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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에는 연기 나는 장면만 보았는데 아침 뉴스를 보니 남대문이 다 타져 없어졌다.
연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복원 이야기가 나온다.
글쎄, 복원을 이야기하기 전에 불타버린 잔해 앞에 제사라도 올려야 하지 않을까?
무너져내린 기억들 앞에 조용히 꽃이라도 먼저 한송이 올려야 하지 않을까?
그 문화재라는 것이 도로 교통에나 장애가 될뿐, 현재 생활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렇다고 지나간 날들을 천천히 기억하게 하는 구실도 못하고, 오가는 사람들 불러 모으는 시시껄렁한 옛 성벽 모퉁이에 불과했다면, 그 폐허 얼른 싹싹 청소하고, 짝퉁 숭례문을 하루바삐 세워야겠지. 그래야 디자인 수도 서울 이미지를 시커먼 잿더미 그림으로 구기는 일이 없을 테니까.
허나, 이제 아무리 그럴듯한 복제물을 세운다한들, 짝퉁 신세를 면할 길은 없을 것이니, 차라리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다 타버린 기둥을 모아, 그 모습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성 부르다. 처음 그 건물을 세우는 것이 한 시대의 생활이요 문화였다면, 지금 '생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성벽이나 성문이 무너지고 불타 없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밖에 없는 것도, 우리 시대가 만든 '문화'의 한 모습일 것이니.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원본'을 닮은 짝퉁을 만드는데 너무 많은 공력을 들이지 말고, 그 자리에는 그대로 21세기 사람들이 벌여 놓은 폐허를 보존하는 것이 좋겠다. 어차피 영원히 보존되는 문화재는 없다. 짝퉁이 굳이 필요하다면 그 자리가 아니어도 좋으니, 어디 용산 국립 박물관 마당쯤에나 뚝딱뚝딱 세워놓는 것이 낫겠다.
(줄 잘 서고 깔끔하게 청소 잘하는 것쯤을 디자인으로 알아서, 거리 노점이나 가판대도 보기 싫어하는 서울 시장 오씨가 잿더미 숭례문을 며칠이나 두고 보겠는가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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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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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서 600년을 견뎌온 성문이 타버렸다는게, 정말 부끄럽고 화가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