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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하여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는 하나의 원칙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내가 알고 있기로 운동사회에서도 몇몇 단체가 내부 규약을 통해 피해자 중심주의를 원칙으로 공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서 얼마전에 양성평등연대라는 데서 노동해방학생연대의 반성폭력 규약을 갖고 논쟁이 붙기도 했다. 물론 양성평등연대인가 하는데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저런 단체를 만들어서 활개를 치는가 의문이 들지만, 어쨌든. 핵심은 '피해자 중심주의'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공정한가 하는데 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은 미국의 경우에는 'reasonable woman', 한국말로 옮기자면 합리적 여성 혹은 합리적 피해자라는 개념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에 'woman'이 붙은 것이고. 이 개념은 동일한 사실을 다르게 인식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진실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할 때 사용된다.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상황은 제외하고. 예를 들어 '성기 삽입'이라는 기술에 대해서 잠정적으로 가해자/피해자 측이 모두 인정하는 상황이 있다. 그런데 가해자는 이에 대해 '관계'라고 말하고, 피해자는 '강간'이라고 말한다. 이 때 과연 누구의 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누구의 말이 더 합리적일까?  이 때 사용되는 '합리적 피해자' 개념은 흔히 '아이의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에 비유된다. 즉 가해자의 의도에 관계없이 피해를 입는 사람은 피해자 당사자이다. 따라서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는 것이 더욱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대부분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이런 감정, 입장을 이해할 수가 없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때 가해자와 피해자가 왜 그렇게 느끼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상황을 둘러싼 총체적 맥락을 드러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자의 no는 yes'라고 오랫동안 교육받아왔던 이 남자는 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관계'를 한 것은 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극렬한 저항이 수반되지 않은' 관계는 강간이 아니라는 가부장적 전제가 분명하게 깔려 있는 것이기에 문제가 된다. 이런 가정과 전제들은 무수히도 많다. "여자가 남자와 단둘이 있었으니" "여자 옷차림이 그러하니" "여자 혼자 밤늦게 돌아다녔으니" "여자가 나를 좋아하는 줄 알고" 등등등. 그러나 법적 절차나 해결과정은 이런 '맥락'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떤 맥락에서 그러한 판단을 내리게 되었는지, 내릴 수밖에 없는지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객관성'을 주장하면서도 실은 가해자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모든 지식은 항상 부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폭력 사건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기준이란 없다. 충분히 다른 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는 다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래서 맥락이 중요하다. 성폭력이 위계관계 속에서 일어날 때, 그러한 맥락에서 누구의 판단이 덜 왜곡된 것이며 덜 부분적인 것일지를 그 속에 개입된 가치와 이해관계들을 충분히 고려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객관성'이 나올 수 있다. 페미니스트 과학철학자인 산드라 하딩(Sandra Harding)은 이것을 '강한 객관성'(strong objectivity)라고 불렀다. 하딩은 전통적인 과학과 객관성은 가치중립적이라는 신화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들은 지배자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지식과 연구만을 생산해내고 있다고 이를 '약한 객관성'이라 비판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녀는 자신이 주장하는 사회적 상황적/맥락적 지식(socially situated knowledge)이 판단과 인식론에 있어서의 상대주의-어떤 주장도 합리적, 과학적 근거가 없다던가 그렇기 때문에 결국엔 모든 주장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식-와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적 위계 속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들에서 '합리적 피해자'나 '피해자 중심주의' 개념이 하딩 식으로 말하자면 '강한 객관성'을 드러낼 수 있는 척도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이 너무나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심지어 사실관계 확인조차 안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인간들도 있으니. 피해자 + 중심 + 게다가 주의! 라니, 찬찬히 뜯어놓고 보니 그렇게 보일만도 하다. 역시 익숙하던 개념도 조금 떨어져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 실은 어떻게 한국에서 이런 개념이 만들어진 것인지, 사용되게 된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누가 알면 좀 가르쳐주세요-) 과거의 반성폭력 운동, 그 중에서도 여학생운동 쪽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나 추측만 있었다. 그래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합리적 피해자'와 동일한 맥락에서 사용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명명이 사람들의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다른 식의 용어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너무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실은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더불어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는 피해 혹은 고통을 '입증'해야만 한다는 것과 사건의 해결과정을 통해 '생존자'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자화'가 된다는 점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고민도 반드시 가져가야 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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