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그런 식으로 얘기하겠다면...

나도 할 말은 많다.

 

물론 내가 숱한 오류를 저질러왔음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너의 지적은 타당하며, 나는 그것에 대해서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무책임한 결과를 방치했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그 감성에 찬 불평이 짜증이 나는 건, 내가 anti-B이기 때문만은 분명히 아니야.

 

너희가 A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B도 고민하느라 힘들었다고, 그런데 사람들은 너희가 B만 고민하는 줄 안다고, 그건 폭력이라고.

 

나도 B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A도 고민하느라 힘들었다. 무슨 근거로 너희는 내가 A만 고민했다고 얘기하는거지?

 

너희가 마구 강자로 추켜올려지는 것도, 약자로 짓밟히는 것도 싫다고.

 

나도 내가 억압자의 입장에 있는 것도, 피해자연 하는 것도 싫어. 그래서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그걸 알기 위해서 경청했을 뿐인데, 어쩌라고?

 

'건드리면 곧 깨어질 듯한 유리잔'처럼 자기 자신을 치장하지 마라-

 

A라는 기준이 언제나 B를 상회하는 것 같냐? 그래서 마음이 아프냐?

 

웃기지 마, A가 언제 된 적이 있었다고 그래. 그것의 정당성 역시 아직 완전히 언어화되지 못했고, 그 척도는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 진지를 사수하는 전사들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밀려나고 파괴되어왔는데-

 

두렵고 상처받고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는 경험이 B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너는 역시나 A것들은 B와 화해 못한다고 냉소하는 또 하나의 조건으로 날 사용하겠지.

 

난 어떻게든 우리의 진지를 사수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했고, 타인들도 함께하길 원했다. 그래서 난 네게 A를 물었고, 네가 유보적인 대답을 했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봐, 유보하거나 방치했을 때 파괴당하고 죽어가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란 말이야. 이걸 이해 못해?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아군의 후퇴는 전우의 죽음이라고. 그래서 난 그럼 not A냐, 라고 물었던 거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함께 A를 지키기 위해서,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그런데 네게 not A를 묻는 순간, 네 마음 속에선 나 역시 자동적으로 not B가 되고 있잖아-

 

그래서 네가 지금 책임이 없단 얘기냐, 그런 얘기가 아니야. 너는 네가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생각할 지 몰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 먼저 겨누었든, 누구에게 책임이 있든 간에, 이미 상처는 기정사실화되었고 그 속에서 A든 B든 파괴되어 나갈 것이다.

 

네가 나의 B에 대한 진정성을 여러 경험을 통해 물을 수 있다면, 나도 A에 있어서 똑같이 할 수 있다. 아니, 해 왔지.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내가 먼저 격발쇠를 당겼고, 그 금속성에 너도 역시 격발쇠를 지그시 당기었다. 상호간에 교환된 그 섬뜩한 금속성 속에서, 너만 총을 맞을 거라는 거냐.

 

넌 언제나 피해자가 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하지만, 넌 여전히도 피해자연 하고 있잖아. A는 B를 억압하고, 나는 너를 억압하는 것처럼.

 

그게 아니라고, 지금 자신을 설명하기엔 언어화가 되어 있지 않다고, 그런 너를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폭력이라고, 그래 말해라- 하지만 분명히도 나 역시 언어화되어 있지 않다. 그 '언어화'가 책에 적혀 있는 몇 마디가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겠지.

 

차라리 내게 적이라 칭해라. 그럼 나도 거리낌없이 널 적이라 부르겠다.

 

이봐, 나도 두렵고, 나도 아파. 넌 네가 B를 한 짐 더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난 너보다 A를 한 짐 더 지고 가고 있다고. 구조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상처 입은 야수 둘이 서로 경계한다면 결론은 하나- 서로 물어뜯는거지.

 

그래, 이런 식으로밖엔 끝날 수 없었던 거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