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그게 어떻게 절충이고? 임마~

논쟁이 붙었습니다. 물론 음주중에 붙은 논쟁만큼이나 열띤 것은 없지요. 그러나 하는 사람이나 바라보는 사람이 모두를 지치게 하는 논쟁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야~니네들 보니가 룸펜같다. 이제 고마해라."이런 분위기였고, 또 한 쪽은 "어떻게 절충과 수용이 같을 수 있냐, 너는 너무 제도권적 사고를 하는 게 아니냐."는 야박한 공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문제인 즉은 이렇습니다.

법대출신들은 "어짜피 법제도에서는 헌법의 이념성에 있어서 자본주의 헌법과 사회주의 헌법에 대한 가치평가를 한다는 자체는 의미없는 일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회대출신들이 "그건 니네들이 배운 헌법책에 나온 그대로지. 근대는 모두 사회복지국가적 헌법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 정도의 차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거잖아."

이 때 문제를 제기한 법대출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절충의 형태로 가는 거지. 사회복지국가적 헌법도, 사회복지국가도 모두다 절충지점을 찾은 결과물이잖아?"

이 때 공대출신의 한 후배가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건 수용의 개념이 더 강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내 개인적으로는 사회복지국가적 형태를 띤 국가가 본질적으로 그 경제적 시스템에 있어서는 결과적으로 변형된 자본주의가 아닐까요?"

그러자 바로 법대출신이 반박합니다.
"그건 아니지. 수용과 절충의 개념은 어짜피 종국적으로 같은 거지. 그러면 너 말대로 사회주의라는 시스템과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서 사회복지국가가 절충이 아니라면 절충은 도대체가 뭐야?"

긴 침묵이 흐릅니다. 같은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쐐기를 박은 질문이 법대출신의 입에서 거미줄 흩어져 나옵니다.

"전에 너가 말했던 임금채권의 최우선 변제에 있어서도 그렇지. 결과적으로 질권, 저당권을 가진 사람들도 회사가 도산하면 자기들 생존의 문제도 그것에 달려있는 거잖아? 그래서 양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절충안이 지금의 형태가 아니냐고? 사실 초기 자본주의가 지향했던 소유권 절대 이념을 근대 자본주의는 이제 제도적인 장치로 제한하고 있잖아?"

아~답답해집니다. 법대출신, 얄미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대출신의 후배는 미덥지 않게 바라보다가 이런 얘기를 꺼냅니다.

"선배가 말한 건 이해는 하죠. 그렇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절충안은 아니라는 거죠. 균형적인 관점에서는 질권, 저당권자도 살아야겠지만 임금노동자의 입장이 아주 미미하게 반영된, 불리한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들도 절충안이 된다는 말이잖아요? 사회주의 시스템과 자본주의의 시스템에서 절충이라는 개념은 내가 볼때는 없다고 보는데. 다만 변질된 형태는 존재해도 말이죠....."

법대출신 열받습니다. 당연히 옆에 있는 '꿘'을 떠나 대구빡이 돌빡이 된 우리들에게는 정말 이런 얘기는 답답하고 갑갑한 얘기입니다. 그러다가 말하는 방식에 대해서, 서로의 논쟁 스타일에 대해서 또 한마디씩 주고 받습니다. 이게 점점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다가 결국 술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1 라운드는 끝나고 이제 2라운드로 갑니다. 아~잠온다...

"정리해보자. 내가 볼 때, 절충이나 수용이나 똑같다구. 계속 너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절충안이 사회복지국가가 아니라고 하는데, 너 말은 사회복지국가 또한 결국 자본주의의 한 변형이라고 볼 뿐이다. 이 말을 하는 거잖아? 그러면 절충은 뭐냐? 수용은 뭐냐라고 물은 거고. 너 말대로 수용은 한 쪽 일방의 왁꾸는 그대로 있고 다만 일부나 그 이상에 대한......"

법대출신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짤랐습니다. 다시 사회대 출신이 말했습니다.
"나는 절충의 형태가 하나는 질적으로 변형되는 것과 양적으로 변형되는 것으로 보는데, 그게 물리적인 결합이든 변증적인 결합이든 간에 절충은 결국 또 다른 것으로의 전화를 의미한다고 본다."

역시 사회대는 추상적입니다. 그러면 예시를 들어라는 법대출신의 반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그는 면벽취침에 들어갑니다. 이제 남은 건 3명....이건 완죤히 서바이벌 논쟁입니다.

대충 무슨 말이신 줄은 아시겠죠?

한 놈은 계속 "그게 무슨 절충안이냐, 하나의 변질된 형태지"라고 반박하고 한 놈은 "결국 니가 말하는 절충과 수용의 차이점은 뭔데?"라고 지리하게 물고 넘어 갑니다. 양자의 입장에서 절충과 수용을 구별하지 않는 법대출신의 야비함에 모두가 혀를 내두리고 있습니다. 아~ 그게 어떻게 절충이고? 임마~

절충을 정의내리기 참 어렵습니다. 한 몇 년 법서 읽었다고 결국 하는 말이 1설과 2설 사이에는 항상 절충설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하하~ 임금노동자의 생존권이 우선이냐! 질권, 저당권자의 재산권이 우선이냐?(재산권이라기 보다는 생존권이라는 표현을 씁디다.) 결국 절충은 그 사이에 임금채권의 보장에서 최우선 변제와 같은 것이 절충이라고 법대생은 주장합니다.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은 절충이 아니라고, 재산권 중심의 사고를 하는 집단이 임금노동자의 생존권에 대한 저항을 막기위한 일부'수용'에 불과하다고. 그렇다면 과연 절충은 뭔지. 도통~
써놓고도 이게 논쟁인가 싶습니다요.

2003/08/23 14:3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