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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보다 '사람'을 -대구대 전형수 교수

◇ 대구대 전형수 교수, 정부 개정안 비판 / 오마이뉴스(news)

전국 각지에서 농협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농협법 개정안을 마련해 개정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정부의 농협법 개정안에 대해 농민단체와 학계 일부에서는 개혁이 아닌 '개악(改惡)'이라며 오히려 반발하고 있다. 협동조합 연구가인 대구대 경제학과 전형수 교수는 <오마이뉴스 대구경북>에 정부가 발표한 농협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올바른 개혁 방안을 지적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에 전 교수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지난 6월 30일 농림부는 정부안으로 확정된 농협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특히 이번의 개정안은 농협 및 이해관계자들의 토론과 협의를 통해 만들어진 사상 초유의 민간 주도적 개혁법안임을 자평하고 있다. 부디 개혁에 걸맞는 농협법의 탄생을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이번 개정안의 골자는 농협의 경제력 강화이며, 이를 위해 전문화·규모화·기업화 등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농협중앙회의 전문화를 위해 이사회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사외이사의 참여폭을 1/2까지 넓혔다. 더욱이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을 위해 대표이사에게 집행간부의 인사권을 이관하여 실질적인 경영권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중앙회, 외부이사 독점적 경영 '부정적'
농협법 제1조는 자주적 협동조직을 통해 농민조합원의 지위향상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조합원의 연대적 자조와 자기책임에 의한 자기관리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만약 조합원이 아닌 대표이사와 사외이사가 중앙회의 경영을 맡게 된다면, 이는 농협법의 입법정신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법의 일관성을 해치는 것이다. 더욱이 외부이사가 기업경영을 독점적으로 주관한다면 이는 중앙회의 육성과 회원조합의 실익보다는 오히려 개인의 사회적 명예·일자리 안정·비교적 높은 보수 등을 위해 경영규모의 확대를 추구할 것이다.
이런 경우 회원조합을 위한 최대 봉사는 단지 할 수 있을 만큼의 봉사로 대체되고, 이에 중앙회의 사업이 비효과적이고 그래서 회원조합의 실익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회원조합의 관심은 멀어지고,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중앙회는 '외부이사의 기업'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중앙회의 군살빼기가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중앙회에 대한 비판과 구조조정의 요구는 그 나름대로의 설득력이 없지 않다. 하지만 중앙회의 본원적 기능까지 해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협동조합의 조직경영에서 중요한 것은 '보완'(subsidiary)원칙이다. 즉 차(次)하위 조직이 할 수 없다든지 혹은 비용이 많이 요구되는 사업은 차상위 조직이 맡아 수행함으로써 성과를 높이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이전에 의한 협동적 연대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중앙회의 슬림화를 강행한다면 이는 '교각살우'의 결과를 자초할 것이다.

협동조합 가치는 '돈'보단 '사람' 중시
상기 위험은 일선조합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경영의 전문성과 책임성 강화를 위해 전문경영인(CEO)의 영입 확대, 선관위에 조합장의 선거관리 위탁, 외부회계감사의 의무화, 자율합병을 위한 조합간 경쟁 유발 등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가치는 '돈'보다는 '사람'을 중시하는 '인적 조직'과 조합원의 적극적 참여를 요구하는 '민주적 구성'이며, 이의 보호·촉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곧 '자조'·'자기관리'·'자기책임'의 원칙이다.
외부의 전문경영인이 농협의 재정적 건전성과 안전성 제고를 위해 준조합원·비조합원 등과의 원외거래를 활성화하고, 이로써 발생한 이윤을 조합원에게 분배한다면, 조합원으로서 농협을 이용하고자 하는 욕망보다 원외거래의 이윤을 나누어 받고자 하는 욕망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로써 조합원은 농협의 이용자가 아니라 이윤추구의 투자자로 전락하고 동시에 조합원과 농협의 이해가 분리되면 조합원의 자조조직으로써 농협은 그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협동조합은 민주주의 학습장이다. 이는 서민대중의 경제적 자립과 자유를 촉진하고 동시에 경제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조합원이 동등한 자격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공동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익히기 위함이다. 비록 일부 일선조합에서의 조합장 선거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하여 이를 선관위에 위탁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학교를 폐교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농협법 제1조의 조합원 지위향상은 경제적 측면만 고려한 것이 아니다. 협동조합은 '사람' 중심의 인적 조직이며, 동시에 조합원을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이런 이중성이 있기 때문에 농협법은 조합원의 경제적 지위 향상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촉진까지도 농협의 목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문화' 개념은 털끝 만큼도 없고, 오로지 '돈' 중심의 주식회사의 외부회계감사를 요구한 것은 입법취지에 맞지 않을 뿐더러 농협의 '자기관리'·'자기책임'의 원칙을 무겁게 해치는 것이다. 농협은 농민조합원을 위한 봉사조직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조합원의 촉진이지 농협 자체의 이윤증액이 아니다. 달리 말해 농협은 이윤극대보다 손실극소화의 경영을 펼쳐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촉진을 꾀해야 한다. 이와 같은 농협의 촉진결과를 외부회계감사가 평가한다는 것은 사림에 맞지 않는다.
이외 농민조합원에게 더욱 많은 실익을 보장하고 자발적 참여 확대를 위해 이용실적에 따른 잉여배당을 최우선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즉 잉여금 뿐만 아니라 손실이 발생하면 이 역시 이용실적에 따라 부담을 나누어야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공정'·'평등'의 원칙에 합당한 것이다.

'만인은 만인을 위하여,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이처럼 협동조합 가치와 원칙을 깡그리 무시한 것은 자율합병을 위한 '조합간 경쟁'에서 그 극에 달한다. '만인은 만인을 위하여,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는 협동조합의 역사적·전통적 모토이다. 이는 날로 심화되는 환경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방책으로써 '협동적 연대'를 요구한 것이다. 200년이 넘는 협동조합의 역사에서 이 방책은 그 효과를 이미 검증 받았고, 현재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이를 '협동조합간 협동'(Co-operation aming co-operatives)이란 이름의 협동조합 원칙으로 채택했다.
협동과 경쟁은 선택 가능한 대안이다. 하지만 이 둘을 동시에 선택할 수는 없다. 협동을 외치면서 경쟁을 요구한다면 이는 정신분열증세나 다름없다. 혹시라도 농협이 회원으로 가입된 ICA에 이런 발상이 알려진다면 회원제명이라는 불명예가 염려스럽기도 하고, 또한 해방 후 60년의 농협 역사와 그 성과가 욕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이번 개정안이 농협을 키우겠다는 의지에서 선진국의 성공사례를 익혀 농협의 인적 특성을 과감히 제거하고 주식회사로의 접근을 위한 개혁적 시도라고 하지만, 이는 농협의 장기적 발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인적 조직이면서 기업인 협동조합의 이중성은 오로지 협동조합에만 있는 고유의 문화이다. 이 문화는 병사의 무기와 같다. 무기가 무딘 군대는 적을 이길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유렵지역에서는 외부인사(CEO)의 책임경영을 지양하고 조합원 공동의 기업관리(corporate governance)를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또한 협동조합의 특성을 반영한 감사기법(Intellectual Capital)의 개발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외국의 성공사례가 아니라 실패사례이다.

조합원 공동 조합관리 연구·개발 필요
상기 지적을 10분의 1만 감안하더라도 이번 개정안은 농협육성 보다는 농협파괴를 위한 처방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진실로 농협을 촉진하여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바란다면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에 충실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해방이후 군부의 개발독재·문민정부·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농협법이 17차례 제정 내지 개정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이런 어리석음을 저지른다면 참여정부가 끝나기 전에 또다시 개혁하자는 요구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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