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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생태관찰일지11

 
                            7월 7일
오늘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이다. 보통소서가 되면 장마철이 서서히 끝나간다. 그리고 햇살이 뜨거워지면서 식물들이 뜨거운 햇살과 충분한 물을 섭취하며 왕성하게 자라나고 토마토, 자두, 복숭아 같은 과일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러한 시기에 우리 집 마당과 뒷산 생태계는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혹시 호랑나비애벌레가 있나 하고 탱자나무를 잘 살펴보니 호랑나비애벌레 1령, 2령, 3령, 4령, 5령 애벌레를 전부 볼 수 있었다. 5령 애벌레와 4령 애벌레가 있는 걸로 봐서 꽤 오래전에 부화한 것 같은데 우리가 찾지 못한 것 같다.
호랑나비애벌레는 나한테 곤충의 성장과정과 자연에 대한 신비를 깨닫게 해준 고마운 곤충이다. 아빠 말을 들어보니 내가 어렸을 때에는 호랑나비애벌레가 부화하고 언제 2령 애벌레가 되고 또 언제 3령 애벌레가 되는지를 관찰하며 탱자나무 앞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호랑나비 애벌레 어디에서 사나?”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호랑나비 애벌레 어디에서 사나?”
“탱자나무에서 산다”
“뭐 먹고 사니?”
“잎새먹고 산다.”
“누구하고 사나?”
“형제하고 산다.”
“너는 뭐가 되나?”
“번데기가 되지”

호랑나비애벌레를이 너무 귀여워 내 손에 올려놓고 뽀뽀를 하기도 하고 머리에서 취각이 나오는 걸 보려고 쿡쿡 찌르면서 귀찮게 하기도 했다. 새들이 호랑나비 애벌레를 못 잡아먹게 몽둥이를 들고 새들이 오지 못하게 지켰다가 탱자나무 잎을 다 갉아먹어 죽을 뻔했는데 겨울눈을 틔워서 간신히 살아 난적이 있다.
탱자나무는 온몸에 가시를 달고 있는데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옛날에 자식 다섯을 대리고 사는 홀어머니가 있었다. 남편이 남기고 간 것이 없는 살림살이는 아무리 뼈가 빠지게 일해도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몇 년을 이 양 다물고 일하던 어머니는 견디지 못하고 병에 걸려 앓아누워버렸다. 그 소문이 나자 어떤 노파가 찾아와서 산 너머 부잣집에 큰딸을 소실로 보내면 논 닷 마지기를 준다는 것이었다. 큰딸은 15살 이었다. 어머니는 도저히 딸한테 이야기 할 수가 없어서 노파가 대신 이야기하기로 했다. 노파의 말을 들은 큰 딸은 하룻밤, 하룻날을 운 뒤에 그리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노파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논 닷 마지기 말고 그 값에 해당하는 쌀을 달라는 것이었다. 부자한테는 하나도 어려울 것 없는 조건이었다. 딸은 쌀을 받은 날 떠났다. 늙은 부자와 하룻밤을 보낸 딸은 그 날 저녁 뒤뜰 감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 그것을 본 부자는 안쓰러워하기는커녕 속았다면서 당장 쌀을 찾아오라며 불호령을 쳤다. 하인들은 부랴부랴 딸의 집으로 갔지만 식구들은 간 곳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부자는 더욱 길길이 날뛰며 처녀의 시체를 묻지말고 산에 내버리라고 했다. 저런 못 된 것은 여우나 늑대에게 잡아먹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녀의 시체는 내버려졌는데 그 날 밤 처녀와 몰래 사랑을 나누던 총각이 시체를 업어다가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도록 平葬(평장: 송장을 평평하게 묻는 것)       그런데 그 다음해 봄에 무덤에서 연초록 새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새싹은 자라면서 차츰 몸에 가시를 달기 시작했는데 이 때서야 애인이 아무도 자신을 범하지 못하도록 몸에 가시를 달았다는 것을 알고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산지사방에서 나무 심는 일을 했다는 이야기다.   ”

참나리는 꽃봉오리가 붉게 변하고 있었다. 상태를 보니 적어도 1주일 안에는 꽃이 필 것 같으니 이번 소서절기 안에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8월 2일부터 8월 4일 까지 지리산에 갔다왔는데 중간 중간 참나리 꽃이 피어있었다. 산과 평지의 기온 차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기온은 100m 올라갈 때마다 0.6도씩 떨어지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참나리는 500~600m쯤 이었으니까 우리 집 보다 적어도 3도쯤 낮을 것이다. 그 때는 우리집 원추리는 진지 오래인데 정말 신기했다.

장마가 소강상태인데 우리 집 원추리와 동네 앞길에 보이는 도리지는 계속 꽃을 피우고 있다. 장마 끝나는 시기와 꽃이 더 이상 피지 않을 때를 올해는 꼭 지켜봐야 되겠다..

산딸나무의 열매가 구슬만큼 자랐다. 가을이 되면 산딸기 같이 빨간 열매가 익어서 남천, 해당화 열매와 함께 우리 집 마당을 붉게 물들여 줄 것이다. 산딸나무라는 이름은 열매가 산딸기와 비슷해서 산의 딸기나무라는 의미로 이름이 붙었다. 나무는 단단하고 질겨서 방적용 북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배롱나무가 꽃을 피웠다. 줄기를 만져보니 아주 매끈매끈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원숭이가 미끄러지는 나무라고도 한다. 배롱나무는 백일홍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은 꽃이 백일동안 피어 있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빠말씀을 들어보니 배롱나무는 능소화와 함께 양반들의 마당에 많이 심어졌던 나무라고 한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화무십일홍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는데 백일이나 피어있으니 그처럼 오래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다는 그네들의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방동사니와 나도방동사니 같은 사초과 식물들이 제법 자라있었다. 가끔가다가 사람들이 사초과 식물을 벼과식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1.사초과 식물은 속이 비어있지 않다.
2.사초과 식물은 마디가 없다.
이 2가지 차이점만 외워두면 쉽게 구별 할 수 있다.

이씨 할머니 집으로 가는 언덕배기에 분꽃이 피어있었다. 분꽃은 날이 흐리거나 맑거나 4시 정각에 피기 때문에 항상 구름이 껴있어서 해로 시간을 잴 수 없는 장마철에 박꽃과 함께 시계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 이름도 four-o'clock 4시이다.  인터넷으로 분꽃에 대한 것을 검색해 보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꽃은 남미가 원산지인데 따뜻한 남미에서는 여러해살이 풀이었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겨울을 이기지 못해 한해살이풀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솔뫼와 함께 장신구 놀이를 했다. 분꽃을 꽃받침 째로 따서 꽃과 꽃받침을 잡아 살짝 늘이면 긴 암술 때문에 늘어나서 귀걸이가 된다. 진로슈퍼의 아줌마는 그 걸 보고 “새로 나온 악세사리니?” 하고 관심을 보이셨다. 솔뫼도 하나 해줘 봤는데 부러뜨려 놓고서는 또 만들어 달라고 조르고 다시 한번 해줬더니 이번에는 꽃받침이 귀에 들어가 버리면 어떡 하냐면서 내던져 버렸다.  
    

아직도 타래난초가 피어있나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아빠랑 돼지무덤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하지 때보다 훨씬 더 많이 피어있었다. 꽃을 자세히 살펴보니 꽃은 투구같이 생겼고 입술꽃잎은 달걀을 거꾸로 뒤집어 둔 듯한 모양이다.

돼지무덤에서 짚신나물을 보았다. 왜 짚신나물일까? 열매나 씨가 짚신을 닮았나? 아니면 짚신나물을 가지고 신발을 엮었나? 사실은 짚신나물의 씨에는 갈고리가 달려있어서 풀숲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짚신에 붙어서 번식하기 때문에 짚신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러한 짚신나물의 번식방법은 도깨비바늘이나 도꼬마리 처럼 다른 동물 몸에 붙어서 씨앗을 퍼뜨리는 번식방법과 비슷하면서도 고리라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짚신나물의 다른 이름은 仙鶴草(선학초)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데 에는 이야기가 하나 얽혀있다.

옛날 중국에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던 두 수재가 있었다. 그 때는 여름이었다. 두 수재는 행여나 과거보는 날을 놓칠까 두려워서 쉬지도 않고 계속 걸어갔다 그러나 젊고 건장한 수재들도 날이 갈수록 점점 지쳐 발걸음이 무거워져갔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밭, 며칠을 가도 인가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든게 아닐까?”
“아니야 반드시 이 곳을 지나가야해!!”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지만 먹을 것은커녕 풀 한포기 없는 사막이었다. 거기에다가 계속    모래바람이 불어 잠시 쉴 곳조차 없었다. 그래도 두 수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가 갔지만 알마 쯤 가는데 갑자기 한 수재가 풀썩 주저앉는 것이었다.
“여보게, 잠깐 쉬었다 가세”
그런데 그 수재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자네 왜 그러나?”
“나도 모르겠어 ! 갑자기 어지럽고 온몸에 힘이 다 빠져 나간 것 같아.”
수재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앞쪽으로 푹 숙였다. 이어 모래 위에 시뻘건 코피가 뚝뚝 떨어졌다.
“코피가 나잖아? 너무 피로해서 그런가봐!”
손으로 막아보았는데 코피는 멈추지 않았다.
다른 수재는 놀라 긒이 입은 옷을 찢어 친구의 콧구멍을 막아 보았는데 그러자 이번에는 입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수재는 어찌할줄 몰랐다.
“이일을 어떻게 하지?”
“물 물 물 좀 줘”
“자네도 알다시피 이 곳에는 몰이 없어 조금만 더 참게나!”
“물이 없으면 축축한 돌멩이라도 입에 넣으면 좀 살 것 같은데‘
“사방이 황량한 모래벌판이라 아무것도 없다네. 조금만 더 참아봐 !”
바로 그 때 어디서 하늘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두 수재의 머리 위로 두루미 한 마리가 날아왔다.
피를 흘리던 수재는 두 팔을 벌리고 두루미에게 소리쳤다.
“두루미야, 너의 날개를 잠깐만 빌려 줘!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두루미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입에 물고 있던 들풀 한포기를 떨어뜨리고 갔다. 다른 수재는 그 풀을 주워들어 다른 수재에게 주었다. 그 수재는 급히 들풀을 받아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 들풀을 씹어 먹은지 얼마 안돼 피가 멎은 것이었다.
“하하하 선학이 선초를 보냈구나!”
“신선님, 정말 감사합니다.”
두 명의 수재는 간신히 서울에 도착하여 과거를 보았다. 그리고는 나란히 과거에 장원급제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 두 사람은 우연히 길가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은 주막집에 가서 늦도록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보게, 우리가 과거 보러 갈 때 고생했던 일 기억나나?”
“그걸 누가 잊겠는가. 그때 자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죽었을 걸세.”
“아니야, 그때 자네를 구해 준 건 두루미였어.”
“그래, 그런데 그때 두루미가 준 풀이 무슨 풀이었을까?”
“몰라.” “나는 그 약초를 꼭 찾고 싶네. 그것이 많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두 사람은 그 풀의 생김새를 그림으로 그려 여러 사람에게 찾아오도록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사람들은 몇 년을 산과 들을 헤맨 뒤에야 마침내 그 풀을 찾아왔다.
그 풀의 잎은 깃털 모양이고 여름철에 노란 꽃이 피었다. 의원에게 그 풀의 이름을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약초를 준 두루미를 기념하기 위해 그 풀을 선학초라 이름 지었다.
그 뒤로 사람들은 피를 멎게 하는 약으로 선학초를 널리 쓰게 되었다.
짚신나물은 지혈을 하는데도 많이 사용하고 가을에 뿌리째 캐서 말리면 그 것을 용아초라고 하는데 구충제와 수렴제로 사용된다.

마가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 마는 서동이 어렸을 때 마의 덩이뿌리를 캐서 장에 내다팔았다는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덩이뿌리는 오래 씹으면 단물이 나기 때문에 우리아이들 간식으로도 딱 좋을 것 같다. 그야말로 친환경 간식이다. 껍질을 벗기고 깨끗하게 씻은 마를 적당량의 우유(믹서기에 마를 넣고 마가 살짝 잠길 정도의 양)를 넣어 곱게 간 후, 약간의 꿀을 첨가해서 마시면 아침식사대용으로 그만이라고 한다.

둥그레봉에서 뒤로 넘어가면 공장이 하나 있다. 옛날 아빠가 어렸을 때 여름에 그 공장으로 넘어가면 빨간 산딸기가 산 언덕배기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고 해서 잔뜩 기대 했는데 막상 가보니 듬성듬성 작은 덩굴만 있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는데 주변 억새밭에서 새똥거미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뭔가 작은 얼룩 같은게 보여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새똥거미가 온몸을 움추린 채 숨을 죽이고있었다. 나는 새똥거미를 본 게 이번이 처음이고 아빠도 우리동네에서 새똥거미를 본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왜 이 거미는 왜 새똥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건 자신의 천적인 새들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일종의 방어전략이다.


산을 내려가다가 어떤 나무에서 백금거미를 보았다. 아빠가 어 백금거미다. 하고 소리쳐서 봤더니 등이 하얀 백금거미가 나무 잎새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백금거미는 등이 백금처럼 희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무늬는 인삼같이 생겼었다. 뒷산을 다니는 동안 3번을 봤는데 거미마다 선의 굵기와 무늬 패턴이 조금씩 달랐다. 집에 가서 백금거미의 대해 찾아봤는데 백금거미에도 크기와 무늬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누어져 있었다. 우리가 본 것은 중백금거미인데 그 밖에도 백금갈거미, 금빛백금거미(검정백금거미), 왕백금거미, 꼬마백금거미 등이 있다.

이제 장마가 끝나가니 마당과 뒷산에 거미와 사마귀, 왕귀뚜라미애벌레들이 아주 많이 눈에 띈다. 낮에는 매미소리까지 들린다. 이제 정말 여름철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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