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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대안하고 있는가? 그리고 대안이라는 이름하에 방치되는 공교육의 아이들은?
김태균(노동자의 힘 회원)
“00 동지 혁명의 과정에서 저 놈의 신호등도 국가권력과 마찬가지고 단절하고 파괴해야 하는 대상일까?”
“그건 아닌지. 신호등을 비롯한 과학기술혁명의 성과는 노동자 계급에게 어떻게 환원 시킬 것인가? 라는 고민의 대상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잡았을 때 과연 지금처럼 신호등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질수 있을까? 이를 위해 저 신호등을 움직이는 주체들을 재 교육 시키고 이를 노동자 계급의 나라에서 살아 갈 수 있도록 강제해야 되는 것 아녀” 라고 나는 말을 하면서
“그렇다면 현재 소위 공교육이라고 불리우는 교육 시스템은 저 신호등과 같은 체계로 봐야 하는거야 아니면 단죄하고 끊어내야 하는 체계로 보아야 하는거야?”
언젠가 여러 동지들과 함께 회합을 가지고 뒷풀이 장소로 이동하면서 나눈 이야기 이다.
마침 빨간불이 켜져 신호등 앞에서 파란불이 켜지기를 건널목에서 기다리면서 말이다.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은 어떠할까?
유일한 최종 종착역인 사회에서 지배계층에 진입하고자, 수많은 우리들의 아이들이 엄마 뱃속에서부터 영어 태교 음악을 듣고, 보다 좋은 그리고 조기 교육에 알아준다는 유치원과 놀이방을 보내기 위해 부모들이 새벽잠을 설치며 입학원서를 들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대한민국. 평준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한반의 석차가 분명하게 들어나는 초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과, 이도 모자라 전국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석차로 구분하고자 실시한다는 전국 모의고사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학부모. 대학에 가고자 하는 학생수보다 대학 입학생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가고자 하는 학교에 입학을 못해 매년 11월 12월이면 자신의 목숨을 끊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노동자 평균 년봉의 3배가 넘는 6-7천만원을 든다는 대한민국 한 아이의 사교육비, 놀 아이들을 찾아 학원을 가야하는 아이에서부터 보다 좋은 학교을 위한 선 교육을 받기 위해 학원에 가는 아이들까지 굳이 놀이터가 필요 없고 학원만이 장사가 된다는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3인 1가족이 다 입주하고도 남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공사가 시작되는 신축 아파트가 있는 나라에서 전 국민의 채 10%도 안 되는 국민이 전체 주택의 90% 가까이 소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아이들을 혹시나 하는 기대에서 10%에 진입시키고자 매년 투쟁한 결과물인 임금인상분을 다 우리 아이들 교육비에 쏟아 붓고 있는 현실이 바로 내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은 즉 [태아교육 - 유아교육 - 초중등교육 - 고등교육] 모두가 유일하게 대한민국 사회에서 10%도 채 안되는 지배계급으로 편입하고자 발광을 하는 미친 구조인 것이다.
그냥 꽉 도망이나 갈까?
아니 내가 못 가더라도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외국 유학을 보내 이러한 살인적인 교육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줄까?
아니면 그냥 집에서 내가 아이들과 함께 가르치며 놀까?
아니면 이렇게 생각하는 동지들과 함께 대안적 공간을 마련하여 이 미친짓의 질주에서 벗어나 볼까?
나는 우리 아이들을 결코 대안학교에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동지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낸다면 결사적으로 막을 생각이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우선 첫 번째로 대안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혁명을 포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여느 자본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국 또한 교육 시스템은 교육 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와 끈적하게 연동 되어 있다. 특이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재 생산하는 기제로서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노동자 계급을 육성하는 단위로서의 교육 단위는 작동을 하고 있다. 물론 경쟁을 통해 지배계급으로 편입 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환상에 의해 살인적인 경쟁을 조직하는 기제로서의 충실한 의미 또한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의 문제를 회피 한다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 전반을 변혁한다는 역사적 책무를 방기한다고 주장한다면 너무 과도한 관념의 발상일까?
두 번째로는 우리 아이들을 공교육이 아닌 대안교육에 맡긴다면 교육 개혁과 사회 변혁의 역사적 책무에서 활동하는 이 땅 부모들의 참 모습인 노동자 계급의 모습을 우리 아이들에게 못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과 함께 공교육의 문제점을 논의하고 토론하고 이 과정에서 역사발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참 부모로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역사 발전은 투쟁의 역사였고 변혁의 역사였음을 몸소 보여주고 함께 실천하는 모습이 진정한 참 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세 번째로는 위에서 서술한 근거를 백보 양보하여 대안교육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대안교육 시스템 상 결국 공교육 체계로 흡수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으며, 설사 교육 시스템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사회에서의 경쟁구도를 회피하긴 어려운 조건이기에 결국 부족한 대안이 아닐까 하는 판단이다.
태아교육부터 초중등교육 그리고 고등교육에 이어 사회 교육까지 연동되어 지는 자본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특정한 부위의 대안 교육 도입은 결국 무언가 먹다 만 듯한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20세기와 21세기 혁명의 차이는 무엇일까?
언젠가 이야기 했듯이 20세기 혁명의 과제는 전체 인민이 먹을 수 있는 빵을 생산하는 것이라면 21세기 혁명의 과정은 풍부하다 못해 넘치는 그러나 극소수 자본가들에 의해 독점 소유되고 있는 빵을 어떻게 하면 재 분배 할 것인가? 하는 점의 차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교육체계라 불리우고 있는 시스템은 그 누가 이야기 하고 있듯이 살인적인 경쟁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살인적인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자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갈 수 있음을 선전하는 선전의 장 인 것 만은 분명한 사실인 듯 하다.
무수히 많은 우리들의 아이들이 가고 싶은 학교 아니 지배계급의 진입구로서의 학교에 입학을 하기 위해 학습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에 좌절하면 목숨도 서슴 치 않고 버리는 현실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교육 현실이며 우리 아이들의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더욱 더 나를 슬프고 분노하게 만드는 점은 바로 학교에 가고픈 아이들의 수보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입학생의 수가 적다는 점이다.
3인 1가족을 기준으로 해서 살아 갈 수 있는 대한민국의 아파트 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70% 이상의 국민이 무주택으로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나 학교를 가야하는 학생수보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입학생의 수가 적은 대한민국의 학교수나 별반 차이 없이 말이다.
문제는 풍부화 되어 있는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그리고 이속에서 경쟁이 아닌 협동과 단결을 어떻게 교육시켜낼 것인가 ? 하는 점이 대한민국 교육 개혁의 과제가 아닌 듯 싶다.
비켜가지 않았으면 한다.
인간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삶의 원리가 다른 여타의 동물과의 차이이며 구상하고 계획한다는 점이 다른 동물의 노동과의 차이점이 아닌가?
대학입시 때문에 죽어간 아이들의 유서를 가지고 논술 공부를 한다는 웃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 하면 너무 빡빡하게 삶을 살아가는 태도라 손가락질 할 것인가?
장시간 노동에서도 노동해방을 노래하고 이야기 하고자 조합원 교육을 쉼 없이 다니는 동안에 나의 아이가, 우리들의 아이가 우리들의 파업 현장의 사진을 보면서 사회 불안 세력으로 규정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 회피만 할 것인가?
충분히 다 입학하고도 남는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서열화 되어 있는 1순위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살인적인 경쟁을 치켜 세워주고 있는 사교육 시장에 내 몰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쓴 쇠주를 한잔 기울이는 우리네 학부모 노동자들의 모습을 외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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