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뚜의 인권이야기] 나는 불법체류자입니다-2

다문화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빠져있다.

소모뚜
지난 1995년 3월 5일. 나는 한국 땅을 밟았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서, 동생들이 아무걱정 없이 학교 다녀서 대학교를 졸업하기 원해서다. 하지만 그것은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기계 기술자가 되고 싶은 나의 꿈을 접어야만 가능했기에, 외국행을 택한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모님과 동생들이 나 때문에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간절한 마음이 나의 꿈은 없던 것으로 하자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했다.

쉽지 않았던 과정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고 또 한국에서 겪게 된 일들도 정말 쉽지 않았다. 낯선 땅에 낯선 시선들과 환경들 그리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고 귀가 있어도 알아 들지 못하는 언어적 어려움이 내게 참 힘들게 했지만 가족들이 행복할 날을 생각하며 버틸 수 있었다. 나는 희망을 가지고 왔을 뿐,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나보다 먼저 와 있는 친구들의 경험과 충고를 통해 한국에 대해 알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한국에 대한 편견도 다 맞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게 됐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만난 한국인들을 보고 한국인의 전체 이미지를 평가한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한국인 친구를 내 친구들 공장으로 데고 갔을 때, 그들이 우리에게 라면을 끓어줬다. 그때 한국인 친구는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라면을 씹어 먹지 않고 그냥 삼킨 듯 급하게 먹었다. 이를 보고 친구들은 한국인들이 음식을 씹지 않고 그냥 삼켜먹는다고 나에게 얘기해줬는데 나도 그렇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 야간 주간으로 공장과 기숙사에 번갈아가면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은 자신들 눈앞에 보인 한국인의 모습이 한국인의 전체 모습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었고, 그것을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얘기해줬고 나도 그것을 믿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거주한 이주민들을 보게 된 한국인들도 자신이 만나게 된 이주민의 모습을 전체 이주민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게 맞는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 사진:만화가 윤필님 그림


한국생활 16년 째 오늘 날까지 나는 여러 한국인과 이주민들을 만난 경험을 통해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고, 또한 모두가 착하지도 않고 모두가 나쁘지도 않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우주 속에 먼지만한 지구에 살고 있고 지구 속에서도 작은 한 구석에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제대로 판단을 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올바른 생각만이 올바른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고 그런 행동이 우리가 원하는 운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전부터 현재까지 어떤 사람들은 일할 수 있는 허가 없이, 거주하고 일 하는 이주민들을 '불법체류자다, 불법이기 때문에 범죄자다, 위험한 존재다, 테라리스트다' 등등 정말 안 좋은 식으로 생각한다. 참 안타깝다. 비자라는 도장하나 찍어주기 전에는 불법이고 범죄자고, 도장을 찍어 준 후에야 합법이고 범죄자가 아니다, 이런 것인가? 지난 2002년도에 노무현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비자를 줬다. 18만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비자를 받고 하루아침 만에 모두가 범죄자에서 벗어 나온 것인가?

비자가 없는 사람이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참 답답하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이 어떻다고 말 하는 것처럼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은 불법체류를 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위 사진:만화가 윤필님 그림

숨도 죽여야 하는 불법체류 생활

나는 불법체류를 8년 동안 했던 사람으로서 ‘불법체류자는 범죄자’라는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에 들어 온 지 3개월 후 관광 비자기간이 끝나서 불법체류가 되었다. 불법체류자가 된 첫 날부터 원래 성격이 활발하다는 나도, 비자 없이 체류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 기가 확 죽었다. 일할 때도, 공장 밖으로 나갈 때도, 항상 주변을 주의하면서 생활하게 되었다. 복장을 갖춰 입은 경비 아저씨들만 봐도 멀리서 피했다.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 비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잡아갈까봐 걱정 돼서다. 일 할 때도 한국인 동료들과 다툼이나 충돌이 없도록 주의하고 피하고 참아가며 일했다. 심지어 내가 불이익을 당했는데도 한숨을 쉬며 억지로 참았다.

미등록노동자라서 그 약점을 악용한 사람들이 있을 때도 그냥 참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가족을 위한 나의 꿈이 망하지 않기 위해서다. 외국행을 택했을 때 포기한 내 개인의 꿈, 어려운 준비 과정들과 가족을 위한 나의 희망이 한국 땅에서 겪게 된 모든 어려움을 참을 수 있게 해줬다. 남성인 나도 미등록노동자라서 여러 가지 고생을 하게 됐지만, 여성들의 경우는 더 슬픈 일들도 많았다. 이들도 나와 똑 같이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위해서 한국에서 미등록노동자로서 일하게 됐지만 비자가 없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도 신고를 못 한다는 약점을 악용한 나쁜 인간들이 저지른 언어적 신체적인 성추행, 성폭행 사례들도 있다. 월급을 안 줘서, 노동 착취를 당해서, 산재 보상을 못 받아서, 사업장 폭행, 욕설을 당해서 등등 다양한 힘든 일이 있어도 이를 문제 제기도 못하고 그냥 다른 곳으로 조용히 가버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화낼 줄 아는 사람들, 슬플 줄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보다 가족의 미래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나 어떤 사건이 있어도 더욱 커져가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우선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들이 불법체류자라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어떤 사람들의 시선은 참 답답할 수밖에 없다. 만약 범죄를 저지른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있다면 그건 그가 미등록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라기보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주말이면 부천에 있는 버마공동체나 부평에 있는 미얀마절에서, 많은 버마이주노동자들이 모여서 행사나 법회, 기부활동 등을 한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자리에 구경하러 가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 버마인들이 다함께 모여서 행사하고 기부하며 자신들의 나라를 위해 민주화 활동, 복지활동, 봉사 활동들도 한다. 일주일 내내 장기간 노동, 힘든 노동을 하며 주말에 모여서 좋은 활동을 하고 있는 이분들이, 자신들을 비자가 없어서 범죄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이다.

불법체류자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우리 이주민들이 일하는 곳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공장들이다. 내가 일했던 박스공장일이 일하는 시간도 너무 길고 일도 힘들고 월급도 많이 못 받기 때문에 어떤 한국인도 일하러 오지 않았다. 어쩌다가 오게 된 한국인도 하루만 일하고 다음 날에 안 온다. 늘 인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하다보니 우리는 ‘일인 다 역할’을 하고 사장도 일하러 공장으로 나 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데리고 와서 일하게 됐고, 그때서야 사장도 쉴 수 있었고 공장도 잘 돌아 갈 수 있었다. 사장은 새벽까지 야근하고 야식을 먹을 때마다 나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주민들은 한국인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말은 현실과 안 맞는 소리다.

어떤 한국인 자본가 사장이 공장을 차렸을 때 자신의 공장에 있는 일자리들은 자기 나라 사람인 한국인들만을 위해서라고 생각해서 만들었을까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본가들은 저임금, 장기간 노동을 해줄 수 있는 노동자를 원한다. 만약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한국인 노동자가 있다면, 문화도 언어도 다른 이주노동자들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다. 같이 일 할 때 서로 간에 문화와 언어 소통이 잘 되는 것이 필요하지만, 자본가들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적게 받고 장기간 일하는 노동자다. 정당한 노동 대가를 주기 싫은 자본가들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은 이상 한국인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비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이 점을 신중하게 생각해달라고 요구하고 싶다. 돈 없이 살아 갈 수 없어서 돈 버는 것에 정신없이 사는 요즘 사회, 공생보다 경쟁으로 변해가는 사회 속에 사는 사회적 약자들은 약자라서 더욱 억압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120만 명의 이주민들과 함께 사는 한국,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없다?

한국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위기에 처해서야 결혼 이주여성들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다문화 사회’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문화 분위기를 타고 다문화라는 말을 사용해 사업하는 단체들이나 지원센터들도 많아졌다. 그런데 이들은 어려움에 빠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센터에 찾아오면 도와주기도커녕 오지마라고 내쫓는다. 이주민지원센터라고 하면서 이주민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배제하는 것이 참 안 좋다. 다문화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빠져있다.

어떤 영세 사업 사장이 출입국이나 노동부에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를 채용하게 된 신고서를 여러 사정으로 늦게 제출 하게 될 때 기관에서 이를 안 받아 주는 경우처럼 사장의 잘 못인데도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가 된다.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도 겨울철에는 농사를 하지 않아 해고당해 불법체류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를 투입해서 일을 시켜먹고 이런 경우에는 그냥 대책 없이 외면해 불법체류자라고 딱지를 붙여 추방을 하는 정부의 태도도 문제다.

나도 그렇고 아무도 미등록노동자로 일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는 사람이기에, 할 수없이 미등록노동자가 된 상태에서도 일해서 자신의 가족을 지켜주려 노력한 것뿐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소중한 생명이 있다.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사람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최소한 아프지 않게 해줄 줄 모르는, 안아줄 줄 모르는 사회는 인권이 없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도, 세계가 존경하는 국격이 높은 국가도 기대할 수 없다.
 

이글은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오름] [소모뚜의 인권이야기] 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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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6 21:10 2011/01/06 21:10

안녕하세요~

차별없는 세상을 위해

제 블로그에 들어 오셔서 함께 계시는

여러분~

 

아픔과 기쁨으로 채워진 올해 2010년이  이제 거의

끝날 갑니다.

작년 이때도 우리는 2009년도와 이별하고

2010년도에 대한 희망찬 기대를 했었을 겁니다.

 

올해 2010년도는 어떠셨나요?

2009년도 보다 힘들셨나요?

아니면 좀 나이지나요?

 

아마 여러분들은 이 질문에 답하려

 

힘들셨다면 무엇 때문인지

나이진다면 무엇 때문인지

아니면 별 다르게 없이 지냈다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봤을 겁니다.

 

나름 잘 했다, 못했다 등이 있겠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 해서 살아 오셨다는 것은 같을 겁니다.

 

저도 2010년도 내내 온 몸을 던져

쉬는 시간 없이 활동을 했었습니다.

 

제 활동의 목표는

차별없는 세상 입니다.

가난해서

못 배워서

못 생겨서

등등에

차별을 받고 있는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죠.

 

아직도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는 아직도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할 줄 모른다는 것 입니다.

무엇을 받으러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바람이 없이 그냥

아낌 없이 사랑을 하는 것이 제대로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 사랑으로 가득한 새 해 2011년도를

여러분과 함께

방송으로

음악으로 만들어 보자 합니다.

 

민족주의

자본주의

외모주의

살샊주의자들에게

인권이 국경 없다는 것을 증명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옳은일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용기 라고 합니다.

그런 용기를 가져

행동을 하는 것이 필요 합니다.

 

인권쟁취라는 높은 산 꼭대기에 도착 하려면

거센 바람을  거슬러올라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사람들 중

마지막으로 남는 사람이 내가 되어야한다는

의지로 활동 하겠습니다.

  

올해 한해도

여러분들의 지지와 사랑 덕분에

한국 내 사회약자인 이주민들의 기본적인 권리 쟁취를 위해

활동 할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도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여주는 것에

꼭 필요한 인권 개선에도

열심히 기여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회 약자가 행복하다는 2011년도를 기대하며~

 ^^

소모뚜

버마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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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0 20:38 2010/12/30 20:38

<인권오름>에서 4개월 동안 인권의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고 했을 때 반갑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이주자의 이야기를 많은 한국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에 반갑지만 인권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한 학자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닌 나에게 인권이야기를 써달라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인간인 나의 이야기가 바로 인권이라고 여기고 편하게 쓰기로 결정했다. 다른 것이 차이뿐이라고 여기고 읽어주기 바란다.
 

나는 올해 초부터 진보넷에 블로그를 만들어 내가 살아 온 경험을 통해 이주민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나는 한국에 15년 동안 이주민으로서 생활 해 왔다. 때문에 한국인들과 다른 인생의 경험을 갖고 있다. 이주민 120만 명이 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있지만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관심도 없고 모르면서도 이상한 소문을 내어 이주민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이주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말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글쓰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주민 당사자가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의 시각에서 쓴 글이 별로 없었다. 함께 살면서 서로 잘 모르면 다문화, 다인종 사회는 형식적인 다문화 축제일뿐, 한복을 입혀 김치 담는 이주민의 장면으로만 반복되는 사회가 될 갈 것 같다. 서로 제대로 알고 제대로 된 함께 사는 사회로 향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진정성이 담긴 이주민의 실제 이야기와 생각을 전달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기록이 역사다. 유명한 한 버마역사학자가 자신이 늙은 나이까지 역사를 꾸준히 배워온 이유는 무식하기 싫어서라고 했다. 그렇다 역사를 모르면 무식하기 쉽다.
 

서로 다른 환경에 살다보면 서로 생각도 달라진다. 어떤 때는 서로 같은 환경에 살면서도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서 눈에 보이는 것, 남이 하는 말에만 빠져 든다. 이주노동자 관련 큰 이슈는 불법체류자(*)다. 불법체류자라면 ‘범죄자, 위험한 존재, 성범죄자, 테라리스트’ 등 안 좋은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불법체류가 뭔지 불법체류자의 삶이 뭔지를 불법체류자 였던 내가 말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불법체류자가 되었던 시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 대해 몇까지만 알고 있었다. 민주화 지도자 김대중 선생님, 전태일 열사의 위대한 헌신, 5.18민주항쟁 등에 대한 구체적으로는 몰랐지만 한국에 대한 존경스러운 마음과 우리가 배울 것이 많은 나라라고는 생각했었다. 그래서 한국은 민주화가 됐고, 한국에 가면 버마에서 배우지 못하는 인권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으며,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당시 1990대 초중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들어가서 일할 수 있는 제도는 ‘산업연수생’ 이었다. 하지만 버마 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소문은 그 제도를 통해 일하러 들어온 사람들을 북한과 가까운 국경근처 도로 공사, 철도 공사장으로 보내서 일을 시킨다, 그곳이 전쟁 지역이라서 위험하다, 날씨도 너무 춥다는 것이다. 그런 소문이 나서 우리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소문 때문에 대부분이 산업연수생으로 가기 싫었고 관광 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들어가서 일하기를 원했다.
 

 그 때 당시에 많은 버마젊은이들이 관광비자로 해외에 나가 일했다. 대부분 관광 비자기간은 3개월이며, 기간이 완료되는데 계속 거주 하면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이 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그 방법으로 해외 나가 일하고 가족의 생계를 해결 하고 있었다.

사진설명[그림] 윤필

해외 불법체류를 한 이주노동자가 보낸 돈으로 고국에 있는 가족들이 먹고 살고 공부할 수 있다. 자신이 보낸 돈을 쓰며 잘 지내고 있다는 행복한 모습이 담긴 가족들의 사진을 보고 불법체류자로서 타국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고통을 견딘다. 가족들도 서로 못 보지만 가족을 위해서 고생하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게 늘 감사하며 늘 건강하기를 매일 기도해주면서 산다. 서로를 위해 서로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다. 서로를 감사하며 서로를 더 그리워하며 서로를 더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 불법체류자는 가족의 삶을 책임지고 가족을 위해서 아름다운 고통을 후회 없이 받아서 사는 가족의 영웅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족을 위해서 불법체류 하는 것이며 가족이 우선이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무조건 참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본인의 불안전한 신분을 악용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당해도 참는다. 가족을 위해서 험한 길을 택했고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쳐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우리는 불법 체류자에게 가족에 대한 사랑하는 방법, 책임지는 의지를 배울 수 있고 남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인간다운 사람의 향기도 느낄 수 있다.
 

 
* 불법체류 노동자: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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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9 22:53 2010/12/0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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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와 우리단체가 인권위가 주최한 이주민 인권관련 순회 상담에 같이 결합해서 활동 한 것이 많았다.

여러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 난민, 결혼이주여성 등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순화 상담을 해서 해결 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자는 이유로 인권위에서 내 도움을 요청 했다.

 

그래서 나는 인권위와 함께 다양한 이주민들의 다양한 어려움들을 뉴스 취재도 하고 방송으로도 내보내고 다큐도 만들고 노래 공연까지 해줬다. 그 동안 인권위가 이주민 당사자와 함께 활동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한적 없는데 올해부터 인권위가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관심 있게 활동하겠다는 것에 나는 아주 기뻤고 힘도 났다.

 

인권위에 있는 분들과 함께 활동을 하면서 함께 식사도 하면서 우리는 많이 친해졌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노동자, 난민 등 여러 이주민들의 다양한 어려움들을 얘기 해주며 인권위를 통해서 그 어려움들이 해결 되 나갈 것 같아는 믿음이 생겨 개인 적으로 굉장히 좋았던 활동 이였다.

 

인권위란 국민들이 자신들의 인권에 대해 호소와 보호를 인권위를 통해 받을 수 있는 희망찬 기관이라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인권위에 대한 평가도 높았고 기대도 컸다.

 

인권이라는 단어자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인권탄압국가 버마에서 온 나에게는 인권위가 존재하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시청에 있는 인권위 건물 앞에서 지나갈 때마다 항상 여기 인권위가 있다는 것에 너무나도 부러워서 늘 바라보면서 지나갔다.

 

그래서 인권위직원들과 함께 활동들을 하게 되어 매우 기뻤고 여러 곳으로 인권 순회 상담을 함께 하면서 이주민들의 어려운 상황들을 얘기 해줄 때마다 관심 있게 들어줬던 인권위 직원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힘도 나고 우리들의 인권개선에 대한 기대도 많이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인권위에서 주는 기금을 받고 올해 중순에 제5회 이주노동자영화제도 성공적으로 해 낼 수 있었고 출입국 단속반에 연행된 난민 신청자 버마행동회원의 석방을 위해도 인권위의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인권위에게 나는 깊은 감사의 마음과 애정도 갖고 있었다. 내가 믿을 수 있고 내가 기대할 수 있는 함께 할 동지가 생겼다고 느껴 참 좋았고 앞으로도 함께 할 활동들에 대해도 인권위 직원들과 열정적으로 논의 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주노동자영화제를 주최 중.

인권위가 우리에게 준 영화제 기금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높은 분들이 우리단체와 영화제 활동에 대한 설명 들으러 사무실로 방문 오셨다. 우리 방송이 이주민들을 위해 활동하는 영상물을 보여주고 설명도 해주면서 영상에서 나온 미누형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게 됐다. 미누형이 이주자의 인권운동을 하면서 18년 동안 한국인들과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한국국민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진정한 친구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미디어와 노래로 함께 참여 했던 것이 외국인이 한국에 정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 땅에서 하루아침 만에 쫓겨났다고 얘기해줬다.

 

그런데 그분들이 나에게 굳은 표정을 하면서 말하는 것에 나는 엄청 실망했다.

이주자의 인권운동 하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한국 내 문제들에 대한 끼어들어 오지마라는 것 이였다. 인권에 대한 학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나도 미누형도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인권이란 국경이 없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북쪽에 있어도 남쪽에 있어도 다이아몬드”라는 말처럼 인권이라는 것도 한국인에게도 이주민에게도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인권을 지켜주고자 보호하고자 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눈앞에서 힘들어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하고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모두 인간이 가져야 할 인식과 행동이고 그게 바로 인권에 대한 넓은 시각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인간다운 사람이며 사랑이기도 한다.

 

 

그분들이 사무실을 떠난 후 나는 한참 멍하고 있었다. 사실 내 성격상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인권, 정치 관련 생각을 얘기해서 한판 붙을 수 있었는데 우리의 영화제를 기부하는 것이 있어서 억지로 성질을 죽기고 참았던 것이 참 힘들었다. 이럴 때 나는 단체의 대표역할이 싫다. 정의를 외면하고 자본의 얼굴을 보고 인내심을 억지로 가지고 사는 것이 내게는 참 힘든 일인 것 같아.

 

올해 10월 쯤.

나와 몇 달 동안 함께 순회 상담 활동을 했던 인권위 직원분이 나에게 우리단체가 인권위 인권 상 추천서를 써서 신청하라고 요청을 해서 바쁜데도 인권위가 주는 인권 상을 받고 싶어서 추천서를 밤새 섰고 보냈다.

 

경인 방송 라디오 녹음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왔던 날.

우리단체가 인권 상을 받게 됐다는 편지가 와 있는 것을 보게 되어 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내게 희망을 주는 인권위에서 우리를 인권 상을 준다는 것이 정말 두말 할 필 없이 좋았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아는 분들에게 상 받았다는 소식을 알려드리면서 상을 받는 날을 기뻐하면서 기다려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인가? 인권 상을 받아서 아는 분들의 해주는 축하 말을 다 받지도 못 하는데 인권위원장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안 해서 많은 시민사회 단체들이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행동이 생겼다. 인권위 건물 안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매일 보내 준 인권위 상황에 대한 메일들을 읽어 보면서 나는 마음이 참 아팠다. 그분들이 보내 준 내용들 속에 인권위가 잘 됐음 하는 진정한 애정과 사랑이 들어 있는 것이 보여서 마음이 더 아팠다.

 

한국 사회에 좋은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단체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인권위원장의 입장, 내가 존경하는 인권위 대표들의 사표, 심지어 나와 함께 순회 활동을 했었던 나의 아픔의 소리를 따뜻하게 들어 주셨던 인권위직원들의 사표 등이 내가 기대했던 나와 이주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인권위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되어 나는 인권위가 주는 내가 그토록 받고 싶었던 인권 상을 받을 때가 아님으로 상을 거부하기를 결정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인권위에 대해 많이 배우고 언젠가 민주화가 되는 버마로 들어갈 때 인권위 같은 기관부터 먼저 만들겠다는 나의 희망이 다시 살아 들어오는 그날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인권위가 주는 그 인권 상을 뿌듯한 마음으로 받고 싶다.

 

소모뚜-대표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아래는 우리단체가 인권위 인권상을 거부한 성명서다.]

 

 

- 성 명 서 -

 

MWTV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상 수여를 거부한다

 

MWTV (이주노동자의 방송)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1월 본 단체에 수여한 '인권상'을 반납하며, 수상 거부의 이유를 밝히고, 현재 인권위가 직면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은 확고한 입장을 밝힌다.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 (이하 인권위)는, 출범 후 근 1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다소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명실상부한 독립 기관으로서 초기의 가치를 지켜내 왔다.

 

하지만 최근 현 인권위원장의 취임을 시작으로, 비민주적인 운영으로 말해지는 여러 행보로부터, 우리는 인권위가 본분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인권위는 위원장의 독단적인 조직운영으로, 독립성마저 지켜지지 못한 채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내부 인사들의 연이은 사퇴는 최근 인권위가 그 사명과 근거 의식을 뒤로 한 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의 방증이다.

 

가장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인권위가, 정부의 하위 기관으로 전락해, 현재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것은 '국가인권기구'로서의 입지를 사실상 포기했음을 말한다. 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를 어떻게 민주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인권에 반하도록 운영되는 기관이 어떻게 국가를 대표하는 인권 기구일 수 있는가.

 

본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투명한 선출 과정을 거친 구성원들이 이끄는, 진정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 거듭나길 요구한다. 또한 그 운영에 있어 정부의 테두리를 벗어나 공정하고 평등한 공적 기관이 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연대 단체와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한다.

 

본 단체의 수상 거부가, 현재의 인권위원회가 당면한 사태에 대한 입장 표명임과 동시에 불가침의 영역인 인권을 말하는 국가의 유일한 기구인 인권위에 보내는 애정 어린 권고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2010. 12. 07

 

MWTV 이주노동자의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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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8 01:38 2010/12/08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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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인권홀씨상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  수상자 : 소모뚜 (이주노동자의 방송국 MWTV 대표)

지난 약 한 달 동안 많은 분들께서 인권 운동, 문화, 교육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훌륭한 인권 홀씨들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총 6분의 개인과 단체가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하였고, 12월 1일(수) 최종 심사위원 회의를 통해 수상자가 결정되었습니다. 심사에는 권태선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한국인권재단 이사), 이석태(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윤혜원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 이영(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최종 심사를 위해서는 먼저 심사 기준에 의거하여 1차로 취합된 6분의 후보에 대하여 최종 심사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방송국 MWTV 대표 소모뚜님이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소모뚜님은 15년 전 한국에 입국하여 지금까지 버마 민주화를 촉구하는 다양한 운동들을 펼쳐온 버마(미얀마) 인권활동가입니다. 특히 그가 가진 특별한 음악적 재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활용하여 이주노동자 방송의 공동 대표 겸 PD, 버마액션의 총무, 다국적 노동자밴드 ‘스톱크랙다운’의 리더(보컬, 기타), 버마국민운동 촉진위원회의 홍보 담당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국 사회와 이주자 간의 간격을 좁히고 서로에게 다리를 잇기 위해 김포시 등 자치단체와 연계하여 다문화 이해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경인방송과 EBS라디오에서 버마 음악을 소개하는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기도 합니다.

 

소모뚜님의 모국인 버마는 현재 20년이 넘게 군부독재 하에 정치적 탄압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최근 실시된 총선 이후 버마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풀려나는 등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소모뚜님은 이러한 군사정부의 정치적 박해 가능성으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에 난민신청을 했지만 현재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 하고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그동안 버마의 인권현실에 대하여 본인이 당사자일 뿐 아니라, 노래와 영상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또한 ‘다문화’가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이주자들이 스스로 좀 더 긍정적이고 자력화(empower)된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부각되었습니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다른 손에는 기타를 들고 인권 현장을 지켜 온 버마 인권활동가, 소모뚜! 정치와 국경, 인종을 넘어 인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활동가 소모뚜님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2010 인권홀씨상에 선정되셨음을 축하드립니다.

 

시상식은 돌아오는 12월 13일(월) 인권재단 후원의 밤 자리에 함께 마련됩니다.

부디 많은 분들께서 오셔서 함께 축하하고 힘을 실어주세요.

 

 

■ 2010 한국인권재단 후원의 밤 & 인권홀씨상 시상식

  ▢ 일시 : 2010. 12. 13(월) 오후 7~9시
 
  ▢ 장소 : 문학의 집(남산) ▶▷ 초청장 및 오시는 길 안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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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2 23:33 2010/12/02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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