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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공학대학교, 그리고 여학생

드디어 할일을 마무리짓고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관에 들렀다. 소설을 좀 읽을까 했더니, 다 대출하고 없네...흠...여성학 코너를 기웃기웃 대다가 새로나온 책 한 권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나임윤경 교수가 쓴 <여성과 남녀공학대학교의 행복한 만남을 위하여>라는 책이다. 책을 보면서 내가 겪었던 경험들을 다시금 떠올려보았다.

 

 

남녀공학대학교(그것도 남성중심적이기로 유명한 곳)에서 여자대학교로 오게 된 나는 그런 질문을 종종 보다는 자주 받았다.

  "남녀공학과 여대는 어떤 것들이 다른가요?" "여대로 오니 어때요?

 실은 내가 처음 여대에 와서 놀란 점은 도서관에서였다. 난 도서관 쇼파에 신발을 벗고 드러누워있다시피 한 여학생들을 보고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남녀공학에서의) 대학생활 내내 단 한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이나 특히 과방 같은 곳에서 널부러져있던 남학생, 선배들의 모습은 떠오르지만 말이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 쉬었던걸까? 또 한가지는 여성공간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를 지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정서적 지지나 유대감 뿐만이 아니라, 그냥 거리낌 없이 편할 수 있다는게 말이다. 대학생활 내내 얼마나 말 같지도 않은 일 때문에 사사건건 싸우고 감정상했던가, 내가 알고 지내던 인간이 어느날 가해자로 다가올때의 그 공포와 좌절감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아무튼 공간의 변화를 겪으면서야 비로소 나 역시도 여대와 여성공간에 대한 가부장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음을, 그것을 내면화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남녀공학대학교의 남성중심적 문화와 그 속에서 여학생들이 겪는 많은 경험담들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책의 상당부분은 나임윤경 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성찰적인 글로 이루어져있다. '오빠'라는 호칭 그리고 명명의 의미, FM 을 비롯한 남성중심적 문화 속에서 살아남는 '화통녀', 그리고 '내숭녀'.  캠퍼스커플이 깨졌을때 여자와 남자가 다르게 겪어야만 했던 상황,  교수 성폭력을 비롯한 일상적 성폭력의 위협 등 여러가지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어낸다는 점에서 재미있고도 의미있는 책이다. 후배들에게 선물해주고 싶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차이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일상의 차이를 차별로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일상에 대한 철저한 성찰은 필수적이다...일상을 철저하게 회의하고 성찰해야 하는 이유는 페미니즘의 영원한 명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명제가 의미하는 바는 개인의 취향이나 편안함 혹은 이성적 판단으로 결정된 것 같은 아주 소소하고 소소한 것이 사실은 당사자는 물론 그 당사자가 놓인 사회적 맥락의 권력관계를 모두 담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피안 이론은 언어가 우리의 인식을 지배한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영어 Man이 남성은 물론 인간을 뜻하는 단어로 의미화되었으므로 남성은 영어권 사회 남녀 모든 구성원을 대표하거나 지배하는 존재로 인식이 되는 것이다. 물론 기득권 남성들이 Man을 남성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뜻하는 단어로 만들었겠지만 말이다. (만일 로뎅이 턱을 쥐고 생각에 잠긴 남성을 조각한 작품, '생각하는 사람'의 대상이 여성이었다면 그 작품의 제목이 여전히 '생각하는 사람'이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아마도 '생각하는 여인'이 되었거나 '생각'과 '여인'은 어울리지 않으므로 '근심하는 여인' 쯤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어가 누구의 어떤 인식을 반영하면서 생성되는가를 분석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생성된 그 언어가 다시 인간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는 데 필요한 틀을 제공하는 워피안의 이론도 의미 있다. 이 이론은 '오빠'가 여성들에게 준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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