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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6/20
    자살
    공돌
  2. 2007/06/18
    장고항 낚시
    공돌
  3. 2007/06/18
    양준혁
    공돌
  4. 2007/06/12
    알량함
    공돌
  5. 2007/06/12
    연구라는 것
    공돌

자살

자살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자살을 찬성하는 친구의 요지는 거두절미하고 "자기결정권"이었다. 한 마디로 자신의 "선택"하에서 이뤄진 것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한 마디로 개소리다.

 

 

태어난 것도 자신의 선택이 아닌 한 죽음도 스스로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죽음 뿐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전개되거나 강요되고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진다고 우리의 삶이나 생각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그건 그저 "가정"일 뿐이다. "내가 그것을 할 수만 있다면"같은 이야기란 말이다. 

 

세상에 선택할 것이 그리 많은데도 하필이면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거니와 선택할 것이 없어 오직 죽음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열사의 죽음이라는 것도 사실 열사를 둘러싼, 이타적 죽음을 선택한 자의 가족을 생각할 때, 그 죽음이 한 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 선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죽음으로 항변하고, 죽음으로 말할 수 밖에 없는 외눈박이 집단인 사회도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기형적 사회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개인의 죽음으로가  아니라 집단적 저항으로 가능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에 대해 개인이 초개같이 산화하는 것은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수만개 실핏줄로 엮어 낳은, 자신과도 다를 바 없는 저 자식을 갖다버리는 일도 선택가능한 문제가 될 수 있는지의 논쟁도 "선택"과 "자기결정권"으로 설명은 가능하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면 뭐하는가. 나는 이런 자체가 상상력을 떠나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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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항 낚시

 

 

낚시를 했다. 그리고 갈매기를 가까이서 보았는데 눈이 너무 귀엽더라.

나는 모습이 너무 근사했고, 날개를 편 모양이 자유롭게까지 느껴졌다.

 

우리는 몇 마리의 우럭과 문어를 잡았고, 그것들은 '소주'와 함께 입으로 직행.

 

그러다 태국 속담이 갑자기 생각났다.

 

"땅에는 쌀이 있고, 물에는 물고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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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

"뭔가 끊임없이 갈구해야 한다. 요즘 후배들은 그런 면이 부족한 것 같다.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 할까. 야구는 끝이 없다. 잘 하면 더 잘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양준혁의 말이다. 배울게 많다.

 

당대의 모든 바이올린 기술을 총망라했던 지고이네바이젠. 그 곡을 만든 '사라사테'도 마찬가지이다. 양준혁을 '천재'라고 부르는 것처럼 사라사테도 천재라고 불렸다.

 

그들 둘의 공동점은 '반복적 노력'이다.

 

사라사테도 자신에게 그의 천재성에 대해서 말하는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하루에 14시간씩, 30년간 지금까지 연습하면 천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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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함

내 속에 아직도 알량함들이 남아 있더라.

 

자기점검이 아직도 너무나 필요하다.

 

그래서 리영희 선생의 몇 마디 말씀이 귀에 꽂힌다.

 

- 한국의 젊은이들이 점차 보수화되어간다고 합니다. 사회과학서적을 읽는 학생들을 보기 어려운 것은 물론, 대학가의 서점도 거의 사라진 상태입니다. 오래전부터 한국사회에 제기되어 온 '인문학의 위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판단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젊은이들의 보수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것 역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지난날 치열하게 진보와 개혁을 위해서 싸웠던 우리들의 처지에서 보면, '젊은이들의 보수화'는 우리가 바라던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그처럼 자유분방하게 누리며 살 수 있는 사회로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으니까.

인간의 욕구와 창의력을 마음껏 발현하고, 심지어 '버릇이 없다'는 말을 들을 만한 행동을 우리가 과거 언제 해 봤나요? 시간이 흐르면서 도덕과 관습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젊은이들의 보수화가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가운데에서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각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괴하는 한국사회의 도덕적 파탄에 대해서는 깊은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검소한 생활, 고귀한 사고(Simple life, high thinking)',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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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라는 것

공부는 실천을 위한 탐구과정이지만, 연구는 대상을 탐구하는데 그친다.

 

종종 연구물을 읽어보면, 내가 지금 뭐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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