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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차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 <서울선언> 채택, 신임 실행위원 선출과 향후 행동계획 수립으로 이틀간의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MFA) 총회 폐회. 17일의 차별철폐 걷기대행진과 18일의 교육훈련 업데이트 이어질 예정 1. 9월 15일, 16일 양일간 열린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Migrant Forum in Asia) 총회에서는 13일, 14일 열렸던 제9차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 결과를 담은 <서울성명>을 채택하였습니다. 회의참가자들은 5차 수정안까지 검토한 후 최종적으로 그동안 한국에서 이룩한 이주노동자 정규화 노력 (연수제도 철폐, 미등록 노동자 합법화, 새로운 외국인력제도 수립 촉구 등)과 이주노동자 문제를 사회의 주요이슈화한 외노협의 노력 등을 특별히 언급키로 하고 이를 성명서 위원회에 위임하였습니다. 2. 이어진 향후 행동계획 수립에서는 이번 회의 주제인 “이주노동의 여성화”와 관련하여 특별히 한국의 여성이주노동자상담소들을 중심으로 후속회의를 개최할 것을 제안하여 내년도에 서울에서 여성이주노동자관련 회의를 갖기로 하였습니다. 3. 2년간 아시아네트워크의 활동을 진행할 신임 실행위원으로는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홍콩(홍콩단체에서 실행위원을 내기 어려울 경우, 한국과 대만이 상의하여 내기로 함), 동남아시아에서 싱가폴, 인도네시아 그리고 서남아시아에서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의 단체가 각각 1인의 실행위원을 선임 활동키로 하였습니다. 4. 17일은 특별히 이번 회의 참가자들과 국내 이주노동자, 중국동포, 지원단체와 양대노총,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차별철폐 걷기대행진 - 이주노동자차별철폐의 날’ 이 탑골공원-마로니에공원구간에서 진행되며 행진을 마친 참가자 전원이 시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마당을 마로니에 공원에서 6시까지 진행할 예정입니다. 5. 18일 토요일에는 아시아 이주노동자 관련 교육훈련활동 업데이트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주노동자 건강과 성, 귀환프로그램, 이주노동자 권리주창 등 세 가지 주제에 대한 교육훈련 업데이트에도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공동대표 이철승 최서연 최준기 (직인생략) 제9차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MFA) 10년: 회고와 전망” 2004년 9월 13-14일 대한민국 서울, 감리교여선교회관 서울 성명 (5차 수정본) 2004년 9월 13일부터 14일까지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MFA),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JCMK)와 아시아이주노동자센터(AMC)가 공동 주최하여 서울에서 개최된 제9차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 (주제: “개발을 위한 이주와 이주노동의 여성화 과정”)에 참석한 아시아 19개 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캄보디아, 중국,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라오스, 말레이시아, 네팔, 파키스탄, 필리핀, 싱가폴, 스리랑카, 대만, 태국, 베트남과 한국 -에서 온 우리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MFA) 회원단체들과 풀뿌리 이주노동자 조직, 노조, 노동단체, 여성단체, 개발단체, 민간단체, 지원단체와 이주노동자권리옹호활동가 등 160명의 참가자들은 이주노동자들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해온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의 10주년을 기념하며 함께 모여 이주노동자들의 현 실태와 문제를 논의하였다. 제9차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는 이주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성을 증진하고, 주창하며 옹호해온 아시아네트워크인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 1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회의이기도 하다. 이번 회의의 주제는 인권과 안보, 개발과 여성의 권리와 존엄이 상충하는 국제적 노동이동의 복잡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번 회의에 모여 아시아이주노동의 현황과 경향 그리고 주요 관심 영역에 대해 논의하고 전략적 응답을 모색하는 한편 우리 앞에 놓인 여러 도전과 함께 승리를 자축하였다.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이 이룩한 중요 성과는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를 위한 유엔 이주민협약 비준 캠페인 조직, 국제이주노동의 중심부에 국제이주노동과 인종주의, 외국인혐오주의에 대한 논의 배치,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송금을 활용한 이주노동자 본국 귀환프로그램을 시도한 것 등이다. 우리는 “아시아에서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며, 일하며 투쟁”(1994년에 개최된 첫 번째 아시아이주노동자회의 주제)해온 우리의 노력을 새롭게 하고 결의와 과제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협력을 확대하고 심화하기 위해 모였다. 그러므로 이주와 개발, 세계화와 지속가능한 개발, 국가안보에 우선하는 인간안보, 인신매매와 이주노동, 이주의 여성화, 이주노동의 여성문제, 노동의 비공식화, 귀환과 송금,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복지 그리고 국제인권기준 등을 중점적으로 논의하며 우리 참가자들은 다음의 사항을 촉구한다. - “반테러법(테러방지법), 적법한 재판 절차없는 구금, 강제 HIV/AIDS와 임신테스트 등”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차별적 법령 폐지할 것. -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합법화와 연수제도를 철폐할 것. - 외국인가사노동자와 연예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동법을 적용, 보호할 것. - 이주노동자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옹호하며, 가족과 함께 할 권리,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권리, 모든 이주노동자와 가족이 건강보호와 사회서비스를 받을 권리,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를 위한 유엔협약에 명시된 이주노동자와 가족의 권리와 보호할 것. - 결사의 권리, 노조가입 권리, 참정권과 이주노동자와 배우자의 시민권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해 노동력 송출국, 고용국간의 양해각서와 쌍무 혹은 다자간 협정 체결할 것. - 인력 송출업체에 대한 규제와 감시를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인신매매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 - 성차별을 포함하여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배제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받을 권리. - 출국 전 교육을 포함하여 이주노동의 전 과정을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저축프로그램과 대안투자와 귀환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훈련을 제공할 것. -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를 위한 유엔협약과 이주노동자 관련 ILO협약의 즉각적인 비준. -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서남아시아지역협력체(SAARC) 등과 같은 아시아 역내 기구를 통해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를 위한 정책, 지침과 협의를 실행할 것. 세부 권고사항 우리의 구체적인 권고사항은 다음과 같다. A. 국가안보 체계와 관련하여 모든 이를 위한 인권과 존엄성의 존중에 기초한 인간안보의 중요성 - 이주노동자 권리옹호를 위한 이주노동자 권리침해와 이주노동자 이슈 관련 통합적이고 성별 구분에 기초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 이주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민간단체와 시민사회 강화. - 이주노동자 인권향상을 위해 여론, 사법제도와 관료들의 태도, 실행과 관점 변화를 위한 의식개혁. - 세계평화 건설을 위한 전쟁반대운동 동참과 국제연대와 네트워크 강화. - 이주노동자 인권 캠페인의 적극적인 전개. - 이주에 관한 다양한 인권에 기초한 접근. B. 이주의 여성화에 관한 성인지적(gender-sensitive) 응답의 강화 -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여성이주노동자의 존엄성과 기본적인 인권 옹호와 함께 공정하고 공평한 임금을 통한 여성의 일에 대한 가치부여. - 교육을 통한 권리주장, 직업적 성별분업에 따른 고정관념 타파, 노조 조직을 통한 노동권 보호를 위한 여성능력 강화. - 보건산업 노동자 송출국에 대한 보다 높은 임금 요구와 고용국에 대한 서비스와 보상요구를 통한 “두뇌 유출”에 대한 문제제기. - 여성들에게 충분한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여 정당한 임금과 수입을 통해 해외취업이 강제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노동력 송출국 정부에 대한 로비. - 결혼관련 포함 다양한 형태의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교육캠페인 착수. - 이주노동자 가족 재회 보장을 요구하는 유엔이주노동자협약 비준 촉구. - 국제결혼가정 자녀들 문제와 관련한 국내 정책과 법제화 촉구. C. 노동의 비공식(비정규)화 경향 반대 캠페인 - 각국의 사회운동 확대를 위한 전통적 노조 역할에 대한 재고. - 노동착취 사례에 대한 수집과 데이터베이스 구축. - 비공식 노동에 대한 정부 고위급 차원의 논의 촉구. - 이주노동과 관련하여 늘어나는 노동의 비공식화 경향에 대한 반대캠페인. - 고용국 내 송출국가 대사관에 자국 비정규 이주노동자에 대한 지원촉구와 로비. D. 지속가능한 개발 촉진, 국가간 불평등 해소와 이를 위한 이주노동자와 그들의 송금 활용 - 지속가능한 개발과 송금 관련 이슈에 대한 정보와 교육캠페인 제공. - WTO-GATS mode 4에 대한 입장정리를 위해 아시아이주노동자포럼 회원 및 이주노동자 권리주창 활동가들을 위한 교육캠페인 실시와 2005년 홍콩에서 개최될 WTO회의에 대한 로비문건 작성. - 이주와 귀환이슈와 관련하여 대사관과 영사관들의 의식향상과 능력제고를 통한 이주노동자저축과 대안투자(MSAI) 프로그램 참여 유도. - MSAI, 송금경로와 사용, 이익에 대한 조사연구 시행. -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MSAI 캠페인 강화, MSAI 프로그램 지원과 출국전 교육에 MSAI가 포함될 수 있도록 지방정부에 대한 로비. - 회원간 교환프로그램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송금저축프로그램에 대한 MFA 회원들간의 정보공유와 역량개발 시행. E. 모든 이주노동자의 건강권과 복지를 위한 인식제고 - 이주노동자를 위한 의무 건강관리계획 수용을 위해 송출국과 고용국간 양해각서 체결 로비와 ASEAN, APEC, SAARC과 같은 역내 기구 활용. - 송출국과 고용국에서 이주노동자 출국전 교육, 현지 오리엔테이션과 귀환 및 귀환프로그램에 더 나은 건강과 복지에 대한 인지교육 통합. -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건강관리 서비스 개발과 권리주창을 위한 교육과 정보의 제공. - 직업병, 주거 및 노동환경, 특정 취업분야의 유해환경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건강관련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구축. - 이주노동자의 의료서비스 접근성과 질적 향상을 위한 활동. |
“낮은 자리 들꽃이 하나님입니다” 집나온 불우청소년들 품어 ‘들꽃피는학교’ 가꾸는 김현수목사
그 들꽃의 풀씨들이 경기도 안산노동교회에 날아든 것은 1994년 7월이었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의지하던 셋방살이 교회였다. 목사는 처음 이 풀씨들을 밖으로 쓸어 보냈다. 어디서 얼마나 뒹굴고 다녔는지 교회는 형언할 수 없는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거름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청국장을 띄울 때 나는 냄새 같기도 한” 악취에 하나님의 집은 장악되어 있었다.
목사는 아침을 먹이며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엄중 경고했다. 그러나 풀씨들은 잊혀질 만하면 교회 안으로 스며들었다. 때론 교회 안에 똥까지 싸질러 놓았다. 경찰의 구둣발과 매질은 잘 참았던 목사였지만 그 꼴은 두고 볼 수 없었다. 86년 창립 이래 한번도 잠그지 않았던 교회 문에는 커다란 자물통이 걸렸다. 풀씨들은 교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안산서초등학교에 운동을 나갔던 목사와 사모는 학교 운동장에 웅크리고 있는 풀씨들과 조우했다. 아이들은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와했다. 달려와서는 팔에 매달려 밥을 달라고 졸랐다. 원망을 들을 줄 알았던 목사는 당황했다. 문득 이들의 사연이 듣고 싶었다. 아침을 먹여 보내며, 저녁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날이 바로 김현수 목사의 진로를 바꾼 문제의 10월9일이었다.
가정이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없었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다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고 했다. 엄마가 당하던 주정과 폭력은 아이들에게 향했고, 결국 아이들도 집을 나와 들판의 풀씨가 되었다. 허름한 아파트 옥상이나 공사가 중단된 건물, 연립주택 계단 밑, 철거중인 폐가 등이 이들의 거처였다. 그런 곳에서는 어디서나 본드가 엉켜있는 라면봉지, 니스병이나 부탄가스통이 발견됐다.
갈곳없는 풀씨처럼 떠돌다가 가난한 교회 찾아든 ‘문제아’들 10여년 노동사목 길을 바꿨다
‘그날’ 이후 경찰에서는 목사를 자주 호출했다. 풀씨들은 경찰서에 끌려가면 보호자로 목사 부부의 이름을 댔던 것이다. 그러면 목사는 신병인수증을 써주고 이들을 데려나오곤 했다. 동네 사람들도 부아 난 얼굴로 교회를 찾아오곤 했다. 아이들이 일을 저지른 것이다. 아이들 중에는 앵벌이 소매치기는 물론 교회만 3백 군데를 털었다는 왕도둑 민이(가명)도 있었다.
목사 부부는 자신도 모르게 이 여덟 풀씨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그제야 “예수님이 진작에 세워놓은 계획”을 인정했다. 풀씨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셋방살이 교회 사택에서 여자 아이 두명이, 교회 공부방에서 남자 아이 여섯명이 잠을 자도록 했다. 목사는 남자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다.
올해로 벌써 10년째가 된다. 그동안 목사 부부는 수없이 많은 눈물의 밤을 보냈고 아이들과 싸움의 날들을 보냈다. 내상이 깊었던 아이들도 ‘예수가정’에 적응하는데 고생했다. 이런 눈물과 아픔은 풀씨들이 하나둘 꽃을 피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제 예수가정은 11개로 늘어났다. 어엿한 들꽃피는마을을 이뤘다.
목사 부부가 꾸려가는 잔디네가정, 김금훈·양진희 선생 부부의 야긴새별이슬가정, 백길권 선생의 코스모스가정, 정기영 선생의 아모텍진달래가정, 권인희 권사(목사의 어머니)의 새밭토끼풀가정, 김문규 김진영 부부의 인애해바라기가정, 오순석 선생의 한신예수가정, 성기만 정청자 선생의 상록수가정, 유승권 여승현 부부 선생의 이랜드들국화가정, 김미연 선생의 백합가정, 송진혜 이선희 선생의 안산한신청소년쉼터 등이 그곳이다. 풀씨는 강원도 봉평의 유기농 공동체로도 날아가 그곳에 또 하나의 가정을 이뤘고, 전북 장수의 덕유산 기슭에도 한 가정을 탄생시켰다. 안산의 들꽃마을에는 지금 55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다. 들꽃 가정을 거쳐 사회로 나간 이들은 300여명에 이른다. 박미선선생 등 일부 들꽃 선배들은 들꽃학교 선생으로 혹은 후원자로 되돌아왔다.
타이르고 싸우며 흘린 눈물로
소담하게 피워낸 들꽃송이들
이제는 희망씨앗 날려보낸다
들꽃 가정이 늘면서 들꽃피는학교도 생겼다. 들꽃마을 아이들 가운데 40명은 정규학교에 다니고, 정규학교에 다니기 싫은 아이들 15명은 이 학교에 다닌다. 10월엔 대지 155평에 연건평 360평의 그럴듯한 건물과 함께 들꽃청소년센터가 완공된다. 이곳엔 들꽃피는학교와 기도의집 자원봉사센터 청소년대안공동체연구소 청소년상담소가 들어선다. 세상 밖으로 밀려났던 안산의 풀씨들은 비로서 자신의 꿈을 키울 공간을 갖게 됐다.
“마을과 학교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준 선생님과 자원봉사자, 사랑의 인간띠를 만들어준 교회와 기업 지역사회 후원자들 덕분입니다. 하나님이 참다운 사랑을 실천하는 길을 드러내기 위해 내게 보내주신 그 아이들이야말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이 아이들은 낮은 곳에서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학교를 그만 두고 거리로 밀려나 있는 아이들의 숫자는 7만명이라고도 하고, 10만명이라고도 한다. 정확한 통계조차 없으니 이들을 위한 정책이 있을 리 없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더 많은 아이들이 지금도 세상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들꽃피는마을과 들꽃피는학교의 선생님들은 매일 아침 하루를 열기 전, 이곳을 거쳐간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아이들과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500여명의 후원자들을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목사는 아침 5시반에 일어난다. 예수님께서 이 아이들과 함께 하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또다른 상처입은 사람 위로하고 좋은 길로 이끄는 사람이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묵상에 잠긴다. 대개는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으며”(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이 주제말로 떠오른다. 지난 92년 깊은 번민의 수렁에 빠졌을 때 그를 잡아준 말씀이다.
목사는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대신하고, 한신대학교에 진학했다. 재학중 유신반대 학내시위를 주도하다가 2년4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고, 80년대 위장취업을 거쳐 86년 안산노동교회를 세웠다. 노동교회를 하면서 감방을 들락날락하다가 이 아이들을 만났다. 경찰도 잡지 못해던 그의 발목은 이 아이들에 의해 붙잡혔다. 96년 안산노동교회 담임마저 놓아버리고 들꽃피는마을과 학교에 전념했다. 그는 최근 <똥교회 목사의 들꽃피는마을 이야기>(김현수 목사 지음, 청어람미디어 펴냄, 8900원)라는 활동 보고서를 펴냈다. 책갈피마다 마른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흔치않은 이야기와 꿈이 차곡차곡 담겨있다. (031) 486 8836
위의 글은 <똥교회 목사의 들꽃피는마을 이야기>를 지은 김현수 목사에 대한 한겨레신문 2004년 9월 9일자 기사입니다.
풀뿌리 노동자 연대 (APWSL)사례를 중심으로 본
노동자 국제연대활동의 소고 (초안)
장창원목사(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 한국위원회 코디네이터 )
국제연대활동가 여러분 반갑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풀뿌리 노동자들의 국제연대, 민주적이고 자주적 노동조합운동과 국제노동자연대를 추구 약진하는 아시아·태평양 노동자연대(이하 APWSL)를 대표하여 한국위원회 코디네이터 인사합니다.
나는 먼저 영어를 잘 못하면서도 국제관계의 민주노총(이하 KCTU) 토론회에 나아와 그 동안의 노동자 국제연대의 역사와 경험, 앞으로 전망을 말 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특별하게 감사해야 할 것은 청년의 때 오랜 시간영어 학습(10년이상)을 하였지만 능통하게 회화를 못한다는 고민과 자책감에서 나를 해방시켜준 백 선생님과 산업선교 국제파트 동역자들에게 감사를 한다다. 요즘은 국제연대의 긴밀한 연대와 소통의 통로가 되어주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요즘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이라는 말이 사회 통속어가 되기도 한다. 영어회화의 여러 가지 특이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변칙적인 학습방법이 시중에 화제가 되고 있다. 군사, 경제, 권력가들을 조련하듯이 원칙적인 영어를 사용하는 국제담당자들이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하게 교육된다는 말이 있다. 좀 영어가 어눌하지만 한국식 영어, 민족전통의 가치관, 풀뿌리 민중방식의 국제교류와 협력으로 기본권을 찾기 위해 투쟁하는 올바른 한국 노동자, 민중, 사람, 동지들이 필요하다.
( 들어가는 말 )
APWSL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활동과 보다 광범위한 노동조합운동에 있어서의 성적 평등과 민중들의 인권운동의 지향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1982년대 16개국의 참가로 만들어진 단체이다. 한국에서는 80년대 말부터 연결이 되어 91년 한국위원회가 정식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참가를 하였지만, 곧 몸 살리고(반공국시) 명예 살리기(자리차지하기)는 국제운동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국제노동사회의 진정한 운동의 지향점이 노동자의 계급성과 자주적인 노동조합 정신에 기초한 평등, 해방, 연대, 투쟁의 이념이었습니다. 요즘 논란이 되는 국가보안법이 활개를 치며 래드콤프렉스가 광풍처럼 몰아치는 한국사회 속에 진정한 운동(노동, 통일, 평화)을 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요즘 APWSL-K 코디네이터와 한국노동네트웍크협의회 운영위원장의 역할을 겸임하며 최근 아시아 레이버네트웍을 만드는 일을 추진 중에 있다. 산업과 지역을 넘어 국가와 자본의 벽을 넘어 아래로부터의 소통과 연대로 새로운 대안사회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만들어가는 행동입니다. 노동자들의 연대가 민중의 국제적인 총 단결의 무기로, 초국적 자본과 추악한 전쟁광들의 중심대표세력인 신자유주의 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모든 민중들이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세계를 만들는 일이다. 진리는 통하여 우리의 끔에도 소원통일을 이루는 일들을 하자는 것이다.
민중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 전태일을 비롯한 죽음을 넘어선 수많은 노동,해방,통일의 열사들과 함께하는 결사체 민주노동조합운동? 당당하게 함께 해야 할 제3세계 노동자, 민중들과의 연대활동을 등한시 한다면 운동은 자기정체성을 잃게 되는 것 입니다. 미국의 아시아지배전략이 강화되고 한반도에는 60여년간 전쟁위협이 계속되는 현실의 구조를 벗어나는 길은 동아시아의 노동자, 민중이 연대 투쟁하는 길이다. 민주노총이 아시아, 태평양노동자연대에 함께 하는 것은 사필귀정이다. 그 동안 레드콤프렉스와 반민족적인 지도자들의 미국주도 사업방식이 독재의 시녀 노릇하던 한국노총이 참가하는 ICFTU국제조직에 KCTU 가 가입한 것은 수구, 폭력적 권력과 자본가들의 주먹을 피하려 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UN이 미국의 잘못된 폭력전쟁을 통제 할 수 없듯이 미국과 친자본의 그 늘 속에서 살아가는 국제연대기구들은 노동자연대의 풍부한 역할을 감당 할 수 없다.
( 몸 말 )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우산 속에 머물고 있어서 조금은 늦게 닥친 한국IMF경제위기 이후 우리는 제국주의 주먹이 ICFTU 체게속에서 협상최우선주의로는 피할수 없음을 알았다. 어용노총이 바닥 풀뿌리 노동자를 대변할수 없는 역사가 말해주드시, 제2의 ICFTU체제들을 통하여 그 마수같은 제국의 주먹을 피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결코 역사의 도전은 피할수없음을, 피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다면 KCTU의 아름다운 정신답게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지구상 미국과 당당하게 맞서는 나라들이 몇 나라있다. 아니 이제 단체나 나라가 맞서기에는 늦었다는 설득력있는 주장도 있다. 결국 세계인 모두가 자주적이고 민중적인 운동의 자각과 혁명적인 의식화가 되어 민중들이 일어섰던(한국의 군사독재 폭군들을 물리친 민주화운동의 사례들) 풀뿌리 국제연대활동이 더욱 중요하게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의 제3세계중심의 국제연대운동의 경험이 있다.
그 동안 등한시했던 APWSL을 토론 자리에 초정함은 민주적인 절차와 논의를 하는 민주노총의 원래취지와 정신을 살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민주노동자들의 결사항쟁 국제연대활동을 시작하려는 토론의 자리를 마련한 것 같다. 지난 5월 MAY DAY 네팔의 노동자들의 총회를 APWSL 대표단은 참가하고 돌아왔습니다. 어릴 적 사회시간에 세계의 이상적인 중립국가 체제 2국가를 배웠는데 스위스와 네팔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속에 살면서 돈에 눈이 어두워서 스위스만 바라보았지, 지구의 지붕이라는 네팔은 기억 속에 잊혀지고 있었다. 한국이주노동자운동의 주류를 아루고 있는 동지들이 네팔노동자들이다. 최근 네팔을 방문하여 새롭게 사상의 자유를 체험하며 다시 생각해보았다. 남북으로 분단된 사회 속에 잃어버린 시상의 자유 반쪽을 어떻게 챃아야 하는가?
6- 70년대 박정희군사독재는 우리의 숨쉬기와 같은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구속하며 경제개발을 앞세워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기계처럼 노예노동을 시켰습니다. 지금까지도 일정부분 자유를 구속하며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해방자 예수를 따르는 교회는 말 못하는 노동자와 민중들의 아픔을 함께하고 이 땅에 참자유와 해방의 아름다운 나라를 회복하기위한 활동으로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가며 대변자가 되기도 하고 교육, 조직, 상담, 대책활동을 하였습니다. 그곳 노동자들이 모이는 교회에 국제적인 인권, 노동운동가들이 함께하며 국제담당자로 자원하여 함께 소식을 알리고 소통과 연대의 역할을 하여 국제연대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국제연대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운동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목적을 어떻게 잘 실천하여 실현 할 것인가? 그 속에는 이중적인 선교지역의 중복을 피하기 위한 교회들의 조직이 있어서 여러 논의구조를 가지고 역할분담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협의회(KNCC), 아시아교회협의회(CCA), 세계교회협의회(WCC),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등이 노동,민중,인권,통일,환경, 평화 등등의 문제에 연대하고 있다. 70년대 산업선교는 카토릭, 감리교, 기독교, 예수교 등이 연대와 단결, 투쟁의 조직활동을 유기적으로 하였다. 도시, 농촌, 빈민이 함께 하여 산업선교를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노동교회, 작은교회, 민중교회, 생명공동체, 평화공동체, 예수공동체 등 등의 활동은 유기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라나 90년대 세계질서의 재편과 IMF 경제위기 이후 자본의 횡포는 대형교회만이 교회 인 것 처럼, 대공장만이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중심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대형재벌들과 교회들이 우편향적 사고를 치면서 하나님나라(해방된 사회, 자유로운 사회, 노동자가 주인된세상) 운동의 본질을 흐려 놓았다. 이제는 기득권과 수구보수화의 반동으로 시청 앞에 성조기를 들고 난리법석을 치고 있다. 지금도 소공장의 비정규직과 작지만 노동교회, 민중교회들은 생명살기기, 평화운동을 위하여 어려운 몸부림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2001년 아프리카 르완다의 평화와 화해의 선교협력동역자로 1년간 다녀오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있다. 폭력적인 자본들과 숫자놀음(맘몬이즘)하는 권력가들로 세계는 폭력전쟁으로 난무하여 죽여가지만 소수 정예화, 의식화, 깨어있는 자주, 평화, 주체적인 노동, 민중, 통일 운동가들의 풀뿌리 민주적인 활동으로 생명력과 운동력이 회복시키려 한다. 흩어져 있는 제3세계 노동자, 민중들은 진 흙속의 보석과 구슬이다. 이것을 민주노총의 건설과 비정규직노동자의 조직화의 방식으로 국제연대활동으 하여야한다. 아시아노동자를 조직하고 교육하고 연대하여 묶어 민중의 힘으로 모여 무기로 사용하자는 것이 새로운 희망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것이 세계사회포럼이며 반전평화운동이며 지역노동연대입니다. 인터넷정보통신운동으로 세계연대의 폭이 넓어지고 현장노동자들의 교류를 통한 일보 전진하는 노동운동이 미래사회는 풀뿌리연대가 승리한다는 예감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래의 APWSL운동은 풀뿌리노동자들의 현장교류방문과 연대사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유럽노동조합운동의 연대사업기금이 아시아노동운동의 발전기금으로 재원이 충단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럽으로부터의 자금지원은 종료되었다. APWSL회원국중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 등의 국가의 경제는 OECD가입 이상의 나라가 되었다.
그 동안의 APWSL의 조직활동가들은 아시아노동자연대운동의 필요성과 한국노동운동의 선도적인 활동성을 결합하여 아시아지역 노동운동이 세계 제3세계노동운동의 새로운 대안으로 마련되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노동운동의 역사와 투쟁성, 노동문화운동, 노동정보인권운동, 레이버미디어운동 등 등이 열악한 세계사회의 노동운동과 환경가운데 연대협력과 교류를 통하여 함께 나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한국다국적진출기업가 아시아노동사회속에 만들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과 한국내 이주노동자 취업허가제 등등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를 원하듯이 연대와 교류방문등의 추진을 이제 한국노동운동에서 자주적으로 책임성있게 나서야 할때 인 것이다.
힌국노동자도 더욱 어렵게 노동하는 다른나라와 대륙의 노동자들과 연대,협력사업을 구체적으로 하여야 한다. 멀리 가서 연대하고 회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가까이 주변의 이주노동자라는 국제연대의 장이 펼쳐져 있다. 풀뿌리는 밟히고 또 밟혀도 일어나는 민들레꽃처럼 생명력이 질기다. 지난 오월 네팔방문에 연대사를 한국어로 준비하였습니다. 영어는 자신이 없기도 하고 우리를 초청한 노동조합과는 APWSL 10년 교류의 나눔을 통하여 이주노동자들과 아주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이 네팔어로 통역이 되어 다른 연사들의 요약된 영어통역보다 가깝게 청중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메이데이를 기념하기 모인 청중들은 영어보다 모국어인 네팔어가 더욱 익숙합니다. 네팔어 통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일하는 오산노동자문화센터의 여러 이주노동자 운영위원 중의 한명이 네팔동지였었다.
APWSL의 한축을 이루는 산업선교, 민중교회운동의 노동자 연대운동 사례들을 간략하게 돌아본다. 한국의 노동선교는 70년대부터 여러 형태로 일본, 호주, 핀리핀, 인도네시아, 네팔, 아프리카, 인도, 등의 나라들과 국제연대의 관계를 갖고 노동자연대를 추진하였다. APWSL의 초기 조직과정을 보면 CCA의 산업선교 활동가들이 유럽과의 연결다리를 놓았다. 한국교회의 특이한 노동연대는 핀리핀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카사마코 조직이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활동하도록 노동활동가를 연대하여 보호하며 조직활동을 도왔다. 최근에는 활동가를 교환선교사로 받아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동역자로 장을 마련하고 있다.
60여년 노동자선교를 시작한 영등포산업선교회의 국제노동자연대 교육, 훈련원 경험을 나누고 있다. 70년대 한국노동운동의 못자리역할을 감당했던 영등포산업선교회는 90년대 다국적기업의 문제들과 산재노동자문제를 함께 하였고 96년부터 아시아노동선교훈련원을 만들어서 년 3-4차례의 교육훈련을 아시아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한국의 운동경험을 전달하며 아시아의 문화를 나누며 교육하는 1-3주 과정으로 한해 한차례는 이주노동자교육을 하기도 한다. 교회는 아프리카의 민중들과와 유럽노동자,민중들과 아시아의 노동자,민중의 단결하는 고리를 만들고 있다.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의 초창기부터 함께하며 연대의 다리역할을 감당하였다.
(나오는 말 )
미국을 중심으로한 초국적 자본의 횡표와 폭악성으로 아파하고 죽어가는 세계사회을 살려낼 희망이 태동되었다. “아래로부터의 세상은 가능하다” 2004년 년초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에 한국의 노동조합운동과 세계교회운동은 어떻게 참여할까 ? 궁금했는데 WCC와 WARC를 중심으로 유럽에서의 사회포럼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나름대로는 적극적으로 함께 하려는 것을 보았다. 아시아노동운동의 길잡이 역할을 준비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민주노총과 APWSL이 함께 참가하여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만들어 지기를 바란다.
최근에 오산이주노동자센터에는 남인도교회의 선교사가 3년간 한국의 노동선교와 연대운동을 함께 하기 위하여 독일남부지역 연합운동교회가 재정적인 지원을 하며, 예수교장로회총회를 통하여 함께 하겠다고 결정하였다. 노동자의 국제연대의 촉진을 위해서는 유기적인 관계속에 노동운동가들이 교류,방문,협력함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노동연대의 역사와 유래를 체계적으로 돌아보며 제3세계 민중중심의 노동운동이 하여야할 활동을 정리해야 한다.
노동자 국제연대의 원칙적인 입장은 연대의 협력관계의 평등성이다. 제3세계중심의 새로운 민중교회운동은 산업선교운동과 함께 아시아지역에 발전하고 있다. 한국이주노동운동의 초창기 한국교회는 최소한의 인권차원에서 이주노동자를 맞이하였다.
국제연대의 긴밀한 노동자네트웍크는 KCTU의 선진적인 활동과 투쟁이 아시아의 노동자들과 여러면에서 함께 해야한다. 자본은 자유롭게 흘러가는데 노동자들은 그흐름을 막지못하고 노예노동의 대물림에 안주한다면 세상은 폐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지난 제4회 세계사회포럼에서 제출한 한국합섬사례의 인도네시아 지역노동조합과의 교류협력사업의 내용과 APWSL 노동자 국제연대 운동의 활동가로서 죽어간 고 이성경동지의 영문보고서 등을 참고자료로 제출하며 글을 맺는다.
자료1) 한국합섬노동조합과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지역 노동조합 자매결연
■ 목적 : 정치적, 역사적환경이 유사한 두나라 노동조합이 연대함으로써,노동조합운동의 전환점에 있는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이 정권의 탄압과 무책임,자본의 탄압에 노출된 인도네시아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쟁취하고 나아가신자유주의 시장 착취당하는 한국과 인도네사아는 물론 아시아 노동자의 해방을위해 나아가는 새로운 노동조합 운동을 건설해 나감을 목적으로 한다.
■ 의의 :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착취와 전쟁, 그리고군부독재의 상황속에서 살인적인 노동탄압과 경제위기를 지나오고 있다. 특히한국은 인도네시아의 4번째 교역대상국으로써 5~600여개의 한국기업에 수십만의노동자가 종사하고 있는 관계에 있다. 그러나 저임금과 비인간적대우,불법부당행위를 자행하는 한국기업에 심각히 노출된 인도네사아 노동현실은신자유주의 세계화 착취로 두 노조의 국제적인 연대와 공동투쟁은 필연이었다.이는 수하르또 군부독재 후 철저히 시장경쟁이라는 명목으로 자본의 노동탄압을조장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으로 국내단위기업의 한국합섬노조와수라바야지역 노조와의 자매결연은 세계화, 신자유주의 반대에 있어 중요한의의를 갖는다.
■ 발전방향 : 인도네시아 정권과 자본, 신자유주의적 투기자본은 정치적 안정과자본의 이익을 철저히 교환하며 인도네시아 노동자, 민중의 삶을 파탄내고 있다.그러나 인도네시아 노동자는 노조탄압과 부당노동행위속에서도 법에 하소연할 수없는 현실에 있다.한국은 이러한 현실을 함께하는 상황이기에 노동조합운동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현 시기의 인도네시아 노조와 연대함으로써 민중의 조직을 대변할 수 있는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는 연대, 지원을 지속시켜, 취약한 인도네시아 노조의조직력 약화를 시급히 탈피할 수 있는 대중조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속에 철저히 노출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물론 아시아노동자 민중의 삶을 위한 연대를 지속, 확대함으로써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세계화반대를 위한 아시아 노동자 투쟁을 조직해 나간다.
Asia Pacific Workers Solidarity Links
Asia Pacific Workers Solidarity Links (APWSL) is a network of labour activists in the Asia Pacific region that has been formed to promote:
․ democratic ,independent and genuine trade unionism
․ international worker solidarity, especially at the grass roots level
․ gender equality in its own work and the wider trade union movement
․ worker and other human rights
․ APWSL has been in existence since 1982 and is active in 16 countries in the Asia Pacific region. APWSL national groups function in Pakistan, India, Nepal, Bangladesh, Sri Lanka, Thailand, Malaysia, Indonesia, Philippines, China (Hong Kong), Taiwan, Japan, Korea (south), Australia and Aotearoa (New Zealand) and Fiji.
․ APWSL is made up of National Groups that may include membership of individual labor activists, trade unions or other labour organizations within each country. APWSL is a democratic organization and develops its policy and elects its regional leadership at a 3-yearly Council Meeting.
․ involvement in building genuine trade unions in each country
․ support and solidarity for the worker struggles in each others country
․ newsletters and information sharing of the labor movement in the Asia Pacific
․ linking with other like-minded groups in the Asia Pacific and beyond.
․ In addition APWSL involves itself in specific projects such as building a network of pro-worker unions in the Asia Pacific region, the health and safety campaign, globalization, informal sectors.
․ Activities in connection with APWSL started in 1991
․ Support and solidarity for the workers struggle in the Asia pacific region
․ Exchange program at the level of workers and activities in the Asia Pacific countries.
․ Promote grass root international solidarity of workers in the Asia Pacific region as a routine activity
․ Translating and distributing the APSWL Newsletters and information concerning the labor movement in the Asia Pacific region.
․ Activities to shase the information through the web
․ Supporting the migrant workers' activism for strengthening the human as well as workers' rights
․ Support and solidarity for the workers struggle in Korean companies which lauunch into abroad.
․ Holding the monthly meeting of APSWL Korea.
․ Hankook Synthetics Labor Union - Affiliates of KCTU.
Tel; 82-54-469-1386
․ Korean Non-Life Insurance Labor Union Seoul branch - Affiliates of KCTU.
Tel; 82-2-3671-7301 / Homepage; http://www.bobo.or.kr
․ KMU (KASAMAKO)
․ Joint Commitee of Mirant workers in Korea(JCMK)
Tel; 82-2-747-5831 / E-mail; jcmk@chol.com
․ National Association of Labot Movement Organizations(NALMO)
Tel; 82-2-756-4725 / E-mail; rlmnc@chol.com
․ Solidarity for New Society
Tel; 82-2-925-0062 / Homepage; http://www.newsolidarity.org
․ Rev. Chin, Bang-Joo
Tel; 82-2-741-4353 / E-mail; pckev@chol.com
․ APWSL Korea Coordinator /Rev. Jang, Chang-Woen
LaborNet In South Korea a Representative
Osan Laborer`s & Migrant`s Shelter Tel; 82-19-263-7972 / E-mail; labrev@jinbo.net
mailing <apwslkr@list.jinbo.net>
14-24 Dongkwang B/D 5F, Yongsangu, Seoul, Korea.
TEL: 82-2-756-4725 / FAX: 82-2-756-4727
E-mail: rlmnc@chol.com/ E-mail; labrev@jinbo.net
Homepage: http://apwslkr.nodong.net
Report on the APWSL Korea Activities of 2003
Changes of Korean as well as global situation
▶ The Korean had experienced 2002 World Cup, 'Reds' phenomenon, popular protest caused by the accident in which two Korean middle school girls died by an US armored car and presidential election in December. Through those experiences the Korean is opening the new era of the history.
․The Korean denied old political paradigm and hoped for change and reform. This desire were expressed through the popular memorial protest for the two died girls with the slogan of 'Independence' and the presidential election with major issues of liquidation of Old politics and the change of politician's generation. The result of the presidential election showed this trend clearly. No, Muhyun, who claimed to be a reformist, won dramatically over Lee, huichang whose platform was based on conservative general trends.
․The eruption of Korean people's desire for change and reform and the young generation's active participation in politics, which led the Korean to the new stage, requires the Korean activism's substantial self change.
▶ As the accumulation crisis of the world capital is getting worse, the world capital is on the way to the fascism and war on the 3rd world. This process is to pass the pain of crisis to the people.
․During last 20 years, the neo-liberal globalization resulted polarized of the poor and the rich, unstable and speculative economy, the destructed nature and devastated people's lives and society. Furthermore world economy is getting into the long stagnation rapidly after the stock market crisis and 1997 East Asian Financial crisis, which was the result of the accumulation crisis of the world capital.
․Facing with this accumulation crisis, the global capital is accelerating neo liberal globalization to pass the pain of crisis to the people. Especially the economic colonization process is rapidly strengtened .
․After the 9/11 terror, these attacks of the multi national capital is actualizing as military attacks on the 3rd world under the slogan of 'war on terrorism'. With the invasion of Afganistan and Iraq and the Bush's claim of axis of evil, the tension is getting increasing.
▶ Expecially there is increasing tension in Korean peninsula as a result of U.S North Korean policy of blocking economy and military threat. U.S has the crucial interest to keep and strengthen the tension in Northeast Asia against peace and cooperation. Because the Cooperation of Northeast Asian nations due to the opening of North Korea will substantially decrease U.S influence in that region. Therefore the aim of U.S foreign policy for Northeast Asia is to halt cooperation process such as interchange of North and South Korea, and North Korea and Japan treaty and economic cooperation of East Asian nations. U.S is pursuing the policy to increase tension in the region. This policy is including partial military attacks on North Korea and long term economic blocking of North Korea
▶ The struggle against the Neo-liberal globalization and war is popularizing and spreading rapidly.
․People's struggle against the destruction of the human, society and nature brought by the world capital's Neo-liberal globalization is expressed as workers general strikes and various protests. Also these struggles are developing as more popular struggle accompanied with struggle against war.
․In this circumstance, the importance and necessity of the international solidarity becomes crucial for labor and social activism.
․ Furthermore, the Korean's struggle for the peace against any U.S military attacks on North Korea is getting stronger with the situation of increasing tension in Korean peninsular by U.S stubborn North Korea policy. This struggle will be spreading and popularizing as the continuation of the memorial protest for two girls who died by an U.S armored car.
Activities of 2003
▶ Objectives;
․ The international workers solidarity becomes very important, as global resistance against globalization , Neo liberalism and war is getting spread and stronger. For the worker's solidarity in the 3rd world, East Asian workers solidarity, which had not been able to have proper recognition relatively, should be strengthened and developed. Especially the resistance against U.S military threat to Korean peninsula needs to be mobilizaed urgently.
․ Nevertheless, after APWSL Korea coordinator Lee-sungkyung started to struggle with diseases, APWSL Korea activity remained as minimized. To answer the urgent call of solidarity and struggle against Neo liberal globalization, the nomalization and reactivation of APWSL Korea is required as soon as possible.
․In the transitional period, APWSL Korea focuses on the urgent struggle and activities for the peace. With these struggles, APWLS Korea needs Organizing drive and active Networking with members and other APWSL national groups.
▶Detailed Activities
■ Organizing Drive
1) Organize KCTU and other affiliated unions.
APWSL Korea promoted to organize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KCTU)/ Korean Federation of Transportation, Public & Social Services Workers Unions/ Korean Metal Workers Federation/ Korea Federation of Chemical-Textile Workers Unions/ Korean Federation of Institution Management Trade Unions
→ Even though none of them got membership, unions agreed on how important Asian workers solidarity is in current situation.
→ Non life insurance union seoul branch which is affiliated with KCTU became a member
2) ALWSL Korea tried to organize the migrant workers, so Philipines migrant workers organization KOSAMAKO became a member. Also Nepal migrant workers were participating APWSL Korea activities in person.
3) Regular meetings in every month.
■ Activation of Network
1) Activating of APWSL Korea's homepage and strengthening its network through it
→ we opened Homepage but it was not that much activated.
2) Publishing Newsletter for Korean workers struggle in English for every other months - one or twice sent it through e-mail.
3) APWSL Korea agreed with APWSL Japan to organize the discussion for the activation of APWSL network at the 4th WSF in Mumbai. Especially we agreed that to activate APWSL network, better financed National Groups(Member nations of OECD) support the other National groups.
-04/23-25: Meeting with Yamahara from APWSL Japan Osaka branch and discussed the stated above matter at Seoul
-08/30-09/07: APWSL Korea coordinator Jang, Changwoen visited Japan and had meetings with Osaka and Tokyo branches of APWSL Japan.
-11/05-07: Meeting with the participations in Asian regional trade union conference, who were also members of ALWSL Nepal, Malaysia, Hongkong, Thailand, Indonesia and Philippines.
1) support for multi national corporation workers struggle and migrant workers activism.
→ Strengthening the solidarity with the workers who are suffering by the Korean corporation which have a business in other Asian nations. Also APWSL Korea shared the experience of other organizations who have been active in the issues of corporation watch and strengthened solidarity.
→ Participated in Workshop 'Watch for the activity of Korean corporations in other countries.
2) Glassroot international solidaity of workers.
→ Even though the exchange visit of Hankook Synthetics Labor Union (HKU) and Surahy regionsl union did not happen, setting up of the sisterhood of two parties were accomplished.
→ On 01/06/04, Indonesia surabaya regional unions(SBR) and Hankook Synthetics Labor Union(HKU) in Kumi had a signing ceremony of sisterhood contract at the office of HKU. The contract is about HKU's support for cultural activity of SBR. HKU promised to support SBR financially by contributing 10 manwon (About 90 dollars) every months from October of 2003 and both parties agreed to strengthen solidarity.
3) Support and solidarity for workers' struggle in Asia .
→ Whenever there is a request for support and solidarity, ALWSL Korea answered positively. Especially on 10th of April, as an international solidarity action, we had a campaign in front of Malaysian embassy for the abolition of national security law in Malaysia and release of Tian Chua.
1) Funeral of late Lee, Sungkyung, APWSL Korea coordinator
→ With 150 labor and social activist, who cherish comrade Lee, formed a funeral commitee and manage the funerual as National Association of Labot Movement Organizations's funeral. All APWSL National Groups sent memorial addresses. As the first memorial ceremony is coming up APWSL Korea and other organizations and activists will found Memorial assembly for the late Lee, Sungkyung.
2) 50% of the total APWSL Korea members' dues saved and supported APWSL Thailand's participation in the 4th WSF.
APWSL Korea's suggestion to overcome the current difficulties of APWSL
1. About sudden stop of Financial support
․ It seems difficult to get the financial support from the outside in the near future. Although we need to take action to get back our financial support such as visit Thailand and protest, basically we should try to be independent like APWSL Philippines‘ suggestion.
․ With this principle, we suggest to discuss the policy to support each other at first. For example, better financed National Groups( the members of OECD nations) can support the other National Groups. APWSL Korea saved the half of the total membership dues as solidarity fund and supported APWSL Thailand's participation in the 4th WSF.
2. Inner communication of APWSL
․ Opening of APWSL homepage was halted as the financial support was stopped. Let's find the way to open our homepage without outside financial support. But the opening of the homepage itself is not that important.
․ The important point is routine networking among APWSL National Groups. Now we can use the mailing list to have effective communication. We suggest to discuss the reason for the lack of routine networking and communication.
․ About the half of APWSL national groups are participating the 4th WSF. With this chance we suggest to restore the tradition of routine interchange.
․ We suggest to discuss the possibility of regular publication of APWSL newsletter.
3. About continuance of APWSL activities.
․ Although there is doubts about the necessity of APWSL under the changed circumstance such as activation of SIGTUR and Asian trade unions conference, we suggest to keep APWSL independent activities.
․ Fifteen years of APWSL history let us have mutual confidence which is so cherishable. This mutual confidence is crucial for the international solidarity. Also APWSL contribute for the understanding and cooperation of various organizations in the Asia Pacific region. There are a lot of things we can de with this outcome, expecially under the current situation in which the problem of multi-national corporations and migrant workers are getting serious.
․ Even though some activities of APWSL are repeating with SIGTUR and Asian regional trade unions conference, we think ALWSL and others can have mutual supplementary relationship. For example, one of objectives of APWSL is the grassroots international solidarity. We are sure that the international solidarity between leaders can develop with sustaining development of the grassroots solidarity of workers.
․ Therefore, let's discuss the way to spread setting up of sisterhood relationship between unions as an unique solidarity activity of APWSL. Also let's activate exchange visits among APWSL National Groups by mutual aid.
4. About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APWSL
․ Financially it is difficult to organize the independent APWSL international conference now. So we suggest to have meetings when other international conferences are held, such as SIGTUR and Asian regional trade union conference.
An Example of Grassroot International Solidarity
▶ Hankook Synthetics Labor Union(HKU) and Indonesia Seriket buruh Regional(SBR) set up sisterhood relationship for the strengthening of cultural activism in labor movement and and solidarity. The official singning ceremony for this sisterhood was held on 01/06/2004.
1. The main contents of solidarity treaty.
․ Both parties will practice to be a model for the democratic unionism and grassroot international solidarity through regular exchange visits.
․ HKU will support SBR financially by contributing 10 manwon ( about 90 dollars) every month for the cultural activity of SBR, and have regular exchange vistis with SBR.
․ APWSL Korea and APWSL Indonesia will support the interchange and cooperation of two parties to strengthen international workers solidarity and try to spread the outcome of this solidairity activity to the Asian as well as world labor activism.
2. The progress of the grassroots solidarity activity.
․ As an activity of APWSL's grassroot solidarity, APWSL Korea visited SBR twice.
( 1st visit- 07/07/2000-07/16, 2nd visit- 09/13/2001-09/18)
․ These exchange visits had positive influence on both nations' labor activism Korean labour activist got the chance to remember their original intentions to be an labor activist by knowing Indonesian activists' genuine passion and strong will to organize democratic unions against miserable and difficult conditions. This remembrance led the Korean labor activist to realize the problem of bureaucracy in unions which is the tendency developed in the passage of democratization of unions. Also it was a good turning point to break the chain of limited unionism. Indonesian labor activist got the chances to share the experiences of Korean labour activism which is advanced in some sense. By knowing the progress of regional union association, national association of unions and KCTU from the perspective of workers, Indonesian labor activists got a piece of advice to develop its own activism. Futhermore the problems of Korean labor activism were good lessons. Especially Indonesian labor activist were impressed by routine and vigorous Korean workers cultural activity.
․ As the outcome of this exchange visits, HKU a member of APWSL Korea promoted to set up the sisterhood relationship with SBR. HKU promoted this solidarity action because it wanted to extend its activity to the international solidarity to get the chance for strengthening itself from the seriousness required for this activity. So HKU suggested to suppot SBR financially due to financilly difficult condition of SBR,
․ APWSL Indonesia and Korea led and promoted this grassroots solidarity activity based on the mutual confidence.
4. The meaning of the grassroots international solidarity.
․ Setting up of the sisterhood relationship of HKU and SBR is the model of routine activity of grassroots international solidarity.
․ It is not one sided support, even though it is clear that HKU is the leading part for this activity due to its advantage over the SBR on the finance and established organizing power. This activity is crucial to HKU. SBR is struggling to confirm worker's basic rights which HKU almost already have had. This inspired HKU to develop itself as more democratic and independent union through exchanges visits with SBR. Therefore the grassroots international solidarity between organizations which have different experiences and are in different stages in some sense is very inspirational for both parties. From this perspective, grassroots international solidarity have the meaning different from the solidarity between mainly leaders of organizations.
․ Although the grassroots international solidarity itself is not struggle or protest, it is routine activity of international workers solidarity and will be a base for the solidarity struggle and protest. Also it will provide the chance for ordinary unionist to actually experience international solidarity which has been the activity only for leaders. Therefore the grassroots solidarity will be the turning point to strengthen the popular base for international solidarity.
․ Especially, the grassroots solidarity will be a good model for the Asia Pacific workers solidarity. Asian nations have very different historical background, tradition, also they have different experience of capitalism and activism against it. At first, the nations which have better resources should be positive to share these resources to cross this differences and develop solidarity in Asia Pacific region,. For that, exchange visits of each unions or organizations and sisterhood relationship of them will be a good example.
Suggestion to organizing 'Memorial assembly for the late Lee, Sungkyung'
It is been already a year comrade Lee left us. Last executive of National association of labor movement organization(NALMO) with the slogan of militant mass struggle and revolutionary labor activism, comrade Lee left us too early and suddenly. Without knowing that horrible disease was destroying her, she worked hard in NALMO under the very difficult condition.
Comrade Lee who had genuine passion and not deviated will was the model for us who are working for the labor liberation as well as human liberation. Even though her health was not good , until she got the diagnosis of enteric cancer, she worked hard to hold the spirit of NALMO. Comrade Lee worked to publish weekly reports on political and social circumstances of workers. Also she worked hard as APWSL Korea and Northeast Asia regional coordinator. As the outcome of comrade Lee's last several years of effort, Hankook Synthetics Labor Union (HKU) and Seriket buruh Regional (SBR) had the signing ceremony to set up the sisterhood relationship on 6th of January 2004. Comrade Lee had warm and genuine heart, so she never lost smile on her face. She took care of others first even though she was having severe pain after the stroke.
Global capitalism put the people into the painful abyss of the panic and war. Neo liberal globalization is destroying Korean people's lives as well as all the people of world. The damage and misery is getting serious. However as the global capital destroys the people's lives and the nature, the resistance against them and desire for the labor liberation and human liberation is getting stronger. This is the time to remember and respect the genuine passion and not deviated will, warm and noble mind which are comrade Lee showed us as a labor activist.
Therefore, we suggest to organize 'Memorial assembly for the late Lee, Sungkyung' to tribute to the cherishable memory of comrade Lee's life and struggle.
Among national and international comrades who remembers comrade Lee, we hope to organize 200-300 members with monthly due of 2 manwon(about 20dollars). We hope to have two major projects - Every year the memorial assembly will have memorial ceremony and support 'Yul-lin-teo' which comrade Lee founded as the space for textile workers in Daegu.
1961: Birth in Daegu
1984: Graduation from Yongnam University, major in German.
1985: Worked for Seoul christan women's democratic committee
1988: Worked at the factory of Woosin texitile and in 'Dalgubeol' Church
1988: Worked for Daegu regional workers union.
1989: Worked for Daegu Textile workers committee
1992: Daegu regional president of NALMO
1998: Executive of NALMO
2000: APWSL Northeast Asia coordinator
A member of founding committee for Cyber Labor University
06. 2002; Diagnosis of enteric cancer
10.03.2002: Stroke
01.28.2003: Passed away at 07.10AM
Representitives of promoters for 'Memorial assembly for the late Lee, Sungkyung'
-Kim, Seugho. Ham, Cholho.
If you want to participate in
'Memorial assembly for the late Lee, Sungkyung',
please send us an e-mail
labrev@hanmail.net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리고 노동방송국 개국을 축하합니다?
산업과 지역, 국경과 자본의 벽을 넘어서 전국 노동자·전세계 노동자를 이어주는
소통과 연대의 노동네트워크! 한국노동넷트웍크협의회 운영위원장 장창원목사 입니다.
세계사회는 지금 아래로 부터의 연대와 자주적인 혁명의지가 큰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노동미디어의 자유로운 소통을 통한 노동자들의 새로운 희망세계, 아름다운 민중세상를 건설하려는 역사의 행진속에 우리는 힘차게 동참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방송국 개국을 축하하며 개국을 선언합니다.
한국노동넷트웍크협의회는 1998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및 가맹·산하 조직을 포함한 16개 단체가 주축이되어 세계에서 몇 째 안되는 레이버넷의 조직으로 출범하였습니다.
노동넷은 격년으로 국제미디어대회와 한국미디어대회를 개최하였고, 인터넷을 중심으로한 통신문화의 발달로 새롭게 일어나는 정보인권운동을 함께 대처하며 미약하지만 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의 자리에 함께 하였습니다. 2004년 지금 노동넷트웍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주변정세와 인터넷운동의 과학적 발전에 부응하여 조직을 재편하고 아시아레이버네트웍 건설 등을 비롯한 노동자방송국 만들기 중에 있습니다. 정보통신운동과 인터넷을 통한 노동자연대와 민의의 소통구조의 일역을 감당하여 왔습니다.
그 활동의 중심 역할을 감당하던 민주노총을 시작으로 노동네트웍크협의회는 노동방송국 시대를 선언합니다. 노동넷트웍 참가 17단체를 대신하여 노동자방송국 시작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열악한 노동현장 노동자들과 선진활동가들은 노동자의 현장 소리를 알려내고 민중들의 함성 소리를 지켜낼 노동자방송국의 등장은 소외된 민중들의 삶속에 천군만마를 얻는 근 경사입니다.
당장 노동방송국은 삼성재벌의 노동자감시추적, 도감청 등의 반인륜, 비인간적 범죄 행위보도와 밝힘. 미국의 추악한 이락석유침탈전쟁의 실상공개와 한국국철수, 세계반전평화운동의 결집, 비정규직 노동운동과 이주노동운동의 평등권 추동을 위한 선전과 세움, 국가보안법 철폐와 민족의 평화적통일, 노동조합내부의 문제와 한계점 등을 보도해야 할 것입니다.
대안 언론의 새로운 시대를 노동자가 만드는 노동방송국 개국을 축하합니다.
세계는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자본의 횡포와 겁탈로 참혹한 가난과 전쟁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거대한 경제와 문화, 군사적 침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분열과 지배책동으로 60여년 분단의 아픔과 죽음속에서 통일의 새생명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할퀴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반인륜적 전쟁세력들에 맞서기 위한 유일한 희망은 세계 노동자, 민중들의 자발적인 의지와 성원을 모아내어 연대하는 투쟁의 길로 가도록하는 세계 레이버넷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민중운동진영은 그동안 인터넷국가검열반대를 비롯한 노동자감시반대운동, 개인정보 푸라이버시 운동, 네이스반대 등 정보인권운동을 하며 이미 여러 인터넷 방송국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움직이는 민중언론 미디어 참세상방송국을 비롯하여, 현장의 감동이 살아있는 뉴스 민중의 소리방송국이 운영되고 있으며, 민중진영의 인터넷방송국과 소출력라디오 방송국 들이 여기 저기 싹을 티우며 독립미디어센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노동네트인터넷방송국은 한국의 노동운동과 노동조합들이 연대하는 네트웍은 물론 세계노동자의 연대와 소통을 노동자들이 주체가되어 만드는 새로운 대안 세계의 시작입니다. 민중운동의 소통과 연결망입니다. 계속해서 노동현장의 소리와 노동자의 선한 의지를 전달하는 미디어와 인터넷의 연대 소통을 동지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 동안 민주노동방송국의 출발을 위하여 노동네트웍크협의회의 역사와 함께 한 참가 단체들를 소개합니다.
◦ 노동자뉴스제작단 노동자의힘 노동정보화사업단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 민주노동당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복지위원회 산업노동학회
◦ 영등포산업선교회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울산노동자정보통신지원단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및 가맹·산하 조직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네 시작은 미약하나 곧 창대하리라” 말씀처럼 작은 소출력 라디오운동부터 시작하여 민중들의 주체적인 노동방송국들이 이제 하나 하나 새싹으로 돗아남으로 새롭게 시작됨을 축하합니다.
노동네트웍에서는 2년전 2002년 5차 노동미디어대회을 깃점으로 노동자방속국 설립논의를 심도 있고 체계적으로 논의하여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자본가들이 몇 백억의 자본으로 시작해야할 방송국이 거대해 보이지만, 전국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풀뿌리 역량의 총화된 미디어 네트웍은 새로운 세계 건설을 가능하게 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독립미디어운동을 한걸음 한걸음 추진하여 왔습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노동방송국의 걸음 걸이 폭이 넓고 빨라질 것 같습니다. 노동넷트웍크협의회는 노동넷 노동방송국을 개국을 기점으로하여 참가단체들의 미디어 방송국을 계속 추진하려 합니다. 다음 달 초 하루 한국노총도 노동방송국도 시작됩니다.
노동자방송국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운동, 독제로부터의 민주화운동, 분단으로 부터의 통일운동, 재국으로부터의 해방운동, 전쟁으로부터의 평화운동을 위해 목슴걸고 부르짖던 풀뿌리 민중들의 함성과 노동운동속에 죽어간 열사들의 숭고한 역사정신을 출발 정신으로 해야합니다.
지금도 현장에서 노동해방과 민주노조사수, 평등노조건설을 위한 헌신적인 투사들의 거대한 함성소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민중들의 함성과 의지가 노동방송국을 통하여 전국에 울려퍼지기를 기원합니다. 세계역사 앞에 선각자적인 노동자의 숭고한 투쟁정신이 큰 물결 파도가 되어서 우리들의 앞을 가로막는 초국적 자본의 혹독한 침탈과 남북분단을 비롯한 분열과 탄압의 제국주의 미국의 장벽을 부수는 노동자방속국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 동안 노동자 선봉적인 문화운동과 선진적인 연대활동의 무기가 이제 노동자방송을 통하여 전국, 전세계의 노동자를 단결하고 투쟁 하도록 해야합니다.
지금도 변함 없이 아래로 부터의 대안사회 건설을 위한 운동의 여러 현장에서 평등과 평화를 일구어 내기 위하여 사적욕심과 부귀영달을 멀리하고 변함 없이 초지일관하며 노동자,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일어서게하는 노동자방송국 추진하는 동지들 감사와 축하를 드립니다.
자주적인 민중승리의 투쟁으로 이끄는 양방향 소통의 연결고리와 소통의 통로 역할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각성하며 노동하는 민중들의 전통과 정신을 이어 나가며 아래로 부터의 불어오는 새롭고 신선한 바램과 의지, 희망을 모아서 노동자방송국을 함께 세워나갑시다.
노동자미디어운동의 열기가 이제부터 노동넷노동방송국을 통하여 민주노총노동방송국을 통하여 넘치고 흘러서 전국노동자방송국 운동으로 변화 발전하기를 축원합니다. !
기쁜 마음 힘찬 의지로 세계만방에 노동넷트웍의 노동자방송국 시작을 선언합니다.
노동자와 민중이 기자가 되고 방송의 주체가 되어 만드는 한국노동넷트웍크 인터넷방송국 개국을 축하합니다.
2004년 10월 20일
한국노동네트웍크협의회 운영위원장 장창원
이주노동자선교의 과제와 전망
- 장창원 목사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운영위원장/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APWSL)한국위원회 코디네이터 )
(들어가는 말)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한국의 이주노동자 전체 약 40만명중 과반수를 차지하는 무비자 불법체류노동자들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처해있다. 그 중 필리핀은 세계에 800만 명의 이주노동자를 송출하는 국가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볼때 자체적인 후원조직과 필리핀 정부, 노동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현재의 변화되는 상황에 긴밀한 대처를 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이주노동자를 위하여 일하는 이주노동자후원회, 지원 단체, 대책위원회, 평등노조 이주지부, 인권선교단체들의 입장차이로 또 다른 혼란을 겪기도 한다.
이주노동정책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은 교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이주노동자선교의 현장에 함께 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사업장별 조직과 모임을 만들어서 노동생활과 정세를 공유하고 조합형태의 노동자조직으로 다른 나라 이주노동자들에게 모범적 대처를 잘하고 있다. 우리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정확한 노동자의 의식과 연대와 투쟁을 통한 노동자권리와 기본권향상과 노동권확보를 위한 이주노동자운동전선에 앞장서는 국제이주노동운동과 선교의 선봉장 역할을 감당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은 일제시대부터 고국을 떠나 중국과 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나섰다. 1970-80년대 한국의 노동력이 독일과 중동 사우디 등에 진출하여 국가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노동자들의 기본권리 쟁취되었고 노동자들의 임금향상과 작업환경개선, 노동조합운동의 활성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로조건의 영세사업장과 3D산업에는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없었으며 저임금과 근로조건의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세사업장이나 3D산업의 대체인력으로 이주노동자를 채용하게 되었으며 IMF경제위기는 산업구조의 결정적인 변화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일본이나 캐나다, 호주 등으로 일자리를 찾아가는 한국노동자들의 현실과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필리핀의 노동자들의 한국이주노동현상은 미국을 중심으로한 초국적 자본중심의 세계경제 흐름속에서 바라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제대국의 신자유주의 금융시대의 희생으로 이주노동을 시작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노동허가제, 산업재해 보상법, 건강보험등의 기본권 제도가 마련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열악한 근로조건과 위험한 노동현장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 몸 말 )
90년대 초반 한국교회를 중심으로한 종교, 인권 양심적인 노동단체들이 이주노동자의 생활과 문화, 선교적 차원에서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외국인노동자센터를 만들었다. 그 후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를 결성하였고 최근에는 이주노동자를 지원하고 후원하는 여러 갈래의 단체들이 있다.
이주노동선교실무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요구하는 현실의 구호와 어려운 삶의 현장 이야기와 오산이주노동자센터의 활동을 소개한다.
- 현대판 노예제인 연수제도 즉각 철폐하라!
- 폭압적인 합동단속과 강제추방 정책을 당장 철회하라!
-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 사면 합법화하라!
- 외국인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권을 보장하라!
-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작업장 이동권을 보장하라!
- 정부는 즉각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유엔 협약'을 비준하라!
1. 부당노동행위 심각한 현장사례
2003년 11월15일 한국정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 추방이 시작된 이후 낮은 임금, 노동강도 강화, 퇴직금 떼먹기가 만연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퇴직금을 못 받고 해고 되거나 이전 보다 훨씬 낮은 임금, 높은 노동 강도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야 할 노동부는 오히려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있다. 2004년 8월 법이 시행된 이후부터는 비인간적인 이주노동자 체포와 구금, 추방이 합법화 된것이다.
1) 노동비자 없는 노동자들이 특별단속의 상황을 피하려는 심각한 인권실태
2004년 3월 1일부터 15일까지 처음 특별단속을 한다는 소식 이후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이 평소와 달리 거리에 많이 보이지 않아서 집안에서 숨어 지내는 것 같았다. 실제로 오산지역 이주노동자 자녀를 위한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데리러 이주노동자들의 집단 거주 지역을 돌아보았다. 놀란 것은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안에 모여서 단속을 피하며 소리없이 생활하는 처참한 사례를 보았다.
2) 영세공장까지 단속반이 들어가서 노동자 4명을 체포했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작업환경과 보수가 좋은 경기도 화성의 작은 기업체에서 상담전화가 왔다. 단속반이 공장안까지 막무가네로 들이 닥쳐 4명의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라며 잡아 갔다고 한다. 당장 일손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데 회사를 운영할 방법이 없느냐는 사장의 허탈한 상담을 받았다.
3) 퇴직금을 50% 못 받고 추방된 필리핀 노동자의 사례
7년간 현장에서 일하고 귀국하기 위하여 퇴직금을 요구하였다. 퇴직금을 못 받은 필리핀 노동자 알렉스가 수원지방 노동부 사무소에 퇴직금 진정서(법적보장)를 제출하여 해결을 의뢰했는데 이 후 공장으로 돌아오니 당일 오후 현장으로 급파된 단속반들에게 알렉스는 구속되어 화성보호소에서 감금되었고 그 후 퇴직금의 일부(300/600만)을 받고 귀국한 사례가 있다.
2. 이주노동자들의 근본 문제를 대처하는 여러 의견과 단체들
우리는 1998년 IMF 경제위기를 격으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자본의 금융시장을 통한 세계시장 침탈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앞세운 노동력 수탈을 지켜보았다. 결국 현정세의 흐름은 미국이 전쟁을 불사하면서 에너지자원을 강탈하고 있다. 전쟁과 신자유주의 경제수탈정책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세계 도처의 민중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단체에 따라 한국의 고용허가제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법과 제도 등 한국의 이주노동 상황에 대처하고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법과 입장 차이를 보인다. 큰 흐름의 이주노동자 대책은 동일하지만 실천 활동의 내용에 따라서 이주노동단체들의 성격과 내용을 달리하여 단체의 폭은 넓어지고 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중복과 선택의 폭이 혼란을 주고 현장의 흐름과는 관계없는 불필요한 논쟁이 늘어나기도 한다.
이를 큰 틀에서 분류하여 보면
1) 1990년대 초기 종교적 선교와 인권적 차원에서 이주노동자보호를 위한 지원과 후원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단체들이 모여서 활동하는 이주노동자협의회에 속한 단체들
2) 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들이 선교적 차원에서 문화와 물량주의적 접근을 하는 복지적인 NGO 기관들이 있다.
3) 노동자의 가치관과 입장에 따른 노동조합 중심의 사고를 위한 이주노동단체들
4) 민중, 노동자 운동적인 시각의 해결 방안을 갖고 이주노동자의 주체적인 활동을 후원하는 단체들이 있다.
98년 한국의 IMF 경제위기상황 이후 실업자를 양산하는 노동정책으로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를 대량으로 만들었다.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정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한 근로자 파견법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노동정책은 전 지구적 자본의 투자와 이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노동자를 탄압하는 초국적 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노동자의 생산성에 근거하기보다는 금융투기자본의 소통과 이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자본의 이동은 자유롭지만 노동자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시대이다. 노동권을 회복하여 아름답고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이주노동운동은 민중운동과 인권운동으로 맥을 같이하고 있다.
3. 오산이주노동자센터의 활동사례
경기도 남부지역(수원, 평택, 화성, 용인)에는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태국, 스리랑카, 중국, 카자흐스탄, 네팔 등의 이주노동자가 약 30.000명 있다고 한다. 경기남부지역의 교통적 요충지인 오산지역에는 실제 3-4000명의 노동자가 거주하고 있으며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주말의 유동 이주노동자는 훨씬 많아 시장과 거리는 이주노동자들로 거리를 가득메운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의 모체가 되는 오산다솜교회는 산업선교적인 정체성을 갖고 지역의 민중교회로서 노동자, 민중선교의 중심이 되어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사명으로 1991년에 설립되었다. 그 동안 지역의 오산환경시민모임을 주도하여 오산화성환경운동연합을 설립하는 모체가 되었으며 주민도서실 중심의 독서모임, 공부방, 어린이집 등을 운영하며 현재 지역협동조합운동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으며 지역활동가들과 함께 하는 지역선교의 토대를 마련하고있다.
1998년부터 여성목회자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가난한 저소득층과 해체가정의 자녀돌보기에 선교의 초점을 맞추면서 노동운동, 현안시국문제 대책활동을 계속하였으며 2001년에는 협동목사인 장창원 목사를 아프리카 르완다의 협력선교사로 파송하여 국제민중교회의 연대와 평화선교사역의 틀을 갖추는 제3세계 에쿠메니칼 노동선교의 실천 활동을 하고 있다.
다솜교회는 2002년 지역의 노동조합과 시민대표들의 오산지역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관심과 요구를 수렴하여 이주노동자선교센터의 설립 준비를 하였다. 2003년 예장총회 이주노동자선교후원회의 결의에 따라서 오산노동문화센터가 설립되었으며 첫 번째 실천과제인 오산이주노동자센터를 개소하여 상담과 교육, 조직, 대책, 연대, 건강, 의료, 문화사업을 감당하고 있다.
센터의 조직은 소장 책임을 장창원목사는 영등포산업선교회부터 함께 하여온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 한국위원회와 오산이주노동자센터의 연결을 통하여 아시아지역노동운동과 이주노동운동의 결합을 모색하였으며 그 결과 인터넷을 통한 노동자의 소통과 연대를 추진하는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와 함께 아시아태평양지역노동자들의 연대와 소통을 감당할 아시아레이버넷을 추진 중에 있다.
이미 필리핀 민주노동조합(KMU)이 파견한 카사마코 노동자들과 네팔의 지폰(JEFONT)에서 연결한 네팔노동자들이 오산이주노동자센터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필리핀 이주노동운동의 실무책임자인 예장총회 존갈랑선교 동역자와 함께 카사마코노동자모임의 활동에 함께 하고 있으며 수원 화성 카사마코 이주노동자 대표인 마니씨는, 네팔의 이주노동운동 조직 활동가인 버즈러씨와 함께 오산이주노동자센터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는 한국교회가 풀뿌리 민중들의 노동현장과 연대하려는 예수정신과 노동네트워크인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APWSL) 활동이 만들어준 유산이다. 앞으로 필리핀, 네팔, 한국의 이주노동운동관계가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동자 민중들의 삶의 현장에서도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한 시대적인 요청을 이루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는 황금만능의 자본주의 세계질서에 대응하는 아래로부터의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연대와 소통의 통로 역할을 감당할것이며 노동권 쟁취투쟁을 만들고 지원하는 노동운동선교적 대처를 통한 새로운 세상, 대안사회를 만들려는 희망으로 일하고 있다.
5. 거시적인 이주노동자선교와 역사의 실체 접근과 노동자 국제연대의 주역으로 이주노동자선교의 활동이 주목되고 있다.
- 우리는 역사속의 노예노동과 노동선교의 발전과정을 둘러보며 한국의 노동사와 이주노동의 실체를 거시적 선교안목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시대부터 시작된 재일 이주노동자들과 지금까지도 일본, 중국, 소련, 하와이 등에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 재외국민 차별의식을 가진 일본과 유교적인 관념 속에 형성된 한국의 유색인종 차별의식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종차별국가로 낙인찍혀 있다. 조국근대화의 기수가 되어 세계로 진출한 한국이주노동자들은 연예인으로 진출한 여성노동자들이 실상을 대변하고 있다.
- 독일로 진출한 우리의 광부 간호사 등이 독일에서 겪으며 터득한 이주노동사례를 유심히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사우디, 중동에서의 한국이주건설노동자들의 노동으로 말미암아 한국경제가 발전하였다고 하는데 그 이주노동사례를 생각해야 한다. 그 노동자들이 IMF경제위기 때는 먼저 퇴출되었다.
- 이주노동선교운동은 연대와 협력선교의 소통과 나눔으로 아름다운 하나님나라 건설과 예수정신의 구현을 위한 아름다운 투쟁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돈에 팔리는 노예가 아닌 참된 노동자의 철학과 사상을 갖는 이주노동자 정체성을 바탕으로 노동자 민중을 연결하는 선교적인 연대 주역은 이주노동자들이다. 노동자선교와 이주노동운동을 발전시키려는 선교적인 사명과 결단은 이주노동자들을 돈과 노예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소중한 오늘의 십자가이다.
(나오는 말)
1. 고용허가제는 관리와 통제, 억압과 착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외국인 근로자를 체계적으로 도입, 관리함으로서 원활한 인력수급 및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 7월 31일 국회를 통과하고 올해 8월 17일부터 시행된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 Employment Permit System, EPS)에 들어 있는 법률의 목적에 대한 규정이다. 이 법률의 목적은 결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이주노동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 통제함으로서 한국 자본주의를 위해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 동안 산업연수제 속에서 이주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가장 하층의 저임금 노동으로 활용하고, 이를 참지 못하고 사업장을 이탈하는 노동자의 불법체류를 구조적으로 조장하여 또 다른 저임금 노동자 군을 형성시켰던 정책기조의 연장선에서 고용허가제가 시행되고 있음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는 사업주는 1개월간 내국인 구인노력을 한 후고용신청을 하게 되고, 산업인력관리공단은 정부가 인력송출양해각서를 맺은 필리핀,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태국, 몽골, 베트남 등의 국가로부터 노동자를 도입하여 해당 사업장에 배치하게 된다. 사업주들은 최저임금 수준이나 이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초과수당, 퇴직금, 4대 보험 등의 비용을 합치면 100만원 내외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또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관계법 적용을 받게 되기 때문에 인권이 신장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주노동자들을 관리·통제하고 억압·착취하는 제도이다.
첫째,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게 된다.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즉, 사업주의 도장을 받아야 다른 사업체로의 이동이 가능하다. 사업체가 휴·폐업하거나 일방적으로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경우에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나은 사업장으로 이동하는 순간 그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가 된다.
둘째,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노동법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하지만,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게 되어 있어서 사업주가 모든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결정해버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계약을 거부하면 계약해지가 되고 이는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철폐되어야 할 산업연수제도가 병행 유지됨으로 인해 구조적 폐해는 계속된다. 갖은 인권침해와 비리의 온상인 산업연수제도는 저임금 노동착취, 미등록 불법체류를 구조적으로 양산한다.
넷째, 기존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전면 사면 없이 강제적인 단속추방만 강행하고 있다. 노예와도 같은 삶을 강요한 책임은 정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합법화하지 않고 인간사냥하듯이 단속추방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단속추방에도 불구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6월말 16만 6천명에서 7월말 17만 2천명으로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고용허가제는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로서 살아온 이주노동자들을 내쫓고 정부와 자본의 통제아래 '3년 단위'로 이주노동자들을 가져다 쓰고 다시 내쫓는 것을 반복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2. 이주노동자 노동권 쟁취는 노동선교의 중요한 과제
이주노동자의 발생은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자유와 자유롭게 노동할 권리는 노동자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국민국가의 경계는 지배계급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노동자 계급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다. 세계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의 결과로 저개발 국가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는 것은 그들에겐 생존의 문제이며, 당연한 생존권적 권리이다. 또한 초국적자본에 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동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 아시아에서의 이주노동의 확산은 이 지역 민중들의 황폐화된 삶의 조건 속에서 급격히 증가되는 추세에 있다.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국내 노동자의 일자리를 침범하는 이해관계의 대립 구도로 사고하는 한, 이주노동자 문제는 영원히 풀릴 수 없는 골치 아픈 문제일 뿐이며, 노동자 국제 연대의 당위성과 국내 노동자 계급의 보호라는 양자에서 남한 노동자 운동은 갈등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세계 경제 호황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시기에는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호황기에 자본은 단순히 국내 노동력의 부족을 보충하는 이주노동자의 역할에 만족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을 유입하였고 국내의 노동자와 대립 구도가 크게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윤율의 급격한 저하로 구조적 위기에 봉착한 신자유주의는 노동계급을 분할하고 노동조건을 저하시킨다. 저임금 이주노동자의 유입을 통해 내국인 노동자의 노동조건 저하를 의도하여, 국내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이해 관계의 충돌을 기획한다.
국내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주권국가의 이해와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충돌한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주노동자로 인해 국내 일자리가 잠식당하고 노동조건이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인종, 성, 계층의 분할선을 이용하여 내국인과 외국인,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갈라놓으면서 노동의 불안정화를 강요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노동자의 이름으로 단결해야 하는 것처럼, 이주노동자와 한국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와 노동권 쟁취는 남한 민주노조운동의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운동을 노동자운동의 강력한 힘으로 성장시키고, 국제 노동자연대를 위한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 노동자 민중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방향으로 투쟁과 연대를 형성해나가야 한다.
3. 이주노동자선교 주체를 형성하여 연대하자!
남한 자본주의의 의도는 분명하다. 이윤율의 급격한 저하에 따른 세계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불안정 노동의 확산과 노동유연화 정책은 극히 불안한 대안인 것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동의 분할과 위계화를 획책하여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저가 다단계 하청구조를 통해 파견노동과 사내 하청이라는 비정상적인 고용형태를 노동 대중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위계적 불안정 노동의 최하층에 이주노동자들의 오늘의 현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당장의 자신의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 비정규직을 용인하고 연대하지 못하고,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를 위한 투쟁에 무관심한 채 외면한다면, 자신의 노동마저 불안정노동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이는 바로 전체 노동조건의 동반 하락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주노동자운동에 대한 민주노조운동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단속추방 분쇄,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산업연수생 제도 철폐를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힘겹게 투쟁해 왔다. 명동성당에서는 320일 가까이 농성을 해오고 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부정당한 채 온갖 인권 유린과 노동착취 속에서 자연스럽게 저항을 표출하였고, 자본과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스스로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해 온 것이다.
그러한 투쟁의 결과로 정권이 내놓은 제도개선의 결과물이 바로 고용허가제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의 개선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운동을 무력화시키고 이주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하여 만든 법안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와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없이 오로지 사용자의 의사에 의해서만 자신의 노동이 허용되는 제도에서 어떻게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권리가 보장될 수 있겠는가? 고용허가제 시행에 맞추어 벌어지고 있는 정부의 살인적인 강제단속과 추방과 이미 20여 만명에 가까운 불법체류자 양산은 고용허가제가 이미 실패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허가제는 이름만 바뀐 산업연수생 제도의 연장판이며, 현재의 이주노동자들을 내쫓고 이후에도 계속적인 단기 순환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장기 체류를 막아, 이주노동자운동이 자주적 계급적 노동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으려는 반노동자적 정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주노동의 자유롭고 합법적인 권리를 위한 노동허가제로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시민단체와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에서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관련 규정 및 부칙 2조의 경과 규정을 개정하는 것으로 운동의 방향을 잡으려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하나를 얻기 위해 구조적 문제를 용인하는 것이며 이주노동자들이 운동의 주체로서의 성장하는 것을 지체시키는 단기적 대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가 고용허가제를 일부 개정하는 선에서 고용허가제를 인정하는 순간, 이후 고용허가제를 넘어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나아가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의 운동은 이주노동자운동의 주체가 이주노동자 내부에서 형성되고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법개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투쟁을 통해 운동의 역량을 높이는 방향 속에서 배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한국의 활동가들이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며 그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헌신해 왔다.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노동자운동의 국제 연대의 훌륭한 모범이라 할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단계를 넘어 이주노동자들 스스로가 운동의 주체로서 확고히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운동의 성격과 목표에 대하여 인식을 분명히 하고 이주노동자운동의 주체임을 선언하였다. 이주노동자운동이 성장 발전하여 노동운동의 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한국노동운동은 연대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APWSL 한국위원회는 네팔위원회/지폰(General Federation of Nepalese Trade Unions (GEFONT)) 초청으로 연대, 교류, 협력 방문을 아래와 같은 일정으로 갖고 돌아왔습니다.
- 한국방문단의 전체 방문일정
2004 4/27 21:00 TG657 인천공항출발. 출국장 안에서 굽타, 캐비 등 강제출국 이주노동자들과 만남, 같은 비행기로 이동, 방콕공항에서 1박
4/28 14:30 TG319 카투만두 공항도착, 버즈러등 환영인사 후, 숙소로 이동하여 지폰 사무국장 등 지도부와 인사후 전체일정확인 네팔대중가수 노래관람
4/29 카투만두 전망이보이는 소앰부 성지와 네팔의 세계문화유산 답사 후, 시내에서 민주화 시위현장 방문, 저녁 이주노동자 가정을 방문하여 인사와 만찬
4/30 네팔왕조 박물관 견학, 오후 한국인 운영하는 쇼핑센터, 인터넷 카페방문, 지폰 총본부 건물에서 지도부와 초청자 인사, 일정안내, 현 네팔시국현황을 담은 영상물 시청, 지폰위원장 초청 환영 만찬 참석.
5/1 제114 세계노동자의날 기념, 지폰 4차 총회 개막식 참석하여 연대사, 오후 역사탐방과 전통마을의 정치인가정 방문하여 전통식저녁식사 대접받음
5/2 에베레스트가 보이는 산악지대 방문 오후 지폰총회 참석하여 기념선물받고 인사 저녁 네팔 노동아카데미 연구소 초정만찬, 민주노총, 한국참가자들의 밤
5/3 지폰총회 새로운 지도부 기자 회견장 배석 축하, 한국인들이 지원, 이주노동자회 대표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방문, 달릿마을방문, 등 정당지도자부 만찬 참석
5/4 서부 포카로지역으로 이동(7시간)하여 관광노조 부위원장 영접받음, 호수가 연대의 숙소, 트래킹노조방문, 호수가 둘러보고, 시내에서 인터넷, 한국전화, 아래로 깊어지는 강다리 견학, 포카라의 지역노동자의 상황을 들음.
5/5 일찍뜨는해와 안나푸르나, 포카라가 보이는 산 트래킹, 지폰 지역본부와 운송노동 조합방문 하여 인사와 교류, 한국의 투쟁하는 이주노동자 라쥬, 우다야 가정방문.
5/6 한국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집 방문, 카투만두로 이동하여 버즈러집으로 짐을 이동한후 APWSL 한-네팔 만남( 이주노동운동을 통한 교류연대 확인)
5/7 버즈러 집에서 민박한후 예식(결혼, 장례, 화장, 납골)장 방문후 태국출발 저녁때 도착하여 스리파이의 만남과 청년여성노동센터 숙소로 이동
5/8 스리파이와 대화, 아시아문화개발협의회 문제 등 상황점검과 휴식
5/9 APWSL 한국, 태국위원회 공식적인 만남, 통역(파라트), 은행구좌개설,
청년녿오자센터 후원회 노동자 정기회의 참석하여인사와 한국위소개후 대화
5/10 아롬노동문제 리써치 연구소, 태국 노동자박문관 방문. 11시 20분 방콕출발
5/11 인천 도착
- 방문단 : 장창원목사, 여성노조 울산지부 준비 김명숙(서기), 현대중공업 오종세(진행사진, 5/5일 귀국), 이주지부 지원대책위 이현금(회계. 5/9일 귀국), 민노당 여수지구당위원장 이준상(4/27일 귀가)
- 결과 : 풀뿌리 민주노동자의 현장, 지역간 구체적인 교류, 연대, 협력의 방안을 논의함.
1. 제4차 총회와 새로운 집행부 축하하며 네팔의 현안문제 등 공동인식을 넓힘
2. 한국의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연대하는 일을 중심으로 하여 협력센터 건립계획 추진.
3. 한국에서 피해입은 노동자와 가족들 문제, 현황을 알고 대책을 마련한다.
4. 아시아 민중대회, 노동자국제대회 등, 등 교환방문프로그램 지속
5. 2005년 총회시 참가 회원국가의 현황레포트를 받고 재정, 횡령사건의 진상을 발표한다.
6. 돈이 없어도 풀뿌리 민주적인 노동자 국제연대의 모델로 활동한다
르완다 선교지 선정이유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 17) 말씀에 따라 산업사회 속에 정의와 평화를 일구어 내려는 산업선교회는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과 형편, 고통을 살피고 위로하며 노동자들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선교사역으로 권세자들의 탄압과 침탈속에도 굴하지 않고 40년간 한국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여 왔습니다. 산업선교회는 민중교회와 노동사회를 연결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였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반독제, 민주화 투쟁을 하였으며,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 하려고 주경야독을 하며 학습하였고, 성령의 가르침에 따라(눅 4 :18 -19) 민족의 구원을 위한 죽음과 십자가의 길이라도 따라나서며 예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민중목회자라는 영광으로 감사하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전도사가 되어 비인간적이며 형편없는 작업환경과 분단과 분열의 악한구조와 역사, 불평등의 현장인 공단, 빈민, 농촌지역에서 소리 없이 겸손하게 업드려 민중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원의 은총을 받은 본인은 92년부터 민중교회, 노동선교사역에 참여하여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중심으로 10여년간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발달하는 정보화, 세계화, 냉전구조의 해체, 지식산업 발달의 시대적 변화속에서도 변함없이 민중들의 삶은 고통스럽게 살아가며 빠르게 괴물로 변한 세계자본은 불평등한 분배구조로 노동자들은 거리에 노숙자로 전락하고 있으며 세계인구의 많은 인구가 절대빈곤과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 노동자, 민중의 가난과 빈곤의 심화로부터 그리고 노동현장의 비정규직화의 로인한 생존권 불안으로부터 올바르게 대처하는 선교사업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합니까? 87년이후 공장과 거리를 수없이 해매이며 시위하는 노동자, 민중들의 요구사항을 둘러보고,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밤세워 교회에 모여서 교육하고 기도하며 얻은 것은 독득한 한국의 노동운동과 산업선교 문화가 생겼습니다. 이제 산업화가 되거난 다국적 기업의 횡포로 신음하는 신식민지적 제3세계는 한국에서의 활동과 투쟁이 모범적인 방법으로 쓰여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노동운동을 세계노동사회가 주목하고 있으며 배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살아있는 세계사회의 지지와 연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결과를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세계선교방향과 목표를 해야할 일을 설정할 때입니다. 그 동안 세계교회가 한국의 산업선교를 위하여 물심 양면으로 얼마나 후원하고 지원하였으며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호주연합교회에서는 선교협력을 위한 실무자를 파송하여 국제연대의 활동을 원활하게 하고있습니다. 세계교회의 관심으로 성장한 한국산업선교회가 이제 국내에는 전국적으로 노동교회, 상담소를 중심으로 민중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민중교회들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온 그 동안의 경험과 활동이 IMF경제대란으로 수백만의 실업자가 발생하였을 때 대처하고 세계자본에 횡포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선구적인 실업운동과 구호, 대책사업으로 피난처로서의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였음을 보았습니다. 가난한 노동자, 민중들과 함께 살아가며 어려운 지역에서 모범적으로 활동하는 작은 교회들이 물량주의, 대형교회의 방향타와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가르침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더욱 가까운 이웃이 된 오늘날 아프리카에서는 수 백년의 식민지와 종족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러한 책임은 인류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며 책임임을 통감합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 산업선교(URM)현장의 확장을 통한 에큐메니칼 선교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경험을 통하여 세계 노동자, 민중들이 의식화하고 자각하며 단결하고 연대하여 자기의 권리를 세계곳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노동자의 무한한 창조적 힘이 민주적 역량으로 발전되고, 아름다운 노동의 인간화와 가치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창조적인 현장의 힘이 성령의 힘으로 승화되고 폭팔 하여 살인적인 물질문명의 피해를 제거하고 하나님나라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며 풀뿌리민주주의와 지역 자치적인 평등세상으로 발현되어 이웃과 세계를 살리는 성숙한 민중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자주성이고 주체적인 노동자, 민중으로 연대함이 필요와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민중들을 향해 실천되어야 합니다. 이제 막 태어나는 세계나라의 산업선교들에 연대와지지가 더욱 확산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제 43년의 장년이 된 한국의 산업선교회는 전국의 민중교회로 모여 이미 이러한 일들을 결의하여 시작하고 진행하여 왔습니다. 그 동안 양심적인 세계로부터 받은 지지와 연대, 후원과 기도에 감사하며, 97년부터 식민지와 종족갈등을 비롯한 여러 원인으로 고통 당하는 아시아의 이웃나라에 대한 기도와 산업선교훈련, 지원과 연대을 하기로 결의하여 캄보디아에는 산업선교훈련을 받고 예민선의 회원인 서경기목사를 파송하여 3년간 성공적인 활동을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의 물질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아시아교회협의회와 아시아 태평양 노동자연대기구의 협력으로 인도네시아, 미얀마, 스리랑카 등등의 아시아지역 산업선교실무지도력과 노동운동가를 매년 1회 1개월간 초청하여 현장방문과 지도력 훈련을 실시하고있습니다. 이러한 산업선교와 민중교회의 프로그램 계획과 진행의 담당목사로 함께 참여 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역속에 노동선교사라는 약칭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며 노동목사가 된 것은 산업선교와 예장민중교회선교연합의 오랜 목회자훈련과정의 전통과 공동체적 목회정신으로 지금도 노동현장에서 소리 없이 눈물로 씨를 뿌리는 목회동지들이 함께 함입니다. 민중목회자로 손잡고 함께 하는 우리 안에서의 역사가 앞으로도 가장 큰 힘입니다.
90년 초반까지 한국교회와 산업선교에 대한 세계교회의 물질적 지원이 OECD가입 등으로 끊어졌습니다. 한국교회는 분단과 미국의 경제지원과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노동으로 경제발전을 하였으며 그러한 현상 속에 교회가 상징적으로 부흥하였습니다. 여러 사회적 조건이 교회가 돈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래 헌금의 목적과 정신인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맞게 쓰여지지 않고 부의 축척과 교인들만을 위한 일들에 쓰여지고 있다고 합니다. 은행에서 이자가 붙 기도하고 주식투자를 하기도하며 목회자가 교회를 확장하려 미국의 카지노를 들락거린다고 합니다. 이상현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자본에 우선하는 교회가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선교회는 교회의 지원이 없어서 유지하기가 힘들 상황이지만 처음처럼 정의롭고 진리의 말씀에 중심을 잡고 계속하여야 할 한국교회의 상징적일이고 확장되고 부흥되어야 할 교회의 역할입니다. 교회의 신성한 헌금이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여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우리를 지원했던 세계교회와 양심세력들이 아프리카로 연대의 방향을 돌렸습니다. 한편으로는 가고있습니다. 파괴되지 않은 원시림을 보호하는 것이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희망이라 말하듯이 그 동안의 수탈에 힘겹게 버팅겨온 아프리카에 민중들에게 함께 서서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인간애를 나누고자합니다. 그러한 현실이 95년 예장총회가 한국교회의 헌금으로 종족분쟁과 가난으로 고통 당하는 아프리카 르완다를 지원하였고 물질보다 소중한 우리에 경험을 나누기위해서 산업선교의 실무자를 파송하게 된것입니다. 99년 총회장과 사회부 총무가 세계개혁교회협의회의 안내로 종족분쟁과 가난으로 고통 당하는 아프리카 르완다 지역의 선교현장을 방문 한 후, 한국교회 예장총회가 르완다교회 총회를 통하여 약속한 실천을위하여 한국교회가 경험한 여러 형태의 선교 현장의 경험과 고난 속에서 산업선교가 설립되어 사회적 활동을 하였던 역사를 바탕으로 르완다교회의 산업선교와 민족화해를 위한 평화선교사역을 감당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민중교회의 선교경험자를 선발하려 1년 단기선교사를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떠나게 됨을 무한영광으로 앞으로의 40년 연대를 바라보고 디딤돌 하나 만들려 합니다.
노동선교사된 나는 최근 정, 경유착의 IMF 경제대란으로 노동사회의 구조조정과 퇴출로 인한 비정규직, 임시직, 실업자 등의 노동사회와 노동인권 문제의 심각한 세계적 문제앞에 가장 밑바닥 이라하는 가에서 대처를 위해서 여러 시민, 사회, 종교 단체들과 연대하여 세계자본의 정보와 네드웍에 대응하는 제2회 서울국제노동미디어대회 운영위원장 역할을 감당하면서 활동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교회와 노동사회가 역사와 경험을 토대로 하여 국제적인 노동선교사역의 연대와 확장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알게 되었으며 92년부터 시작한 민중선교현장목회자훈련과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의 10년간 사역의 경험을 총동원하여 고통받는 르완다교회와 가난한 민중들에게 적합한 선교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연대하고 협력하려 아프리카로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산업선교와 민중교회 전초기지를 마련하려는 기도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자 합니다.
단기사역계획서
산업사회의 발달초기 교회가 돌보았던 가난한 이들의 선교가 오늘날 주일학교의 효시가 되었드시 영등포산업선교회와 한국기독교산업선교의 발전적인 미래상을 연구하여 가난하고 고통받는 노동자와 민중선교를 위한 세계산업선교의 활성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제시하려는 르완다선교계획은 총회사회부와 세계선교부의 협의를 거치며 장기적인 목표와 구체적이고 자세한 것은 민중교회선교연합이 함께 하여 세워 질 것이다.
우선 단기선교사로서의 큰 틀과 원칙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1) 아프리카와 르완다의 현지선교상황과 언어, 교육, 정치, 역사, 전통, 문화, 환경을 존중하고 이에 대한 충분한 학습, 연구, 이해가 필요하므로 자료를 준비한다. (자주, 독립, 준비성)
2) 그 동안 세계교회가 연대하여온 소중한 자료와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국교회가 협력하여 할 수 있는 에큐메니칼 선교계획을 세우고 선교사들이 현지적응과 언어훈련을 통하여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선교하도록 발판을 마련한다. (단결, 연대, 평화성)
3) 르완다와 세계노동자를 위하여 공동으로 기도하고 협력하여 민중교회의 공동체성을 선교사업의 산업선교, 민중교회, 노동단체로 구성한다 (겸손, 통일, 공동체성)
4) 세계교회가 지원하여 이룩한 한국의 40여 년간의 산업선교활동과 자주적인 민중교회의 역사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르완다의 가난한 민중들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 살아간다. (현장,민주, 민족성)
5) 노동자,농민의 권리쟁취역사와 민주화운동의 전통을 나누며 전하고 민중속에서 솔선하여 실천하며 살아가는 민중교회선교방식을 실천한다.(투쟁, 노동, 민중성)
6) 세계 각국의 산업선교기관이 아프리카를 위하여 집중하여 기도하고 조직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후원, 지원, 봉사의 구조를 만들도록 조직한다.(연대, 에큐메니칼,봉사성)
7) 국제노동, 민중선교의 국제연대를 추진하여 산업화가 시작되는 어려움에 처한 각국의 노동자가 연결되는 미디어의 발전전략으로 세계 민중네드웍의 체계를 점검하고 건설하여 민중교회선교의 발전적인 토대를 마련한다.
8) 르완다의 선교가 종족갈등을 없애고 평화와 자유를 풍성히 하며 노동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청소년평화의 쎈타를 건립한다.
<별첨1> 르완다공화국(Republic Rwanda)의 역사의 흐름
-아프리카 중앙부에 있는 내륙소국으로 우간다, 탄자니야, 부룬디, 자이르 등의 국경지역으로 면적 2만6338km*.인구 773만(1997). 수도 키갈리로 대부분이 구릉과 호수로 이루어진 해발고도 2000이상의 산맥지형으로 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불리운다.
-원주민은 피그미계 트와족이며 현재 약 9.000명이 수렵, 채집생활을 하고 있다.
-1000년경부터 반투계 농경민 후투족(인구의 90%)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부른디지역에 살고있었음. 약 600년전 호전적인 유목민 투치족(인구의 9%)이 북쪽으로부터 침입하여 후투족은 대항하지 못하고 지배자로 인정하여 음와미왕을 받드는 왕국을 형성하였다.
-1897년 독일의 지배가 시작되고 독일령이 되었다. 1923년 1차대전이후 국제연맹위임통치령, 1946년 2차대전후 국제연합신탁통치령으로 UN에 의해 벨기에 간접통치령 정책속에 투치족의 전통적 왕국은 계속되며 권세와 교육을 독점하였다.
-1957년 후투족의 전제종결과 식민지제 타파를 선언하였다. 1959 르완다왕의 죽음으로 정치적불안이 시작 후투족반군과 투치족간 15만명의 사상자를낸 내전후 1960년 선거로 후투족G. 카이반다가 정권 장악하고 초대대통령으로 1961년 벨기에의 신탁통치를 벗어나 독립하여 1962년 7월 1일 르완다공화국이 세워졌다.
-1963-64년 투치족게릴라사건으로 수천명희생. 70년대 부룬디와의 긴장으로 반투치 감정이되살아나고 정치정세가 불안하였으며
-1973년 투치족의 아비야리나마가 쿠테타를 일으켜 국가개발혁명당을 결성하고 78년 단일정당으로 일당독제를 편성하여 대통령에 취임하여 지방주의와 부족대립을 해소하고 국가통일과 국제연대의 정책을 펼쳤으나 종족분쟁은 계속되었다.
-1994년 내전에 휩쓸려 대혼란과 살상으로 95년 현재 UN군의 감시하에 있다.
- 미국이지원하는 투치 군부정권이 독재를 하며 사회를 안정시키려하지만
산악지역을 중심으로한 반군들의 저항이 2001까지 계속되었으며 나라의 국기를 바꾸며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별첨2> 경제상황과 문화
-국민 90%이상이 농업이며 콩, 고구마, 감자, 바나나, 옥수수, 땅콩이 자급농작물이나 인구밀도가 높고 주기적인 흉작으로 자급자족이 어렵다.
-수출 주상품 커피와 차가 총수출액의 54%를 차지하며 광산물 주석, 텅스텐 등이 수출되고, 천연가스도 분출한다.
- 수력발전소가 있으며 경공업은 키갈리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비누, 도료, 방충제, 고무신,맥주 등을 생산하고 목축이 번성하지만, 르완다의 국민총생산은 약 19억 만달러, 국민1인당소득은 230달러로 아프리카중에도 최극빈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 소수 투치 목축민의 중앙집권적 조직왕국과 약40개의 지방조직으로 농산물과 수세를 관리하는 추장제도로 후치족과의 계층관계의 오랜 전통문화가 신성시되었다.
-소를 둘러싼 봉건적 주종관계가 종족갈등의 원인이되고 생명력을 둘러싼 복잡한 종교관념은 전통종교로 연구되고있으며 바구니, 돗자리, 우유병, 목제용기, 의식용 도끼 등의 기하학적 세공품과 현악기 반주의 전통음악의 독특한 소리등 전통문화가 발달 하였다.
-국민의 50%가 카토릭이며 추기경이 탄생하였다. 교육도 잘 보급되고 110만이상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92년 국립대학이 개설되어 3,454명이 다니고 있다. 언어는 킨야르완다어, 프랑스어, 스와힐리어가, 영어가 공용어이다.
- 1991년 주산업인 차가 UR협상이후 값의 폭락하였고 1992년 IMF경제위기의 수렁에 빠졌으며 전쟁의 한가지 원인이 되었다
2001년 일년간 르완다에서 살면서 접한 확인된 새로운세상
먼 이국 현장에서의 바램과 삶은 곧 올것 같은 화해와 평화였다.
다시만남의 약속시간은 오지 않고 시간이 지나가며 가끔들리는 소식
전쟁과 아픔이 그치지 않고 있다.
우리 동네의 거울이되는 그동네
전쟁터 가운데 어서도 참 평화와 화해는 존재하는가?
되물어보며
지난 1년간의 르완다 생활기록을 다시 정리하지않으면
진한 연대와 나눔의 추억에 몸부림이 사무쳐서
세계의 평화와 사랑의 혁명을 꿈구어본다.
1. 파송경과
-1994년 인류최대의 비극인 르완다 내전 당시 약 80만명의 대학살 이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pck)는 1995년 목회차원의(5만불) 구호금을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을 통하여 지원하였다.
-1999년 1월 18일-25일까지 르완다 장로교회 총회가 구호금 지원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본 교단 대표를 WARC를 통하여 초청하였다. 당시 총회장 유의웅 목사와 사회부 총무 류태선 목사가 르완다를 방문하였다. 방문시, 르완다 장로교회와 본 교단과의 지속적인 협력의 일환으로 단기 선교사 파송 건에 대하여 합의하였다. (총회 99년 르완다 방문보고서 참고)
-단기 선교사 희망자를 찾던 중, 영등포산업선교회 간사로 일하던 장창원 목사를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추천하였으며(3월 말), 총회 사회부 제5차 실행위원회(4월 10일)에서 장 창원목사를 세계선교부에 르완다단기선교사 추천하기로 하고, 영등포노회 등에 협조를 요청하기로 하였다.
- 2000년 7월 28일 르완다 장로교회로부터 예장총회본부에 장 창원 목사를 초청하는 초청장을 보내왔고 장 창원 목사는 세계선교부에 단기 선교사 파송 청원서를 8월 5일 제출하였다. 세계선교부는 84-2차 인선위원회 8월 24일 파송을 결정하였다.
2001년 1월 파송 예정하며 파송협력선교기관,교회는 예장총회사회부, 영등포노회 세계선교부, 영등포산업선교회, 도림교회, 목민교회, 대전제일교회, 대전대덕교회, 광명교회 등 이 나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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