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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씨가 쓴 <선택>이라는 책을 뒤늦게 읽게 되었다.
권.인.숙.이라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가지게 되는 무게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그녀를 다르게 보게 만든다.
그녀가 비정치적이라던가,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다.
100%페미니스트, 100%맑스주의자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이들을 만날때 경외심을 갖게 된다.
그/녀들에게는 내가 매순간 느끼는 좌절감과 나약함 같은건 없을 것만 같다.
권인숙이라는 여성투사같은 이미지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그녀 역시 끊임없는 자기모순 속에서
살아나가는 한 개인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물론 그녀는 그런 자신을 직면하고 세상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나보다 훨씬 더 용기있고 성찰적인 분이다.
....
글이 참 좋다.
어려운 말들을 쓰지 않아도 구절구절 공감이 간다.
글을 쓰는 과정이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해방적인 것이었을까,
부러워진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면서 내가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고
글을 쓰면서 내가 보기 싫어하는 나를 성찰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내가 아닌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간이 올바른 사회의식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한가 하는 점도 생각나게 하는 일화이다. 그래서인지 이글거리는 자의식에 짓눌리는 나를 버리고 새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절박감은 컸다. 그러나 나를 너무 부정하다보니 나는 운동의 명분에 모든 것을 내맡기듯 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갖고 있는 개인주의적 창의성, 정치감각이 온통 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p.31)
...사람들이 어떻게 다들 이런 아픔, 부채의식을 한 곁에 감당하고 살 수 있는지 그 지혜와 힘이 놀랍기도 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어느 하나의 감정과 고통과 기쁨이 대변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것이 우리 삶이고, 그래서 무수한 나날들을 이겨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근원적 슬픔과 보답하지 못하는 갈증을 상대하면서 살아가는 것 또한 삶인 것 같다. (p.77)
...그러나 굳이 내가 받은 가장 의미있는 교훈을 꼽아보라면, 사람 하나하나를 존중하는 의미와 실천이 단순히 앞으로 그래야지 맘먹는다고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반성하면서, 작은 원칙과 작은 가치를 동반해서 쌓아나갈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80년대, 큰뜻을 위해서 사심없이 나 자신의 기득권을 버렸지만 남녀의 관계, 동지간의 관계, 선후배의 관계, 여타 모든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큰 뜻이 어떻게 모순없이 관철될 수 있는지 크게 고민하지 못했다. (p.109)
...여성운동은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워왔다. 여성억압의 실체를 이야기하기 위해 써온 말이다. 즉 여성에 대한 억압이 사적이고 개인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사회, 정치적 억압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사적이라고 믿는 말과 행동이 그런 구조적 억압을 만들고 유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성을 이야기하고 사적 공간의 성역을 허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그런 일상적인 억압행위를 의도적이든 아니든 저지르는 사람들의 책임을 어떻게 물을까? 또 정치적, 도덕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정고미라는 "그런데 내 생각에,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명제는 사적영역에서의 억압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지 사생활에 대한 새로운 규범을 강요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나도 이 생각에 동의한다. 한 개인의 세세하고 복합적인 삶과 존재의 가치가 몇가지 정치적으로 옳은 명제로 판단될 수는 없기에 과연 한 개인의 복잡한 일상을 일관성 있는 기준으로 판단하는게 가능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도 든다. (p.251).. 사실 한 개인이 모든 차별에 대해서 같은 깊이와 넓이로 일관되게 대응할 수는 없다. 우선 한 사람이 경험하고 반응할 수 있는 폭이 한계가 있다. 또한 사고방식과 능력, 어릴적부터 키워온 감수성의 차이에 의해서도 각각의 차별에 대한 반응정도가 다르다. 설혹 민감한 감수성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늘 실수하고 생각이 못 미치는 듯한 발언을 할 적도 많다...(중략) 개인의 불완전함뿐만이 아니더라도 사적인 공간에서 한 행동을 정치적으로 옳은가 아닌가 판단하는 그 자체도 위험하다. 개인성이 워낙 복합적이기 때문이다.....(중략) 그러나 외모차별의 현실에 비판하는 만큼이나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고, 판타지의 세계에서 대리만족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나 개인의 공간에서 반환경적이거나 정치적으로 틀린 일들을 하고 싶기도 하고, 긴장을 풀기 위해서 대중문화에 편하게 탐닉하고 싶은 마음과 당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도 있다. 즉 가치관을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면뿐 아니라, 다양한 욕구와 일탈과 모순의 복합체인 개인성의 영역이 분명히 있다. 물론 개인의 복합성을 이유로 개인적 영역에서 뭐든지 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사적 영역에서 반복되는 일상적 각종 폭력이나 차별이 늘 편하게 용서되고 이해되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사회적으로 각 시기마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옳은 것, 금지해야 할 것, 바꿔야 할 것 등에 대한 합의는 존재해야 한다. 그런 가치관을 개개인의 삶 속에서 또는 집단적으로 실천하면서 사회는 진보한다. 다만 각 개인에게 선택의 여지없이 단일한 기준을 적용하거나 강요하는 실천은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적 억압의 실체를 벗겨내야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사적억압을 일거에 다 극복한 상태와는 다르다. 또한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실천하는 개인만을 요구하는 것과도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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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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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저도 읽어봐야겠어요.부가 정보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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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뻑// ^^ 껌뻑님에게도 좋은 책이기를.부가 정보
일해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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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동지도 추천하던데, 나도 읽어봐야겠다.부가 정보
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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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구면이죠? 은수님의 글에 대한 논평은 좀 나중에 해드릴께요. 약속한데로 새로 시작헤서 인사드리러 왔음다~부가 정보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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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백리// ^_^케산// 논평...^^;; 기다릴께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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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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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이란 말이 너무 쎘나요?^^그냥 제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라...
어쩌면 권인숙씨가 한 말은 우리 인간이 항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 모순을 지적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특히 특정한 가치관을 삶의 큰 부분으로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 모든 유형의 사람들에게요.
(종교인들이나 정치인, 예술가들 등등)
그럼에도 제가 보기에는 흔히 운동을 하는 분들이 가지기 쉬운 경향, 즉 자기 자신은 어떤 주장이나 실천이 채 납득되지도 않고 입증되지도 않았는데 섣불리 특정한 가치체계에 속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냥 따라하는 행태(자기 자신이 증오하고 배타시하는 특정한 삶의 원리 혹은 '적'들의 행동과 일견 반대된다 싶을 때 특히!)에서는 벗어나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아무리 좋은 원칙이나 규범도 본인이 납득되지 않고 정말 내 삶에 일부로 삼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과감하게 '유보'하는 태도를 보여주는게 필요하지 않겠냐는 것이지요.
이러지를 못하면 어느 순간에는 정말 설익은 가치관이 나의 주인행세를 한다고 느끼게 되거나 자기 자신은 껍데기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는 가치있는 사람을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은수씨가 소개한 권인숙씨의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권인숙씨로 대표되는 80년대 세대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겪어야했고 부닥쳤던 과제가 그들로 하여금 그런 회한을 품을 만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지금이야 이른바 386세대를 '까대고' 무시하는 분위기가 대세이지만 전 그들만큼 그토록 거대한 역사적, 사회적 의제를 중심으로 자기 삶을 바쳤던 세대도 드물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결코 자기를 규정하는 시대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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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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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산// ㅋㅋㅋ '논평'이 두려웠어요 ^-^ '설익은 가치관이 나의 주인행세를 한다'니 너무 콕 집어주시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뭔가를 배우고 고민할수록 내 삶의 일부가 될수록 복잡해져요. 그래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시행착오를 겪다가 돌아오기도 하고...권인숙씨의 글이 편안하게 읽힐 수 있는 건 그분에게 엄청난 내공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내공은 케산님 말대로 그 시대와 그 시대속에서도 주목받았던 삶을 살았던 그 분의 특수한 경험, 이후의 성찰과정에서 오는 거겠죠...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