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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사춘기소녀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12/06
    계란 한 판 같은 사람.(1)
    달달
  2. 2007/12/02
    기말고사 전날 밤(1)
    달달
  3. 2007/11/26
    레즈비언 연애운도 봐주길 바래~(5)
    달달
  4. 2007/11/09
    뭉크 '사춘기'
    달달

계란 한 판 같은 사람.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 마흔길을 바라보는 노총각 두 명의 결혼 소식이 도착했다.

정말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살아갈 것만 같은 분들이었는데,

두 분 모두 엄청 급작스럽게, 게다가 한꺼번에 결혼 뉴스를 들고 등장하셨다.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두 분 모두 혼자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화려한(?) 싱글이셨기에

나의 비혼가정에 대한 로망이 깨지는 듯해서 쪼끔 서운하긴 하지만,

그야말로 겹경사라 하겠다.

 

언제나처럼 능글능글한 말투로 전화를 걸어온 노총각 아저씨의 깜짝 결혼 발표에

깜짝 놀란 나머지 "응? 결호오온~~?!??" 이라고 하이톤으로 대답하니

능청스러운 그분의 말씀, "야, 삼촌이 계란 한 판 넘어 두 판으로 갈 때까지 혼자일 수 없잖냐~"

 

'계란 한 판'이라는 표현.

나이 서른을 그렇게 표현한단다.

그 표현을 처음 들어 봤는데,

굉장히 좋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서른 즈음이 되었을 때,

정말 꼭 계란 한 판 같은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계란 한 판. 그것을 떠올리면, 굉장히 풍성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집에 계란 한 판만 있으면 순식간에 식탁이 풍성해진다.

계란 후라이 대충 부쳐서 간장이랑 참기름이랑 넣고 밥 비벼 먹어도 한 끼가 해결되며,

계란말이, 계란찜, 계란으로 만들 수 있는 어머니표 밥반찬들은 얼마나 다양하고, 또 하나하나 얼마나 맛난가.

요즘에는 아토피다 뭐다 해서 계란 들어간 거 잘 못 먹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더만,

대부분의 경우 계란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친구들과 함께 찜질방이며 목욕탕에서 수다를 떨며 까먹는 계란은 얼마나 감칠맛 나는지.

라면으로 초라한 한 끼를 때울 때에도 계란 하나 깨 넣으면 뭔가 풍성해지는 느낌이 든다.

가난한 농촌 가정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아버지의 학창시절,

막내아들을 유난히 아끼시던 할머니께서 가끔 형들 몰래 도시락에 챙겨 주셨던 계란 프라이는

지금도 아버님의 포근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 내가 서른이 되었을때,

계란 한 판의 느낌처럼 그렇게

여러모로 쓸모 많고, 어디서나 환영받으며,

어디에 있던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풍성하며 포근한 느낌을 안겨 줄 수 있는

그런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해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계란 한 판 같이 포근하고 성숙해져 있는 내 자신을 꿈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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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 전날 밤

 

건전한 대한민국 여고생 달달의

기말고사 전날 밤 식단은

 

커피 세 잔

커피만 마시면 두통이 생기는 자신을 위한 타이레놀 두 알

초콜릿 하나

커피+초콜릿이라는 아토피의 적을 섭취한 뒤의 후유증을 막기 위한 스테로이드제 한 알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상식적인 건강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악할 만한 구성이라 하겠다.

커피를 받지 않는 몸에 억지로 카페인을 부어넣고

그 고통을 잊으려 진통제를 먹고

피부병을 가라앉히기 위해 스테로이드제를 먹고........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며 공부하는 달달의 모습은,

고3을 코앞에 두고 2학년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르는 고2 학생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서로 진통제를 먹는 것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시험 전날이 되면 다들 각성제에 커피에 진통제 등등은 기본이 되어버린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감도>에서 막다른 골목을 향해 달려가는 아해들이 우리의 자화상인 양 느껴진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이유도 모른 채 끝없이 질주하는 아해들.

그저 낙오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며

자멸의 길을 향해 다같이 달려가고 있는 그 아해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이렇게 스스로 몸을 망가뜨리면서까지 공부해야 하는 현실

언제쯤이면 사라질까?

 

친구 중 한 명은 일주일 전부터 위염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너무 아파서 공부가 되지 않는다며 아까 식당에서 울음을 터트렸더랜다

병원에 가고 약국에 갈 시간도 아까워서

진통제로 버티면서, 울면서, 토하면서,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다. 아니, 해야만 한다.

 

이건 독한 모범생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낙오자에게는 극도로 냉엄한 입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의 몸부림이며, 현실인 것이다.

 

대선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요즘 인터넷은 온통 대선 광고로 도배되어 있다.

이명박 후보는 명박 오빠만 믿으라며 청년실업 잡아준대고,

정동영 후보는 나의 행복을 찾아주겠단다.

 

사실 두 사람 모두에게 별로 믿음은 없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제발

우리 고등학생들

정상적으로 자신의 건강 고려해 가면서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끔 해 주었으면 좋겠다

 

세계적인 교육수준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우리들을 비인간적인 경쟁 속으로 내몰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산양 비슷하게 생긴 동물인 스프링벅들은, 풀을 조금이라도 더 먼저 뜯어먹기 위해 달려가다가

결국은 온 무리가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비극적 집단 자살을 한다고 한다.

우리 또한 이러한 무의미한 경쟁에서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지만

알고 보면 이 길의 끝에는 집단 자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든다.

 

지금 내신에 목을 매며 커피를 몸 속으로 부어넣는 나의 모습,

또한 모든 학생들에게 나처럼 비인간적인 공부 기계가 되기를 종용하는 이 사회, 

이것이 진정 인간적 가치가 중심이 되어야 할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이란 말인가?

 

씁쓸하다.

나는 다시 공부로 돌아가야겠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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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연애운도 봐주길 바래~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장난삼아 사주팔자를 봤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장난삼아 봤던 건데,

내 성격이며 전공까지 알아맞추는 데는 '와, 제법 용하다' 싶었다.

심지어 작년에서 올해까지 짝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까지 알아맞추시길래,

이 점쟁이 아주머니가 길거리에서 만원짜리 사주나 봐주고 계실 분이 맞나 싶었을 정도.

 

그런데 이 점쟁이 아주머니가 연애운을 읊으실 때 확 깨버린 거다.

물론 내가 여자니까 일반적으로는 남자 만날 운세를 짚어 주시는 게 맞겠지만,

내가 누군가. 이 땅의 당당한 레즈비언 아닌가.

아주머니가 연애운 짚어주신다길래 신났다가 한순간 확 깨버린 거다.

평소에는 애인 고르는 데 엄청 까다로운 척 하다가,

엉뚱하게도 단순하고 운동 잘하는 타입에 확 꽂힌다는 말은 정확하다.

근데 그게 왜 남자냐구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심지어 2010년에 연하 두 명이 생긴댄다.

아주머니........그거 레즈비언한테도 유효한 건가요?

삼년 뒤에 연하'남'말고 귀여운 소녀들 두 명 옆구리에 행복하게 끼고 다니면 안되겠니? ㅠㅠ

 

언제쯤이면 사주팔자 짚어주시는 아주머니도

'OO씨는 여자를 좋아해요, 남자를 좋아해요?' 라고 물어 볼까.

아니면 사주팔자 짚어 보다가 '아이구, 타고난 레즈네!' 라고 말해 주는 용한 보살님은 없을까?

 

어여쁜 레즈비언 처녀보살님한테 속시원하게 팔자풀이 듣고 싶다. 으헝헝.

지금이야 점집 차려놓고 '레즈보살'이라고 걸어 놓으면

호모포빅들한테 온갖 폭력 당하기 딱 좋겠지만.....

점집 가면 아무렇지도 않게 동성 커플 궁합 보고, 그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언능 왔으면 좋겠다. 으헝헝.

 

내 전공이며 성격이며, 연애운 빼고 다른 건 다 정확하게 들어맞췄던 그 아주머니가

시간이 흘러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나면,

내 연애운도 정확히 봐주실 수 있는 개방적 보살님이 되어 있길 바라면서,

 

실은, 만원 내고 연애운도 제대로 못 본게 억울해서 하소연해 본다. 흑흑.

레즈비언도 속시원하게 속속들이 사주팔자 봐주길 바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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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사춘기'

 

 

 

뭉크의 ‘사춘기’는 발가벗은 소녀가 두 손을 교차해서 몸을 가리고 침대에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아직 덜 성숙한 소녀의 젖가슴과 앙상한 팔. 겁에 질린 듯 커다란 눈동자엔 슬픔과 두려움이 담겨 있다. 소녀는 막막한 얼굴이다. 이제 더는 아이가 아니다. 몸에 생긴 변화만큼 마음에도 여러 변화가 찾아왔지만 소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어른들은 곁에 없다. 소녀는 낯설고 무섭다. 도대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충고가 한꺼번에 소녀를 짓누른다. 이 사춘기 소녀의 침대 뒤 오른 쪽 벽에 그려진 어두운 그림자처럼 무언가 순식간에 들이닥쳐 송두리째 삶을 망쳐버리게 되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러나 마냥 어둡고 답답할 것만 같던 사춘기가 지나면 네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아무도 모르지. 그저 방문을 잠그기 시작하는 너의 비밀을 존중해주며 기다리는 수밖엔.

 

삶이 언제는 우리에게 우호적이던가. 때론 끝없이 추락할 것만 같이 위태롭고 우리가 바치는 열정을 비웃듯 차갑고 냉랭한 시선을 던져도 우리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담담히 걸어가야 한다. 끔찍했던 순간들이 돌아보면 아득하게 느껴지는 때도 있는 것처럼.

 

한겨레, 2007년 11월 0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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