대한 분노 쯤이라고 생각할때쯤

 

오바마 당선에 미소를 지으며 '이제 됐다' 그러더라

 

대체 뭐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한번 낚였던 사람은 계속 낚이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더라

 

 

 

대통령하나가 바꼈다고 바뀔 세상이었으면 옛저녁에 바뀌었겠지, 그리고 그것은 정당정치에도 해당된다.

 

 

권력이라는 것이 워낙 허무한 것이라 언젠가는 뒤바뀌고 교체되는 것인데 

 

마치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발악하고 있는 이명박을 바라보고

 

내 사타구니까지 와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그의 정책들이 새로운 상식틀을 만들고 있는 요즘

 

 

이제 이상한 시민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떨치기 어려울때 쯤

  

결국 자살한 대통령을 마주하게 됐다.

 

 

 

죽음을 택하기전 노무현에 대한 내 느낌은 뻔뻔함이었는데

 

적어도 뻔뻔하지는 못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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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사람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누군가에게

 

 

삶이 연장될수록 늘어난다.

 

 

실망을 안겨주는 사람

 

믿었던 누군가가, 믿음받던 내가

 

 

말이 많아지면 늘어난다.

 

 

언제나 맘에 드는 사람

 

바라는 누군가를, 내가 원하는

 

 

지나칠때만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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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나

 

김광석을 처음본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제주대학교에서는 해마다 가요제를 열었는데

 

그 가요제(아라가요제) 초대가수가 바로 김광석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김광석을 무척 좋아했다.

 

나는 녀석이 빌려준 시디와 테이프로 몇 번 들었지만 그렇게 좋아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쨌든 대학교 축제도 구경할 겸 놈을 따라서 가요제를 보러 갔다.

 

 

 

당시(1994년)만 해도 운동권 문화가 전반적이었던 터라 여기저기 걸린 구호들이며 낙서들이

 

신기하게 다가왔고 친누나 형없이 자란 나에게 대학생들의 모습과 행동들은 유별난 열정으로 보였다.

 

가요제가 끝나고 초대가수인 김광석이 무대에 앉아 기타를 잡자 공연장은 정말 엄청난 환호로 가득했고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의 노래를 지켜봤다.

 

그냥... 그랬다. 대단한 호응에 대한 반감이 들었는지 그렇게 좋은 노래와 가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누나 형들이 이런걸 좋아하고 대학생들은 이런 분위기를 즐겨야 하는 것으로 나름 합리화 했다.

 

그래야 이 세계에서 이방인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그냥 친구가 좋아하니까 그랬는지 모른다.

 

 

 

그리고 김광석 3집을 다시 듣게 되었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다.

 

아니 좋아하는 마음은 항상 우연을 기다린다.

 

 

 

유명한 노래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애당초 그랬는지 모른다. 김광석도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도

 

그래서 나 또한 그랬는지 모른다.

 

그때 이후로 난 항상 김광석 노래 테이프를 미니카셋트에 꼽고 다녔다. 처음으로 빨리 감기 없이 누군가의 앨범을 들었다.

 

 

 

그리고 여름에 4집 앨범이 나왔다.

 

 

 

방과 후 버스를 탔다. 집에서 두정거장 정도 되는 곳에서 내렸다. 아직 노래가 끝나지 않았다.

 

귀에서 이어폰을 때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 한 번도 다시 그래 본적은 없다.

 

 

 

 

대학로 1000회 기념 콘서트가 진행됐다. 전국 순회공연이었다.

 

제주도에 내려온 김광석을 보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있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서울에 대학로에 학전 블루라는 조그만 소극장이 있습니다. 여기 보다 많이 작죠. 사람들도 많이 오지 않아요. 그래서 항상 공연이 끝나면 뒤풀이를 합니다. 관객들과 함께 말이죠. 그냥 재밌어요. 여러분들도 서울에 오시면 꼭 한번 오세요."

 

대학로? 학전 블루? 소극장? 뒤풀이? 생경한 단어들이 스쳐지나 갔지만 하나도 잊지 않고 꼭 기억했다.

 

'3년 뒤에 대학이라는 곳에 가게 되면 꼭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리라, 그리고 대학로라는 곳에 가서 학전 블루라는 소극장을 찾고 공연을 보고 뒤풀이도 할 것이다. 뒤풀이가 뭘진 모르지만.......'

 

 

 

어머니가 책장을 옮기 자고 하셨을 때 난 귀찮은 맘에 투덜댔다. 한번 옮길 생각을 하시면 기어코 옮기시기에 더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를 도와 그 큰 책장을 들으려고 할 때 옮겨 놀 그 자리에 김광석 공연 포스터가 붙여져 있는 것을 봤다.

 

지금도 그렇지만 붙여논것을 때려고만 하면 꼭 찢어 논다.

 

그때도 그랬다.

 

생각보다 많이 찢어진 터라 다시 새로 구할 생각에 그냥 버렸다.

 

나한테 화가 나선지 마구 구겼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일 나가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죽음이 당신에게도 이슈였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른다.

 

 

 

 

서울에 대학도 오고 학전블루에도 가보고 대학로도 누비고 다녔다.

 

모든 게 다 내 뜻대로 됐다.

 

내 의지가 관여할 수 없는 것만 빼고

 

 

 

 

88학번 선배와 술자리를 갖고서 여지없이 또 노래방으로 다들 향했다.

 

당시가 1999년이니까 그 분은 32살쯤 됐을 것이다.

 

32살....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그때는 왜 그렇게 30대가 거대해 보였는지

 

그분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술자리에서 대학 때 무용담을 끊임없이 늘어놓더니

 

나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연신 시절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허무한 톤과 염세적인 수사로

 

치장하며 늘어놓고 있었다.

 

 

 

 

김광석 노래만 부르기에 나도 왠지 용기가 나서(노래방에서 잘 부르지 않았다.)

 

답가랍시고(사실 이렇게 마음가짐을 가진 것부터가 문제였다.)

 

한 곡 불렀다.

 

나를 째려보더라.

 

 

 

96학번 선배누나가 나를 끌고 나왔다.

 

내 마음을 이해한댔다. 그리고 그 선배를 이해해달란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이해하는 척을 했다. 아니 그렇게 됐다.

 

그때 이후로 습관처럼 그렇게 돼버렸다.

 

 

 

 

몹쓸 생각이 머리에 붙었다.

 

김광석 노래를 잘 안 부르겠다고 그러니 니네들도 어설프게 부르지 말라고

 

짜증나니까

 

 

 

군대를 가고 대학에 복학하고 선배들은 사라졌다. 난 어느새 고학번 선배가 됐다.

 

김광석 노래를 부를 일도 부르는 사람들도 없어져 갔다.

 

후배들과 되도 안 되는 이야기들로 감정적인 싸움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난 그래도 내가 부끄럽진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상을 하게 됐다.  

 

처음 만져보는 카메라와 편집프로그램이 낯설고 미디어 운동과 교육이란 영역에 대한 이해도도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도 알게 됐다.

 

김광석 얘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나의 몹쓸 생각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내 핀잔을 받거나 진지한 문제의식을 마주해야 했다.

 

나는 아마 나를 이해해 줄 거라는 환상에 사로잡혔는지 모른다.

 

아니 김광석에 대한 나의 오만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유아적인 감정이 나의 행동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집착은 사람을 독선으로 이끈다. 독선은 아집으로 통하고 아집은 이성을 갉아 먹는다.

 

갉아 먹힌 이성은 착각을 불러오고 착각은 환상을 일으킨다.

 

그러다 결국 현실에서 멀어진다.

 

 

 

 

 

지금은 많은 것들이 변했다. 김광석 노래를 부르는 것도 가벼운 일이 되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부르는 것을 보는 것도 이젠 익숙해졌다.

 

요즘도 혼자 있을 때면 그런 생각을 한다. 김광석이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정말 뒤풀이 하러 갔을까? 친해질 수 있었을까? 인정받기위해서 바동거리지 않았을까?

 

뭐가 됐던 가장 끝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렇게 바보 같은 반성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허황된 감정에 휩쓸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하하, 그랬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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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구라에게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고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 그의 시를 볼때마다 느낀다.

나는 너무 가볍게 살지 않나?

나는 너무 함부로 글을 쓰지 않나?

나는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나?

 

 

구라쟁이들이 넘치는 문학계야

반성하는 척 하지마라.

적어도 반성이란 이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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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쟁이

롤플레잉게임의 고전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

 

스퀘어(제작사)의 효자 상품으로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유명해진 이 게임은

 

현재 13탄 이 플스 3로 나올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타이틀이다.

 

 

하지만 모든 시리즈가 다 극찬을 받은 것은 아니다. 골수의 팬층이 많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유저들의 눈높이도 많이 올라갔다는 것을 의미하는바 아직도 최고의 시리즈가 몇탄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당시 슈퍼패미콤의 성능을 넘어섰다는 평을 받는 6탄을 제일 좋아한다. 뭐 끝까지 깬것도 이게 유일하다. ㅋ

 

나랑 대부분 취향이 비슷해선지 어쩐지 골수팬들은 한글화 작업마저 이뤄내며 게임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덕분에 옛 추억을 떠올리며 한글판 파이날 판타지 6를 '공짜'로 플레이하는 광영을 누리기도 했다.

 

게임에는 여러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캐릭터는 고고란 이름의 캐릭터였다. (이미 5탄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아마도 그 능력때문인 듯 싶은데 그 능력이란 다름아닌 다른 사람을 흉내내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저들은 고고란 이름대신 흉내쟁이로 불렀다.

 

 

흉내쟁이... 말그대로 모든 걸 흉내낸다. 마법, 필살기, 스킬 등등

 

해본사람은 알겠지만 하나의 마법을 터득하고 필살기를 외우는 과정은 한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각각의 캐릭터의 사연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지난한 레벨 노가다, 그리고 (나중에는 익숙해지긴 하지만) 정교한 조이패드 조작을 요구한다.

 

그런데 갑자기 게임 중후반에 등장해서는 한번 본 동료의 기술을 똑같이 흉내내는 캐릭터의 임팩트는

희열과  허무의 혼합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해줬다.

 

뭐랄까? 뭐 이런 놈이 다있나? 하지만 내가 조종하니 다행이야 뭐 이런 느낌? ㅋㅋ

 

 

여튼 흉내쟁이의 흉내능력을 계속 시전하면서 한결 편하게 게임을 플레이 했다.

 

그리고 뭐든 흉내내는 그녀석의 능력이 부러웠다.

 

아무런 노력없이 그 어떤 대가없이 무언가를 얻는다는 환상은 어린 나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기싫은 책을 안봐도 되고 하기싫은 일을 안해도 되고....ㅎㅎㅎ

 

 

 

...그렇지만 기쁘지는 않겠지.... 그냥 흉내내는 것일뿐이다.

 

 

지금은 이렇게 심각해져서 이야기한다.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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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의 마왕

 

 

나는 사실 이런 이야기들이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다.

 

 

흔하게 우리들은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을 놓치고 지나치며 미워하고 좋아한다.

필연이라는 것이 있다면 정당한 합리화란 것도 있겠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개의치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무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증오로 점철되어져야 한다면 차라리 분노를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낫다.

 

 

허물을 갓 벗은 뱀이 햇볕을 피하듯 차갑고 여린 것은 어두워 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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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착각

 

어떤 규정이 필요하거나 구분을 지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 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애당초 타자 화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따위는 발 디딜 틈을 찾을 수 가 없다.

 

아마도 이렇게 얘기하겠지 '효용성과 합리적인 방식'에 따라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라고

 

효율적, 실용적, 합리적... 과 같은 단어들이 언제가 부터 전 인류의 마음을 구워삶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의 이상은 달걀 껍데기 깨지듯이 쪼개져 버렸다.

 

 

 

이제는 보편적인 삶에 대한 추구가 원시 박물관의 매머드처럼 옛 위용을 과시할 뿐이고

 

지켜보는 이가 사라지는 시간에 스스로 부여된 권위를 차고 유령처럼 부활해 떠돌아다닐 뿐이다.

 

씁쓸한 건 외마디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는 것

 

그 것이 필요한 이유는 이상으로서 존재했기 때문이 아니라 칼처럼 날카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이러한 규정과 구분이 가져올 암울한 미래다.

그것은 모든 연속성에 대한 훼손이며, 철저한 무시의 담론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미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감정적 상태이며 그 것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이다.

 

그 상태란 열정이다.

 

사람들은 이성적 사고에 머물고 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으로서의 열정을 찬양한다.

 

허영에 가득찬 삶을 경멸하면서 열정에 가득찬 삶은 동경한다.

 

분명 허영과 열정은 다른 의미로 쓰이지만 같은 동기에서 출발한다.

 

더군다나 그 판단은 관계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어떠한 기준도 잡을 수가 없다.

 

 

 

 

열정의 메커니즘은 그 것이 보여주는 본원적인 '순수함'과 감정적 고조의 근거를 통해 작동하며

아무런 제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신중한 반성이 요청됨에도 불구하고 '열정, 그 감정적 경험'은 그 것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열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을 낳는가.

 

 

먼저 상당히 무한한 포괄적 범주로서의 열정이다.

다시 말해 기준이 모호하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삶과 이상에도 적용된다.

즉 '열정'이라는 포장지는 무언 가들이 지니고 있는 내용을 목적하지 않는다.

대신에 자신을 주목하게 하며 더 그럴싸한 포장지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열정 자체는 아무런 내용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의미전달을 계속적으로 방해한다.

 

더욱이 열정자체가 의도라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내용 없는 수사가 반복되고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잊게 된다.

 

그리고 그 것은 '권위'로운 집단들에게 특히 강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그 것이 어떤 특별한 동기인것인냥 발견하곤 한다. (더 환장할 노릇은 열정을 가르친다는데 있다.)

 

두 번째로 열정은 그 것을 받아들이는 누군가에게 독단적이고 오만해지기를 바란다.

이 부분은 상당히 난감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열정적 상황은 상당한 몰입을 요구하고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인정받게 됨으로 쉽게 도취되게끔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독단과 오만이라는 배타적 논리의 함정에 쉽사리 빠지게 되는 근거로서의 열정이

몰입과 인정이라는 긍정적 자기실현의 열쇠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는 역설적인 오류를 낳는 형태 즉, 독단과 오만을 합리화하는 감정적인 당위성의 근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열정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열정의 메커니즘이 순수함이라는 기재를 계속적으로 유지하는 한 이 문제는 지속되는데

먼저 여기서 말하는 순수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순수란 세상과 괴리되어 있는 어떤 형태(혹은 감정)를 지칭한다.

우리가 흔히 순수하다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대부분 이런 의미를 염두해 두고 있다.

나 또한 이런 순수함이 쓰이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만 확장해보면 순수란 소통의 의지가 없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 것이 어떤 순수이던 간에 무결한 형태를 지향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낼수록 일상간의 교통 가능성은 상관없는 행위로 전락한다.

 

그래서 순수란 이상향에 대한 동경의 다름 아니며 다분히 공상적인 현실 에 대한 의지다.

 

이러한 순수가 열정의 바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열정의 작동이 개인의 감정상태를 타자와 괴리시키는 방식으로 나가게끔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착각이 일어난다.

 

즉 나의 상태가 모든 것에 앞서는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아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착각은 자신이 착각하는지를 알기 전에는 다른 어떤 것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폐쇄적 상태이다.

바로 그 점에서 열정이 지니고 있는 파시즘적 성격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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