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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학술운동의 전망

나는 운동에 대해 생각하면서 군사적 유비를 쓰길 좋아한다.

 

요새는 그런 것에 대한 반감이 팽배해 있지만, 난 군사적 유비야말로 운동을 설명해주는 더할나위없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고 정치는 전쟁의 최소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요즘은 그런 유비를 통해 운동판 전체와 학술운동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고 있다.

 

스스로 변혁적 학술운동이라는 진로를 잡은 이상, 내가 생각하는 학술운동의 상이라는 것을 고민해봐야 할 필요를 느껴서이다.

 



전투에 비유하면 지금의 상황은 후퇴와 고립의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대기강과 사기는 붕괴하고 대오는 뿔뿔히 흩어지며, 장교들은 무능하고 하사관들은 하나씩 전사해가며 군비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적들은 포위망을 점점 좁혀 들어오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중심성', 즉, 전투현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백전노장 하사관들이 상황을 통제하고 대오를 정비하며 참호를 파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맞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현장에서 미래를>에 나온 글에서 "운동의 역량 중 70%는 현장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공감한다.

 

그럼 나머지 30%는?

 

난 그 남은 비중 중 대부분은 변혁적 학술운동에 투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사관들의 임무는 적 섬멸이 아니다. 대오를 정비하고 참호를 파서 전선을 유지하거나 혹은 여의치 않을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후퇴하는 것이다(물론 이 '후퇴'가 전투성으로부터의, 비타협성으로부터의 후퇴를 의미함은 아니다).

 

그런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공병대, 포병대, 정찰병대이다.

 

변혁적 학술운동이 아카데미즘에서 탈피하여 본연의 임무를 다한다함은 이런 것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지금의 변혁적 학술운동은 부대 대오가 사용할 수 있는 참호와 벙커를 만들고, 무기와 식량을 모으며, 지속적인 포격으로 적의 전진을 일정부분 교란시키고, 나아가선 후퇴 경로와 유리한 지형을 탐색해야 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즉 학술운동 스스로가 사변적 탐구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현단계에서 계급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는 체계적 변혁이론을 생산하는데 역점을 두고, 그 이론적 맥락에서 적들에게 적극적인 논쟁과 포격을 가하며, 그 속에서 장기적으로는 변혁적 계급정당의 강령 인프라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19세기 "자본의 시대"에 마르크스가 수행했던 모든 역할을 다시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실질적인 계급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는 체계적 변혁이론을 제시했고(<자본>을 비롯한 정치경제학 비판), 그 이론적 맥락에서 적들에게 적극적인 논쟁과 포격을 가했으며(수많은 팜플렛과 기타 대외활동), 그 속에서 장기적으로는 혁명정당의 강령 인프라를 제시했다(<공산당 선언>, <프랑스 내전> 등의 정치적 저술들).

 

물론 이런 활동들을 전개하기 위해선 공병진지(학술조직)도 필요하며, 포격을 가할 포대(적절한 매체)도 필요하고, 실질 전투부대와의 통신(현장과의 교감)도 필수적이다.

 

시대는 우리에게 어려운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위에서 열거한 백업은 커녕 전투부대가 당장 궤멸 직전인 상태에서, 공병대와 포병대만 남아서야 전멸을 면치 못할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히 전투부대 대오 우선 정비하고, 그 다음 진지 건설과 포대 확보라는 식의 단계론이 성립되지는 않는 문제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관념적인 말만으로 남기지 않으려면, 공부하고 실력을 쌓고 투쟁해야겠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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