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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번째 생태관찰일지

                                    6월 28일
오늘은 해가 가장 높이 뜬 다는 하지 절기이다. 하지는 해의 에너지가 가장 높을 때이고 지금은 장마철이기 때문에 물도 충분하니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밭에는 오이와 호박이 눈에 띄게 빨리 자라고 있는데 그래서 “장마에 호박 자라듯 한다.” 라는 속담이 생겼나 보다. 이렇게 왕성하게 자라는 식물의 생장력을 바탕으로 곤충들이 대거 발생하는 것은 집주변 풀밭에서 메뚜기, 사마귀 애벌레들이 많이 보이고 봄 형에 비해서 훨씬 큰 여름 형 나비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이런 하지의 왕성한 자연의 힘을 느끼며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쥐똥나무는 꽃은 이미 다 지고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 열매를 달려있다. 조금만 있으면 쥐똥만한 크기의 검은 열매로 자랄 것이다.

목련은 벌써 잎눈과 겨울눈이 벌써 많이 자랐다. 열매보다 미리 준비해두는 것을 보면 목련나무의 내년준비가 옹골차다. 그러고 보면 나무들은 오뉴월이 되면 내년준비를 거의 갖추는데 미리 준비하면 걱정이 없다는 것을 진화과정 속에서 터득했나보다.

쑥이 많이 자랐다. 쑥은 국화과의 잡초인데 쑥은 국화과의 식물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풍매화이다. 아마도 쑥은 진화의 한 단계에서 건조하고 추운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꽃가루를 옮겨줄 벌레가 마땅치 않자 원래 충매화였던 쑥이 풍매화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쑥이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는 나대지에서 뭉쳐서 자라는 것이나 쑥의 잎 뒷면에 흰색의 털이 촘촘히 나있는 것은 건조한 환경으로부터 수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쑥을 밤에 관찰해보면 잎을 전부 닫고 있어 마치 흰 꽃이 핀 것 같은데 이것은 사막과 같은 데서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데 잎을 펴고 있으면 잎의 온도가 내려가기 때문에 잎을 닫아 잎의 온도를 보호하는 생존전략인 것이다. 쑥으로 만든 쑥떡을 먹어보면 보통 떡보다 찰기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쑥의 잎 뒷면에 있는 털이 쌀과 얽혀서 찰기를 만들어 주어 그런 것이다. 나는 쑥인절미를 싫어했는데 2006년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에 따라가서 어떤 절에 가서 쑥인절미를 사 먹고서는 쑥인절미를 좋아하게 되었다. 쑥은 개척자 식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쑥대밭이라는 말은 쑥의 개척자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누구네 집이 황폐화 되었을 때 쑥대밭이라고 하는데 그 집 마당을 쑥들이 점령한 상태를 말한다. 쑥은 농경지나 마당에 한 번 나면 무리지어 세력을 확대해 나간다. 한번 쑥의 무리가 자리를 잡으면 뿌리가   서로 엉키기 때문에 뽑아내기도 힘들다. 이렇게 식생이 파괴되는 곳을 먼저 찾아가 식생을 회복하는 것이 쑥의 생태적인 지위이다.
쑥은 우리나라의 풍습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단군신화이다. 또한 우리조상들이 단오날에 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쑥의 신령스러운 힘으로 잡귀를 쫓아냈다는 풍습과 백성들이 이사를 하면 짐을 싸기 전에 말린 쑥을 집의 네 귀퉁이에서 태워 잡귀를 쫓아내는 풍습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쑥은 신성한 풀로 존중되었던 것 같다.  
쑥은 지혈제로도 사용되며 그 밖에 신경통이나 부인병, 소화불량, 간장질환, 옻독, 풀독, 습진, 독오름, 치통, 편도선이 붓거나 입안의 종기, 빈혈, 요통, 산후통, 숙취, 위장병에 좋다. 섬진 거기에다가 쑥은 강한 알칼리성을 띄고 있어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으로 피부가 산성화 된 사람에게는 아주 좋다고 한다.
쑥에는 단군신화가 아닌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얽혀있다.
옛날에 아내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 효자는 유명한 의원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됬다. 거의 포기하고 있을 무렵에 근처 마을에 당대의 명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당장 달려갔는데 그 의원이 진맥을 짚어보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것을 보고서 효자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의원님” 그러자 의원이
“자네 어머니의 병은 아주 고치기 어려워 이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7년 묵은 쑥뿐이라네” 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서는 효자가 기가 막혀서 물었다.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7년 묵은 쑥을 구해 옵니까?”
의원이 그 말을 듣고서는
“내가 뭐라고 했나 아주 고치기 어렵다고 했지 않느냐 자네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7년 묵은 쑥뿐이니까 못하겠으면 돌아가게”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효자는 “아닙니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7년 묵은 쑥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아내를 찾아가서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7년 묵은 쑥을 구하나면서 날씨가 좀 따뜻해지면 가라고 극구 말렸다. 하지만 효자는 집을 나가서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면서 7년 묵은 쑥을 찾아 봤지만 헛수고였다.
세월이 흘러 7년째가 된 날에 돌아 왔는데 그 때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때 효자의 머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7년 전 그해에 쑥을 뿌리 째 캐다가 오늘 이용하면 되었을 것을!” 이라고 말하면서 땅을 치며 후회하였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남천 꽃이 피었다. 다른 꽃들은 거의 다 져버린 시기에 원추리와 함께 우리 집 마당을 환히 비춰주고 있다. 아빠께서 우리 집 마당에서 잘 자라나 시험해 보려고 가져다 심었다는데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옛날에는 남천잎을 쌀과 섞어 먹으면 흰머리가 다시 검은머리로 돌아간다고 해서 나이들은 사람에게 새해인사를 하러 올 때 열매가 달린 남천가지를 선물했다고 한다.


원추리꽃이 피었다. 속담 중에 원추리 꽃이 피면 장마가 오고 원추리 꽃이 피면 지면 장마가 간다고 했는데 올해에는 장마철이 조금 더 일찍 찾아와서 원추리가 기상대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밤나무꽃이 지면 장마가 한창이다.” “도라지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속담에서처럼 밤나무꽃과 도라지꽃 역시 장마철을 알리는 기상예보원 역할을 했다. 원추리의 한자이름은 훤초이다. 원추리라는 이름은 <산림경제>에서 처음 나온다. 원추리의 고유이름은 ‘넘나물’ 또는 ‘엄나물’이다. 그러니까 원추리란 이름은 한자이름 훤초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쉽게 정리하자면 훤초>원초>원추>원추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처풍토기>에 의하면 애를 밴 부인이 이 꽃을 패용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했는데 이 때의 꽃은 꽃봉오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꽃의 꽃봉오리가 영락없는 사내아이의 고추를 닮았기 때문이다. 원추리의 꽃은 참 큰데 원추리 꽃이 왜 그렇게 크냐하면 원추리의 수정을 도와주는 도우미가 호랑나비와 제비나비 같은 대형나비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꽃의 생김새와 크기는 공진화 해온 곤충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원추리의 큰 꽃 속에서 제비나비나 호랑나비가 온몸을 다 넣고 꿀을 빠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 집 주변에 제비나비가 많아진 것 같은데 아마 원추리 꽃에 꿀을 빨러 온 것 같다.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해준다 하여 또 다른 이름으로  忘憂草(망우초)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있다. 옛날에 어는 형제가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이 들은 슬픔에 잠겨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은 슬픔을 잊기 위해 엄마아빠의 무덤가에 원추리를 심었지만 동생은 이와 반대로 부모님을 잊지 않으려고 난초를 심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형은 슬픔을 잊고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동생의 슬픔은 더 깊어졌다. 저승에서 지내고 계시는 부모님도 동생이 안타까웠는지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슬픔도 잊을 줄 알아야 한다.” 그 말을 듣고 잠에서 깬 동생은 자기가 심었던 난초를 모두 뽑고 원추리를 심어 슬픔을 잊었다는 이야기이다.

미나리과의 두해살이풀인 사상자도 꽃이 피었다. 작년에 비해 여기저기 사상자 군락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사상자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 내려온다.
어느 마을에 괴상한 병이 돌았다. 환자의 땀구멍과 탈구멍에 닭살처럼 까슬까슬한 돌기와 물집이 생겨 몸이 무척 가려운 피부병이었다. 이 피부병에 걸리면 하루종일 긁어대서 시뻘건 피가 흘러도 시원하지 않을 정도 였다. 그리고 이 피부병은 전염이 빨라 환자의 옷을 말할 것도 없고 환자의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옮았다. 환자가 긁을 때 떨어진 비듬이나 피부껍질이 날아가 건강한 사람의 몸에 닿으면 곧바로 전염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피부병에 전염되어 긁어 대기 시작했다. 약이라는 약은 다 발라보아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사람들은 의원을 찾아가 가려움이라도 멈추게 하는 약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기에 의원이 대답하기를 “백 리 밖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이 하나 있는데, 듣기로는 그 섬에 잎은 깃털처럼 생겼고 꽃은 우산처럼 생긴 약초가 있답니다. 그약초의 씨를 삶은 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섬에는 온갖 독사들이 득실거려서 지금으로서는 뜯어올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서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 때 어떤 청년이 자신이 약초를 구해오겠다고 며칠 먹을 식량을 준비하여 뱀섬으로 떠났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청년이 자신이 약초를 구해오겠다면서 배를 타고 떠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약초를 캐오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명의 청년이 자신이 뱀섬에 갔다 오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렸지만 청년은 며칠 먹을 양식을 준비하여 마을을 떠났다. 그러나 청년은 곧바로 뱀섬으로 가지 않고 먼저 뱀을 잘 잡는 땅꾼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땅꾼은 자기도 독사는 자신이 없다면서 저 버닷가 높은 산에 사시는 비구니 스님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 비구니 스님은 백 살이 넘었는데 약으로 쓸 뱀의 쓸개를 구하러 뱀섬에 자주 갔다 왔다고 했다. 청년은 암자를 찾아가 비구니 스님께 어떻게 하면 뱀섬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뱀은 원래 웅황주를 끔찍이도 싫어하여 웅황주 냄새만 풍겨도 멀리 도망간다고 했다. 청년은 스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산을 내려와 웅황주를 준비하여 뱀섬으로 떠났다. 뱀섬에 도착하자 여러 독사들이 청년을 잡아먹겠다고 달려들었다. 청년은 재빨리 준비해간 웅황주를 솔잎 끝에 묻혀서 뿌렸다. 갑자기 웅황주 냄새를 맡은 독사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도망가는 독사도 있고 죽은 듯 꼼짝 않는 놈도 있었다. 청년은 깃털모양의 잎에 꽃이 우산처럼 생긴 약초를 발견하고 너무나 기뻐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 약초위에는 독사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청년은 웅황주를 뿌렸다. 그러나 그 독사는 도망칠 생각도 않고 그대로 약초위에 앉아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독사는 혀를 날름거리지도 않고 고개를 치켜들지도 않았다. 웅황주에 취한 것이다. 청년은 바로 독사를 밀치고 약초를 캐고 약초의 씨를 따서 자루에 넣었다. 마을사람들은 청년이 살아 돌아 온데다가 약초까지 캐오자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그 약초의 씨를 물에 삶아 목욕을 했더니 신통하게도 그 지긋지긋한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약초를 가까운 산에다가 섬어 버짐과 습진 등 피부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했다. 청년은 뱀섬에서 그 약초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청년은 약초가 독사의 침상 같은 생각이 들어 약초의 이름을 蛇床(사상)에 씨까지 하여 蛇床子(사상자)라고 이름붙였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쯤 타래난초 꽃이 피었다는 생각이 들어 돼지무덤으로 갔다. 타래란 사리어 뭉쳐 놓은 실·노끈 등을 말하는데 꽃이 실타래처럼 감기며 올라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름다운 타래난초 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딱 하지 쯤에 꽃이 핀 것 같은데 타래난초는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로 무덤가나 잔디밭에서 주로 나는 풀인데 수정방식은 꽃가루덩어리를 찾아오는 벌레의 몸에 통째로 붙여버린다. 그리고는 암술 끝에는 접착제를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약삭빠르게 꽃가루 덩어리를 떼어낸다. 타래난초는 씨앗을 아주 많이 만든다. 작은 꽃 한 송이가 수만 개 이상의 아주 작은 씨앗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타래난초의 씨앗은 아주 작기 때문에 발아에 필요한 양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난균이라는 곰팡이를 자기 몸에 기생하도록 한 후 그 균사체로부터 영양분을 빼앗는다. 물론 이 전략은 위험도 있다. 균의 침입을 받으면 자기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도박과 같은 생존전략을 가진 셈이다.


패랭이꽃도 피어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잎의 끝은 뾰족하고 중간에 연갈색 무늬가 새겨져 있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패랭이꽃 역시 타래난초처럼 무덤이나 잔디밭근처에 많이 난다. 그래서 가난한 농민이나 나무꾼들의 사랑을 받던 꽃이다. 포은 정몽주의 선조인 정습명이 패랭이꽃을 주제로 시를 지었다.  
             석죽화
사람들은 모란의 붉은 빛을 사랑하여
뜰 안 가득 심어서 가꾼다지만
누가 알랴? 풀이 무성한 벌판에도
어여쁘게 피어나는 떨기 꽃이 있다는 것을
그 빛 시골 연못 속의 달에 어리고
그 향기 바람 따라 숲 언덕에 전하네
궁벽한 땅이라 부귀한 이는 적어서
그 아리따운 자태 농부들만 즐긴다네


숲으로 들어가니 지난 망종 때보다 훨씬 더 습기가 차있다. 무성한 수관부는 내리 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장마비에 자란 풀들은 숲으로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을 기세이다. 여기저기 버섯들이 솟아나 있었다. 역시 장마철은 버섯의 계절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멍석딸기가 익어있었다. 하나씩 따서 먹어봤는데 새콤달콤했다. 새들과 곤충 작은 포유류들의 여름식량을 내가 축낸 것이다. 무성했던 인동초 꽃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뻐꾸기소리가 가까운데서 들렸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 버스타러 나가다가 전선줄에 앉아서 우는 뻐꾸기를 자주 본다. 날개를 치켜들고 고함치듯 울대를 울리며 노래하는 것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자식양육을 다른 새한테 맡겨놓고 자기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끊임 없이 울어대는 뻐꾸기의 모정을 갸륵하다고 할까 뻔뻔하다고 할까? 뻐꾸기가 탁란하는 새집은 참새, 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 개개비 등인데 산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박새집일 가능성이 있고 물가에서는 개개비집일 가능성이 있다. 이 주변에 박새가 죽어라고 뻐꾸기 새끼를 부양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산에서 내려왔다.


                                    6월 28일
오늘은 해가 가장 높이 뜬 다는 하지 절기이다. 하지는 해의 에너지가 가장 높을 때이고 지금은 장마철이기 때문에 물도 충분하니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밭에는 오이와 호박이 눈에 띄게 빨리 자라고 있는데 그래서 “장마에 호박 자라듯 한다.” 라는 속담이 생겼나 보다. 이렇게 왕성하게 자라는 식물의 생장력을 바탕으로 곤충들이 대거 발생하는 것은 집주변 풀밭에서 메뚜기, 사마귀 애벌레들이 많이 보이고 봄 형에 비해서 훨씬 큰 여름 형 나비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이런 하지의 왕성한 자연의 힘을 느끼며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쥐똥나무는 꽃은 이미 다 지고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 열매를 달려있다. 조금만 있으면 쥐똥만한 크기의 검은 열매로 자랄 것이다.

목련은 벌써 잎눈과 겨울눈이 벌써 많이 자랐다. 열매보다 미리 준비해두는 것을 보면 목련나무의 내년준비가 옹골차다. 그러고 보면 나무들은 오뉴월이 되면 내년준비를 거의 갖추는데 미리 준비하면 걱정이 없다는 것을 진화과정 속에서 터득했나보다.

쑥이 많이 자랐다. 쑥은 국화과의 잡초인데 쑥은 국화과의 식물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풍매화이다. 아마도 쑥은 진화의 한 단계에서 건조하고 추운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꽃가루를 옮겨줄 벌레가 마땅치 않자 원래 충매화였던 쑥이 풍매화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쑥이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는 나대지에서 뭉쳐서 자라는 것이나 쑥의 잎 뒷면에 흰색의 털이 촘촘히 나있는 것은 건조한 환경으로부터 수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쑥을 밤에 관찰해보면 잎을 전부 닫고 있어 마치 흰 꽃이 핀 것 같은데 이것은 사막과 같은 데서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데 잎을 펴고 있으면 잎의 온도가 내려가기 때문에 잎을 닫아 잎의 온도를 보호하는 생존전략인 것이다. 쑥으로 만든 쑥떡을 먹어보면 보통 떡보다 찰기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쑥의 잎 뒷면에 있는 털이 쌀과 얽혀서 찰기를 만들어 주어 그런 것이다. 나는 쑥인절미를 싫어했는데 2006년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에 따라가서 어떤 절에 가서 쑥인절미를 사 먹고서는 쑥인절미를 좋아하게 되었다. 쑥은 개척자 식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쑥대밭이라는 말은 쑥의 개척자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누구네 집이 황폐화 되었을 때 쑥대밭이라고 하는데 그 집 마당을 쑥들이 점령한 상태를 말한다. 쑥은 농경지나 마당에 한 번 나면 무리지어 세력을 확대해 나간다. 한번 쑥의 무리가 자리를 잡으면 뿌리가   서로 엉키기 때문에 뽑아내기도 힘들다. 이렇게 식생이 파괴되는 곳을 먼저 찾아가 식생을 회복하는 것이 쑥의 생태적인 지위이다.
쑥은 우리나라의 풍습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단군신화이다. 또한 우리조상들이 단오날에 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쑥의 신령스러운 힘으로 잡귀를 쫓아냈다는 풍습과 백성들이 이사를 하면 짐을 싸기 전에 말린 쑥을 집의 네 귀퉁이에서 태워 잡귀를 쫓아내는 풍습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쑥은 신성한 풀로 존중되었던 것 같다.  
쑥은 지혈제로도 사용되며 그 밖에 신경통이나 부인병, 소화불량, 간장질환, 옻독, 풀독, 습진, 독오름, 치통, 편도선이 붓거나 입안의 종기, 빈혈, 요통, 산후통, 숙취, 위장병에 좋다. 섬진 거기에다가 쑥은 강한 알칼리성을 띄고 있어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으로 피부가 산성화 된 사람에게는 아주 좋다고 한다.
쑥에는 단군신화가 아닌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얽혀있다.
옛날에 아내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 효자는 유명한 의원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됬다. 거의 포기하고 있을 무렵에 근처 마을에 당대의 명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당장 달려갔는데 그 의원이 진맥을 짚어보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것을 보고서 효자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의원님” 그러자 의원이
“자네 어머니의 병은 아주 고치기 어려워 이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7년 묵은 쑥뿐이라네” 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서는 효자가 기가 막혀서 물었다.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7년 묵은 쑥을 구해 옵니까?”
의원이 그 말을 듣고서는
“내가 뭐라고 했나 아주 고치기 어렵다고 했지 않느냐 자네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7년 묵은 쑥뿐이니까 못하겠으면 돌아가게”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효자는 “아닙니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7년 묵은 쑥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아내를 찾아가서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7년 묵은 쑥을 구하나면서 날씨가 좀 따뜻해지면 가라고 극구 말렸다. 하지만 효자는 집을 나가서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면서 7년 묵은 쑥을 찾아 봤지만 헛수고였다.
세월이 흘러 7년째가 된 날에 돌아 왔는데 그 때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때 효자의 머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7년 전 그해에 쑥을 뿌리 째 캐다가 오늘 이용하면 되었을 것을!” 이라고 말하면서 땅을 치며 후회하였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남천 꽃이 피었다. 다른 꽃들은 거의 다 져버린 시기에 원추리와 함께 우리 집 마당을 환히 비춰주고 있다. 아빠께서 우리 집 마당에서 잘 자라나 시험해 보려고 가져다 심었다는데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옛날에는 남천잎을 쌀과 섞어 먹으면 흰머리가 다시 검은머리로 돌아간다고 해서 나이들은 사람에게 새해인사를 하러 올 때 열매가 달린 남천가지를 선물했다고 한다.


원추리꽃이 피었다. 속담 중에 원추리 꽃이 피면 장마가 오고 원추리 꽃이 피면 지면 장마가 간다고 했는데 올해에는 장마철이 조금 더 일찍 찾아와서 원추리가 기상대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밤나무꽃이 지면 장마가 한창이다.” “도라지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속담에서처럼 밤나무꽃과 도라지꽃 역시 장마철을 알리는 기상예보원 역할을 했다. 원추리의 한자이름은 훤초이다. 원추리라는 이름은 <산림경제>에서 처음 나온다. 원추리의 고유이름은 ‘넘나물’ 또는 ‘엄나물’이다. 그러니까 원추리란 이름은 한자이름 훤초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쉽게 정리하자면 훤초>원초>원추>원추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처풍토기>에 의하면 애를 밴 부인이 이 꽃을 패용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했는데 이 때의 꽃은 꽃봉오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꽃의 꽃봉오리가 영락없는 사내아이의 고추를 닮았기 때문이다. 원추리의 꽃은 참 큰데 원추리 꽃이 왜 그렇게 크냐하면 원추리의 수정을 도와주는 도우미가 호랑나비와 제비나비 같은 대형나비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꽃의 생김새와 크기는 공진화 해온 곤충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원추리의 큰 꽃 속에서 제비나비나 호랑나비가 온몸을 다 넣고 꿀을 빠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 집 주변에 제비나비가 많아진 것 같은데 아마 원추리 꽃에 꿀을 빨러 온 것 같다.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해준다 하여 또 다른 이름으로  忘憂草(망우초)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있다. 옛날에 어는 형제가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이 들은 슬픔에 잠겨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은 슬픔을 잊기 위해 엄마아빠의 무덤가에 원추리를 심었지만 동생은 이와 반대로 부모님을 잊지 않으려고 난초를 심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형은 슬픔을 잊고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동생의 슬픔은 더 깊어졌다. 저승에서 지내고 계시는 부모님도 동생이 안타까웠는지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슬픔도 잊을 줄 알아야 한다.” 그 말을 듣고 잠에서 깬 동생은 자기가 심었던 난초를 모두 뽑고 원추리를 심어 슬픔을 잊었다는 이야기이다.

미나리과의 두해살이풀인 사상자도 꽃이 피었다. 작년에 비해 여기저기 사상자 군락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사상자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 내려온다.
어느 마을에 괴상한 병이 돌았다. 환자의 땀구멍과 탈구멍에 닭살처럼 까슬까슬한 돌기와 물집이 생겨 몸이 무척 가려운 피부병이었다. 이 피부병에 걸리면 하루종일 긁어대서 시뻘건 피가 흘러도 시원하지 않을 정도 였다. 그리고 이 피부병은 전염이 빨라 환자의 옷을 말할 것도 없고 환자의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옮았다. 환자가 긁을 때 떨어진 비듬이나 피부껍질이 날아가 건강한 사람의 몸에 닿으면 곧바로 전염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피부병에 전염되어 긁어 대기 시작했다. 약이라는 약은 다 발라보아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사람들은 의원을 찾아가 가려움이라도 멈추게 하는 약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기에 의원이 대답하기를 “백 리 밖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이 하나 있는데, 듣기로는 그 섬에 잎은 깃털처럼 생겼고 꽃은 우산처럼 생긴 약초가 있답니다. 그약초의 씨를 삶은 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섬에는 온갖 독사들이 득실거려서 지금으로서는 뜯어올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서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 때 어떤 청년이 자신이 약초를 구해오겠다고 며칠 먹을 식량을 준비하여 뱀섬으로 떠났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청년이 자신이 약초를 구해오겠다면서 배를 타고 떠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약초를 캐오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명의 청년이 자신이 뱀섬에 갔다 오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렸지만 청년은 며칠 먹을 양식을 준비하여 마을을 떠났다. 그러나 청년은 곧바로 뱀섬으로 가지 않고 먼저 뱀을 잘 잡는 땅꾼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땅꾼은 자기도 독사는 자신이 없다면서 저 버닷가 높은 산에 사시는 비구니 스님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 비구니 스님은 백 살이 넘었는데 약으로 쓸 뱀의 쓸개를 구하러 뱀섬에 자주 갔다 왔다고 했다. 청년은 암자를 찾아가 비구니 스님께 어떻게 하면 뱀섬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뱀은 원래 웅황주를 끔찍이도 싫어하여 웅황주 냄새만 풍겨도 멀리 도망간다고 했다. 청년은 스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산을 내려와 웅황주를 준비하여 뱀섬으로 떠났다. 뱀섬에 도착하자 여러 독사들이 청년을 잡아먹겠다고 달려들었다. 청년은 재빨리 준비해간 웅황주를 솔잎 끝에 묻혀서 뿌렸다. 갑자기 웅황주 냄새를 맡은 독사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도망가는 독사도 있고 죽은 듯 꼼짝 않는 놈도 있었다. 청년은 깃털모양의 잎에 꽃이 우산처럼 생긴 약초를 발견하고 너무나 기뻐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 약초위에는 독사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청년은 웅황주를 뿌렸다. 그러나 그 독사는 도망칠 생각도 않고 그대로 약초위에 앉아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독사는 혀를 날름거리지도 않고 고개를 치켜들지도 않았다. 웅황주에 취한 것이다. 청년은 바로 독사를 밀치고 약초를 캐고 약초의 씨를 따서 자루에 넣었다. 마을사람들은 청년이 살아 돌아 온데다가 약초까지 캐오자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그 약초의 씨를 물에 삶아 목욕을 했더니 신통하게도 그 지긋지긋한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약초를 가까운 산에다가 섬어 버짐과 습진 등 피부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했다. 청년은 뱀섬에서 그 약초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청년은 약초가 독사의 침상 같은 생각이 들어 약초의 이름을 蛇床(사상)에 씨까지 하여 蛇床子(사상자)라고 이름붙였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쯤 타래난초 꽃이 피었다는 생각이 들어 돼지무덤으로 갔다. 타래란 사리어 뭉쳐 놓은 실·노끈 등을 말하는데 꽃이 실타래처럼 감기며 올라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름다운 타래난초 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딱 하지 쯤에 꽃이 핀 것 같은데 타래난초는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로 무덤가나 잔디밭에서 주로 나는 풀인데 수정방식은 꽃가루덩어리를 찾아오는 벌레의 몸에 통째로 붙여버린다. 그리고는 암술 끝에는 접착제를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약삭빠르게 꽃가루 덩어리를 떼어낸다. 타래난초는 씨앗을 아주 많이 만든다. 작은 꽃 한 송이가 수만 개 이상의 아주 작은 씨앗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타래난초의 씨앗은 아주 작기 때문에 발아에 필요한 양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난균이라는 곰팡이를 자기 몸에 기생하도록 한 후 그 균사체로부터 영양분을 빼앗는다. 물론 이 전략은 위험도 있다. 균의 침입을 받으면 자기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도박과 같은 생존전략을 가진 셈이다.


패랭이꽃도 피어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잎의 끝은 뾰족하고 중간에 연갈색 무늬가 새겨져 있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패랭이꽃 역시 타래난초처럼 무덤이나 잔디밭근처에 많이 난다. 그래서 가난한 농민이나 나무꾼들의 사랑을 받던 꽃이다. 포은 정몽주의 선조인 정습명이 패랭이꽃을 주제로 시를 지었다.  
             석죽화
사람들은 모란의 붉은 빛을 사랑하여
뜰 안 가득 심어서 가꾼다지만
누가 알랴? 풀이 무성한 벌판에도
어여쁘게 피어나는 떨기 꽃이 있다는 것을
그 빛 시골 연못 속의 달에 어리고
그 향기 바람 따라 숲 언덕에 전하네
궁벽한 땅이라 부귀한 이는 적어서
그 아리따운 자태 농부들만 즐긴다네


숲으로 들어가니 지난 망종 때보다 훨씬 더 습기가 차있다. 무성한 수관부는 내리 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장마비에 자란 풀들은 숲으로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을 기세이다. 여기저기 버섯들이 솟아나 있었다. 역시 장마철은 버섯의 계절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멍석딸기가 익어있었다. 하나씩 따서 먹어봤는데 새콤달콤했다. 새들과 곤충 작은 포유류들의 여름식량을 내가 축낸 것이다. 무성했던 인동초 꽃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뻐꾸기소리가 가까운데서 들렸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 버스타러 나가다가 전선줄에 앉아서 우는 뻐꾸기를 자주 본다. 날개를 치켜들고 고함치듯 울대를 울리며 노래하는 것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자식양육을 다른 새한테 맡겨놓고 자기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끊임 없이 울어대는 뻐꾸기의 모정을 갸륵하다고 할까 뻔뻔하다고 할까? 뻐꾸기가 탁란하는 새집은 참새, 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 개개비 등인데 산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박새집일 가능성이 있고 물가에서는 개개비집일 가능성이 있다. 이 주변에 박새가 죽어라고 뻐꾸기 새끼를 부양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산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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