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5월22일 썼던 '참세상과 조선일보'라는 글에 이어지는 것이다.
당시 나는 좌파 매체 '참세상'(www.newscham.net/)에 고정적으로 글을 쓴 적 있는 '여성학자'가 극우 매체인 조선일보에 글을 기고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여성학자는 '참세상'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며 지금도 참세상의 편집위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기로 한 것은 참세상의 공식적인 방침으로 외부에 비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일을 납득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이 여성학자는 당연히 참세상 편집위원 자리를 내놓아야 하면,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참세상쪽에서 편집위원 자리를 박탈해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그리고 나는 내 상식에 근거해 다음의 것들을 묻는다.
1. 참세상이 이 여성학자의 편집위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참세상은 조선일보를 용납할 수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참세상은 '개별 편집위원'의 개인적 활동을 문제 삼지 않는가?
2, 참세상이 조선일보를 용납할 수 있다는 뜻이라면, 참세상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3. '편집위원'의 개인적 활동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참세상의 '편집위원' 선정 기준은 조직적 활동인가?
4. 선정 기준이 조직적 활동이라면 참세상이 창간 초기 '한겨레 기자 신기섭'에게 고정 칼럼을 맡긴 근거는 무엇인가? '신기섭'은 '편집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조직적 활동이 아니라 개인적 활동을 근거로 삼았는가?
5.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가?
6. 한겨레와 참세상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가?
7. 위의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그렇다'라면, 조선일보와 참세상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가?
8. 조선일보, 한겨레, 참세상 사이에 어떤 본질적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 문제인가? 재벌 문제인가? 통일 문제인가? 노동 문제인가? 생태 문제인가? 여성과 같은 소수자 문제인가?
이에 대한 나의 답은 분명하다.
1. 조선일보, 한겨레, 참세상의 본질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2. 하지만 이 세가지 매체가 같은 등급으로 취급될 수는 없다.
3. 현실 세계에서는 본질적 차이는 흔하지 않다.
4. 현실 세계에서 대부분의 문제는 정도의 차이이다. 다시 말해 '우파가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고, '좌파가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또 '통일운동이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고, '노동운동이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고, '생태 운동이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고, '소수자 운동이 차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차마'다. 그리고 이 '차마'는 각 운동 또는 세력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정도의 차이'로 쉽게 이해되는 '본질적 적대 관계'와 '부분적 적대 관계'를 혼동하는 것은 파멸을 부르거나 변절을 부른다. 조선일보와 참세상은 '본질적 적대 관계'에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한겨레와 참세상은 '부분적 적대 관계'에 있고, 앞으로 어떨지는 누구도 모른다.
나는 '한겨레 기자 신기섭'과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여성학자'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참세상'을 인정할 수 없다. '참세상'은 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거나 둘을 모두 거부해야 한다. 이 선택은 실존적 문제다. 피해갈 길이 없다.
정말 밥에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새삼 다시 해 봅니다. 잘 지내시지요^^?
곰탱이님도 잘 지내시죠? 뒤돌아보면 부끄럽기만 하지만 저도 다시 한번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