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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진짜 멋지다!!

공선옥, 나의 글은 좌파... 돈 안 되는 글을 쓰겠다

 

 

그리하여 나는 쓰기로 한다. 돈 안 되는 글을 쓰기로 한다. 최소한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힘은 쓰되, 돈 되는 작품을 쓰자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기. 혹여 내가 글을 쓰다가(그럴 일은 정말이지 없을 테지만)내게 돈과 명예와 권력이 주어진다면 나는 그것들을 과감히 떨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 자세와 용기가 나올 수 있도록 나는 나의 힘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 그러자면 적당적당히, 그때그때 조금은 필요하고 안 써도 무방하며 근본은 안 건드리고 살짝살짝 비위도 맞추는 그런 글일랑 쓰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이 땅에서 글을 쓰고 밥을 먹고 산다면 나는 최소한 그 밥에 부끄러운 글은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2007/07/27 18:12 2007/07/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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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 의사표현의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가 '개인'의 것일 때는 그것이 정말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도요.

출처: 조금 긴 이야기 (외계인 교차점)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진정한 의사표현의 자유? 그건 자본에게만 있다.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지낸 페데리코 마요르 사라고사와 피델 카스트로의 인터뷰 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마요르 - 이제 좀더 민감한 주제 곧 표현과 사상의 자유 문제를 거론하고 싶다. 쿠바 정권은 억압 정책 때문에 주기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어떤 정책이냐 하면...

 

카스트로 - 무슨 이야기하려는지 알 것같다. 먼저, 나는 국민 거의 대다수가 완전한 문맹도,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문맹도 아닌 지역에서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논하는 것이 공정한지 의아스럽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사상의 자유만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능력 또한 박탈당하고 있다. 생각할 능력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수십억명의 인류가, 여기에는 개발된 국가에서 사는 사람 상당수도 포함되는데, 어떤 상표의 청량음료를 마셔야 되는지, 어떤 담배를 피워야 하는지, 어떤 옷과 신발을 신어야 하는지, 또 어떤 상표의 식품을 사고 먹어야 하는지를 전해 듣는다. 그들의 정치적 생각도 똑같은 방식으로 공급된다.

 

매년 1조 달러가 광고에 쓰인다.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판단요소와 생각하고 인식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완전히 박탈당한 어쩔줄 몰라하는 대중들에게 이 봇물이 쏟아부어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어느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원시 인간들은 사상의 자유를 만끽했다. 호세 마르티(José Martí)는 "자유롭기 위해 교육을 받는다"고 말했다. 여기에 하나의 격언을 덧붙여야 한다. 자유는 문화가 없이 불가능하다. 교육과 문화를 혁명은 우리 인민들에게 많은 선진개발국보다도 훨씬 풍부하게 공급했다.

 

소비사회에 산다고 꼭 교육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가끔 놀라운 것은 그들의 지식이 너무나 피상적이고 단순하다는 것이다. 쿠바는 인민들의 평균 교육 수준을 9학년(중학교 3학년인듯 = 옮긴이)으로 끌어 올렸고 이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10년안에 그들의 평균 문화 수준은 대학생 수준이 될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포괄적인 지식이 될 것이다. 모든 필수 조건이 갖춰졌다. 우리 인민들이 도그마에 빠지지도 그렇다고 분파적이지도 않은 심오한 정치 문화를 - 이는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의 대부분이 갖추지 못하고 있는 문화인데 - 갖추는 데 더해 가장 문명화한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상업 광고를 배제한 채 인간이 개발한 위대한 기술을 이 숭고한 목표에 봉사하게 할 것이다.

 

진정한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논하려면 조금 기다리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이는 문화와 연대와 윤리를 존경하는 데 실패한 야만적인 자본주의 경제, 사회 체제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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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3 11:49 2007/07/1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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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과 조선일보, 그리고 한겨레

이 글은 지난 5월22일 썼던 '참세상과 조선일보'라는 글에 이어지는 것이다.

 

당시 나는 좌파 매체 '참세상'(www.newscham.net/)에 고정적으로 글을 쓴 적 있는 '여성학자'가 극우 매체인 조선일보에 글을 기고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여성학자는 '참세상'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며 지금도 참세상의 편집위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기로 한 것은 참세상의 공식적인 방침으로 외부에 비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일을 납득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이 여성학자는 당연히 참세상 편집위원 자리를 내놓아야 하면,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참세상쪽에서 편집위원 자리를 박탈해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그리고 나는 내 상식에 근거해 다음의 것들을 묻는다.

 

1. 참세상이 이 여성학자의 편집위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참세상은 조선일보를 용납할 수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참세상은 '개별 편집위원'의 개인적 활동을 문제 삼지 않는가?
2, 참세상이 조선일보를 용납할 수 있다는 뜻이라면, 참세상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3. '편집위원'의 개인적 활동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참세상의 '편집위원' 선정 기준은 조직적 활동인가?
4. 선정 기준이 조직적 활동이라면 참세상이 창간 초기 '한겨레 기자 신기섭'에게 고정 칼럼을 맡긴 근거는 무엇인가? '신기섭'은 '편집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조직적 활동이 아니라 개인적 활동을 근거로 삼았는가?
5.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가?
6. 한겨레와 참세상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가?
7. 위의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그렇다'라면, 조선일보와 참세상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가?
8. 조선일보, 한겨레, 참세상 사이에 어떤 본질적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 문제인가? 재벌 문제인가? 통일 문제인가? 노동 문제인가? 생태 문제인가? 여성과 같은 소수자 문제인가?

 

이에 대한 나의 답은 분명하다.
1. 조선일보, 한겨레, 참세상의 본질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2. 하지만 이 세가지 매체가 같은 등급으로 취급될 수는 없다.
3. 현실 세계에서는 본질적 차이는 흔하지 않다.
4. 현실 세계에서 대부분의 문제는 정도의 차이이다. 다시 말해 '우파가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고, '좌파가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또 '통일운동이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고, '노동운동이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고, '생태 운동이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고, '소수자 운동이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차마'다. 그리고 이 '차마'는 각 운동 또는 세력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정도의 차이'로 쉽게 이해되는 '본질적 적대 관계'와 '부분적 적대 관계'를 혼동하는 것은 파멸을 부르거나 변절을 부른다. 조선일보와 참세상은 '본질적 적대 관계'에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한겨레와 참세상은 '부분적 적대 관계'에 있고, 앞으로 어떨지는 누구도 모른다.

 

나는 '한겨레 기자 신기섭'과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여성학자'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참세상'을 인정할 수 없다. '참세상'은 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거나 둘을 모두 거부해야 한다. 이 선택은 실존적 문제다. 피해갈 길이 없다.

2007/06/16 03:14 2007/06/16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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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