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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김논쟁

진중권.

 

"내가 좌파 바바리맨을 싫어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21세기에 여전히 긍정적 유토피아 문학을 하는 그 지적 게으름도 맘에 안 들지만, 대중 앞에 옷 홀딱 벗고 빨간 자지, 노란 자지 심판하는 행태는 내 성 취향을 심히 거스른다. 현실은 무섭게 돌아가는데, 거기에 결합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제 자지 색깔의 원색성을 근거로 남들에게 ‘자유주의자’니, ‘프티 부르주아’니 딱지나 붙이는 것은 그냥 중세적 악습일 뿐이다. ‘종교재판’(inquisition)의 어원은 라틴어 1인칭 ‘내가 묻노라’(inquisitio), 즉 남의 신앙적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었다."

 

김규항.

 

"게다가 나는 체제 안에서 어린이 잡지를 발행하며 활동하고 있으니 반드시 사민주의와 대별되는 의미에서 사회주의 노선을 가져야 하는 상태에 있는 건 아니다. 그런 내가 굳이 진보정당에 입당하지 않고 사민주의 세력보다 사회주의 세력에 좀더 가까운 입지를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주의 세력의 성장이 사민주의 실현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택광.

http://wallflower.egloos.com/3408075

 

김규항씨는 처음에는 지방선거 패인에 대해 얘기하려 했나보다. 그런데, 제 이념을 묻는 논쟁으로 번지고 있도다. 진중권이 밟혔기 때문이다. 아니 밟은 거지. 그러니 진중권씨가 발끈한 거고. 물론 제 이념적 출신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고 할지 모르겠으나 이 논쟁이 그것의 중요함을 깨워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규항씨가 공적 담론을 조성하려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으나, 그것도 동의할 수 없다. 김규항의 블로그에 이상한 나라의 진중권 시리즈를 보아도 그렇다. 읽어보면 볼 수록 원래 가졌던 설득력이 점점 떨어지다, 특유의 자뻑론에 빠지고 있다. 김규항 그 양반이 비장하다거나 사람 마음을 불편케 하는 글을 써서 싫어할 수 없다는 세간의 평가는 차지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그 양반의 불편함은 오로지 '자뻑' 때문이다. 게다가 고상한 척 하면서도 결국 동네방네 기웃대며 논리적으로 기댈 곳을 찾아다니니,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요기의 댓글을 보라. 진중권을 씹어주는 고마움에 절절 맨다.

 

진중권씨는 대중 매체에다 꼴 사나운 실명비판에 '빨간 자지' 운운하며, 논쟁의 상대방을 원색적으로 긁어 놓고 있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 대상이 '말이 통하지 않는' 극우 보수에 대해 사용하던 명랑 혹은 시니컬한 대응을 김규항씨에게도 동일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김규항씨도 진중권씨의 언행이 반공적인, 매우 강력한 반공주의 효과를 갖는다고 반박하는 거 아니겠나(물론 진중권의 반공주의 효과에 대해 실증한 것은 없지만).

 

나아가 진중권씨는 지젝에서 벤냐민까지 언급하며 수사(?)적이고 현학(?)적으로 김규항 까기를 시도한다. 진중권의 글은 한 마디로 잡당글에 가깝다. 자유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든가, 자유주의자도 진보신당에 있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든가, 도리어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낡은 이념이라고 새로운 대체제를 제안하든가, 그 모든 것들이 진보신당의 큰(?) 그릇에 다 담을 수 있음을 입증하든가, 이번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분명히 논증하든가 하면 될 것이지, 지리멸렬하게 논쟁의 핵심을 갉어먹는 것들에 목메고 있는지 모르겠다. 진중권씨의 글이 감점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쓰잘데기 없는 건 빼고 본질만 얘기해도 되지 않나. 그런데 진중권씨는 논쟁을 유희의 대상으로 생각할 뿐, 논쟁을 통해 논쟁의 방외에 있는 이들에게 진지함을 던져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둘 다 자신의 이념이나 스탠스만 강조한 나머지, 논쟁글들의 수사가 마치 복어가 몸을 부풀리듯 볼썽사납게 된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양비론이든 뭐든 간에, 이런 글을 남기는 이유도 저들의 논쟁을 보면서 하염없이 힘이 빠지는 내가 견디기 힘들어서이다. 누구는 강단에서 쫒겨나 붉은 돼지타고 하늘을 가르겠다고 하시고, 누구는 사회주의 어떠네 이러면서 좌파 밴드만들 궁리나 하고 있고.

 

뱀발: 김규항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상한 나라의 진중권이 시리즈로 연속해서 올리고 있으니 참조하시길.

 

근데 김규항씨의 주장이 '사민주의 실현의 기반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가까운 입지를 가진다'는 말은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원한관계는 없으나 저 말 속에 자신이 사민주의를 위해 무슨 사회주의 총대를 메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저 말은 뒤집으면 '극우 보수주의가 중도 보수주의 실현의 기반'이라고 차용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김규항씨 글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글들은 읽으면 읽을 수록 유치하기 짝이 없다. 어느 고등학생의 편지를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뒤받침하는 그 이면에는 자신이 꼭 유명인이고, 사회적으로 명망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 처럼 말이다.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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