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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8월 8일    
8월 8일은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이다. 우리나라는 입추를 전후해 날씨가 가장 덥기 때문에 가을에 들어선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중국은 대륙성 기후이기 때문에 땅이 일찍 데워져 여름도 일찍 찾아오지만 식기도 빨리 식어서 가을도 일찍 찾아온다. 7월 달 평균기온이 25.9도인데 비해 8월 달 평균기온이 24.6도로 떨어지니 계절의 변화를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도 낮에는 여전히 덥지만 8월 15일 이후에는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이슬이 내려 더위가 점차 약해져서 가을에 들어선다는 것을 나름대로 수긍 할 수 있다. 그래서 입추이후의 더위는 늦더위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날씨는 이러한 상식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장마가 7월이면 끝나고 입추절기가 되면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날씨가 맑은 날이 많았는데 올해는 입추 절기 까지 계속 비가 내렸다. 장마 뒤에 더 큰 장마가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무리 장마 때라도 3일에 1번 정도 밖에 비가 오지 않는데 이 ‘더 큰 장마’ 에는 3일에 2번씩이나 비가 내렸다. 거기에다가 일일 강수량도 장마 때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또한 기온역시 예전에는 8월 초순이 가장 높고 중순, 하순으로 갈수록 기온이 낮아졌는데 올해는 초순보다는 중순이, 중순보다는 하순이 기온이 높게 나타난다. 이것은 지구온난화가 우리나라의 기후를 온대의 장마가 아닌 아열대지방의 건기와 우기형태로 바꿔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기의 농사력을 살펴보면 밭농사는 입추 후 4,5일 경에 메밀을 심고 삼밭에 무씨를 뿌린다. 이때쯤 김장용 무, 배추를 심기 시작하는 것이다. 논농사는 김매기도 끝나서 물을 조절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전국적으로 전해지는 “어정 7월”이라는 말은 이시기의 한가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쯤 칠월 칠석, 칠월 백중행사가 성대하게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때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면 논농사를 망칠 수 있다. 벼가 패서 이제 본격적으로 햇빛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날씨가 1년 농사를 좌우 할 정도로 중요했기 때문에 입추가 지나서 비가 닷새만 계속 되도 왕이나 각 고을의 수령들은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
'춘추번로라는 옛 중국문헌에 기청제를 지내는 방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성안으로 통하는 수로(水路)를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게 한다. 그리고 제를 지내는 동안은 모든 성안사람은 물을 써서는 안 되고 또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된다. 심지어 부부관계까지도 운우지정이란 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비를 유감한다 해서 부부도 기청제 지내는 전날 밤에는  각방을 써야 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는다. 이날 음(陰)인 부녀자의 시장 나들이는 일체 금한다. 제장(祭場)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祭主)도 붉은 옷차림이어야 했다. 양(陽)의 기운인 남방(南方), 적색(赤色)을 드리우면서 태양(太陽)의 볕을 갈망한 것이다. 올해처럼 입추절기에 비가 많이 오면 농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 해의 농사가 잘 안 될 것임을 미리 알고 기청제를 지내 불안을 달랬던 것이다.”

이 시기의 속담을 보면 벼농사와 관련된 속담이 많다. 특히 이 때 벼가 패는 시기이므로 이와 관련된 속담을 먼저 발견 할 수 있다.
“입추가 되면 벼가 패기 시작한다.”  
“입추 때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벼농사에 관한 농민들의 감수성이 얼마나 민감한지 벼가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고 했다.
비와 바람의 순조로움을 원하는 농민들의 절실한 바람을 갈무리한 속담을 찾을 수 있다. 옛날 동네 앞에는 솟대를 세워 우순풍조를 기원했는데 모심을 때 비 오는 것과 입추 처서 때 비가 덜 오는 것 그리고 태풍이 오는 8~9월에 바람이 적절히 부는 것이야 말로 농사꾼들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입추에 동풍이 불면 풍년 든다.”
“입추에 비가 조금 오면 풍년든다.”
“입추 때 비가 와야 채소가 풍년 든다.”
그런데 이러한 농민들의 바람에는 일종의 모순이 있었다. 이 때 비가 많이 오면 채소가 잘
되고 벼농사는 잘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3~4월 보릿고개와 함께 7월에 있는 칠궁이 가장 힘들 때였다. 그래도 보릿고개 때에는 봄나물도 많고 보리이삭은 팬지 20일만 되도 풋보리로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칠궁에는 나물들도 쇠어서 못 먹고 벼이삭은 팬지 40일이나 되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칠궁이 민중들의 삶에 끼친 흔적이 컸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속담도 여러 가지가 있다.
“칠궁이 춘궁보다 더 무섭다.”
“칠월 사돈은 꿈에 볼까 무섭다.”
“육칠월 손님은 범보다도 무섭다.”
물론 “3일 굶으면 먹을 것 싸들고 오는 사람이 있다.” 는 긍정적인 속담도 있지만 손님이 범보다도 무서웠다고 했으니 이때 농민들의 마음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입추에 하늘 한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별자리는 미수이다. 미수는 동방청룡의 꼬리인데 서양별자리로는 전갈자리의 꼬리에 해당한다. 미수는 여름하늘에서 가장 인상적인 별자리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늘 한가운데서 남쪽으로 직선을 그으면 전갈 또는 파충류를 닮은 밝은 별자리가 있는데 그 별자리의 끝 부분이 미수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미수를 황제의 부인들이 사는 후궁이라고 보았는데 미수의 여러 별자리들을 후, 비, 빈, 부인 등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별이 어두우면 황후에게 근심과 질병이 있게 되고 목성이 범하거나 달무리가 이 주변에서 일어나면 황후와 왕비가 죽게 되고 화성이 범하면 궁중에 내란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후궁의 여자들이 온갖 열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와달이 된 오누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이야기에서 호랑이한테 쫓기던 오누이가 살아나는 방법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아줄은 다른 신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야국 신화에는 김수로를 비롯한 육가야의 왕들이 줄을 타고 내려오고 곡모신에 대한 신화인 세경본풀이에도 주인공인 자청비의 신랑인 문도령이 하늘에 올라갈 때도 노각성자부줄이라는 줄을 사용한다. 경덕왕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하늘에 올라갔다는 표훈스님의 이야기에도 구체적인 방법은 나오지 않지만 하늘에 올라가는 방법은 아마도 줄이 아니었을까? 나무꾼과 선녀이야기에서도 나무꾼이 하늘에 올라가는 것은 두레박에 달린 줄이었으니 옛날 사람들이 하늘세계와 소통하는 수단이이 줄이라고 믿었던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는 미수를 노인이 낚시질을 하려고 은하수에 던져놓은 낚시줄이라고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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