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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08
    할러웨이-Change the World Without Taking Power
    공돌
  2. 2006/08/08
    두개의 글.
    공돌
  3. 2006/08/08
    카프카
    공돌

할러웨이-Change the World Without Taking Power

아직 손도 못대본 책이다. 하종강의 홈페이지에 누군가 글을 올렸는데 출처는 밝혀야겠다.

 

http://www.hadream.com/ 여기에서 박종호 <말꽃마당> 56번, 진호님의 글.

 

그의 글을 간단하게 요약해본다. 그냥 이 책에 대한 설명이므로 다른 평가는 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Change the World Without Taking Power)'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그 책에서 책을 쓴 저자 할러웨이(John Holloway)는 본문에서 "권력의 논리에 빠져드는 저항의 논리"를 논박한다. 모종의 진보정당을 통해 의회 집권을 통해 세상을 바꾸던(베른슈타인), 전면적인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던(로자 룩셈부르크), 이는 결국 '국가(the state of nation)' 중심적인 저항이며, "의도적이던, 의도치 않았던, 권력의 룰에 참여하게 되는, 즉 자신이 저항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 도리어 그것이 되어 저항하는 모순"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분석한 뒤,

 

"할러웨이는 이러한 시도들이 모두 역사적으로 패배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권력에 저항하려면 반(反)권력이 되어 저항해야 한다면서, "권력을 쟁취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바꾸기"에 대해 그 자신의 독특한 문체를 이용, 기염을 토한다."

 

기염까지 토했는지는 몰라도 반권력이 권력화됨을 비판하면서 게거품은 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부정하고자 하는 대상에 저항하고자 한다면, 상대방의 수사법을 채용해서는 안 된다."

 

이에 글쓴이도 "당연히 권력에 저항하려면 반권력적이어야 한다."라고 정리하고 있다.

 

꽤나 상식적인 글을 어렵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인용이 누구의 이익에 혹은 누구의 손해를 가하는지에 대한 손익계산서를 작성할 때, 사람들은 또 개떼같이 공박을 시작한다. '그를 욕하지마, 혹은 그는 비난받아 마땅해.' 그리고 내가 공격받게 되고, '내가 공격받고 있다. 뭉쳐라. 적들이다. 조지자.'. 이러한 수순들. 후지다. 요게 그들의 수사법이고, 우리의 수사법이라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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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글.

 “한국사회의 모든 조직과 집단의 문제가 다 그런 식이다. 일반적인 지지와 일방적인 반대만 있다. 중간적 입장은 매우 희귀하다. 양극단의 전선이 형성된 ‘전시체제’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전시체제’에서 ‘내부비판’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건 이적행위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내부의 문제는 스스로 곪아서 터질 대까지 내버려둔다는 게 사실상 철칙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강준만, '이건희 시대' 중에서 

 

중간적 입장에 대해서는 노동운동 진영도 동일한 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적이고 임금투쟁에만 주력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회 안정만이 취약해 자신이 혼자 가족 등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직 먹고 살기 위해 임금 인상에 매달리고 해고에 극단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사실 노동귀족을 낳는 가장 큰 요인은 '기업별 교섭'이라는 한국의 노동조합체계다. 서구의 노조가 개별 기업의 '시장임금' 자체를 받아들이는 대신 국가 차원의 복지와 '사회적 임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타협을 추구했다면, 한국의 노조는 고립 분산적인 기업별 교섭을 통해 자기 회사 노동자들의 이익만 추구했다… 한국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오직 분파적 임금 인상에 매몰되는 '경제주의 전투성'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겨레21(조계완 기자) 576호 '노동귀족은 어떻게 탄생했나'

 

이런 것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많으나, 현장에 뿌리를 박고 있는 노동자들과 현장 활동가들은 이러한 지적을 심심찮게 하고 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노동교육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래서 카프카를 인용해보았다. 앞의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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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혁명이 증발하면 나중에 남는 것은 새로운 관료정치의 진흙뿐입니다. 괴로운 인류의 쇠사슬은 관청 용지에서 생겨납니다."

 

- 박홍규, 카프카평전, 4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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