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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생태관찰일지15

                                  9월 4일
오늘은 처서이다. 낮에는 여전히 여름처럼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절기인데 이번 처서절기에는 비가 거의 매일매일 내렸다. 원래 처서 절기에는 낮 기온이 25도에서 30도 까지는 올라가야 정상인데 비가 계속 오는 바람에 낮에도 쌀쌀하다. 거기에다가 날씨도 잠깐 개는 척 하다가 곧바로 비가 내린다. 그 것 때문에 생활에 불편한게 많은데 빨래도 밖에 널 수도 없고 안에 널어도 습기 때문에 잘 마르지 않는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농작물이다. 고추는 곯아서 떨어지고 과일들은 익지 않은 채 떨어지고 있다. 지금 한참 광합성을 해야 하는 벼는 정작 필요한 햇빛은 못 받고 물만 먹고 있어서 벼에는 쭉정이가 많이 생기고 있고 심지어 벼이삭에서 싹이 새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어제 뉴스를 보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벼들이 쓰러지고 흑명나방 애벌레 때문에 농부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거기에다가 부안, 서천에서는 애멸구에 의한 벼줄무늬잎마름병 때문에 지금 난리가 났다고 하고 제주도는 집중호우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요즘 제주도 개발 때문에 피해가 더 심했다고 하는데 원래 제주도에서는 지형상 비가 오면 중간에 스며들었다가 바닷가에서 분출되는데 제주도 중간지대에 골프장이나 도로가 만들어져 많은 비를 흡수하지 못해 큰물이 한라산에서 그대로 쓸어내린 것이다. 개발로 인한 피해를 제주도 원주민들이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도 피해가 막심하다. 가을 김장배추를 심으려고 밭을 갈았는데 비가 계속 와서 심지 못하고 있다. 배추는 벌써 늦었고 이렇게 비가 계속 오면 김장무도 심지 못할 수도 있다. 참 특별한 처서이다. 원래 처서는 계절의 변화가 민감하게 느껴지는 시기라서 모기가 입이 비뚤어진다느니 처서가 되면 온갖 풀들이 울며 돌아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번 생태관찰은 이런 시기에 생태계가 어떤 변화를 보여줄 것 인지에 대한 것이다.

마당에 나가니 노랗게 익어가고 있는 탱자열매가 눈에 띄었다. 이제 처서가 되니 탱자나무 열매도 노랗게 익기 시작한 것이다. 탱자열매는 다 익으면 아주 노랗게 되는데 이걸로 건위·이뇨·거담·진통 등에 약으로 쓰고 술도 담그는데 엄마 말로는 아주 맛있다고 한다. 열매뿐만 아니라 나무도 산울타리를 만들어 쓴다. 강화도의 갑곶리와 사기리에서 자라는 것은 각각 천연기념물 78호, 79호로 정해져 있는데 병자호란 때 심은 것이라고 하니 380년이나 된 것이다.

우리 집 수돗가 옆에서 맨드라미가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맨드라미는 꽃이 닭 벼슬을 닮아서 鷄冠花(계관화)라고도 불린다. 옛날에 닭 벼슬은 앞이 낳고 뒤가 높아 모양이 관모를 닮아서 말 그대로 벼슬이라고 부르고 닭 벼슬을 닮은 맨드라미도 벼슬을 상징하게 되었다. 양반집에서는 벼슬길에 오르거나 벼슬이 더 높아지기를 기원하면서 마당에 맨드라미를 심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삼대화가인 오원 정승업의 그림을 보면 맨드라미 그림이 있다. 맨드라미 아래에 수탉이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의 의미는 관상가관 즉 벼슬이 더 높아지길 기원하는 뜻이라고 한다. 아마 어떤 벼슬아치가 자기 상관에게 선물하려고 장승업에게 주문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보는 맨드라미꽃은 붉은 색인데 붉은색 말고도 황색이나 흰색을 띠는 것도 있다고 한다. 윗마을에서 아랫마을로 내려가다가 맨드라미군락지를 발견했다. 요즘 비 때문에 곤충들이 힘들 텐데 맨드라미꽃에는 황테감탕벌, 지리산팔랑나비, 배추흰나비 등이 날아다니면서 꿀을 빨고 있었다. 군락지를 돌아보다가 왕사마귀가 맨드라미 꽃 위에서 조용히 잠복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앞에 말한 곤충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왕사마귀의 보호색 때문인지 얼핏 보면 푸른색 나뭇잎이 맨드라미 꽃 위에 떨어진 것 같았다.  



우리 집 밭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근처에서 한련초가 꽃을 보았다. 한련초 줄기를 꺽으면 까만즙액 흘러나오고 줄기나 잎을 물에 담갔다가 비비면 까맣게 변하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한련초를 달인 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숱이 많아지고 머리카락이 다시 검어진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한련초를 진하게 달인 물을 먹거나 머리카락, 수염, 눈썹에 바르면 머리카락이나 수염이 빨리 자라고 숱도 많아지며 빛깔이 다시 검어진다. 또 양기부족, 임포텐츠(음위), 조루, 발기부전 등 남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에도 효과가 신통할 정도로 잘 듣는다고 한다. 또 오래 먹으면 뼈와 근육이 튼튼해지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고 해서 아빠에게 녹즙에 넣어달라고 했다.  

마당 안쪽을 살펴보다가 여기저기 듬성듬성 나있는 쇠비름을 발견했다. 쇠비름은 생명력이 아주 강한 식물이다. 뿌리 째 뽑아서 던져놓아도 다시 살아난다. 만약 열매가 달려있는 채로 뽑혀도 열매는 성장을 멈추지 않고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잘 자란다. 쇠비름이 이렇게 강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 데에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옛날 요임금 시대에 부상나무에서 살던 10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떠올라 인간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 이를 알은 중앙상제 제곡은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벌할 수 없어서 천신 중에 가장 용맹한 예에게 태양을 벌주라고 명령했다. 예는 즉시 지상으로 내려가 태양 아홉 개를 화살로 맞춰서 떨어뜨렸다. 마지막 남은 태양 하나는 무서워서 급히 쇠비름 잎 뒤로 숨었다. 그래서 태양은 예의 화살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태양은 은혜를 갚기 위해 쇠비름을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도 말라죽지 않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쇠비름은 뿌리는 흰색, 열매는 검은색, 줄기는 붉은색, 잎은 초록색, 꽃은 노란색으로 다섯 가지 색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오행초라고 불리기도 한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쇠비름은 지상에 있는 식물 중에서 오메가-3지방산이 가장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오메가-3지방산이 어찌나 많이 들어 있던지 마당에서 쇠비름을 뜯어먹은 닭의 달걀에는 오메가-3 지방산과 오메가-6지방산이 1:1비율로 들어있다고 하고 곡식을 주어서 키운 닭의 달걀에는 1:20의 비율로 오메가-6지방산이 20배나 더 많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쇠비름 100g에 오메가-3 지방산이 300~400mg이나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영양소도 풍부해서 쇠비름나물을 하루 한 끼만 먹어도 그 날 필요한 비타민 E와 비타민 C, 그리고 베타카로틴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산딸나무 앞에 서니 열매가 엷은 루비빛깔로 익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꽃은 참 많이 달려있었는데 열매가 된 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다. 다 익은 열매를 까보면 안은 아주 노랗다. 먹어보면 첫 맛은 약간 씁쓸하고 뒷맛은 새콤달콤하다.

지난 5월 말에 아빠가 따오셨던 오디로 오디효소를 담갔는데 이제 3개월이 지나서 오디효소를 항아리에서 꺼냈다. 효소물을 타서 먹어보니 달콤하고 깊은 맛이 났다. 효소를 걸러서 남은 오디 찌꺼기는 거름으로 사용하려고 두엄더미에 갖다 놓았는데 달콤한 오디즙에 끌려서 여려 곤충들이 찾아온다. 특히 장수말벌이 10여 마리 이상이 와서 즙을 먹는 것이 인상적이다. 주변에 사람이 지나가든 두엄더미에 뭘 갖다 버리든 꿈쩍도 않고 즙을 빨아먹는 것에 열중하고 있다. 그래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이씨 할머니네로 가는 둔덕에서 연분홍색 꽃을 피우고 있는 쥐꼬리망초를 발견했다. 꽃은 입술모양이었다. 쥐꼬리망초는 한방에서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약재로 쓴다. 감기로 인한 발열·해수·인후통에 효과가 있고, 신우신염·간염·간경화·타박상·종기·이질에 사용하며, 근육과 뼈의 동통을 제거한다.

이씨 할머니 네로 내려가는 길에서 호랑나비가 익모초에 앉아서 꿀을 빨아먹는 것을 보았다. 지금까지는 원추리 같은 큰 꽃에 앉아서 꿀을 빨아먹는 모습만 보았는데 작은 꽃에 앉아서 꿀을 빨아먹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가 많이 오다보니까 다니기도 힘들고 꿀을 빨아먹을 수 있는 꽃들도 많지 않아서 익모초에 앉아 영양보충을 하는 것 같다. 비가 참 여려 생명을 힘들게 한다.


이씨 할머니네 앞에 감나무 밑에 감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밤나무를 살펴보니 남아 있는 감열매가 많지 않았다. 계속되는 비에 견디지 못하고 감꼭지가 물러서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앞에 있는 밤나무에는 밤이 아주 많이 달려 있어 비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것 같다. 떨어진 감 주위에서 뭔가가 날아다니 길래 관찰해 봤더니 황테감탕벌이었다.  떨어진 감의 과즙을 먹으려고 모여든 것 같다. 이런 떨어진 열매에는 청띠 신선나비나 네발나비 같은 곤충도 몰려드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뒷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갔는데 기사아저씨 방 앞에 목화다래가 달려있었다. 목화다래는 하얀 솜 같은 게 나오기 전의 모습이다. 꽃의 색깔은 황색, 백색을 띠는 것이 있다. 꽃의 지름은 보통 4cm정도이다. 꽃을 자세히 살펴보니 암술 1개와 수술이 수없이 많았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무려 130개라고 하는데 다른 꽃에 비해 몇 배 나 많은 것이다. 목화다래 안에 있는 하얀 솜은 솜옷을 만들어 입고 종자로는 기름을 짠다고 한다. 아빠의 말을 들어보니 옛날에 우리 집에도 목화를 심었는데 여름에는 목화밭매고 가을에는 수확하고 말리는데 집안  사람들이 다 나섰다고 한다. 채 익지 않은 다래는 말린 다음에 겨울밤의 딱딱한 껍질을 벗겨서 솜을 빼냈는데 껍질에 찔리면 아프기 때문에 애들이 하기에는 조금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목화솜을 빼낼 때 아이들도 다 몰려들었는데 그 때 할아버지가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려 주셨기 때문이다.

도깨비바늘이 드디어 열매를 열렸다. 도깨비바늘열매를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갈래로 갈라져 있고 가시를 닮았는데 이런 생김새 때문에 도깨비바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시가 달려있는데 그래서 도깨비바늘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아직 익지 않아서 초록색이지만 다 익으면 갈색이 되어 자기를 다른 데로 옮겨줄 동물들을 기다릴 것이다. 도깨비바늘은 여름이 되어야 싹이 나고 가을이 다 되어야 열매를 맺는다. 이는 도깨비바늘의 원산지가 동남아와 같은 아열대 지방이기 때문인데 원산지가 비슷한 식물로는 도꼬마리와 진득찰 등이 있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생태관찰을 하고 오는데 마당 앞에 있는 조선소나무가 보인다. 처서에 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송편 만들 때 쓸 솔잎을 따는 것이다. 처서에 솔잎을 따는 이유는 이때쯤 따야 그늘에서 잘 말릴 수 있고 처서가 지나면 두 갈래 잎을 밑에서 감싸고 있는 비닐이 함께 뽑혀서 처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몇 개를 뽑아보았더니 아직은 비닐이 같이 뽑히지 않고 잎새만 뽑혀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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