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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과 정경유착

비자금과 정경유착

노태우의 수천 억 비자금 사건이 폭로된 이래 제도정치권의 각 정파는 서로 간에 '너 죽 고 나 살자'는 식의 비난과 폭로로 가히 진흙탕에서 뒹굴며 싸우는 개들의 모습 그대로 를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든 은폐된 사실들이 밝혀 지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리고 다 른 한편 에서는 " 이번 기회를 정격유착의 구조를 뿌리뽑아 깨끗한 정치를 실현해 가는 전 화위 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언제나 들리는 유행가도 어김 없이 들린다. 그리하여 '경실 련 ' 같은, 귀에 달콤한 '대안'으로 대중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을 저지하는 것을 그 사회적 존재 이유로 삼고 있는 몇몇 시민단체들은 발도 빠르게 토론회, 공청회 등을 열고 있고, 거기에서는 심지어 불과 수개 월 전까 지 권력 의 그늘에 숨 어서 민중을 능멸하던 검사 출신 의 변호사들까지 나서서 추 상 같은 어조 로 '정경유 착'을 질타하 면 서 '깨끗한 정치'를 위한 방략들을 제시 하 고 있다.


비 난 폭로 도 좋고, 질타도 좋다. 그 리고 '정격유착을 뿌리 뽑자 '는 다짐은 더 욱 좋다. 문 제는 과연 그러한 비난과 폭로, 질타 그리고 다짐으로 정말 정격 유 착을 뿌리뽑을 수 있는가이다.


유감 스럽지만, 저들의 요 란한 비난, 폭로, 질타, 다 짐 에도 불구하고, 현 재와 같은 한 국 정치 가 그 명맥을 유지 하는 한 정경유착 이 뿌 리뽑힐 가능 성은 전 혀 없다. 저들이 질타 해 마지 않는 바의 자 본과 의 '검은 유착'이야말로 한 국정치 의 풍토 자체이고 영양분 이기 때 문이다. 그리하 여 자본과 의 '검은 유착'없이는 한국정치 그 자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 다.


일반적 으로 ' 썩은 정치인' 혹은 ' 구정치 인'으로 치부되는 사람들 은 아예 언급할 가치도 없 다. 자타가 '양심적인 정치인 ', '개혁적 인 세력'으로 공인하 는, 주로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 의 행태를 보자. 그들은 오늘날 민자 당으 로, 민주당으 로, 국민회의로, 그리고 극소수이지만 심지어는 ' 유신본 당'을 자처하는 자민련으 로까지 나뉘어져서, 상대방 의 두목들을 비난하 는 방식으로 사실상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아니, 갖은 현실적인 힘과 연합의 논리를 동원하면서, '썩은 정치인', ' 구정치인' 에 불 과 한 스 스로들의 두목의 정치적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전사(戰 士)로 나서 고 있다.


민자 당의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누구보다도 앞장서 김영삼 대통 령이야말 로 가장 개혁적 이라 고 주 장하면서 '세대교체', '3김 청산'을 외친다. 김영삼 씨의 대선자금을 밝 히라는 요 구 가 그들의 귀에 들어올 리 만무다. '노태우한테서 대선자금을 한 푼 도 받은 바 없 고', '내 임기 중 에는 정치자금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김영삼 대통 령 의 정치적 주장 이 그들이 딛 고 서 서 상대를 비난하고 새로운 개 혁적 정치를 다짐 하는 발판이다. 그러 한 발판 위에 서의 다짐 이 과연 진실성을 가질 수 있는 것 일까? 심 지어 노태우까지도 현직에 있 는 동안은, 아니 이 번에 용뺄래야 용뺄 수 없는 상황에 처하 기 전까지는 ' 누 구한테 정치자 금을 받았으며, 정 치자금을 받겠다 '고 말한 사 실이 없으며, 오늘 날의 김영삼 대통 령이나 마찬가지 로 ' 그런 일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 도 없으며 있어서도 안된다'며 '깨끗한 정치'를 다 짐했었다 는 사실을 새삼 상 기시켜야 하는 것이 서글프다.


국민회의 의 운동권 출신 인사 들은 어떤가? "김대중 총재께서 다른 사람도 아닌 광주학살 의 주 범 노태 우한테 서 20억 원 을 받았 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정말 당혹스럽고 고 통 스러웠 다. 그러나 정치생명 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러한 사실 을 고해할 수 있는 선생이야 말로 가장 솔직하고 신 뢰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라는 생각을 이제 갖게 됐다." 이 것이 오늘날 그들이 내 뱉는 말이 다. 그들이 얼마나 황 폐해져 있는 가를 알 수 있게 한 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 누구보 다도 열심히 '김대 중 죽이기'에 대항하여 '김영삼 대통 령의 대 선자금 폭 로' 를 위해서 분전하 고 있다.


노 태우 비자금을 폭로하 는 데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민주당쪽의 인 사들은 어떤 가? 그들은 지난 두 차례의 대선과 무관하다고 말한 다. 따라서 그들은 가장 깨끗 하고 떳떳하 다 고 한다. 그 때문에 그들은 가장 단호 하게 '3김 정 치'의 청산을 외치면서 '개혁정 치'의 깃발을 높이고 있다. 그 러나 우리 는 그들에게 그들이 소속된 당은 어떤 자금으 로 유지되 고 있는 지를 물을 것까지 도 없이, 그들 스스로가 지난 총선을 어떤 자 금으로 치루었는 지를 물 어보 고 싶 다. '깨끗한' 그들 일수록 치부하지 않고 검은 돈을 받지 않 았기 때 문에 더욱더 ' 중앙당의 지원'에 힘입어서 지난 총선을 치루고 금뺏 지를 달 지 않았던가? 그러면 '중앙당이 지원'한 그 돈 은 어 떤 돈인가? 진정 그 돈, 즉 중앙 당의 그 재 원(財源) 은 '검은 돈'이 아니 란 말인가?


다 아는 사실이지 만, 이전투구에서 분당의 악감정도 있 고 하여 민주당 쪽이 김대중 씨의 20억 원 수수 를 비난하고 나서자 국민 회의 쪽은 김대 중 씨측이 분당 전 민 주 당의 누구에게는 몇 억 을, 누구에게는 몇 억 을 하는 식으로 돈을 주 었다고 폭로했고, 이에 거 론된 당사자들은 명예훼손이라며 길길 이 뛴 적이 있다. 과 연 그 들에게 정치자금과 관련하 여 훼손될 만한 변변한 명 예가 있는 것일까? 그들의 주장인 즉, 국민회의 쪽이 노태우로부 터 받 은 자금을 분배한 것처럼 말하지만, 자기들 은 그 돈, 즉 노태우로부터 흘러나온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 일 것 이다. 실제 그들이 노태우로부 터 흘러나온 돈을 받지는 않 았 을지 모른다. 또 김대중 씨 쪽으로부터 사선(私線)을 통해서 가 아니라 '중앙당' 을 통해서 '지원'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벌로부터 정치자금 을 안받는다고 말한 적이 없는", 그리하여 " 가장 솔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인 김대중 씨나 그 진영의 시각에서 볼 때는, 지금 길 길 이 뛰고 있는 민주당 측의 인사들이 지난 총선 등에서 '중앙 당의 지원'을 받은 이상, 그 돈 은 노태우한테서 받은 것이든 다른 재벌한테서 받은 것이든 차별성이 없는 것 이다. 또 실 제로도 거기에 무슨 차별성이 있겠는 가? 그리하여 '나 만은 깨끗 하다'는 그 들 의 외침이 야 말로 사실은 위선과 거짓 그것이고, 위선과 거짓을 가지고는 위 선과 거 짓의 성밖에는 쌓을 수 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는 한국정치에서 무엇 이 정 치인 들 을 여와 야로, 각 정파로, 각 계보로 나누고 있는가를 볼 필 요가 있다. 그 것은 다 름 아닌 출신 지역과 정치 자금이다. 그 리고 오늘날 제도정치권에서 가장 선진적 이고 양 심적이라는 사람 들조 차 이 지역과 정치자금 에 따른 정 파, 계보로의 분열에 서 자 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 다. '지역할거주의'를 비난하는 사람들, 그들의 논 리조 차 사실 은 '지역 할거주의'에 그것도 음험하게 근거 하고 있 고, 지연과 학연 등을 인연으 로 한 정치자금의 수수관계로 계보들 이 맺어져 있다. 그러한 조건 속에서 어 떻 게 '정경유 착'이 근절될 수 있겠는가?


그 런데 한국정치에서 의 정경유착에 대해서 말해 왔지만, 한국정 치 에서의 그것은 가 장 저 급하고 저열한 형태일 뿐, 현 대 자본주의 부르조아 정치란, 지역성으로부터 는 몰 라도, 정치 자금로부터는 본래 자유로울 수 없고, 따라서 이른바 정경유착으로부터 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정치제도 자체가 비용이 많이 드는 그것인데다가, 국가권력은 잉여가 치 실현의 중 요 한 기 구 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금이 필요한 정치인과 이권이 필요한 자 본의 이해가 서로 맞아 떨어지 면서, 합법적인 형태이건 불법적인 형태이건, 정치자금 의 수수가 이루어 지 고 있는 것이 다.


요즘 미국에서도 '돈 안드는 정치제도'로의 개혁 운동이 한편 에서 벌어 지고 있 는데, 이를 추구하는 미국의 한 의원은 최근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 캠페인(유세)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호텔 방에 돌아오면 으레 연락을 바라 는 20 여 통 의 전갈이 기다리고 있다. 명단을 죽 훑어보면 대개는 누가 누군지 기억할 수 없는 유권자들 이고, 한두 명 만 이 아는 사람인데 그들에게만 전화 연락을 하게 된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그들 이란 바로 대개는 재정 후원인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의 정치고, 미국의 정치 인들은 그 재정후원인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미국 에서 는 정치 자금이 많은 부분 대중적 모금에 의해서 조달되어서 상당히 투명한 것으로 평 가되고 있 고, 우리 정치계에서도 요즘은 그것을 모델로 '후원회'를 조직하는 것 이 유 행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위 미 국 정치인의 고백은 그것이 그만큼 투명하지 만 은 않고, 결국 정치 인들은 (은밀하 게 거래되는 '재정후원인'은 문제삼지 않더라도, ' 후원 회' 의) 큰손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 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 저급하고 저열한 형태인 정치자금의 불법적인 수수가 문제의 표적 이다 보니 정치 자금 그 자체 의 본 질에 대해서는 관심이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서 는, "재 벌들이 노태우 한테 갖다 바친 수백억 수천억이 땅에서 솟고 하늘 에서 떨어진 것 이 아닌 바에야 이 것은 결국 우리 노동자들 의 피땀을 착취한 것"이라던, 지난 11월 12일 노동자대 회에서의 이소선 어머님의 말씀을 곰곰히 새겨보아야 한 다. 은밀하고 불 법적인 형 태를 취하건, 선관위 '(지정) 기탁금'이라는 합법적인 형태 를 취하건, 자본으로부터의 정 치자금은 결국은 부불(不拂)의 잉여노동이 자 본의 이익과 이 권을 위해서 건네지는 것이 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나아가 정경유착 도 "재벌 등 독점자본과 정치 인 과의 '(불법 적인) 정치자금 ' 수수를 통한 유착" 정도로 협소하게 이해되어서는 안된 다. 정치자금을 둘러싼 이러한 정경유착은 그 가장 저급하고 저열한 형태일 뿐이고, 현대자본주의 국가와 정치 그 자체가 정경유착 그 자체라는 점을 상기하여야 한다. 현대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국가의 모든 정책이 사실상 자본의 이익을 위해 서 기안되고 집행 되고 있으며, 국가 그것이 자본의 이익을 지키고 증 진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정경유착의 근절은 결국 자본에 의한 국가 지배의 극복을 통해서만이 가능하 고, 그 첫 걸 음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활동을 법률상 그리고 사실상 자유화하는 것 이다. 그 런 데 오 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 활 동은 법률에 의해서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 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 정경 유착의 근절'을 외쳐보았 자 그 외침은 앞 에서 본 것 처 럼 위선과 거짓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에 서 '정경 유착의 근절'을 외치는 사람들이 그 위선의 탈이라도 벗기 위해서 는 자기들의 정치, 자기들의 정당이 있지도 않은 이른바 '국민을 위한 정치'나 ' 국민정당'이 아니라 '자본 가 계급 정치'이고 ' 자본가 계급정당'이 라는 점을 인정하면 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활 동 을 자유화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혹 은, 그들이 그렇게 인정하고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도록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의 힘이 성장 하지 않 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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