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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1 12:20 2011/01/3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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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18:49 2011/01/19 18:49

[소모뚜의 인권이야기] 나는 불법체류자입니다-2

다문화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빠져있다.

소모뚜
지난 1995년 3월 5일. 나는 한국 땅을 밟았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서, 동생들이 아무걱정 없이 학교 다녀서 대학교를 졸업하기 원해서다. 하지만 그것은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기계 기술자가 되고 싶은 나의 꿈을 접어야만 가능했기에, 외국행을 택한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모님과 동생들이 나 때문에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간절한 마음이 나의 꿈은 없던 것으로 하자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했다.

쉽지 않았던 과정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고 또 한국에서 겪게 된 일들도 정말 쉽지 않았다. 낯선 땅에 낯선 시선들과 환경들 그리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고 귀가 있어도 알아 들지 못하는 언어적 어려움이 내게 참 힘들게 했지만 가족들이 행복할 날을 생각하며 버틸 수 있었다. 나는 희망을 가지고 왔을 뿐,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나보다 먼저 와 있는 친구들의 경험과 충고를 통해 한국에 대해 알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한국에 대한 편견도 다 맞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게 됐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만난 한국인들을 보고 한국인의 전체 이미지를 평가한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한국인 친구를 내 친구들 공장으로 데고 갔을 때, 그들이 우리에게 라면을 끓어줬다. 그때 한국인 친구는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라면을 씹어 먹지 않고 그냥 삼킨 듯 급하게 먹었다. 이를 보고 친구들은 한국인들이 음식을 씹지 않고 그냥 삼켜먹는다고 나에게 얘기해줬는데 나도 그렇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 야간 주간으로 공장과 기숙사에 번갈아가면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은 자신들 눈앞에 보인 한국인의 모습이 한국인의 전체 모습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었고, 그것을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얘기해줬고 나도 그것을 믿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거주한 이주민들을 보게 된 한국인들도 자신이 만나게 된 이주민의 모습을 전체 이주민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게 맞는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 사진:만화가 윤필님 그림


한국생활 16년 째 오늘 날까지 나는 여러 한국인과 이주민들을 만난 경험을 통해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고, 또한 모두가 착하지도 않고 모두가 나쁘지도 않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우주 속에 먼지만한 지구에 살고 있고 지구 속에서도 작은 한 구석에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제대로 판단을 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올바른 생각만이 올바른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고 그런 행동이 우리가 원하는 운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전부터 현재까지 어떤 사람들은 일할 수 있는 허가 없이, 거주하고 일 하는 이주민들을 '불법체류자다, 불법이기 때문에 범죄자다, 위험한 존재다, 테라리스트다' 등등 정말 안 좋은 식으로 생각한다. 참 안타깝다. 비자라는 도장하나 찍어주기 전에는 불법이고 범죄자고, 도장을 찍어 준 후에야 합법이고 범죄자가 아니다, 이런 것인가? 지난 2002년도에 노무현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비자를 줬다. 18만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비자를 받고 하루아침 만에 모두가 범죄자에서 벗어 나온 것인가?

비자가 없는 사람이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참 답답하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이 어떻다고 말 하는 것처럼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은 불법체류를 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위 사진:만화가 윤필님 그림

숨도 죽여야 하는 불법체류 생활

나는 불법체류를 8년 동안 했던 사람으로서 ‘불법체류자는 범죄자’라는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에 들어 온 지 3개월 후 관광 비자기간이 끝나서 불법체류가 되었다. 불법체류자가 된 첫 날부터 원래 성격이 활발하다는 나도, 비자 없이 체류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 기가 확 죽었다. 일할 때도, 공장 밖으로 나갈 때도, 항상 주변을 주의하면서 생활하게 되었다. 복장을 갖춰 입은 경비 아저씨들만 봐도 멀리서 피했다.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 비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잡아갈까봐 걱정 돼서다. 일 할 때도 한국인 동료들과 다툼이나 충돌이 없도록 주의하고 피하고 참아가며 일했다. 심지어 내가 불이익을 당했는데도 한숨을 쉬며 억지로 참았다.

미등록노동자라서 그 약점을 악용한 사람들이 있을 때도 그냥 참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가족을 위한 나의 꿈이 망하지 않기 위해서다. 외국행을 택했을 때 포기한 내 개인의 꿈, 어려운 준비 과정들과 가족을 위한 나의 희망이 한국 땅에서 겪게 된 모든 어려움을 참을 수 있게 해줬다. 남성인 나도 미등록노동자라서 여러 가지 고생을 하게 됐지만, 여성들의 경우는 더 슬픈 일들도 많았다. 이들도 나와 똑 같이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위해서 한국에서 미등록노동자로서 일하게 됐지만 비자가 없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도 신고를 못 한다는 약점을 악용한 나쁜 인간들이 저지른 언어적 신체적인 성추행, 성폭행 사례들도 있다. 월급을 안 줘서, 노동 착취를 당해서, 산재 보상을 못 받아서, 사업장 폭행, 욕설을 당해서 등등 다양한 힘든 일이 있어도 이를 문제 제기도 못하고 그냥 다른 곳으로 조용히 가버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화낼 줄 아는 사람들, 슬플 줄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보다 가족의 미래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나 어떤 사건이 있어도 더욱 커져가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우선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들이 불법체류자라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어떤 사람들의 시선은 참 답답할 수밖에 없다. 만약 범죄를 저지른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있다면 그건 그가 미등록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라기보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주말이면 부천에 있는 버마공동체나 부평에 있는 미얀마절에서, 많은 버마이주노동자들이 모여서 행사나 법회, 기부활동 등을 한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자리에 구경하러 가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 버마인들이 다함께 모여서 행사하고 기부하며 자신들의 나라를 위해 민주화 활동, 복지활동, 봉사 활동들도 한다. 일주일 내내 장기간 노동, 힘든 노동을 하며 주말에 모여서 좋은 활동을 하고 있는 이분들이, 자신들을 비자가 없어서 범죄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이다.

불법체류자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우리 이주민들이 일하는 곳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공장들이다. 내가 일했던 박스공장일이 일하는 시간도 너무 길고 일도 힘들고 월급도 많이 못 받기 때문에 어떤 한국인도 일하러 오지 않았다. 어쩌다가 오게 된 한국인도 하루만 일하고 다음 날에 안 온다. 늘 인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하다보니 우리는 ‘일인 다 역할’을 하고 사장도 일하러 공장으로 나 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데리고 와서 일하게 됐고, 그때서야 사장도 쉴 수 있었고 공장도 잘 돌아 갈 수 있었다. 사장은 새벽까지 야근하고 야식을 먹을 때마다 나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주민들은 한국인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말은 현실과 안 맞는 소리다.

어떤 한국인 자본가 사장이 공장을 차렸을 때 자신의 공장에 있는 일자리들은 자기 나라 사람인 한국인들만을 위해서라고 생각해서 만들었을까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본가들은 저임금, 장기간 노동을 해줄 수 있는 노동자를 원한다. 만약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한국인 노동자가 있다면, 문화도 언어도 다른 이주노동자들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다. 같이 일 할 때 서로 간에 문화와 언어 소통이 잘 되는 것이 필요하지만, 자본가들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적게 받고 장기간 일하는 노동자다. 정당한 노동 대가를 주기 싫은 자본가들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은 이상 한국인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비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이 점을 신중하게 생각해달라고 요구하고 싶다. 돈 없이 살아 갈 수 없어서 돈 버는 것에 정신없이 사는 요즘 사회, 공생보다 경쟁으로 변해가는 사회 속에 사는 사회적 약자들은 약자라서 더욱 억압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120만 명의 이주민들과 함께 사는 한국,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없다?

한국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위기에 처해서야 결혼 이주여성들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다문화 사회’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문화 분위기를 타고 다문화라는 말을 사용해 사업하는 단체들이나 지원센터들도 많아졌다. 그런데 이들은 어려움에 빠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센터에 찾아오면 도와주기도커녕 오지마라고 내쫓는다. 이주민지원센터라고 하면서 이주민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배제하는 것이 참 안 좋다. 다문화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빠져있다.

어떤 영세 사업 사장이 출입국이나 노동부에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를 채용하게 된 신고서를 여러 사정으로 늦게 제출 하게 될 때 기관에서 이를 안 받아 주는 경우처럼 사장의 잘 못인데도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가 된다.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도 겨울철에는 농사를 하지 않아 해고당해 불법체류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를 투입해서 일을 시켜먹고 이런 경우에는 그냥 대책 없이 외면해 불법체류자라고 딱지를 붙여 추방을 하는 정부의 태도도 문제다.

나도 그렇고 아무도 미등록노동자로 일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는 사람이기에, 할 수없이 미등록노동자가 된 상태에서도 일해서 자신의 가족을 지켜주려 노력한 것뿐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소중한 생명이 있다.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사람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최소한 아프지 않게 해줄 줄 모르는, 안아줄 줄 모르는 사회는 인권이 없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도, 세계가 존경하는 국격이 높은 국가도 기대할 수 없다.
 

이글은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오름] [소모뚜의 인권이야기] 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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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6 21:10 2011/01/06 21:10

안녕하세요~

차별없는 세상을 위해

제 블로그에 들어 오셔서 함께 계시는

여러분~

 

아픔과 기쁨으로 채워진 올해 2010년이  이제 거의

끝날 갑니다.

작년 이때도 우리는 2009년도와 이별하고

2010년도에 대한 희망찬 기대를 했었을 겁니다.

 

올해 2010년도는 어떠셨나요?

2009년도 보다 힘들셨나요?

아니면 좀 나이지나요?

 

아마 여러분들은 이 질문에 답하려

 

힘들셨다면 무엇 때문인지

나이진다면 무엇 때문인지

아니면 별 다르게 없이 지냈다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봤을 겁니다.

 

나름 잘 했다, 못했다 등이 있겠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 해서 살아 오셨다는 것은 같을 겁니다.

 

저도 2010년도 내내 온 몸을 던져

쉬는 시간 없이 활동을 했었습니다.

 

제 활동의 목표는

차별없는 세상 입니다.

가난해서

못 배워서

못 생겨서

등등에

차별을 받고 있는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죠.

 

아직도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는 아직도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할 줄 모른다는 것 입니다.

무엇을 받으러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바람이 없이 그냥

아낌 없이 사랑을 하는 것이 제대로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 사랑으로 가득한 새 해 2011년도를

여러분과 함께

방송으로

음악으로 만들어 보자 합니다.

 

민족주의

자본주의

외모주의

살샊주의자들에게

인권이 국경 없다는 것을 증명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옳은일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용기 라고 합니다.

그런 용기를 가져

행동을 하는 것이 필요 합니다.

 

인권쟁취라는 높은 산 꼭대기에 도착 하려면

거센 바람을  거슬러올라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사람들 중

마지막으로 남는 사람이 내가 되어야한다는

의지로 활동 하겠습니다.

  

올해 한해도

여러분들의 지지와 사랑 덕분에

한국 내 사회약자인 이주민들의 기본적인 권리 쟁취를 위해

활동 할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도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여주는 것에

꼭 필요한 인권 개선에도

열심히 기여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회 약자가 행복하다는 2011년도를 기대하며~

 ^^

소모뚜

버마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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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0 20:38 2010/12/30 20:38

 "독재와 배고픔의 고통 아는 대한민국 아닌가요?"

[인터뷰] 인권재단 ‘인권홀씨상’ 수상한 소모뚜 이주노동자방송국 대표   

 

2010년 12월 23일 (목)                                                                                    김수정 기자

 

한국 인권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기 때문에 결정은 어렵지 않았어요. 상을 거부하는 것은 상을 받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소모뚜(35·사진)는 올해 상복이 많았다. 최근 한국인권재단이 주는 ‘인권홀씨상’을 받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상하는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하지만 소모뚜는 인권위가 주는 상은 거부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간단했다. “상을 받지 않음으로써 한국의 인권 상황을 알릴 수 있다면 거부해서 한국 인권에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우리가 이주민의 인권뿐 아니라 한국 인권에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장애인이나 성적소수자뿐 아니라 버마인, 한국인 따질 것 없이 인권은 통하니까.”

 


▲ 세계인권선언 제62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10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현병철 위원장 사퇴촉구 및 인권상 수상거부’ 기자회견에서 소모뚜 이주노동자방송국(MWTV) 대표가 “우리가 원하는 건 상이 아니라 인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지난 20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서 만난 소모뚜는 자신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과 같은 이주민에 대한 무관심의 벽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에 더 기뻤다고 했다. 그는 “이주민은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같이 웃기도 하고, 울 줄도 아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 1993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그는 20살이었다. 가족을 위해 3~4년 일하고 버마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랬던 그가 올해로 15년 넘게 한국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는 외국인노동자였지만 지금은 인권활동가, 이주노동자방송국(MWTV) 대표, 버마행동 총무, 밴드 ‘스톱크랙다운’의 리더 등 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가 한국에서 이 같은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인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면서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잖아요. 마찬가지였어요.”  인권활동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가 처음 한국에 올 때는 막연하게 ‘잘사는 나라’, ‘민주화 국가’, ‘김대중이 있는 나라’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달랐다. “도대체 일이 너무 힘든 거예요. 하루 15~16시간씩 일을 했어요. 같이 일하는 한국 사람도 그렇게 일했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불쌍하다는.”

그러다 한국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월급을 얼마 주는 지, 일이 힘든지 보다 ‘월급은 주는 것인지’부터 알아봐야 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길 들은 것이다. 자신은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있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이주노동자가 차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열심히 배워둔 한국어 덕에 그들의 입이 돼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는 그러면서 행복을 느꼈다.

“일해서 부모님께 돈을 보내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언어라는 열쇠상처받은 이들의 답답함을 해결해 주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죠.”

밴드와 버마행동 일을 하면서 그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외국인이니 당연히 차별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의식 있는 분들을 만나면서 불법체류자도 노동권을 가질 수 있고, 퇴직금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함께 임금 삭감하며 허리띠 졸랐고, 2002년 월드컵 때는 한국을 응원하며 ‘대한민국’을 외쳤던 우리예요. 그런데 추방한다는 얘길 들으니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리는 휴지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짜 친구라면, 이주민이 많아지면 제도를 만들어 함께 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잖아요.”

2003년 정부의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에 맞서면서 그의 결심은 굳어갔다. 그러면서 인권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에게도 노동자의 권리가, 사람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공존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로 필요해서 함께 사는 거잖아요. 우리는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서, 한국도 우리가 필요해서. 서로 도움이 되는 사람끼리 왜 도움을 주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직 인식과 제도의 부족한 부분이 있어요.”

그는 전보다 살림이 나아진 한국에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한국도 독재시대를 거쳐 피땀 흘려 민주주의를 이뤘잖아요. 그때의 아픔과 배고픔을 아는 민족인데, 왜 힘들어하는 나라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밀지 않는지 안타까워요.” 공존을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며 그에게 인권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소모뚜는 ‘인권’보다는 ‘사랑’을 먼저 얘기했다.

“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원해요. 이주민에게도 가족이 있고, 모두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지요. 그런 서로를 위해 배려하고 사는 것, 그게 인권 아닐까요?”

소모뚜를 만난 날은 그가 다니는 성공회대 노동대학 수료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는 노동자의 삶이 정치·경제적으로 사회와 분리된 게 아니므로 우리 삶을 배웠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상반기 노동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대학원 공부도 할 생각이다. 지금 하는 활동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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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7 21:54 2010/12/27 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