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6/05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5/23
    눈물이 울컥할 때...
    페퍼
  2. 2006/05/22
    노동의 씁쓸함....
    페퍼
  3. 2006/05/19
    FTA 반대전선의 성격에 대해(4)
    페퍼
  4. 2006/05/04
    한가지 일을 끝내고(1)
    페퍼

눈물이 울컥할 때...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맑스의 공산당 선언이 아니었다. 버스안에서 뒤척이던 신문의 어떤 칼럼의 첫줄이었다.

'바로 영`미 시장자본주의라는 유령이다.'라는 말이 곧바로 이어진다.

 

인간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하고, 프로메테우스라는 찬사가 가장 어울리는 맑스, 

인류에 끼친 그 기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해서 더 안타까운...

그의 공산당 선언을 처음 읽었을 때 두근거렸던 기억, 

바람과도 같은 유령.... 공산주의 그 감격스러움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영미 시장자본주의가 이제 맑스의 자리를 넘본 것만 같은 서글픔이

몰려와 그 좁은 버스안에서 갑자기 눈물이 울컥 튀어나오려 했다.

 

며칠이고 그 신문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다른 신문을 잘 안봐서 신문들이 대부분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지 잘 모른다.

내가 보는 신문은 경향신문인데, 입장이 어쨌건 간에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글들이 많다.

그 칼럼을 쓴 사람은 필경 케인즈를 지지하는 사람일지 모르나

(느낌상 그럴 것 같다. 그러니 공산당 선언 첫줄을 인용한 것도 실은 장난이었겠지?...)

어쨌거나 시장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영미식 시장자본주의에

영향을 끼친 세가지를 지적했는데, 화폐론자, 하이예크, 아인 랜드의 소설 '근원'을

뽑았다.

 

며칠지나 그 칼럼을 다시 읽어보니, 괜한 감상이었구나한다.

내 상태가 이러니, 감정도 이렇게 어지럽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동의 씁쓸함....

 

프리터(free+arbeit+or)라는 속셋말이 청년실업군의 다양한 모습 중의 하나인 줄 알았는데

 

장년층이지만 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필요에 따라 필요한 만큼의 노동을 한다는 것... 매우 공산주의적이고 자발적이고 고도로 의식적인 행위이다.

 

나의 20대 후반도 활동비를 벌기위해서 정말 필요한 만큼 노동을 하는 전형적인 프리터의 삶이었다. 그건 나의 활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노동이었다. 중고생 과외라고하는...ㅋㅋ

돈벌이와 활동이 분리됨에 따른 갈등 따위는 전혀 없었고, 그냥 쿨 했다.

 

그런데... 지금의 활동은 돈벌이와 분리되지 않는 측면도 있는데 웬지 심기가 불편하고 전혀 쿨하지 않다. 다시는 할만한 일이 못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번 일을 하면서 잘되면 나의 그동안의 길찾기에 뭔가 보탬이 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도 했었는데.. 내 상태가 프리터구나라는 사실을 자각한 순간부터 아무런 기대도 없다. 그저 빨리 끝나버렸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고단하다. 왜 하는 일마다 또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버릴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FTA 반대전선의 성격에 대해

 

한미FTA 협상을 두고 논란이 많다. 스크린쿼터 폐지 논란, 미국산 쇠고기수입 논란, 미국산 쌀의 소비자 판매 등등... 한미FTA협상에 앞서 세상을 뒤숭숭하게 한 일련의 사건들이다.

 

최근에 번역을 할 기회가 있어서 읽게된 글이 있었는데 무역자유화의 상대적 충격이라는 논문이다. 협상을 체결하면 GDP가 얼마가 올라가고 교역량이 증가해서 국익에 이득이된다며 노무현정부가 FTA를 칭송하고 협약체결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그것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통계를 조작해가면서까지!!!) 무역자유화의 충격이 개발도상국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 이 글은 3년 전 논문이지만 매우 유효하고 정확한 지적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 국내 자본가들조차 무역자유화, 한미FTA를 반대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유명 영화배우들이 시위에 나서서 세간의 주목을 이끌었던 스크린쿼터 폐지 운동에 뒤이어 한미FTA 반대 범국민대책위도 발족하는 등 반FTA 전선이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청와대에 몸담았던 정태인씨 조차 FTA 반대진영으로 넘어오는 등 그냥 보기에도 한미FTA반대 전선은 크게 힘을 받을 것 같다.

 

한미FTA의 구체적인 협상분야는 잘 모르나, 농수산물 개방으로 인한 농업파탄 문제보다도 서비스분야(의료, 교육, 법률 등등) 개방, 지적재산권 보호 등으로 인한 손실이나 관세철폐로 인한 공산품 경쟁면에서의 손실부문이 훨씬더 문제가 되는 것으로 알고있다.(농업은 전 국민의 식량공급 안정성과 관련이 있어 여전히 중요한 부문이기는 하지만 전체 GDP 비중은 다른 분야에 비해 작다)

 

막대한 잉여가치가 초국적 자본이나 선진국들에게 이전되고 궁극적인 피해의 당사자는 민중들이지만, 자본들 역시 경쟁과 이윤압박 속에서 구조조정의 위협에 내몰릴 것이다. 가령 스크린쿼터의 폐지는 국내 영화제작자들의 위기이고 의료시장개방은 병원자본과 자본가의사들의 위기이며, 교육서비스의 개방은 국내 사학재단의 위기이며 법률시장개방 역시 법률자본의 위기인 것이다. 심지어 관세가 철폐될 경우 미국보다 관세률이 높은 한국의 자동차산업 자본가들은 미국자동차의 국내시장 잠식 위험에 노출된다.

 

지금 한미FTA반대 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진영은 노동자, 농민 등 기층민중진영이다.

FTA를 통한 이익이 누구에게로 돌아가는 가와 국내 자본가들이 처하게 되는 위협을 생각해보니, 어쩌면 한국의 민중진영은 국내 자본가들의 이해까지도 대변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자. 보건의료노조가 의료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투쟁을 한다고 할 때 병원자본가들이 막을까? 아니 속으로 아주 좋아하며 병원 영업에 차질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잘 싸워주기를 내심 기대하지나 않을까?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투쟁에 나선 영화산업 스텝노동자들이 스크린쿼터 축소를 쟁취해낸다고 해서 가장 큰 수혜자들인 영화제작자들이 저임금 스텝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줄까? 완성차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면 국내 자동차산업 자본가들이 마냥 반대할까?

 

옛날 임진왜란 때 노비들이 앞장서서 전쟁터에 나가 왜군들과 싸웠다고 한다. 노비들이 남달리 조선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드높아서였던 것이 아니라, 노비신분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부르주아 혁명기에 지주계급에 맞서서 농민과 노동자들은 신흥부르주아들과 함께 열심히 투쟁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만낳을 수 있는 무산자인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름만 남았다.

 

한국의 민중들이 한미FTA 투쟁에 나서고 있다. 분명 이 투쟁은 국내 자본가들의 이해도 대변하는 투쟁이다. 그러나 그 댓가로 약속되어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러다 보니, 이 한미FTA 반대전선에는 그 뿌리깊은 애국주의도 녹아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애국심 논리는 아무런 댓가없이 국가를 위해 몸바칠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던가? 황우석 사태에서도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던 국가주의, 애국주의.... 부정하고, 탈피하고자 해도 여전히 그림자처럼 민중들을 따라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가지 일을 끝내고

8개월 동안 질질 끌던 일 하나가 끝났다.

 

두터운 보고서 한 권으로 남은 결과물이 뭔가 허탈하다할까...

 

그 팀웍으로 다시는 아무일도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8개월이 그냥 허송세월이 아니었는데, 쌓이고 남은게 없는 것 같다.

 

 

오늘 옛날에 함께 일하던 동료와 마주쳤다. 해고자였다가 복직하였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 자리를 잡아야지 비정규생활 계속할꺼냐고...

 

뭐 자발적 비정규직이야 저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

 

 

하지만, 보고서를 쳐다보는 순간 뭔가 허탈하고 씁쓸하고 털린 것같은 기분은 왜일까?

 

앞으로 또 넉달 가량 또다른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럭저럭 올 한해를 보내면

 

이제 만 3년을 이렇게 보낸 셈이된다. 이제 나이도 장난이 아니구...

 

재작년부터 풀지못한 채 끌어왔던 '길찾기'.... 아예 찾지도 못하고

 

뜨내기처럼,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처럼... 또는 자발적 비정규직 처럼

 

살아온 셈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가 점점 더 현명해지고 똑똑해지는 것이 느껴지는데

 

막상 처지는 그렇지 못하다. 자리잡기.. 길찾기.. 참 어렵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