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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생태관찰일지15

                                  9월 4일
오늘은 처서이다. 낮에는 여전히 여름처럼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절기인데 이번 처서절기에는 비가 거의 매일매일 내렸다. 원래 처서 절기에는 낮 기온이 25도에서 30도 까지는 올라가야 정상인데 비가 계속 오는 바람에 낮에도 쌀쌀하다. 거기에다가 날씨도 잠깐 개는 척 하다가 곧바로 비가 내린다. 그 것 때문에 생활에 불편한게 많은데 빨래도 밖에 널 수도 없고 안에 널어도 습기 때문에 잘 마르지 않는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농작물이다. 고추는 곯아서 떨어지고 과일들은 익지 않은 채 떨어지고 있다. 지금 한참 광합성을 해야 하는 벼는 정작 필요한 햇빛은 못 받고 물만 먹고 있어서 벼에는 쭉정이가 많이 생기고 있고 심지어 벼이삭에서 싹이 새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어제 뉴스를 보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벼들이 쓰러지고 흑명나방 애벌레 때문에 농부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거기에다가 부안, 서천에서는 애멸구에 의한 벼줄무늬잎마름병 때문에 지금 난리가 났다고 하고 제주도는 집중호우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요즘 제주도 개발 때문에 피해가 더 심했다고 하는데 원래 제주도에서는 지형상 비가 오면 중간에 스며들었다가 바닷가에서 분출되는데 제주도 중간지대에 골프장이나 도로가 만들어져 많은 비를 흡수하지 못해 큰물이 한라산에서 그대로 쓸어내린 것이다. 개발로 인한 피해를 제주도 원주민들이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도 피해가 막심하다. 가을 김장배추를 심으려고 밭을 갈았는데 비가 계속 와서 심지 못하고 있다. 배추는 벌써 늦었고 이렇게 비가 계속 오면 김장무도 심지 못할 수도 있다. 참 특별한 처서이다. 원래 처서는 계절의 변화가 민감하게 느껴지는 시기라서 모기가 입이 비뚤어진다느니 처서가 되면 온갖 풀들이 울며 돌아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번 생태관찰은 이런 시기에 생태계가 어떤 변화를 보여줄 것 인지에 대한 것이다.

마당에 나가니 노랗게 익어가고 있는 탱자열매가 눈에 띄었다. 이제 처서가 되니 탱자나무 열매도 노랗게 익기 시작한 것이다. 탱자열매는 다 익으면 아주 노랗게 되는데 이걸로 건위·이뇨·거담·진통 등에 약으로 쓰고 술도 담그는데 엄마 말로는 아주 맛있다고 한다. 열매뿐만 아니라 나무도 산울타리를 만들어 쓴다. 강화도의 갑곶리와 사기리에서 자라는 것은 각각 천연기념물 78호, 79호로 정해져 있는데 병자호란 때 심은 것이라고 하니 380년이나 된 것이다.

우리 집 수돗가 옆에서 맨드라미가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맨드라미는 꽃이 닭 벼슬을 닮아서 鷄冠花(계관화)라고도 불린다. 옛날에 닭 벼슬은 앞이 낳고 뒤가 높아 모양이 관모를 닮아서 말 그대로 벼슬이라고 부르고 닭 벼슬을 닮은 맨드라미도 벼슬을 상징하게 되었다. 양반집에서는 벼슬길에 오르거나 벼슬이 더 높아지기를 기원하면서 마당에 맨드라미를 심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삼대화가인 오원 정승업의 그림을 보면 맨드라미 그림이 있다. 맨드라미 아래에 수탉이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의 의미는 관상가관 즉 벼슬이 더 높아지길 기원하는 뜻이라고 한다. 아마 어떤 벼슬아치가 자기 상관에게 선물하려고 장승업에게 주문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보는 맨드라미꽃은 붉은 색인데 붉은색 말고도 황색이나 흰색을 띠는 것도 있다고 한다. 윗마을에서 아랫마을로 내려가다가 맨드라미군락지를 발견했다. 요즘 비 때문에 곤충들이 힘들 텐데 맨드라미꽃에는 황테감탕벌, 지리산팔랑나비, 배추흰나비 등이 날아다니면서 꿀을 빨고 있었다. 군락지를 돌아보다가 왕사마귀가 맨드라미 꽃 위에서 조용히 잠복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앞에 말한 곤충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왕사마귀의 보호색 때문인지 얼핏 보면 푸른색 나뭇잎이 맨드라미 꽃 위에 떨어진 것 같았다.  



우리 집 밭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근처에서 한련초가 꽃을 보았다. 한련초 줄기를 꺽으면 까만즙액 흘러나오고 줄기나 잎을 물에 담갔다가 비비면 까맣게 변하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한련초를 달인 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숱이 많아지고 머리카락이 다시 검어진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한련초를 진하게 달인 물을 먹거나 머리카락, 수염, 눈썹에 바르면 머리카락이나 수염이 빨리 자라고 숱도 많아지며 빛깔이 다시 검어진다. 또 양기부족, 임포텐츠(음위), 조루, 발기부전 등 남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에도 효과가 신통할 정도로 잘 듣는다고 한다. 또 오래 먹으면 뼈와 근육이 튼튼해지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고 해서 아빠에게 녹즙에 넣어달라고 했다.  

마당 안쪽을 살펴보다가 여기저기 듬성듬성 나있는 쇠비름을 발견했다. 쇠비름은 생명력이 아주 강한 식물이다. 뿌리 째 뽑아서 던져놓아도 다시 살아난다. 만약 열매가 달려있는 채로 뽑혀도 열매는 성장을 멈추지 않고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잘 자란다. 쇠비름이 이렇게 강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 데에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옛날 요임금 시대에 부상나무에서 살던 10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떠올라 인간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 이를 알은 중앙상제 제곡은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벌할 수 없어서 천신 중에 가장 용맹한 예에게 태양을 벌주라고 명령했다. 예는 즉시 지상으로 내려가 태양 아홉 개를 화살로 맞춰서 떨어뜨렸다. 마지막 남은 태양 하나는 무서워서 급히 쇠비름 잎 뒤로 숨었다. 그래서 태양은 예의 화살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태양은 은혜를 갚기 위해 쇠비름을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도 말라죽지 않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쇠비름은 뿌리는 흰색, 열매는 검은색, 줄기는 붉은색, 잎은 초록색, 꽃은 노란색으로 다섯 가지 색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오행초라고 불리기도 한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쇠비름은 지상에 있는 식물 중에서 오메가-3지방산이 가장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오메가-3지방산이 어찌나 많이 들어 있던지 마당에서 쇠비름을 뜯어먹은 닭의 달걀에는 오메가-3 지방산과 오메가-6지방산이 1:1비율로 들어있다고 하고 곡식을 주어서 키운 닭의 달걀에는 1:20의 비율로 오메가-6지방산이 20배나 더 많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쇠비름 100g에 오메가-3 지방산이 300~400mg이나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영양소도 풍부해서 쇠비름나물을 하루 한 끼만 먹어도 그 날 필요한 비타민 E와 비타민 C, 그리고 베타카로틴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산딸나무 앞에 서니 열매가 엷은 루비빛깔로 익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꽃은 참 많이 달려있었는데 열매가 된 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다. 다 익은 열매를 까보면 안은 아주 노랗다. 먹어보면 첫 맛은 약간 씁쓸하고 뒷맛은 새콤달콤하다.

지난 5월 말에 아빠가 따오셨던 오디로 오디효소를 담갔는데 이제 3개월이 지나서 오디효소를 항아리에서 꺼냈다. 효소물을 타서 먹어보니 달콤하고 깊은 맛이 났다. 효소를 걸러서 남은 오디 찌꺼기는 거름으로 사용하려고 두엄더미에 갖다 놓았는데 달콤한 오디즙에 끌려서 여려 곤충들이 찾아온다. 특히 장수말벌이 10여 마리 이상이 와서 즙을 먹는 것이 인상적이다. 주변에 사람이 지나가든 두엄더미에 뭘 갖다 버리든 꿈쩍도 않고 즙을 빨아먹는 것에 열중하고 있다. 그래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이씨 할머니네로 가는 둔덕에서 연분홍색 꽃을 피우고 있는 쥐꼬리망초를 발견했다. 꽃은 입술모양이었다. 쥐꼬리망초는 한방에서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약재로 쓴다. 감기로 인한 발열·해수·인후통에 효과가 있고, 신우신염·간염·간경화·타박상·종기·이질에 사용하며, 근육과 뼈의 동통을 제거한다.

이씨 할머니 네로 내려가는 길에서 호랑나비가 익모초에 앉아서 꿀을 빨아먹는 것을 보았다. 지금까지는 원추리 같은 큰 꽃에 앉아서 꿀을 빨아먹는 모습만 보았는데 작은 꽃에 앉아서 꿀을 빨아먹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가 많이 오다보니까 다니기도 힘들고 꿀을 빨아먹을 수 있는 꽃들도 많지 않아서 익모초에 앉아 영양보충을 하는 것 같다. 비가 참 여려 생명을 힘들게 한다.


이씨 할머니네 앞에 감나무 밑에 감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밤나무를 살펴보니 남아 있는 감열매가 많지 않았다. 계속되는 비에 견디지 못하고 감꼭지가 물러서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앞에 있는 밤나무에는 밤이 아주 많이 달려 있어 비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것 같다. 떨어진 감 주위에서 뭔가가 날아다니 길래 관찰해 봤더니 황테감탕벌이었다.  떨어진 감의 과즙을 먹으려고 모여든 것 같다. 이런 떨어진 열매에는 청띠 신선나비나 네발나비 같은 곤충도 몰려드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뒷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갔는데 기사아저씨 방 앞에 목화다래가 달려있었다. 목화다래는 하얀 솜 같은 게 나오기 전의 모습이다. 꽃의 색깔은 황색, 백색을 띠는 것이 있다. 꽃의 지름은 보통 4cm정도이다. 꽃을 자세히 살펴보니 암술 1개와 수술이 수없이 많았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무려 130개라고 하는데 다른 꽃에 비해 몇 배 나 많은 것이다. 목화다래 안에 있는 하얀 솜은 솜옷을 만들어 입고 종자로는 기름을 짠다고 한다. 아빠의 말을 들어보니 옛날에 우리 집에도 목화를 심었는데 여름에는 목화밭매고 가을에는 수확하고 말리는데 집안  사람들이 다 나섰다고 한다. 채 익지 않은 다래는 말린 다음에 겨울밤의 딱딱한 껍질을 벗겨서 솜을 빼냈는데 껍질에 찔리면 아프기 때문에 애들이 하기에는 조금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목화솜을 빼낼 때 아이들도 다 몰려들었는데 그 때 할아버지가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려 주셨기 때문이다.

도깨비바늘이 드디어 열매를 열렸다. 도깨비바늘열매를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갈래로 갈라져 있고 가시를 닮았는데 이런 생김새 때문에 도깨비바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시가 달려있는데 그래서 도깨비바늘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아직 익지 않아서 초록색이지만 다 익으면 갈색이 되어 자기를 다른 데로 옮겨줄 동물들을 기다릴 것이다. 도깨비바늘은 여름이 되어야 싹이 나고 가을이 다 되어야 열매를 맺는다. 이는 도깨비바늘의 원산지가 동남아와 같은 아열대 지방이기 때문인데 원산지가 비슷한 식물로는 도꼬마리와 진득찰 등이 있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생태관찰을 하고 오는데 마당 앞에 있는 조선소나무가 보인다. 처서에 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송편 만들 때 쓸 솔잎을 따는 것이다. 처서에 솔잎을 따는 이유는 이때쯤 따야 그늘에서 잘 말릴 수 있고 처서가 지나면 두 갈래 잎을 밑에서 감싸고 있는 비닐이 함께 뽑혀서 처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몇 개를 뽑아보았더니 아직은 비닐이 같이 뽑히지 않고 잎새만 뽑혀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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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8월 23일
8월 23일은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이다. 한 낮에는 여전히 따갑지만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서 문을 열고 잠을 잤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찌는 듯한 더위가 누그러질 뿐만 아니라 장마가 지난 지 오래라 점점 땅이 말라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구온난화현상은 이러한 우리의 상식을 뒤집고 있다. 처서가 지난 다음에도 비가 계속 오고 온도는  더운 날엔 35도가 넘어 연일 폭염주의보이다. 예전에는 8월 초순이 제일 덥고 중순이 되면 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면서 8월 말이 되면 이제 가을에 들어서는 구나 느낄 정도 였는데 올해는 8월 하순이 초순보다 오히려 더 덥다. 뉴스를 보니 해수욕장 폐장이 늦춰졌다고 한다. 이제 지구온난화가 우리 생활양식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여름휴가철은 8월 초순에 몰려있는데 이대로라면 8월 말이 본격적인 휴가철이 될지도 모르겠다.

처서의 농사력에 대해서 살펴보자
밭농사를 보면 참깨를 베어 말리고 김장용 무·배추를 심고 논농사는 피뽑기, 논두렁풀 베기를 한다.
옛날에는 처서가 지나면 풀이 더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논 밭두렁에 풀을 베고 산소에 벌초도 하는 것이다.  
이 시기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맑은 날이 많았기 때문에 여름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말린다.

처서에 관한 속담을 보면 날씨에 관한 것이 압도적이다. 처서절기에 비바람이 없는 것이 일 년 농사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닐하우스의 영향으로 벼꽃이 일찍 패지만 예전에는 처서 때 벼꽃이 패기 때문에 이 때 비가 오면 수정이 어렵고 또한 광합성에 많은 지장을 받기 때문에 벼쭉정이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이 시기 날씨에 관한 속담에 맑은 날씨에 대한 강한 바람이 담겨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 안 곡식 천 석을 감한다.”
“처서에 비가 오면 항아리 쌀도 준다.”
“처서에 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 곡식도 준다.”
“처서에 비가 오면 천 가지가 해롭다.”  
“처서에 비바람 치면 폐농한다.”

이 시기에는 밤낮의 온도차가 심하기 때문에 냉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논물을 관리하는 것 역시 중요했는데 다음의 두 가지 속담은 논물 관리에 관한 지혜를 담고 있다,

“처서에 물은 먼저 대게 마련이다.”  
“처서 물은 오전 오후가 다르다.”  

처서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 이다. 산골짜기에 살면서 자연과 민감하게 교류하면서 살아온 농민들은 자연현상에 대한 예민한 관찰을 통해서 이 시기를 파악했는데 다음의 속담들이 바로 그것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
그런데 입추절기 보다 처서가 더 날씨가 더워 모기가 더욱더 기승을 부리는 요즘의 날씨에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처서에 하늘 한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별자리는 입추와 마찬가지로 미수이다. 그래서 오늘은 칠석이 지난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견우직녀성을 찾기로 했다.
직녀별은 찾기가 아주 쉽다. 여름하늘 한가운데에 떠있는 별들 가운데 가장 밝은 별을 찾으면 된다. 워낙 밝아서 서양에서는 ‘여름밤의 여왕’ ‘전 하늘에서 하나 뿐인 다이아몬드’ 등의 형용사가 붙어있다. 이 별자리는 서양에서는 거문고자리의 알파별인 베가이다. 직녀별 밑에는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작은 별이 두 개가 있는데 선녀와 나무꾼 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나무꾼이 자식 셋을 낳은 다음에 날개옷을 돌려주라는 사슴의 말을 무시하고 두 명의 자식을 낳은 선녀의 간청에 못 이겨 날개옷을 돌려준 이야기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날개옷을 받은 선녀는 양팔에 아이들 하나씩을 끼고 하늘에 올라갔는데 그 선녀가 직녀별이고 작은 별 두 개가 두 명의 아이들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슴은 자식 셋을 낳은 다음에 날개옷을 돌려주라고 했을까? 아이가 셋일 경우 하나를 남겨둘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선녀가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할 것이라는 사슴의 판단 (당시 사람들의 집단적 의식)이었던 것인데 여성 해방론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볼 건지 궁금하다.

다음은 견우별자리를 찾아보자 견우별은 서양별자리로는 염소자리의 으뜸별인 알게디이다. 알게디는 3등성 이어서 어둡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다. 직녀성에서 하고대성(요즘 견우별자리로 오인되고 있는 그 별) 사이에 직선을 긋고 약간 꺽은 다음 그 반 정도의 길이를 직선으로 연결하면 어두운 별 몇 개가 X자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견우 별자리이다. 견우별자리는 하늘나라에서 농사를 맡고 있는 별자리이기 때문에 주변에는 논에 물을 대는 도랑 물자리인 구감, 하늘나라의 밭인 천전, 저수지별자리인 나언, 닭장 별자리등을 찾을 수 있다. 이 견우직녀별자리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아주 먼 옛날 하늘나라 옥황상제에게는 직녀라는 예쁜 딸이 있었다. 직녀는 하늘을 장식하는 옷감을 짜는 일을 하는데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새로운 색깔의 옷감을 짜서 하늘을 장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직녀는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강둑으로 소를 끌고 가는 견우를 보았다.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고 이 사실을 안 옥황상제는 소를 잘 돌보는 부지런한 견우가 마음에 들어 사위로 삼았다. 그런데 혼인을 한 후부터 견우는 전혀 소를 돌보지 않았고 직녀는 옷감을 짜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하늘의 색은 초라해지고 노을은 전혀 아름답지 않게 된 것을 안 옥황상제는 너무 화가 나서 둘을 떼어 놓았다. 그래서 견우는 은하수 너머에서 소를 몰게 되었고 직녀는 여기에서 옷감을 짜게 만들었다. 직녀는 하루하루 눈물로 옷감을 짰고 이로 인해 하늘 옷감은 전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옥황상제는 직녀를 불러서 음력 7월 7일에는 만나도 좋다고 허락했는데 대신 옷감을 열심히 짜지 않으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직녀는 이 말을 듣고 열심히 옷감을 짰다 덕분에 하늘은 다시 예쁜 색을 되찾았고 드디어 음력 7월 7일이 되었다. 그런데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7월 7일이 되면 은하수 물길이 거세져서 도저히 만날 수 없었다. 결국 일 년에 한 번도 만날 수 없게 되자 견우와 직녀는 밤새도록 울기만 했다. 그 눈물이 큰 비가 되어 지상에 내렸다. 이를 불쌍히 여긴 까마귀와 까치는 직녀와 견우를 만나게 해주려고 자신들의 몸으로 다리를 놔주었다. 그래서 칠월 칠서기 지나면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깃털이 벗겨진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때가 털갈이를 하는 시기라서 뒷산에 올라가면 까치의 털들을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왜 전해져 내려왔을까?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4세기 후반에 그려진 덕흥리 고분벽화에 견우직녀그림이 있다. 견우는 한쪽 손을 들고 소와 함께 서있는데 은하수 건너편에는 직녀가 하염없이 견우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을 볼 때 적어도 1600년 전에는 널리 알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데는 사회적 기능이 있다. 어른들이 일보다는 연애와 놀기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에게 노동의 중요성과 규율을 강조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실제로 옛날에는 남자일은 농사일이고 여자의 일은 베를 짜는 일이라고 했으니 모든 사람들에게 노동의 규율을 교육하고 강요하기에 적절한 캐릭터와 이야기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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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8월 8일    
8월 8일은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이다. 우리나라는 입추를 전후해 날씨가 가장 덥기 때문에 가을에 들어선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중국은 대륙성 기후이기 때문에 땅이 일찍 데워져 여름도 일찍 찾아오지만 식기도 빨리 식어서 가을도 일찍 찾아온다. 7월 달 평균기온이 25.9도인데 비해 8월 달 평균기온이 24.6도로 떨어지니 계절의 변화를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도 낮에는 여전히 덥지만 8월 15일 이후에는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이슬이 내려 더위가 점차 약해져서 가을에 들어선다는 것을 나름대로 수긍 할 수 있다. 그래서 입추이후의 더위는 늦더위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날씨는 이러한 상식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장마가 7월이면 끝나고 입추절기가 되면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날씨가 맑은 날이 많았는데 올해는 입추 절기 까지 계속 비가 내렸다. 장마 뒤에 더 큰 장마가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무리 장마 때라도 3일에 1번 정도 밖에 비가 오지 않는데 이 ‘더 큰 장마’ 에는 3일에 2번씩이나 비가 내렸다. 거기에다가 일일 강수량도 장마 때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또한 기온역시 예전에는 8월 초순이 가장 높고 중순, 하순으로 갈수록 기온이 낮아졌는데 올해는 초순보다는 중순이, 중순보다는 하순이 기온이 높게 나타난다. 이것은 지구온난화가 우리나라의 기후를 온대의 장마가 아닌 아열대지방의 건기와 우기형태로 바꿔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기의 농사력을 살펴보면 밭농사는 입추 후 4,5일 경에 메밀을 심고 삼밭에 무씨를 뿌린다. 이때쯤 김장용 무, 배추를 심기 시작하는 것이다. 논농사는 김매기도 끝나서 물을 조절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전국적으로 전해지는 “어정 7월”이라는 말은 이시기의 한가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쯤 칠월 칠석, 칠월 백중행사가 성대하게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때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면 논농사를 망칠 수 있다. 벼가 패서 이제 본격적으로 햇빛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날씨가 1년 농사를 좌우 할 정도로 중요했기 때문에 입추가 지나서 비가 닷새만 계속 되도 왕이나 각 고을의 수령들은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
'춘추번로라는 옛 중국문헌에 기청제를 지내는 방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성안으로 통하는 수로(水路)를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게 한다. 그리고 제를 지내는 동안은 모든 성안사람은 물을 써서는 안 되고 또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된다. 심지어 부부관계까지도 운우지정이란 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비를 유감한다 해서 부부도 기청제 지내는 전날 밤에는  각방을 써야 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는다. 이날 음(陰)인 부녀자의 시장 나들이는 일체 금한다. 제장(祭場)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祭主)도 붉은 옷차림이어야 했다. 양(陽)의 기운인 남방(南方), 적색(赤色)을 드리우면서 태양(太陽)의 볕을 갈망한 것이다. 올해처럼 입추절기에 비가 많이 오면 농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 해의 농사가 잘 안 될 것임을 미리 알고 기청제를 지내 불안을 달랬던 것이다.”

이 시기의 속담을 보면 벼농사와 관련된 속담이 많다. 특히 이 때 벼가 패는 시기이므로 이와 관련된 속담을 먼저 발견 할 수 있다.
“입추가 되면 벼가 패기 시작한다.”  
“입추 때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벼농사에 관한 농민들의 감수성이 얼마나 민감한지 벼가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고 했다.
비와 바람의 순조로움을 원하는 농민들의 절실한 바람을 갈무리한 속담을 찾을 수 있다. 옛날 동네 앞에는 솟대를 세워 우순풍조를 기원했는데 모심을 때 비 오는 것과 입추 처서 때 비가 덜 오는 것 그리고 태풍이 오는 8~9월에 바람이 적절히 부는 것이야 말로 농사꾼들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입추에 동풍이 불면 풍년 든다.”
“입추에 비가 조금 오면 풍년든다.”
“입추 때 비가 와야 채소가 풍년 든다.”
그런데 이러한 농민들의 바람에는 일종의 모순이 있었다. 이 때 비가 많이 오면 채소가 잘
되고 벼농사는 잘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3~4월 보릿고개와 함께 7월에 있는 칠궁이 가장 힘들 때였다. 그래도 보릿고개 때에는 봄나물도 많고 보리이삭은 팬지 20일만 되도 풋보리로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칠궁에는 나물들도 쇠어서 못 먹고 벼이삭은 팬지 40일이나 되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칠궁이 민중들의 삶에 끼친 흔적이 컸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속담도 여러 가지가 있다.
“칠궁이 춘궁보다 더 무섭다.”
“칠월 사돈은 꿈에 볼까 무섭다.”
“육칠월 손님은 범보다도 무섭다.”
물론 “3일 굶으면 먹을 것 싸들고 오는 사람이 있다.” 는 긍정적인 속담도 있지만 손님이 범보다도 무서웠다고 했으니 이때 농민들의 마음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입추에 하늘 한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별자리는 미수이다. 미수는 동방청룡의 꼬리인데 서양별자리로는 전갈자리의 꼬리에 해당한다. 미수는 여름하늘에서 가장 인상적인 별자리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늘 한가운데서 남쪽으로 직선을 그으면 전갈 또는 파충류를 닮은 밝은 별자리가 있는데 그 별자리의 끝 부분이 미수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미수를 황제의 부인들이 사는 후궁이라고 보았는데 미수의 여러 별자리들을 후, 비, 빈, 부인 등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별이 어두우면 황후에게 근심과 질병이 있게 되고 목성이 범하거나 달무리가 이 주변에서 일어나면 황후와 왕비가 죽게 되고 화성이 범하면 궁중에 내란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후궁의 여자들이 온갖 열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와달이 된 오누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이야기에서 호랑이한테 쫓기던 오누이가 살아나는 방법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아줄은 다른 신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야국 신화에는 김수로를 비롯한 육가야의 왕들이 줄을 타고 내려오고 곡모신에 대한 신화인 세경본풀이에도 주인공인 자청비의 신랑인 문도령이 하늘에 올라갈 때도 노각성자부줄이라는 줄을 사용한다. 경덕왕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하늘에 올라갔다는 표훈스님의 이야기에도 구체적인 방법은 나오지 않지만 하늘에 올라가는 방법은 아마도 줄이 아니었을까? 나무꾼과 선녀이야기에서도 나무꾼이 하늘에 올라가는 것은 두레박에 달린 줄이었으니 옛날 사람들이 하늘세계와 소통하는 수단이이 줄이라고 믿었던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는 미수를 노인이 낚시질을 하려고 은하수에 던져놓은 낚시줄이라고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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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생태관찰일지14

 

                               8월 20일

지금까지는 생태관찰을 절기일이나 절기일에서 2~3 정도 뒤에 했는데 이번에는 8월 20일에야 생태관찰을 할 수 있었다. 택견도장에서 얕은 물가수련회와 지리산3박4일 종주를 했기 때문에 거의 열흘간이나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서 절기에는 비가 계속 내렸었다. 장마는 이미 7월 말에 끝났는데 이번 입추 절기 까지 비가 내렸다. 장마 뒤에 더 큰 장마가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무리 장마 때라도 3일에 1번 정도 밖에 비가 오지 않는데 이 ‘더 큰 장마’ 에는 3일에 2번씩이나 비가 내렸다. 거기에다가 일일 강수량도 장마 때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이것은 지구온난화가 우리나라의 기후를 온대의 장마가 아닌 아열대지방의 건기와 우기형태로 바꿔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이런 시기에 우리 집 마당과 뒷산생태계는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지난번에 이어 솔뫼도 같이 생태관찰을 하겠다고 나섰다. 방학숙제로 나무열매를 수집하는 것이 솔뫼가 생태관찰에 참여한 이유이다.


사위질빵 꽃이 피었다. 사위질빵의 특징은 잎이 마주나고 세장의 작은 잎이 나오고 잎자루가 길고 줄기가 툭툭 잘 끊어지며 꽃은 7~8월에 흰색으로 피고 꽃차례는 취산상 원추꽃차례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옛날 옛적에 사위를 끔찍이 아끼는 장모가 살았다. 어느 날 사위가 처갓집에 왔다가 함게 일하게 되었는데 마침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이었다. 장모는 다른 사람은 튼튼한 노끈으로 짐을 지워주면서 사위는 힘들지 말라고 줄기가 툭툭 잘 끊어지는 덩굴식물로 가벼운 짐을 지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부추 꽃이 피었다. 부추는 오신채중에 하나이다. 오신채는 다섯 가지의 매운 나물이라는 뜻이고 한자로는 五辛菜이다. 오신채의 종류는 마늘, 파, 달래, 흥거(서역에서 나는 풀), 부추인데 절에서는 이 다섯 가지 음식을 먹는 걸 금한다. 이것을 먹으면 성욕이 생기고 신경질을 잘 내게 되며 입주위에 귀신이 달라붙는 다고해서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오신채 중 흥거를 빼고 고추를 추가할까 생각중이라고 한다.


익모초 꽃이 피었다. 꽃의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니 광대나물과 비슷한 입술모양이었고 꽃받침이 5개로 갈라져있고 꽃이 층층이 달렸다. 꽃 속을 살펴보니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주 좁아지는데 이 정도 넓이면 나비의 긴 대롱이나 개미 같은 작은 곤충만 꿀을 빨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꽃을 살펴보다가 꽃에 앉아서 꿀을 빨고 있는 지리산 팔랑나비를 보았다. 지리산 팔랑나비라는 이름은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 됐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생김새를 살펴보니 날개는 나방과 비슷한 살색이었고 날개에 그려져있는 줄무늬는 일자 였고 다른 나비에 비해 몸통이 유난히 굵었다. 익모초라는 이름은 翊母草(어머니를 도운 풀)이라는 뜻인데 여기에도 이야기가 하나 얽혀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난 후에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혈액순환이 안 되어 항상 팔다리가 저리고 아팠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항상 의원을 찾아가보라고 권유했지만 어머니는 우리 집에 돈이 어디 있냐면서 항상 거절했다. 그래도 아들은 약초 캐는 노인을 찾아가 약 두 첩을 사다가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효험이 있어서 다시 노인을 찾아가 어머니의 병을 완전히 낫게 할 수는 없냐고 물었더니 쌀 다섯 가마에 은돈 열 냥이라는 엄청난 돈을 요구했다. 아들의 형편으로는 그 돈을 마련할 수 없어서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일단은 알았다고 한 다음에 새벽에 약초를 캐러가는 노인을 미행했다. 노인은 북쪽 제방으로 가서 쭈그려 앉아 약초를 캐기 시작했다. 약초를 다 캐고나서 잎은 다 흝어 강에 버렸는데 아들은 약초 캐는 노인이 가는 것을 보고 강에 들어가서 약초 잎을 건지고 그것과 똑같이 생긴 잎을 가진 풀은 죄다 캐서 집으로 가져갔다. 몸을 씨소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노인이 약 두첩을 들고 찾아와서 이건 이틀 분 약이니까 모레 다시 오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아들은 약봉지를 풀어서 생김새와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캐온 약초를 달여서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효과가 있었다. 모레뒤에 노인이 찾아왔는데 아들은 다시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다면서 지금까지 먹은 두첩의 약값을 주고 돌려보냈다. 노인은 네 어머니는 약을 드시지 않으면 이번 추석까지도 사시지 못할 거라고 툴툴 거리며 돌아갔다. 아들은 그 다음부터 매일 제방으로 가 약초를 캐다가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아들의 정성 덕분인지 보름도 안가서 완전히 나았다. 아들은 그 약초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를 도운 약초라고 익모초(益母草)라고 이름 짓자 사람들은 그 뒤로 그 약초를 익모초라고 불렀다.       


익모초는 꿀풀과에 속하는 이년생 초본 식물이고 아직도 산모의 지혈, 빈혈, 이뇨제, 더위 먹은데 좋은 약재로 쓰인다. 나도 옛날에 더위 먹은 적이 있어서 아빠가 익모초잎으로 즙을 해주셨는데 너무 써서 안 먹겠다고 했다가 억지로 마셨었고 또 어느 날은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익모초 즙을 짜서 먹는데 뭔지 모르고 달라고 했다가 아주 혼난 적이 있다. 어찌나 쓴지 지금도 생각하기만 하면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래도 효과는 직빵이었다.


수크령의 꽃이 피었다. 꽃 이삭을 만져보니 아주 부드러웠는데 모양은 원통형이었다. 다른이름으로 길갱이, 랑미초 라고도 하며 뿌리줄기에서 억센 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잎사귀도 잡아당겨보았는데  어찌나 질긴지 잘 끊기지 않았다. 그래서 덫을 만들어놓으면 사람이 걸려도 매듭이 풀리지 않는 풀로 잘 알려져 있다. 수크령에는 고사성어 결초보은에 대한 이야기가 얽혀있다.

옛날에 위무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젊은 첩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그만 큰 병에 걸려 앓아눕게 된 위무자는 아들 위과를 불러서 내가 죽으면 젊은 첩을 다시 결혼시키라고 말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위무자가 거의 죽기 직전에 다시 아들을 불러 내가 죽으면 젊은 첩을 같이 죽게하라고 말했다. 위과는 아버지의 변덕 때문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버지가 온전한 정신으로 한 말을 따르기로 하고 아버지가 죽은뒤에 첩을 다시 결혼 시켰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위과는 장군이 되어 전쟁터에서 아주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잘 싸우던 적국의 병사들이 갑자기 저절로 쓰러졌다. 그 덕분에 위과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위과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적들이 있던 곳을 살펴보았더니 풀들이 이상하게도 서로 잡아매어져 있었다. “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왜 풀들이 서로 매어져있을까?”

그날 밤 위과가 잠을 자고 있는데 한 노인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다른 곳으로 결혼시킨 그 여인의 아버지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풀을 묶어 당신의 적들을 넘어지게 한 것입니다.”


숲에 들어서니 지난번 대서 때보다 분위기가 무겁고 음습하고 습기가 넘쳐났다. 게다가 장마 뒤에 찾아온 ‘더 큰 장마’의 영향인지 풀들의 거의 내 키만큼이나 자라있었다. 거기에다가 모기들이 웽~ 날아다니면서 계속 폭격을 가해댔는데 솔뫼는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없었는지 이정도면 됐다면서 집으로 쪼르르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갈참나무 도토리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동그랗고 가시가 나있는 껍질을 벗고 제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아직 다 익지 않아서 색깔을 초록색 이지만 조금 있으면 갈색으로 익을 것이다. 그러면 다 익은 도토리를 먹으러 청설모들이 찾아오겠지·······. 

  

싸리나무 꽃이 피었다. 꽃의 색깔은 자주색을 띤 분홍색이었는데 꽃이 작아서인지 아주 귀여웠다. 냄새도 맡아봤는데 향기는 정말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정도로 향기로웠다. 싸리나무는 농부들의 삶에는 거의 빠지지 않을 정도로 쓰임새가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싸리비, 소쿠리, 회초리, 종다래끼, 바소쿠리, 사립문, 지붕 엮기, 지팡이, 광주리, 고리, 삼태기, 울타리 등이다. 특히 싸리나무로 만든 싸리비는 조직이 치밀하고 탄력있는 조직적 특성 때문에 아주 힘있게 잘 쓸린다고 하고 싸리나무회초리는 조직이 아주 치밀하기 때문에 맞으면 따갑고 무지 아프다고 한다. 싸리나무로 만든 지팡이는 가볍고 아주 단단해서 노인들이 이용하기 좋았다고 한다. 싸리나무로 만든 사립문은 여진족에게서 전해진 풍습으로 북쪽지방 서민들이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또 천연두를 疫神(역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옛날 사람들은 천연두에 걸리면 싸리로 작은 말을 만들어 발병한지 12일이 되면 천연두 귀신을 내쫓는 푸닥거리를 했다. 천연두 귀신을 싸리 말에 태워 보내면 천연두가 낫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내쫓는 것을 일러 ‘싸리 말을 태운다.’는 결말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싸리나무는 질감과 빛깔과 재질이 단단하고 빛깔과 질감이 좋으며 가운데가 깨끗하게 잘 쪼개지므로 윷을 만들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특히 싸리는 겨울철 땔감으로 그만이었다. 그리고 나무 자체에 기름이 많이 들어있어서 물에 젖어도 잘 타고 불심이 좋으며 연기가 나지 않고 오래 타는 이유로 밥을 짓는 땔감으로는 1등급이다. 송강정철의 가사가운데 싸리나무 땔감을 팔던 풍속에 관한 노래가 있다.


    댁들아 나무들 사오. 저 장사야 네 나무 값이 얼마 외는가. 사자.

    싸리나무는 한 말 치고 검부나무는 닷 되를 쳐서 합하여 헤면 마닷되

    받습네.

    삿떼어 보으소, 불 잘 붙습느니, 한적곧 보면은 매양 삿때이자 하여라. 


산억새가 벌써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랐다. 아빠 말씀을 들어보니 아빠가 어렸을 적에는 산억세를 줄기만 꺾어서 던지는 놀이를 했다고 한다. 아빠가 시범을 보여준다면서 나한테 던졌는데 맞아보니까 정말 따갑고 아팠다. 집에 가는 길에 돼지무덤에서 산억세를 몇 개 따 갔는데 솔뫼가 그게 뭐냐고 물어서 산억세라고 대답했는데 솔뫼한테 던질려는 시늉을 하니까 솔뫼가 기겁하며 도망갔다.


붉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붉나무는 옻나무과의 낙엽관목인데 옻나무과이면서도 특이하게 독성이 없다는게 특징이다. 붉나무는 다른이름으로 염부목, 오배자나무, 불나무, 굴나무, 뿔나무 라고 하는데 염부목이라는 이름은 붉나무의 열매는 10월에 익는데 열매의 겉에는 소금 같은 흰물질이 생긴다. 이 것 때문에 염부목으로도 불리는 것이다. 잎자루 날개에 진딧물의 1종이 기생하여 벌레혹(충령)을 만드는데 이것을 오배자(五倍子)라고 한다. 오배자는 타닌이 많이 들어 있어 약용하거나 잉크의 원료로 한다. 벌레혹 안에는 날개가 달린 암컷 벌레가 1만 마리 이상이 들어 있다. 가지를 불태우면 폭음이 나는데 나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미국자리공의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다 익으면 검은색으로 변하면 벌써 다 익은 것도 몇 개 있었다. 가만히 보면 아주 먹음직스러운데 독이 있으니 절대 먹으면 안 된다. 일부 유기농가에서는 미국자리공열매의 독성을 이용하여 살충제를 만드는데 성능은 좋지만 자연에서 자라는 미국자리공의 열매를 사용해야 돼서 생산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조그만 정원 같은 데에는 쓸 수 있어도 농부들의 넓은 밭에는 사용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고삼이 열매를 열었다. 열매의 생김새를 살펴보니 콩깍지랑 모습이 비슷했다. 열매를 따다가 집에 가서 솔뫼에게 선물해 줬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열매를 열매수집 봉지에 넣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삼은 한방에서 뿌리를 말린 것을 말하는데 다른 이름으로 도둑놈의 지팡이·너삼·뱀의 정자나무이다. 고삼은 맛이 쓰고 인삼의 효능이 있어서 소화불량·신경통·간염·황달·치질 등에 약으로 쓴다. 민간인들은 줄기나 잎을 달여서 살충제로 쓰기도 한다.


돼지무덤 쪽으로 내려가다가 아빠가 “동고비다!!”하고 말해서 보니까 동고비가 나무아래쪽으로 거꾸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무줄기를 거꾸로 내려갈 수 있나 궁금해서 집에가 찾아봤는데 사진을 보니까 갈고리모양 발톱이 아주 날카로웠다. 그래서 거꾸로 내려갈 때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고비에 대해 찾아보니까 나무줄기를 거꾸로 내려가는 것 뿐 만 아니라 굵은 나무까지 아래쪽을 기어다니는 것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몸 색을 살펴보니 배쪽은 흰색이고 몸 윗면은 잿빛이 도는 푸른색이다. 부리부터 목까지 검은 선이 쫙 그어져 있고 겨드랑이와 아래꽁지덮깃에 밤색얼룩이 그려져 있다. 둥지는 딱따구리가 쓰던 둥지를 사용하는데 입구가 너무 크면 천적들이 자유자재로 침입 할 수 있으니까 자신만 오고갈 수 있을 정도로 입구를 흙으로 막아 좁힌다. 동고비는 곤충, 나무열매 같은 것을 모두 먹는 잡식성인데 특히 종자를 잘 까먹는다. 얼마나 잘 까먹으면 동고비의 영어이름이 Nuthatch(종자를 까먹는 새) 일까? 한 번 찾아봐야겠다.


분꽃의 열매가 다 익었다. 다 익은 열매는 색이 아주 까만데 열매의 속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있다. 옛날 여자들은 이 가루를 분가루로 사용했는데 분꽃이라는 이름이 이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이 것 뿐만 아니라 옛날 우리 선조들은 연지는 잇꽃의 꽃잎을 사용하고 눈썹은 보리깜부기를 털어서 칠하고 매니큐어는 봉선화등 화장품을 전부 식물을 이용했는데 이에 비해 서양은 어떨까? 분은 연분, 연지는 적철광, 마스카라는 흑요석, 아이 섀도는 공작석, 매니큐어는 붉은 루비가 원료이다. 우리나라의 화장품은 식물성인데 비해 서양은 온통 광물성이다. 나도 분꽃열매를 따서 가루를 채취해 솔뫼와 함께 얼굴에 발라봤는데 바른 부위가 하얗게 돼버렸다. 열매 몇 개를 따다가 열매를 반으로 짜르고 다른 열매에서 가루를 채취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열매를 모아다 사진을 찍어봤는데 정말 한눈에 비교가 됬다. 처음에는 백지에다가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가루가 백지의 하얀색에 동화되어 잘 보이지 않아서 나중에는 색종이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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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생태관찰일지13

                                7월 30일
오늘은 일년 중 가장 더운 대서이다. 이번 대서까지 지속되어 왔던 지긋지긋한 장마가 끝나가면서 곤충들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매미울음소리가 들리는데 특히 말매미와 쓰름매미 울음소리가 많이 들린다. 여름 꽃들도 여기저기 피어나고 있다. 여름꽃은 봄꽃보다 크고 화려하다.  뜨거운 햇빛과 습기를 바탕으로 왕성하게 광합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서는 1년 중에서 가장 뜨겁고 습기가 많아서 1년중 가장 더운 시기라서 찜통더위이라고 하면 이 때인데 이 더운 시기에 생태계는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오늘은 솔뫼가 방학이라서 함께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서양민들레는 아직도 마당에서 노란 꽃을 계속 피우고 있다. 우리 집 마당은 원래 우리 토착종인 흰민들레가 많은데 흰민들레가 봄에만 한번 꽃을 피우는 것과 달리 서양민들레는 몇차례 꽃을 피운다. 그래서 봄이 지나면 우리 집 마당은 서양민들레의 차지가 된다. 게다가 서양민들레 씨앗도 많이 생산하고 가벼워서 훨씬 멀리 날아갈수 있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하다. 서양민들레와 재래민들레의 구분법은 간단하다. 서양민들레는 꽃받침이 뒤로 젖혀져 있는데 재래민들레는 젖혀져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내가 아는 민들레 전설은 2개가 있다.

전설1: 옛날 어는 임금은 무슨 일을 하든지 평생에 딱 한번밖에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래서 임금은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 만들어준 별을 원망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은 별에게 앙갚음을 하기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명령을 내렸다.

“별아 하늘에서 떨어져 꽃이 되거라. 그러면 내가 너를 밟아주겠다.”

그러자 별은 임금의 명령대로 땅에 떨어져 노란빛의 꽃을 피웠고, 임금은 양치기로 변하 여 꽃을 밟고 다닐 수 있었다. 이 꽃이 바로 민들레였다고 한다. (서양민들레 이야기인 것 같음)

전설2:

옛날 노아의 대홍수 때 온 천지에 물이 차오자 모두들 도망을 갔는데 민들레만은 발이 빠지지 않아 도망을 가지 못했다. 사나운 물결이 목까지 차오자 민들레는 그만 너무
무서워서 머리를 하얗게 세어 버렸다. 민들레는 마지막으로 구원의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은 가엾게 여겨 그 씨앗을 바람에 날려 멀리 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피게 해
주었다. 민들레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까지도 얼굴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며 살게 되었다고 한다.
민들레는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데 나도 한번 먹어봐야겠다.
한방에서는 꽃이 피기 전의 전초와 뿌리를 포 공영이라고 해서 강장, 발한, 해열, 이뇨, 건위에 약으로 쓴다.

드디어 상사화의 꽃이 피었다. 꽃이 피기 전에 잎사귀가 마를 때부터 꽃이 필 때까지 아주 애타게 기다렸는데 이제야 꽃이 핀 것이다. 상사화의 상사는 상사병할 때 그 상사인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냐 하면은 사람들이 상사화의 잎이 다 마르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못 만나는 것처럼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참나리의 꽃이 활짝 피었다. 참나리의 특징은 수술이 모양은 도끼같이 생기고 길게 튀어나온 수술과 꽃이 거꾸로 뒤집혀있다는 것이다. 참나리의 꽃이 거꾸로 되어있고 수술과 암술이 길게 튀어나온 이유는 꿀 도둑인 나비에게 그냥 꿀을 뺐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참나리의 꽃가루매개곤충은 호랑나비와 같은 대형나비이다. 호랑나비는 거꾸로 뒤집혀있는 꽃에서 수술과 암술을 발판삼고 힘들게 꿀을 빨아먹지 않으면 안 된다. 참나리는 나비가 힘들게 꿀을 빨아먹는 사이에 나비의 몸에 꽃가루를 슬쩍 묻힌다. 나도 제비나비가 참나리 꽃에 앉아서 꿀을 빨아먹는 모습을 봤는데 날개를 파닥파닥 거리면서 꿀을 빠는 모습이 아주 힘들어 보였다.

원추리 꽃이 1송이밖에 남기지 않고 전부 졌다. 원추리는 꽃이 통째로 지기 때문에 꽃이 떨어진 자국이 남는다. 그 자국의 개수를 세어보면 하나의 꽃대가 몇 개의 꽃을 피웠나 확인할 수 있다. 원추리 꽃대는 중간에 새총모양으로 갈라지는데 그 가지마다 8개정도 꽃이 열려서 꽃대마다 평균 15~16개의 꽃자국이 있었다.  장마가 오기 시작할 때 몇 송이씩 피기 시작해서 한참일 때는 매일 수십 송이 씩 피더니 장마가 질 때가 되니까 며칠 싹 한두 송이만 피운다. 이제 더 필 꽃도 없으니 원추리 꽃이 지면 장마가 간다는 속담이 딱 맞는다.

뻐꾸기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또 탁란을 했다는 것인데 뻐꾸기도 1년에 여러 번 번식을 한다는 증거이다. 오늘 밤에는 소쩍새 소리까지 들렸다. 아빠는 며칠 전 새벽에 올빼미소리까지 들으셨다고 한다. 나도 한번 새벽까지 잠을 참았다가 올빼미소리를 들어봐야겠다.

동네 앞으로 가는 길에 고추밭이 있었는데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이걸 보고 아빠가 솔뫼에게 수수께끼를 냈다. “빨간 주머니 안에 금돈이 가득 들어있는 건 뭐게~?” 그러자 솔뫼가 “고추”하고 바로 맞췄다. 작년에도 솔뫼랑 같이 뒷산으로 생태관찰을 갔었다. 곤충을 발견하면 쫓아버리고 계속 생태관찰을 방해했었는데 이번 생태관찰 때는 방해하지 않아서 생태관찰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작년에 천사의 나팔꽃을 봤던 외지사람 집에서 털 비름을 보았는데 개비름과 달리 잎사귀 뒷면에 털이 나있고 잎새 끝이 뾰족했다. 개비름은 전체에 털이 없고 잎새 모양은 털비름의 잎새 끝을 떼어낸 듯한 모습이다.

여러 개의 꽈리열매가 익어가고 있었다. 등잔 같은 껍질을 까보면 안에 동그란게 구슬 같은것이 들어있는데 그게 열매이다. 열매를 덮고 있는 등잔 껍질은 꽃받침이 열매를 덮어버린 것이다. 같이 갔었던 솔뫼는 꽃받침을 까면서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꽈리에는 “담장 밑에 빨갛게 불 키고 있는 것은 뭐게~?”라는 수수께끼가 하나 있는데 솔뫼한테 내봤더니 방금 봤으면서도 모른다고 했다. 빨갛게 다 익은 열매의 씨앗을 빼내고 아랫입술 지긋이 누르면 소리가 나서 가지고 놀기에 좋다.

큰 메꽃이 피었다. 큰메 꽃은 애기메꽃과 착각하기 쉬운데  3가지 차이점만 알아두면 구별하기 쉽다. 애기메꽃은 6월에 피는데 큰 메꽃은 7~8월에 피고 큰 메꽃은 애기메꽃보다 크기가 크다. 잎새의 생김새가 다르다.


달개비의 꽃이 피었다. 달개비의 꽃가루 매개곤충은 꽃등에이다. 달개비의 수술은 특징이 있는데 수술이 모두 똑같은 모양이 아니고 알파벳 O, X, Y자 모양 수술 3개가 있다.  윗꽃잎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X자형 수술이 꽃등에를 유인하면 O자형 수술과 Y자형수술이 재빨리 꽃등에의 몸에 꽃가루를 묻힌다. 오후까지 꽃등에가 오지 않으면 꽃이 녹으면서 암술과 수술을 만나게 해서 자가수분을 한다.  

나팔꽃이 꽃을 오므리고 있었다. 나팔꽃의 특징은 아침에 폈다가 점심때 꽃을 오므린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에 어느 나팔꽃과 베짱이가 살았는데 둘은 아주 친한 친구였어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더 중요한일을 한다면서 옥신각신 다퉜다. 나팔꽃은 “내가 나팔을 불지 않으면 사람들은 서당이고 뭐고 다 지각할 걸” 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베짱이가 “천만의 말씀 내가 베를 짜지 않으면 사람들은 다 벌거벗고 다녀야 할 걸”
하고 지지 않고 말했다. 마침 지나가던 개미가 그 말을 듣고서 나팔꽃에게는 나팔을 불어보라 하고 베짱이한테는 베를 한 번 짜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팔꽃은 힘껏 나팔을 불었지만 조금도 나팔소리가 나지 않고 베짱이는 아무리 베를 짜려고 해도 손톱만치도 짜지지 않았다. 그러자 나팔꽃은 창피해서 입을 오므리게 되었고 베짱이는 입이 뾰루퉁 해져서 풀숲으로 날아가고 그 모습을 본 개미는 하도 웃어서 허리가 아주 잘록 해졌다는 것이다.


또 새똥거미를 볼 수 있을까 하고 억새밭으로 가 보았는데 새똥거미는 보이지 않고 사마귀들만 억새에서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사마귀의 초록색 몸 색깔이 억새에 동화되어 처음에는 잘 발견할 수 없었다. 사마귀의 초록색은 위장색인 것이다. 곤충의 위장술은 3가지로 나뉘는데 경계색, 의태, 보호색이 그것이다. 경계색은 천적이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위장술로 포도유리나방, 우단박각시의 애벌레가 이런 방어전략을 가진다.  의태는 몸의 생김새를 주변과 비슷하게 해서 숨는 것인데 재주나방, 대벌레, 자벌레 등이 선택한 보호전략이다. 보호색은 몸의 색을 주변과 비슷하게 해서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인데 콩중이, 회색가지나방, 실베짱이 사용하는 전략이다.

길가를 가는데 뭔가 아빠 등 뒤에서 윙윙대며 날아다니기에 잘 살펴봤더니 쓰름 매미였다. 하도 날개를 퍼덕거려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마취 시켰는데 너무 세게 눌렀는지 1~2시간이나 마취되어 있었다. 등의 무늬를 잘 살펴보니까 밝은 주황색이 창날모양이랑 흐물흐물한 ㄱ 자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다. 아빠가 나한테 곤충을 마취시키는 방법을 알려주셨는데 그냥 가슴부분을 살짝 눌러주면 된다고 한다.



산초나무가 하얀 꽃을 하나씩 피우기 시작했다. 이제 장마철이 지나면 하얀꽃을 다 피워내겠지 “산초나무 꽃이 피면 장마가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속담 역시 적어도 올해는 맞는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의 오랜 삶속에서 이루어진 관찰이 생활에 참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런 지혜가 속담에 갈무리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속담이 가진 힘이 대단하다.  옛날 사람들은 익은 열매를 가루로 만들어서 식초처럼 사용했는데 산초나무가 그래서 붙은 이름이다.(산에서 나는 식초라는 뜻) 그리고 산초기름은 천식에는 특효약이라고 하는데 나랑 같이 지여모 어린이모임을 하고 있는 남우 형이 천식을 앓고 있어서 고생하고 있는데 빨리 알려줘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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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

 

                              7월 22일

오늘은 1년 가운데 가장 덥다는 대서이다. 절기별로 하루 평균기온을 봤더니 섭씨 26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하루도 없는 것은 대서가 유일하다. 대서 며칠 전부터 그 20일 후 까지는 평균기온이 26도가 넘는 시기로서 ‘찜통더위’ ‘불볕더위’ 라는 말이 실감나는 때이다. 그러다 보니 밤에도 열대야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때는 가장 습기가 많을 때이기도 하다. 장마철에다가 왕성한 광합성작용으로 인해 식물에서 증발되는 수증기의 양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습기 때문에 대서가 있는 음력 6월은 썩은 달이라고도 한다. 음식도 잘 썩고 숲의 낙엽층도 이 때 썩어서 나무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이 불쾌한 습기가 우리 숲의 왕성한 활동력을 보장하는 고마운 기운이라고 생각하니 이 더위도 즐겁게 넘 길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 더위와 습기는 또한 농작물에 병을 가져오기도 한다. 잦은 비와 습기가 많은 날씨에 벼에 바람하나 통할 수 없게 되면 벼 줄기가 썩는데 이 병을 문고병이라고 한다.  그래서 장마철에는 잠깐 해가 뜨면 농약이나 제초제를 치는 장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서의 농사력을 보면 올기장, 올조를 거두어들이고 그루갈이로 메밀을 심는다.

그리고 논두렁의 풀도 베어준다. 웃자란 풀들이 벼를 덮어 생육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논두렁에 심어둔 콩.팥, 고구마밭의 풀 등도 이때 메고 복돋아 주어야 한다.

이 때는 또한 수박, 참외 등 각종 과일들이 나올 때 인데 이러한 작물을 심는 농가들은 밭에 원두막을 지어놓고 누가 훔쳐가지 못하도록 감시도 하고 원두막에서 더위를 식히기도 한다. 이 때 동네악동들은 밤에 몰래 수박서리, 참외서리를 하는데 보통 그 집 아들하고 같이 하기 때문에 잡혀도 크게 혼나지 않았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이 본격화 되고 농촌에도 돈바람이 불면서 그냥 웃어넘겼던 수박서리, 참외서리가 파출소에 끌려가서 혼나기도 하고 손해도 배상해야하는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대서 절기에는 1년 중 속담이 가장 적은데다가 소서와 그 의미를 공유하는 속담이라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보더라도 더위와 장마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오뉴월더위에 염소 뿔이 녹는다.” 는 속담은 이 시기의 찜통더위를 잘 알려주는 속담이다. 그 단단한 염소의 뿔이 햇빛에 녹는다는 말이 과장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 때의 더위이다. 

“산초 꽃이 피면 장마도 간다.”

“원추리 꽃이 지면 장마도 간다.”

“유월은 썩은 달”

“오뉴월장마에 돌도 큰다.”는 속담은 장마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속담들은 이 시기의 생태와 그 특징을 잘 보여준다.


대서에 하늘 한가운데 떠있는 별자리는 방수이다. 동방청룡의 배에 해당하는 별자리인데 찾기는 아주 쉽다. 하늘 한가운데에서 남쪽 낮은 하늘로 선을 그으면 붉게  빛나는 1등성을 기준으로 세 별이 나란히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그 앞쪽에 네 개의 별이 가로누워 있는데 그 별자리가 방수이다. 동양에서는 방수의 남쪽 두별 사이를 양도라고 하고 북쪽 두별 사이를 음도라고 하여 별점을 쳤다. 해와 달 다섯 행성이 양도를 지나면 가물고 초상이 많이 나며 음도를 지나면 홍수가 나거나 병란이 일어난다고 여겼는데 장마철에 딱 맞는 별점이라고 생각된다.

서양에서는 이 별자리가 전갈자리의 머리 부분이다. 여기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오리온이라는 거인사냥꾼이 있었다. 오리온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사랑하는 사이 였는데 오빠인 아폴론은 이 둘이 가까워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폴론은 전갈을 보내서 오리온을 독살했는데 아르테미스는 이 것을 보고 오리온을 별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아폴론은 전갈을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다. 오리온은 전갈이 무서워서 전갈자리가 동쪽하늘에 뜨면 급히 서쪽 지평선으로 달아났는데 전갈자리가 뜨면 오리온자리가 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반대로 오리온자리가 뜨면 전갈자리가 지는데 여기에도 이야기가 얽혀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전갈의 독에 당한 오리온을 살려주고 오리온을 죽인 전갈을 발로 뭉개버렸다. 오리온이 활기를 되찾아 다시 동쪽에 떠오르고 아스클레피오스의 발에 밟힌 전갈이 서쪽 땅밑으로 사라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하늘의 양끝에 있는 별자리를 관찰하고 이렇게 방대한 상상력을 펼친 옛날사람들의 관찰력이 정말 놀랍다.

방수 다음의 별자리가 심수이다. 이 심수는 신라시대 향가인 혜성가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옛날 동해 물가

건달파가 노닐던 성을 바라보고

왜군이 왔다!

봉화를 든 변방이 있어라

세 화랑 산 구경 오심을 들고

달도 잦아들려 하는데

길 밝히는 별 바라보고

혜성이여! 사뢴 사람이 있구나,

아아, 달은 흘러가버렸더라

이와 어울릴 무슨 혜성이 있었으리


옛날에  거열랑, 실처랑, (돌처랑이라고도 함) 보동랑 등 세 명의 화랑이 금강산을 놀러갈려고 했다. 그런데 출발하려는 시기에 혜성이 나타나 심대성을 범했다고 한다. 즉 지금 심수자리에 이름을 확인 할 수 없는 혜성이 나타난 것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심수를 하늘나라 임금이라고 생각했고 혜성이 이를 범하면 천하가 전란에 휩싸여 나라전체가 황폐해 질 것이라고 보았고 왕족들을 하늘의 아들이라고 보았던 신라에서도 이 심수를 왕과 신라영토자체를 상징하는 별로 여겼을 것이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대한 사태였다. 이에 세 화랑과 낭도들이 당혹스러워 금강산 유람을 중지하려고 했는데 그때 그 집단의 볍사인 융천사가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그 것이 바로 혜성가이다.

노래를 부른 이후 혜성은 심수 주변에서 사라지고 침범해오던 왜구들도 제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고 하는데 당시 군주인 진평왕은 기뻐하며 화랑과 그 낭도들을 풍악으로 보내어 놀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별에 대한 신앙과 향가의 기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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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생태관찰일지11

 
                            7월 7일
오늘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이다. 보통소서가 되면 장마철이 서서히 끝나간다. 그리고 햇살이 뜨거워지면서 식물들이 뜨거운 햇살과 충분한 물을 섭취하며 왕성하게 자라나고 토마토, 자두, 복숭아 같은 과일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러한 시기에 우리 집 마당과 뒷산 생태계는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혹시 호랑나비애벌레가 있나 하고 탱자나무를 잘 살펴보니 호랑나비애벌레 1령, 2령, 3령, 4령, 5령 애벌레를 전부 볼 수 있었다. 5령 애벌레와 4령 애벌레가 있는 걸로 봐서 꽤 오래전에 부화한 것 같은데 우리가 찾지 못한 것 같다.
호랑나비애벌레는 나한테 곤충의 성장과정과 자연에 대한 신비를 깨닫게 해준 고마운 곤충이다. 아빠 말을 들어보니 내가 어렸을 때에는 호랑나비애벌레가 부화하고 언제 2령 애벌레가 되고 또 언제 3령 애벌레가 되는지를 관찰하며 탱자나무 앞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호랑나비 애벌레 어디에서 사나?”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호랑나비 애벌레 어디에서 사나?”
“탱자나무에서 산다”
“뭐 먹고 사니?”
“잎새먹고 산다.”
“누구하고 사나?”
“형제하고 산다.”
“너는 뭐가 되나?”
“번데기가 되지”

호랑나비애벌레를이 너무 귀여워 내 손에 올려놓고 뽀뽀를 하기도 하고 머리에서 취각이 나오는 걸 보려고 쿡쿡 찌르면서 귀찮게 하기도 했다. 새들이 호랑나비 애벌레를 못 잡아먹게 몽둥이를 들고 새들이 오지 못하게 지켰다가 탱자나무 잎을 다 갉아먹어 죽을 뻔했는데 겨울눈을 틔워서 간신히 살아 난적이 있다.
탱자나무는 온몸에 가시를 달고 있는데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옛날에 자식 다섯을 대리고 사는 홀어머니가 있었다. 남편이 남기고 간 것이 없는 살림살이는 아무리 뼈가 빠지게 일해도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몇 년을 이 양 다물고 일하던 어머니는 견디지 못하고 병에 걸려 앓아누워버렸다. 그 소문이 나자 어떤 노파가 찾아와서 산 너머 부잣집에 큰딸을 소실로 보내면 논 닷 마지기를 준다는 것이었다. 큰딸은 15살 이었다. 어머니는 도저히 딸한테 이야기 할 수가 없어서 노파가 대신 이야기하기로 했다. 노파의 말을 들은 큰 딸은 하룻밤, 하룻날을 운 뒤에 그리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노파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논 닷 마지기 말고 그 값에 해당하는 쌀을 달라는 것이었다. 부자한테는 하나도 어려울 것 없는 조건이었다. 딸은 쌀을 받은 날 떠났다. 늙은 부자와 하룻밤을 보낸 딸은 그 날 저녁 뒤뜰 감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 그것을 본 부자는 안쓰러워하기는커녕 속았다면서 당장 쌀을 찾아오라며 불호령을 쳤다. 하인들은 부랴부랴 딸의 집으로 갔지만 식구들은 간 곳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부자는 더욱 길길이 날뛰며 처녀의 시체를 묻지말고 산에 내버리라고 했다. 저런 못 된 것은 여우나 늑대에게 잡아먹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녀의 시체는 내버려졌는데 그 날 밤 처녀와 몰래 사랑을 나누던 총각이 시체를 업어다가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도록 平葬(평장: 송장을 평평하게 묻는 것)       그런데 그 다음해 봄에 무덤에서 연초록 새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새싹은 자라면서 차츰 몸에 가시를 달기 시작했는데 이 때서야 애인이 아무도 자신을 범하지 못하도록 몸에 가시를 달았다는 것을 알고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산지사방에서 나무 심는 일을 했다는 이야기다.   ”

참나리는 꽃봉오리가 붉게 변하고 있었다. 상태를 보니 적어도 1주일 안에는 꽃이 필 것 같으니 이번 소서절기 안에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8월 2일부터 8월 4일 까지 지리산에 갔다왔는데 중간 중간 참나리 꽃이 피어있었다. 산과 평지의 기온 차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기온은 100m 올라갈 때마다 0.6도씩 떨어지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참나리는 500~600m쯤 이었으니까 우리 집 보다 적어도 3도쯤 낮을 것이다. 그 때는 우리집 원추리는 진지 오래인데 정말 신기했다.

장마가 소강상태인데 우리 집 원추리와 동네 앞길에 보이는 도리지는 계속 꽃을 피우고 있다. 장마 끝나는 시기와 꽃이 더 이상 피지 않을 때를 올해는 꼭 지켜봐야 되겠다..

산딸나무의 열매가 구슬만큼 자랐다. 가을이 되면 산딸기 같이 빨간 열매가 익어서 남천, 해당화 열매와 함께 우리 집 마당을 붉게 물들여 줄 것이다. 산딸나무라는 이름은 열매가 산딸기와 비슷해서 산의 딸기나무라는 의미로 이름이 붙었다. 나무는 단단하고 질겨서 방적용 북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배롱나무가 꽃을 피웠다. 줄기를 만져보니 아주 매끈매끈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원숭이가 미끄러지는 나무라고도 한다. 배롱나무는 백일홍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은 꽃이 백일동안 피어 있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빠말씀을 들어보니 배롱나무는 능소화와 함께 양반들의 마당에 많이 심어졌던 나무라고 한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화무십일홍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는데 백일이나 피어있으니 그처럼 오래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다는 그네들의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방동사니와 나도방동사니 같은 사초과 식물들이 제법 자라있었다. 가끔가다가 사람들이 사초과 식물을 벼과식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1.사초과 식물은 속이 비어있지 않다.
2.사초과 식물은 마디가 없다.
이 2가지 차이점만 외워두면 쉽게 구별 할 수 있다.

이씨 할머니 집으로 가는 언덕배기에 분꽃이 피어있었다. 분꽃은 날이 흐리거나 맑거나 4시 정각에 피기 때문에 항상 구름이 껴있어서 해로 시간을 잴 수 없는 장마철에 박꽃과 함께 시계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 이름도 four-o'clock 4시이다.  인터넷으로 분꽃에 대한 것을 검색해 보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꽃은 남미가 원산지인데 따뜻한 남미에서는 여러해살이 풀이었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겨울을 이기지 못해 한해살이풀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솔뫼와 함께 장신구 놀이를 했다. 분꽃을 꽃받침 째로 따서 꽃과 꽃받침을 잡아 살짝 늘이면 긴 암술 때문에 늘어나서 귀걸이가 된다. 진로슈퍼의 아줌마는 그 걸 보고 “새로 나온 악세사리니?” 하고 관심을 보이셨다. 솔뫼도 하나 해줘 봤는데 부러뜨려 놓고서는 또 만들어 달라고 조르고 다시 한번 해줬더니 이번에는 꽃받침이 귀에 들어가 버리면 어떡 하냐면서 내던져 버렸다.  
    

아직도 타래난초가 피어있나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아빠랑 돼지무덤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하지 때보다 훨씬 더 많이 피어있었다. 꽃을 자세히 살펴보니 꽃은 투구같이 생겼고 입술꽃잎은 달걀을 거꾸로 뒤집어 둔 듯한 모양이다.

돼지무덤에서 짚신나물을 보았다. 왜 짚신나물일까? 열매나 씨가 짚신을 닮았나? 아니면 짚신나물을 가지고 신발을 엮었나? 사실은 짚신나물의 씨에는 갈고리가 달려있어서 풀숲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짚신에 붙어서 번식하기 때문에 짚신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러한 짚신나물의 번식방법은 도깨비바늘이나 도꼬마리 처럼 다른 동물 몸에 붙어서 씨앗을 퍼뜨리는 번식방법과 비슷하면서도 고리라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짚신나물의 다른 이름은 仙鶴草(선학초)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데 에는 이야기가 하나 얽혀있다.

옛날 중국에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던 두 수재가 있었다. 그 때는 여름이었다. 두 수재는 행여나 과거보는 날을 놓칠까 두려워서 쉬지도 않고 계속 걸어갔다 그러나 젊고 건장한 수재들도 날이 갈수록 점점 지쳐 발걸음이 무거워져갔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밭, 며칠을 가도 인가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든게 아닐까?”
“아니야 반드시 이 곳을 지나가야해!!”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지만 먹을 것은커녕 풀 한포기 없는 사막이었다. 거기에다가 계속    모래바람이 불어 잠시 쉴 곳조차 없었다. 그래도 두 수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가 갔지만 알마 쯤 가는데 갑자기 한 수재가 풀썩 주저앉는 것이었다.
“여보게, 잠깐 쉬었다 가세”
그런데 그 수재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자네 왜 그러나?”
“나도 모르겠어 ! 갑자기 어지럽고 온몸에 힘이 다 빠져 나간 것 같아.”
수재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앞쪽으로 푹 숙였다. 이어 모래 위에 시뻘건 코피가 뚝뚝 떨어졌다.
“코피가 나잖아? 너무 피로해서 그런가봐!”
손으로 막아보았는데 코피는 멈추지 않았다.
다른 수재는 놀라 긒이 입은 옷을 찢어 친구의 콧구멍을 막아 보았는데 그러자 이번에는 입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수재는 어찌할줄 몰랐다.
“이일을 어떻게 하지?”
“물 물 물 좀 줘”
“자네도 알다시피 이 곳에는 몰이 없어 조금만 더 참게나!”
“물이 없으면 축축한 돌멩이라도 입에 넣으면 좀 살 것 같은데‘
“사방이 황량한 모래벌판이라 아무것도 없다네. 조금만 더 참아봐 !”
바로 그 때 어디서 하늘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두 수재의 머리 위로 두루미 한 마리가 날아왔다.
피를 흘리던 수재는 두 팔을 벌리고 두루미에게 소리쳤다.
“두루미야, 너의 날개를 잠깐만 빌려 줘!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두루미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입에 물고 있던 들풀 한포기를 떨어뜨리고 갔다. 다른 수재는 그 풀을 주워들어 다른 수재에게 주었다. 그 수재는 급히 들풀을 받아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 들풀을 씹어 먹은지 얼마 안돼 피가 멎은 것이었다.
“하하하 선학이 선초를 보냈구나!”
“신선님, 정말 감사합니다.”
두 명의 수재는 간신히 서울에 도착하여 과거를 보았다. 그리고는 나란히 과거에 장원급제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 두 사람은 우연히 길가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은 주막집에 가서 늦도록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보게, 우리가 과거 보러 갈 때 고생했던 일 기억나나?”
“그걸 누가 잊겠는가. 그때 자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죽었을 걸세.”
“아니야, 그때 자네를 구해 준 건 두루미였어.”
“그래, 그런데 그때 두루미가 준 풀이 무슨 풀이었을까?”
“몰라.” “나는 그 약초를 꼭 찾고 싶네. 그것이 많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두 사람은 그 풀의 생김새를 그림으로 그려 여러 사람에게 찾아오도록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사람들은 몇 년을 산과 들을 헤맨 뒤에야 마침내 그 풀을 찾아왔다.
그 풀의 잎은 깃털 모양이고 여름철에 노란 꽃이 피었다. 의원에게 그 풀의 이름을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약초를 준 두루미를 기념하기 위해 그 풀을 선학초라 이름 지었다.
그 뒤로 사람들은 피를 멎게 하는 약으로 선학초를 널리 쓰게 되었다.
짚신나물은 지혈을 하는데도 많이 사용하고 가을에 뿌리째 캐서 말리면 그 것을 용아초라고 하는데 구충제와 수렴제로 사용된다.

마가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 마는 서동이 어렸을 때 마의 덩이뿌리를 캐서 장에 내다팔았다는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덩이뿌리는 오래 씹으면 단물이 나기 때문에 우리아이들 간식으로도 딱 좋을 것 같다. 그야말로 친환경 간식이다. 껍질을 벗기고 깨끗하게 씻은 마를 적당량의 우유(믹서기에 마를 넣고 마가 살짝 잠길 정도의 양)를 넣어 곱게 간 후, 약간의 꿀을 첨가해서 마시면 아침식사대용으로 그만이라고 한다.

둥그레봉에서 뒤로 넘어가면 공장이 하나 있다. 옛날 아빠가 어렸을 때 여름에 그 공장으로 넘어가면 빨간 산딸기가 산 언덕배기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고 해서 잔뜩 기대 했는데 막상 가보니 듬성듬성 작은 덩굴만 있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는데 주변 억새밭에서 새똥거미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뭔가 작은 얼룩 같은게 보여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새똥거미가 온몸을 움추린 채 숨을 죽이고있었다. 나는 새똥거미를 본 게 이번이 처음이고 아빠도 우리동네에서 새똥거미를 본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왜 이 거미는 왜 새똥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건 자신의 천적인 새들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일종의 방어전략이다.


산을 내려가다가 어떤 나무에서 백금거미를 보았다. 아빠가 어 백금거미다. 하고 소리쳐서 봤더니 등이 하얀 백금거미가 나무 잎새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백금거미는 등이 백금처럼 희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무늬는 인삼같이 생겼었다. 뒷산을 다니는 동안 3번을 봤는데 거미마다 선의 굵기와 무늬 패턴이 조금씩 달랐다. 집에 가서 백금거미의 대해 찾아봤는데 백금거미에도 크기와 무늬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누어져 있었다. 우리가 본 것은 중백금거미인데 그 밖에도 백금갈거미, 금빛백금거미(검정백금거미), 왕백금거미, 꼬마백금거미 등이 있다.

이제 장마가 끝나가니 마당과 뒷산에 거미와 사마귀, 왕귀뚜라미애벌레들이 아주 많이 눈에 띈다. 낮에는 매미소리까지 들린다. 이제 정말 여름철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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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

 
                                 7월 7일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에는 우리나라는 7월에 비해서 8월 평균기온이 높다. 서울의 평균기온을 보면 7월 달 평균기온이 24.9도이고 8월 평균기온이 25.4도 이다. 사실이 이런데도  왜 7월에 가장 덥다는 소서와 대서 절기가 몰려있는 걸까?
비밀은 24절기가 중국북경의 기온을 중심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북경의 평균기온을 찾아보니 7월이 25.9도 8월 평균기온이 24.6도이다. 한달에 평균기온이 1.3도 차이라면 중국인들이 7월을 가장 더운 때라고 느낄만한 차이이다.
소서는 장마가 시작되어 장기간 머물러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채소와 과일이 왕성하게 자라서 풍부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산이나 들에는 산딸기가 지천이고 복숭아, 자두, 참외, 수박 등이 나온다.

이 때 농사력을 보면 늦모심기가 한창이다. 하지부터 소서까지 심는 모를 늦모라고 하는데 오랜 가뭄에 논물이 없거나 일손이 늦어진 사람들이 늦모심기에 마음이 바쁘다. 모를 다 심어 놓은 논에도 물대기에 바빴다. 이 때 사용한 농기구는 용두레, 맞두레, 무자위 등이었는데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호미였다. 지금은 제초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풍경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이 때 김매기가 한참이었다. 모 뿌리에 잡초가 얽히면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함께 김매기를 했다. 옛날에 마을마다 있었던 두레는 이러한 잡초에 대항해서 풍년을 이루기 위한 마을사람들의 의지가 담긴 노동조직이었다. 밭농사는 삼베길쌈을 위해 돌삼을 베고 목화밭의 김을 맨다.  

이 시기의 속담을 통해 소서절기에 담긴 옛날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에 대해서 살펴보자
늦모와 관련된 속담이 먼저 눈에 띈다.
“소서 전 늦심기다.”
“소서가 넘으면 새 각시도 모심는다.”
“소서 모는 지나가는 행인도 달려 든다.”
“소서 물 보고 천봉지기(천수답)에 모 심는다.”
“유월 장마는 쌀창고다.”
“상강 구십 일 두고 모심어도 잡곡보다는 낫다.”
소서절기에 심는 모는 늦모이기 때문에 바깥나들이를 못하게 하는 새 각시도 달려들고 지나가는 행인들도 달려들어 심는 다는 것은 그 만큼 다급한 농민들의 심정이 담겨있는 속담이다. 지나가는 행인이 달려들어 모를 심고 원님도 늦모를 보면 달려들어 심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모내기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는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늦모라도 심는 것은 소서 절기에 장마가 있기 때문인데 이 물을 믿고 모를 심는 것이며 소서절기에 심는 모는 올심기나 중심기보다 수확이 적었지만 그래도 잡곡보다는 나았다고 한다.

“육칠월 더위에 암소 뿔이 빠진다.”
“육칠월에 들판을 들어가면 얼굴이 후끈거려야 벼가 잘 자란다.”
“유월 서리다.”
“소서(小暑)께 들판이 얼룩소가 되면 풍년이 든다.”
벼는 아열대 작물이기 때문에 평균온도가 25도가 넘어야 이삭을 낼 수 있는데 소서절기 전후해서 그 정도의 기온이 된다. 그래서 암소 뿔이 빠질 정도로 지독한 더위가 계속되지만 이러한 더위는 풍년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6~7월에 들판에 들어가면 얼굴이 후끈 거려야 벼가 잘 자란다는 것은 농민들의 삶속에서 터득한 지혜였다. 소서 때는 앞서 심은 모는 아주 짙은 녹색이고 늦게 심은 모는 연두색이라 마치 들판이 얼룩소처럼 되는데 이는 농사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경관이었다.  

“반하생(7월 9일경)이 지나면 콩 심지 않는다.”
소서절기에 속하는 7월 중순이 지나면 콩을 심지 않는다. 장마가 끝날 때가 되어 씨앗을 심어도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소서초저녁에 하늘 한가운데 떠있는 별자리는 저수이다. 청룡의 가슴부위에 해당한다. 저수는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방수를 먼저 찾고 방수와 각수사이를 잘 살펴보면 사다리꼴 모양의 별자리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저수이고 서양별자리로는 천칭에 해당한다. 옛날에는 저수가 밝으면 신하와 비빈들이 임금을 잘 섬기고 절개를 잃지 않으며 저수에 일식 또는 월식이 있으면 내란이 일어날 징조라고 했다. 그리스시대에는 원래 이 별자리도 전갈자리의 속했다. 천칭자리의 그리스 이름이 캐라에인데 이는 전갈의 집게발이라는 뜻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전갈자리의 두 집게발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줄리어스 캐사르 시기에 로마인들이 이 별자리를 따로 분리시키고 천칭자리라고 불렀다. 천칭자리에는 정의의 여신인 아스트라에아의 이야기가 전한다. 먼 옛날 지상에는 황금의 시대와 은의 시대가 있었다. 이 시대의 인간들은 매우 착하고 성실했기 때문에 신들은 인간과 더불어 땅에 내려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철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서 인간은 매우 부도덕해졌고, 신들은 더 이상 타락한 땅 위에서 인간과 더불어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더러움을 모르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에아는 인간들에게 사이좋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일을 꾸준히 가르쳤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차츰 강한자가 약한자를 억누르게 되었고, 신은 안중에도 없는 듯 자기 멋대로 설치고 다니게 되었다. 결국 참다못한 신들은 인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지상을 떠나버렸다. 그래도 아스트라에아는 인간을 내버리지 않고 혼자 남아서 정의를 계속 설교하였는데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자 더 이상 지상에 머무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 지금의 처녀자리는 아스트라에아 여신의 모습이고 그가 들고 다니던 천칭역시 하늘의 별자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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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번째 생태관찰일지

                                    6월 28일
오늘은 해가 가장 높이 뜬 다는 하지 절기이다. 하지는 해의 에너지가 가장 높을 때이고 지금은 장마철이기 때문에 물도 충분하니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밭에는 오이와 호박이 눈에 띄게 빨리 자라고 있는데 그래서 “장마에 호박 자라듯 한다.” 라는 속담이 생겼나 보다. 이렇게 왕성하게 자라는 식물의 생장력을 바탕으로 곤충들이 대거 발생하는 것은 집주변 풀밭에서 메뚜기, 사마귀 애벌레들이 많이 보이고 봄 형에 비해서 훨씬 큰 여름 형 나비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이런 하지의 왕성한 자연의 힘을 느끼며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쥐똥나무는 꽃은 이미 다 지고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 열매를 달려있다. 조금만 있으면 쥐똥만한 크기의 검은 열매로 자랄 것이다.

목련은 벌써 잎눈과 겨울눈이 벌써 많이 자랐다. 열매보다 미리 준비해두는 것을 보면 목련나무의 내년준비가 옹골차다. 그러고 보면 나무들은 오뉴월이 되면 내년준비를 거의 갖추는데 미리 준비하면 걱정이 없다는 것을 진화과정 속에서 터득했나보다.

쑥이 많이 자랐다. 쑥은 국화과의 잡초인데 쑥은 국화과의 식물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풍매화이다. 아마도 쑥은 진화의 한 단계에서 건조하고 추운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꽃가루를 옮겨줄 벌레가 마땅치 않자 원래 충매화였던 쑥이 풍매화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쑥이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는 나대지에서 뭉쳐서 자라는 것이나 쑥의 잎 뒷면에 흰색의 털이 촘촘히 나있는 것은 건조한 환경으로부터 수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쑥을 밤에 관찰해보면 잎을 전부 닫고 있어 마치 흰 꽃이 핀 것 같은데 이것은 사막과 같은 데서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데 잎을 펴고 있으면 잎의 온도가 내려가기 때문에 잎을 닫아 잎의 온도를 보호하는 생존전략인 것이다. 쑥으로 만든 쑥떡을 먹어보면 보통 떡보다 찰기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쑥의 잎 뒷면에 있는 털이 쌀과 얽혀서 찰기를 만들어 주어 그런 것이다. 나는 쑥인절미를 싫어했는데 2006년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에 따라가서 어떤 절에 가서 쑥인절미를 사 먹고서는 쑥인절미를 좋아하게 되었다. 쑥은 개척자 식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쑥대밭이라는 말은 쑥의 개척자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누구네 집이 황폐화 되었을 때 쑥대밭이라고 하는데 그 집 마당을 쑥들이 점령한 상태를 말한다. 쑥은 농경지나 마당에 한 번 나면 무리지어 세력을 확대해 나간다. 한번 쑥의 무리가 자리를 잡으면 뿌리가   서로 엉키기 때문에 뽑아내기도 힘들다. 이렇게 식생이 파괴되는 곳을 먼저 찾아가 식생을 회복하는 것이 쑥의 생태적인 지위이다.
쑥은 우리나라의 풍습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단군신화이다. 또한 우리조상들이 단오날에 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쑥의 신령스러운 힘으로 잡귀를 쫓아냈다는 풍습과 백성들이 이사를 하면 짐을 싸기 전에 말린 쑥을 집의 네 귀퉁이에서 태워 잡귀를 쫓아내는 풍습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쑥은 신성한 풀로 존중되었던 것 같다.  
쑥은 지혈제로도 사용되며 그 밖에 신경통이나 부인병, 소화불량, 간장질환, 옻독, 풀독, 습진, 독오름, 치통, 편도선이 붓거나 입안의 종기, 빈혈, 요통, 산후통, 숙취, 위장병에 좋다. 섬진 거기에다가 쑥은 강한 알칼리성을 띄고 있어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으로 피부가 산성화 된 사람에게는 아주 좋다고 한다.
쑥에는 단군신화가 아닌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얽혀있다.
옛날에 아내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 효자는 유명한 의원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됬다. 거의 포기하고 있을 무렵에 근처 마을에 당대의 명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당장 달려갔는데 그 의원이 진맥을 짚어보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것을 보고서 효자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의원님” 그러자 의원이
“자네 어머니의 병은 아주 고치기 어려워 이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7년 묵은 쑥뿐이라네” 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서는 효자가 기가 막혀서 물었다.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7년 묵은 쑥을 구해 옵니까?”
의원이 그 말을 듣고서는
“내가 뭐라고 했나 아주 고치기 어렵다고 했지 않느냐 자네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7년 묵은 쑥뿐이니까 못하겠으면 돌아가게”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효자는 “아닙니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7년 묵은 쑥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아내를 찾아가서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7년 묵은 쑥을 구하나면서 날씨가 좀 따뜻해지면 가라고 극구 말렸다. 하지만 효자는 집을 나가서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면서 7년 묵은 쑥을 찾아 봤지만 헛수고였다.
세월이 흘러 7년째가 된 날에 돌아 왔는데 그 때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때 효자의 머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7년 전 그해에 쑥을 뿌리 째 캐다가 오늘 이용하면 되었을 것을!” 이라고 말하면서 땅을 치며 후회하였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남천 꽃이 피었다. 다른 꽃들은 거의 다 져버린 시기에 원추리와 함께 우리 집 마당을 환히 비춰주고 있다. 아빠께서 우리 집 마당에서 잘 자라나 시험해 보려고 가져다 심었다는데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옛날에는 남천잎을 쌀과 섞어 먹으면 흰머리가 다시 검은머리로 돌아간다고 해서 나이들은 사람에게 새해인사를 하러 올 때 열매가 달린 남천가지를 선물했다고 한다.


원추리꽃이 피었다. 속담 중에 원추리 꽃이 피면 장마가 오고 원추리 꽃이 피면 지면 장마가 간다고 했는데 올해에는 장마철이 조금 더 일찍 찾아와서 원추리가 기상대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밤나무꽃이 지면 장마가 한창이다.” “도라지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속담에서처럼 밤나무꽃과 도라지꽃 역시 장마철을 알리는 기상예보원 역할을 했다. 원추리의 한자이름은 훤초이다. 원추리라는 이름은 <산림경제>에서 처음 나온다. 원추리의 고유이름은 ‘넘나물’ 또는 ‘엄나물’이다. 그러니까 원추리란 이름은 한자이름 훤초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쉽게 정리하자면 훤초>원초>원추>원추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처풍토기>에 의하면 애를 밴 부인이 이 꽃을 패용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했는데 이 때의 꽃은 꽃봉오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꽃의 꽃봉오리가 영락없는 사내아이의 고추를 닮았기 때문이다. 원추리의 꽃은 참 큰데 원추리 꽃이 왜 그렇게 크냐하면 원추리의 수정을 도와주는 도우미가 호랑나비와 제비나비 같은 대형나비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꽃의 생김새와 크기는 공진화 해온 곤충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원추리의 큰 꽃 속에서 제비나비나 호랑나비가 온몸을 다 넣고 꿀을 빠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 집 주변에 제비나비가 많아진 것 같은데 아마 원추리 꽃에 꿀을 빨러 온 것 같다.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해준다 하여 또 다른 이름으로  忘憂草(망우초)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있다. 옛날에 어는 형제가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이 들은 슬픔에 잠겨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은 슬픔을 잊기 위해 엄마아빠의 무덤가에 원추리를 심었지만 동생은 이와 반대로 부모님을 잊지 않으려고 난초를 심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형은 슬픔을 잊고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동생의 슬픔은 더 깊어졌다. 저승에서 지내고 계시는 부모님도 동생이 안타까웠는지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슬픔도 잊을 줄 알아야 한다.” 그 말을 듣고 잠에서 깬 동생은 자기가 심었던 난초를 모두 뽑고 원추리를 심어 슬픔을 잊었다는 이야기이다.

미나리과의 두해살이풀인 사상자도 꽃이 피었다. 작년에 비해 여기저기 사상자 군락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사상자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 내려온다.
어느 마을에 괴상한 병이 돌았다. 환자의 땀구멍과 탈구멍에 닭살처럼 까슬까슬한 돌기와 물집이 생겨 몸이 무척 가려운 피부병이었다. 이 피부병에 걸리면 하루종일 긁어대서 시뻘건 피가 흘러도 시원하지 않을 정도 였다. 그리고 이 피부병은 전염이 빨라 환자의 옷을 말할 것도 없고 환자의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옮았다. 환자가 긁을 때 떨어진 비듬이나 피부껍질이 날아가 건강한 사람의 몸에 닿으면 곧바로 전염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피부병에 전염되어 긁어 대기 시작했다. 약이라는 약은 다 발라보아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사람들은 의원을 찾아가 가려움이라도 멈추게 하는 약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기에 의원이 대답하기를 “백 리 밖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이 하나 있는데, 듣기로는 그 섬에 잎은 깃털처럼 생겼고 꽃은 우산처럼 생긴 약초가 있답니다. 그약초의 씨를 삶은 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섬에는 온갖 독사들이 득실거려서 지금으로서는 뜯어올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서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 때 어떤 청년이 자신이 약초를 구해오겠다고 며칠 먹을 식량을 준비하여 뱀섬으로 떠났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청년이 자신이 약초를 구해오겠다면서 배를 타고 떠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약초를 캐오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명의 청년이 자신이 뱀섬에 갔다 오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렸지만 청년은 며칠 먹을 양식을 준비하여 마을을 떠났다. 그러나 청년은 곧바로 뱀섬으로 가지 않고 먼저 뱀을 잘 잡는 땅꾼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땅꾼은 자기도 독사는 자신이 없다면서 저 버닷가 높은 산에 사시는 비구니 스님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 비구니 스님은 백 살이 넘었는데 약으로 쓸 뱀의 쓸개를 구하러 뱀섬에 자주 갔다 왔다고 했다. 청년은 암자를 찾아가 비구니 스님께 어떻게 하면 뱀섬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뱀은 원래 웅황주를 끔찍이도 싫어하여 웅황주 냄새만 풍겨도 멀리 도망간다고 했다. 청년은 스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산을 내려와 웅황주를 준비하여 뱀섬으로 떠났다. 뱀섬에 도착하자 여러 독사들이 청년을 잡아먹겠다고 달려들었다. 청년은 재빨리 준비해간 웅황주를 솔잎 끝에 묻혀서 뿌렸다. 갑자기 웅황주 냄새를 맡은 독사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도망가는 독사도 있고 죽은 듯 꼼짝 않는 놈도 있었다. 청년은 깃털모양의 잎에 꽃이 우산처럼 생긴 약초를 발견하고 너무나 기뻐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 약초위에는 독사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청년은 웅황주를 뿌렸다. 그러나 그 독사는 도망칠 생각도 않고 그대로 약초위에 앉아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독사는 혀를 날름거리지도 않고 고개를 치켜들지도 않았다. 웅황주에 취한 것이다. 청년은 바로 독사를 밀치고 약초를 캐고 약초의 씨를 따서 자루에 넣었다. 마을사람들은 청년이 살아 돌아 온데다가 약초까지 캐오자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그 약초의 씨를 물에 삶아 목욕을 했더니 신통하게도 그 지긋지긋한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약초를 가까운 산에다가 섬어 버짐과 습진 등 피부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했다. 청년은 뱀섬에서 그 약초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청년은 약초가 독사의 침상 같은 생각이 들어 약초의 이름을 蛇床(사상)에 씨까지 하여 蛇床子(사상자)라고 이름붙였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쯤 타래난초 꽃이 피었다는 생각이 들어 돼지무덤으로 갔다. 타래란 사리어 뭉쳐 놓은 실·노끈 등을 말하는데 꽃이 실타래처럼 감기며 올라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름다운 타래난초 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딱 하지 쯤에 꽃이 핀 것 같은데 타래난초는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로 무덤가나 잔디밭에서 주로 나는 풀인데 수정방식은 꽃가루덩어리를 찾아오는 벌레의 몸에 통째로 붙여버린다. 그리고는 암술 끝에는 접착제를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약삭빠르게 꽃가루 덩어리를 떼어낸다. 타래난초는 씨앗을 아주 많이 만든다. 작은 꽃 한 송이가 수만 개 이상의 아주 작은 씨앗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타래난초의 씨앗은 아주 작기 때문에 발아에 필요한 양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난균이라는 곰팡이를 자기 몸에 기생하도록 한 후 그 균사체로부터 영양분을 빼앗는다. 물론 이 전략은 위험도 있다. 균의 침입을 받으면 자기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도박과 같은 생존전략을 가진 셈이다.


패랭이꽃도 피어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잎의 끝은 뾰족하고 중간에 연갈색 무늬가 새겨져 있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패랭이꽃 역시 타래난초처럼 무덤이나 잔디밭근처에 많이 난다. 그래서 가난한 농민이나 나무꾼들의 사랑을 받던 꽃이다. 포은 정몽주의 선조인 정습명이 패랭이꽃을 주제로 시를 지었다.  
             석죽화
사람들은 모란의 붉은 빛을 사랑하여
뜰 안 가득 심어서 가꾼다지만
누가 알랴? 풀이 무성한 벌판에도
어여쁘게 피어나는 떨기 꽃이 있다는 것을
그 빛 시골 연못 속의 달에 어리고
그 향기 바람 따라 숲 언덕에 전하네
궁벽한 땅이라 부귀한 이는 적어서
그 아리따운 자태 농부들만 즐긴다네


숲으로 들어가니 지난 망종 때보다 훨씬 더 습기가 차있다. 무성한 수관부는 내리 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장마비에 자란 풀들은 숲으로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을 기세이다. 여기저기 버섯들이 솟아나 있었다. 역시 장마철은 버섯의 계절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멍석딸기가 익어있었다. 하나씩 따서 먹어봤는데 새콤달콤했다. 새들과 곤충 작은 포유류들의 여름식량을 내가 축낸 것이다. 무성했던 인동초 꽃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뻐꾸기소리가 가까운데서 들렸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 버스타러 나가다가 전선줄에 앉아서 우는 뻐꾸기를 자주 본다. 날개를 치켜들고 고함치듯 울대를 울리며 노래하는 것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자식양육을 다른 새한테 맡겨놓고 자기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끊임 없이 울어대는 뻐꾸기의 모정을 갸륵하다고 할까 뻔뻔하다고 할까? 뻐꾸기가 탁란하는 새집은 참새, 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 개개비 등인데 산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박새집일 가능성이 있고 물가에서는 개개비집일 가능성이 있다. 이 주변에 박새가 죽어라고 뻐꾸기 새끼를 부양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산에서 내려왔다.


                                    6월 28일
오늘은 해가 가장 높이 뜬 다는 하지 절기이다. 하지는 해의 에너지가 가장 높을 때이고 지금은 장마철이기 때문에 물도 충분하니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밭에는 오이와 호박이 눈에 띄게 빨리 자라고 있는데 그래서 “장마에 호박 자라듯 한다.” 라는 속담이 생겼나 보다. 이렇게 왕성하게 자라는 식물의 생장력을 바탕으로 곤충들이 대거 발생하는 것은 집주변 풀밭에서 메뚜기, 사마귀 애벌레들이 많이 보이고 봄 형에 비해서 훨씬 큰 여름 형 나비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이런 하지의 왕성한 자연의 힘을 느끼며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쥐똥나무는 꽃은 이미 다 지고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 열매를 달려있다. 조금만 있으면 쥐똥만한 크기의 검은 열매로 자랄 것이다.

목련은 벌써 잎눈과 겨울눈이 벌써 많이 자랐다. 열매보다 미리 준비해두는 것을 보면 목련나무의 내년준비가 옹골차다. 그러고 보면 나무들은 오뉴월이 되면 내년준비를 거의 갖추는데 미리 준비하면 걱정이 없다는 것을 진화과정 속에서 터득했나보다.

쑥이 많이 자랐다. 쑥은 국화과의 잡초인데 쑥은 국화과의 식물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풍매화이다. 아마도 쑥은 진화의 한 단계에서 건조하고 추운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꽃가루를 옮겨줄 벌레가 마땅치 않자 원래 충매화였던 쑥이 풍매화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쑥이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는 나대지에서 뭉쳐서 자라는 것이나 쑥의 잎 뒷면에 흰색의 털이 촘촘히 나있는 것은 건조한 환경으로부터 수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쑥을 밤에 관찰해보면 잎을 전부 닫고 있어 마치 흰 꽃이 핀 것 같은데 이것은 사막과 같은 데서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데 잎을 펴고 있으면 잎의 온도가 내려가기 때문에 잎을 닫아 잎의 온도를 보호하는 생존전략인 것이다. 쑥으로 만든 쑥떡을 먹어보면 보통 떡보다 찰기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쑥의 잎 뒷면에 있는 털이 쌀과 얽혀서 찰기를 만들어 주어 그런 것이다. 나는 쑥인절미를 싫어했는데 2006년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에 따라가서 어떤 절에 가서 쑥인절미를 사 먹고서는 쑥인절미를 좋아하게 되었다. 쑥은 개척자 식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쑥대밭이라는 말은 쑥의 개척자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누구네 집이 황폐화 되었을 때 쑥대밭이라고 하는데 그 집 마당을 쑥들이 점령한 상태를 말한다. 쑥은 농경지나 마당에 한 번 나면 무리지어 세력을 확대해 나간다. 한번 쑥의 무리가 자리를 잡으면 뿌리가   서로 엉키기 때문에 뽑아내기도 힘들다. 이렇게 식생이 파괴되는 곳을 먼저 찾아가 식생을 회복하는 것이 쑥의 생태적인 지위이다.
쑥은 우리나라의 풍습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단군신화이다. 또한 우리조상들이 단오날에 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쑥의 신령스러운 힘으로 잡귀를 쫓아냈다는 풍습과 백성들이 이사를 하면 짐을 싸기 전에 말린 쑥을 집의 네 귀퉁이에서 태워 잡귀를 쫓아내는 풍습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쑥은 신성한 풀로 존중되었던 것 같다.  
쑥은 지혈제로도 사용되며 그 밖에 신경통이나 부인병, 소화불량, 간장질환, 옻독, 풀독, 습진, 독오름, 치통, 편도선이 붓거나 입안의 종기, 빈혈, 요통, 산후통, 숙취, 위장병에 좋다. 섬진 거기에다가 쑥은 강한 알칼리성을 띄고 있어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으로 피부가 산성화 된 사람에게는 아주 좋다고 한다.
쑥에는 단군신화가 아닌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얽혀있다.
옛날에 아내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 효자는 유명한 의원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됬다. 거의 포기하고 있을 무렵에 근처 마을에 당대의 명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당장 달려갔는데 그 의원이 진맥을 짚어보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것을 보고서 효자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의원님” 그러자 의원이
“자네 어머니의 병은 아주 고치기 어려워 이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7년 묵은 쑥뿐이라네” 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서는 효자가 기가 막혀서 물었다.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7년 묵은 쑥을 구해 옵니까?”
의원이 그 말을 듣고서는
“내가 뭐라고 했나 아주 고치기 어렵다고 했지 않느냐 자네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7년 묵은 쑥뿐이니까 못하겠으면 돌아가게”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효자는 “아닙니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7년 묵은 쑥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아내를 찾아가서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7년 묵은 쑥을 구하나면서 날씨가 좀 따뜻해지면 가라고 극구 말렸다. 하지만 효자는 집을 나가서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면서 7년 묵은 쑥을 찾아 봤지만 헛수고였다.
세월이 흘러 7년째가 된 날에 돌아 왔는데 그 때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때 효자의 머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7년 전 그해에 쑥을 뿌리 째 캐다가 오늘 이용하면 되었을 것을!” 이라고 말하면서 땅을 치며 후회하였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남천 꽃이 피었다. 다른 꽃들은 거의 다 져버린 시기에 원추리와 함께 우리 집 마당을 환히 비춰주고 있다. 아빠께서 우리 집 마당에서 잘 자라나 시험해 보려고 가져다 심었다는데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옛날에는 남천잎을 쌀과 섞어 먹으면 흰머리가 다시 검은머리로 돌아간다고 해서 나이들은 사람에게 새해인사를 하러 올 때 열매가 달린 남천가지를 선물했다고 한다.


원추리꽃이 피었다. 속담 중에 원추리 꽃이 피면 장마가 오고 원추리 꽃이 피면 지면 장마가 간다고 했는데 올해에는 장마철이 조금 더 일찍 찾아와서 원추리가 기상대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밤나무꽃이 지면 장마가 한창이다.” “도라지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속담에서처럼 밤나무꽃과 도라지꽃 역시 장마철을 알리는 기상예보원 역할을 했다. 원추리의 한자이름은 훤초이다. 원추리라는 이름은 <산림경제>에서 처음 나온다. 원추리의 고유이름은 ‘넘나물’ 또는 ‘엄나물’이다. 그러니까 원추리란 이름은 한자이름 훤초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쉽게 정리하자면 훤초>원초>원추>원추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처풍토기>에 의하면 애를 밴 부인이 이 꽃을 패용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했는데 이 때의 꽃은 꽃봉오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꽃의 꽃봉오리가 영락없는 사내아이의 고추를 닮았기 때문이다. 원추리의 꽃은 참 큰데 원추리 꽃이 왜 그렇게 크냐하면 원추리의 수정을 도와주는 도우미가 호랑나비와 제비나비 같은 대형나비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꽃의 생김새와 크기는 공진화 해온 곤충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원추리의 큰 꽃 속에서 제비나비나 호랑나비가 온몸을 다 넣고 꿀을 빠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 집 주변에 제비나비가 많아진 것 같은데 아마 원추리 꽃에 꿀을 빨러 온 것 같다.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해준다 하여 또 다른 이름으로  忘憂草(망우초)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있다. 옛날에 어는 형제가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이 들은 슬픔에 잠겨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은 슬픔을 잊기 위해 엄마아빠의 무덤가에 원추리를 심었지만 동생은 이와 반대로 부모님을 잊지 않으려고 난초를 심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형은 슬픔을 잊고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동생의 슬픔은 더 깊어졌다. 저승에서 지내고 계시는 부모님도 동생이 안타까웠는지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슬픔도 잊을 줄 알아야 한다.” 그 말을 듣고 잠에서 깬 동생은 자기가 심었던 난초를 모두 뽑고 원추리를 심어 슬픔을 잊었다는 이야기이다.

미나리과의 두해살이풀인 사상자도 꽃이 피었다. 작년에 비해 여기저기 사상자 군락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사상자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 내려온다.
어느 마을에 괴상한 병이 돌았다. 환자의 땀구멍과 탈구멍에 닭살처럼 까슬까슬한 돌기와 물집이 생겨 몸이 무척 가려운 피부병이었다. 이 피부병에 걸리면 하루종일 긁어대서 시뻘건 피가 흘러도 시원하지 않을 정도 였다. 그리고 이 피부병은 전염이 빨라 환자의 옷을 말할 것도 없고 환자의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옮았다. 환자가 긁을 때 떨어진 비듬이나 피부껍질이 날아가 건강한 사람의 몸에 닿으면 곧바로 전염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피부병에 전염되어 긁어 대기 시작했다. 약이라는 약은 다 발라보아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사람들은 의원을 찾아가 가려움이라도 멈추게 하는 약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기에 의원이 대답하기를 “백 리 밖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이 하나 있는데, 듣기로는 그 섬에 잎은 깃털처럼 생겼고 꽃은 우산처럼 생긴 약초가 있답니다. 그약초의 씨를 삶은 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섬에는 온갖 독사들이 득실거려서 지금으로서는 뜯어올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서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 때 어떤 청년이 자신이 약초를 구해오겠다고 며칠 먹을 식량을 준비하여 뱀섬으로 떠났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청년이 자신이 약초를 구해오겠다면서 배를 타고 떠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약초를 캐오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명의 청년이 자신이 뱀섬에 갔다 오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렸지만 청년은 며칠 먹을 양식을 준비하여 마을을 떠났다. 그러나 청년은 곧바로 뱀섬으로 가지 않고 먼저 뱀을 잘 잡는 땅꾼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땅꾼은 자기도 독사는 자신이 없다면서 저 버닷가 높은 산에 사시는 비구니 스님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 비구니 스님은 백 살이 넘었는데 약으로 쓸 뱀의 쓸개를 구하러 뱀섬에 자주 갔다 왔다고 했다. 청년은 암자를 찾아가 비구니 스님께 어떻게 하면 뱀섬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뱀은 원래 웅황주를 끔찍이도 싫어하여 웅황주 냄새만 풍겨도 멀리 도망간다고 했다. 청년은 스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산을 내려와 웅황주를 준비하여 뱀섬으로 떠났다. 뱀섬에 도착하자 여러 독사들이 청년을 잡아먹겠다고 달려들었다. 청년은 재빨리 준비해간 웅황주를 솔잎 끝에 묻혀서 뿌렸다. 갑자기 웅황주 냄새를 맡은 독사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도망가는 독사도 있고 죽은 듯 꼼짝 않는 놈도 있었다. 청년은 깃털모양의 잎에 꽃이 우산처럼 생긴 약초를 발견하고 너무나 기뻐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 약초위에는 독사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청년은 웅황주를 뿌렸다. 그러나 그 독사는 도망칠 생각도 않고 그대로 약초위에 앉아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독사는 혀를 날름거리지도 않고 고개를 치켜들지도 않았다. 웅황주에 취한 것이다. 청년은 바로 독사를 밀치고 약초를 캐고 약초의 씨를 따서 자루에 넣었다. 마을사람들은 청년이 살아 돌아 온데다가 약초까지 캐오자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그 약초의 씨를 물에 삶아 목욕을 했더니 신통하게도 그 지긋지긋한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약초를 가까운 산에다가 섬어 버짐과 습진 등 피부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했다. 청년은 뱀섬에서 그 약초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청년은 약초가 독사의 침상 같은 생각이 들어 약초의 이름을 蛇床(사상)에 씨까지 하여 蛇床子(사상자)라고 이름붙였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쯤 타래난초 꽃이 피었다는 생각이 들어 돼지무덤으로 갔다. 타래란 사리어 뭉쳐 놓은 실·노끈 등을 말하는데 꽃이 실타래처럼 감기며 올라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름다운 타래난초 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딱 하지 쯤에 꽃이 핀 것 같은데 타래난초는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로 무덤가나 잔디밭에서 주로 나는 풀인데 수정방식은 꽃가루덩어리를 찾아오는 벌레의 몸에 통째로 붙여버린다. 그리고는 암술 끝에는 접착제를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약삭빠르게 꽃가루 덩어리를 떼어낸다. 타래난초는 씨앗을 아주 많이 만든다. 작은 꽃 한 송이가 수만 개 이상의 아주 작은 씨앗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타래난초의 씨앗은 아주 작기 때문에 발아에 필요한 양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난균이라는 곰팡이를 자기 몸에 기생하도록 한 후 그 균사체로부터 영양분을 빼앗는다. 물론 이 전략은 위험도 있다. 균의 침입을 받으면 자기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도박과 같은 생존전략을 가진 셈이다.


패랭이꽃도 피어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잎의 끝은 뾰족하고 중간에 연갈색 무늬가 새겨져 있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패랭이꽃 역시 타래난초처럼 무덤이나 잔디밭근처에 많이 난다. 그래서 가난한 농민이나 나무꾼들의 사랑을 받던 꽃이다. 포은 정몽주의 선조인 정습명이 패랭이꽃을 주제로 시를 지었다.  
             석죽화
사람들은 모란의 붉은 빛을 사랑하여
뜰 안 가득 심어서 가꾼다지만
누가 알랴? 풀이 무성한 벌판에도
어여쁘게 피어나는 떨기 꽃이 있다는 것을
그 빛 시골 연못 속의 달에 어리고
그 향기 바람 따라 숲 언덕에 전하네
궁벽한 땅이라 부귀한 이는 적어서
그 아리따운 자태 농부들만 즐긴다네


숲으로 들어가니 지난 망종 때보다 훨씬 더 습기가 차있다. 무성한 수관부는 내리 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장마비에 자란 풀들은 숲으로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을 기세이다. 여기저기 버섯들이 솟아나 있었다. 역시 장마철은 버섯의 계절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멍석딸기가 익어있었다. 하나씩 따서 먹어봤는데 새콤달콤했다. 새들과 곤충 작은 포유류들의 여름식량을 내가 축낸 것이다. 무성했던 인동초 꽃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뻐꾸기소리가 가까운데서 들렸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 버스타러 나가다가 전선줄에 앉아서 우는 뻐꾸기를 자주 본다. 날개를 치켜들고 고함치듯 울대를 울리며 노래하는 것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자식양육을 다른 새한테 맡겨놓고 자기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끊임 없이 울어대는 뻐꾸기의 모정을 갸륵하다고 할까 뻔뻔하다고 할까? 뻐꾸기가 탁란하는 새집은 참새, 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 개개비 등인데 산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박새집일 가능성이 있고 물가에서는 개개비집일 가능성이 있다. 이 주변에 박새가 죽어라고 뻐꾸기 새끼를 부양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산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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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6얼 22일
하지이다. 오늘은 1년 가운데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날이다. 규표를 세워놓고 해의 그림자를 1년 동안 재면 겨울에는 길어지고 여름에는 짧아진다. 동지는 겨울에 그 그림자가 가장 길 때이고 여름은 가장 짧을 때 이다. 우리나라 명절 가운데에는 보름이 많은데 이는 달을 모시는 날이었고 정월 초하루 3월 삼짇날  5월 단오는 태양신에 대한 의례를 행하는 날이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1, 2, 3 으로 이어지는 수에서 홀수는 남성의 수, 짝수는 여성의 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물이나 탑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남성적인 것을 상징하고 남성적인 숫자로 표현했다. 또 땅은 여성적인 측면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평면은 당연히 짝수로 표현되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상징체계와 걸맞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탑을 볼 때 층수는 3,5,7,9등 홀수로 이어지고 평면은 4각,8각등 짝수로 이어지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그런데 이러한 수의 상징은 우리 문화만의 특징은 아니다. 만물의 근원은 수라고 한 피타고라스는 ‘홀수는 선하고 곧바르고 하늘의 성질을 가진 남성의 수이고, 짝수는 악하고 구부러지고 땅의 성질을 가진 여성의 수’라고 말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은 플라톤도 ‘홀수는 천상의 수로서 성스럽고 행복을 가져오고, 짝수는 지상의 수로서 불행과 세속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홀수는 남성의 수였고 이러한 상징체계는 역법에도 적용되어 홀수가 두 번 겹치면 성스러운 날, 생명력이 넘치는 날로 의미가 부여됩니다. 1월 1일,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을 양이 겹친 날이라고 해서 중양절이라고 하고, 그 날을 명절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서양의 경우 태양과 관련된 의례는 동지, 춘분, 하지였는데 왜 동양은 하지에 의례가 없고 단오에 의례가 행해질까? 5라는 것은 남성의 수일뿐 아니라 정오를 나타내는 한자말 ‘오’의 뜻과도 연결되어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태양을 상징한다. 단오의 다른 이름 가운데 천중절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해가 하늘 가운데 즉 가장 높이 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해가 하늘 한가운데 오는 날은 하지이다. 단오는 하지절기에 걸리기는 하지만 하지보다 좀 이른 경우가 보통이다. 올해도 단오는 하지 3일 전이다. 그런데 단오를 천중절이라고 한 것은 해가 하늘 한가운데 온다는 실제 관측 사실보다는 숫자에 부여한 상징적 의미가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강한 문화적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일까?
단오는 태양이 1년 중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날이다. 이렇게 태양의 힘이 왕성하므로 만물 또한 번성하고 성장한다. 여기에 맞춰서 만물의 성장을 기원하는 의례를 행한다. 단오에 사람들은 태양신의 또 다른 모습인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남자들은 씨름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한다. 씨름은 해가 가장 높이 떠있는 정오에 한다. 1년 중 가장 높이 떠있는 태양 밑에서 남성적 에너지가 넘치는 씨름을 한다는 것은 태양이 에너지를 공동체와 농작물의 성장에 활용하려는 것이다.    
여성들은 그네뛰기를 했다. 그네뛰기는 여성의 놀이 가운데 가장 많이 비트는 놀이이고, 하늘을 향해 치솟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한 행위 자체가 여성적 에너지를 고조시키면서 최고조에 달한 남성적 에너지를 받아들여서 음양화합을 이루는 것을 상징한다. 또한 5월 단오전후에 쑥을 캐서 말리는 것은 이 때가 태양에너지를 가장 많이 받아 약효가 높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우리의 단오풍속은 서양의 하지축제 풍습과 비슷한 것 같다. 옛날 북유럽에 있었던 하지축제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 때 아홉 가지 나무를 하고, 동네광장에  세운다음 불을 붙인다. 그리고 그 불에 쑥등 약초들을 던진다. 그리고 그 둘레에서 춤을 추는데 우리와 닮은 것은 게르만 족도 하지 전후에 쑥을 채취했다는 것이다.
게르만 족은 약초 가지고 있는 약효를 그 약초안에 요정이나 여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예를 들면 쑥이 약효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르테미스 여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그것은 쑥의 속명이 ‘아르테미시아’라고 하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기독교로 가면 요하네스 약초라고 바뀐다. 약초를 통한 치료가 효과가 있는 상태에서 기존의 신앙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그것을 기독교적인 의미로 바꾼 것이다.
우리나라도 단오날 정오에 캐는 쑥이 약효가 좋다고 했다. 단오 이전에 캐면 약효가 별로 없고, 단오 이후에 캐면 독소가 많다고 믿었다. 이것은 쑥이 장일식물이고 하지가 지나면 성장을 멈추고 리그닌이나 헤미셀룰로오스와 같이 목질을 이루는 성분을 축적하는 것에 대한 생태적 지혜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단오를 포함한 하지전후에는 어떤 일을 할까?
밭농사에는 보리를 급히 거두어들이고 그루갈이로 우선 콩이나 팥을 심고 그 다음에는 기장, 조를 그 뒤에는 녹두를 심고 들깨를 모종한다. 목화밭의 김을 매는 것도 이 때하는 일이다. 벼농사는 늦벼의 모를 낸다. 이렇게 농사에 바쁜 때이다 보니 속담역시 많을 뿐만 아니라 그 뜻이 절실하다.
우선 이 때 한참 모심기를 할 때이므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다. 이와 관련된 속담으로는
“ 하지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
“단오에 물 잡으면 농사 다 짓는다.”가 있다. 하지 전인 단오까지 논에 물이 차있으면 논매기 할때까지 여유가 있는데 이때 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망칠 가능성이 있으므로 마을 전체가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기우제를 지내는데 우리동네에는 아주머니들이 둥그레봉 정상에 올라서 솥을 뒤집어쓰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금강에 가서 키로 물을 떠서 뿌리는 방식으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 쯤 되면 장마철이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비가 왔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장마를 어떻게 예측했을까? 어떤 꽃들이 오늘날 기상대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것을 알수 있는 것이 다음과 같은 속담이다.
“밤꽃이 질 때면 장마가 시작된다.”
“원추리꽃이 피면 장마가 오고, 꽃이 지면 장마도 간다.”
이 때는 1년중 가장 바쁠 때라 마음도 바쁘고 동네사람들하고 다툴 가능성도 많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위한 지혜를 담은 속담도 있다.
“오뉴월에는 발등에 오줌 싸기도 바쁘다.”
“하지가 지나면 발을 물에 담그고 산다.”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
“오뉴월 발바닥이 사흘만 뜨거우면 가만히 누워서 먹는다.”
“오뉴월 품앗이는 당일로 갚으랬다.”
“오뉴월 품앗이도 순서가 있다.”
발등에 오줌 싸기도 바쁘고 발을 물에 담그고 살아야할 정도로 바쁠 때 오뉴월 발바닥이 4일만 뜨거우면 가만히 누워먹는다는 말로 스스로를 달랬고 품앗이를 순서를 어기거나 미루지 않으므로서 갈등을 방지했다.

하지에 하늘한가운데에 뜨는 별자리는 항수이다. 항수는 동방청롱의 목자리에 해당하는 별자리이다. 하늘에서 항수를 찾으려면 먼저 청룡의 뿔자리인 각수를 찾아야 한다. 북두칠성의 손잡이 곡선을 따라가면 밝은 별을 두개 만나는데 첫 번째 별이 대각성이고 그 다음이 각수이다. 이 각수에서 동쪽으로 몇도가면 마치 꺽음쇠 같은 모양의 항수를 찾을 수 있다. 천문류초에는 항수가 하늘에서 돌림병을 다스리는 일을 한다고 적혀있다. 그래서 항수가 밝으면 백성들이 질병이 없게 되지만 항이 움직이거나 별빛이 흐리면 질병이 창궐하고 가뭄과 수해로 인한 피해를 보게 된다고 한다. 내생각에도 별이 인간의 운명을 알려준다고 믿는다면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 되고 장마와 돌림병이 걱정되는 시기에  하늘높이 떠오른 항수가 그러한 일을 관장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서양에서는 각수와 함께 처녀 별자리에 해당한다. 처녀자리는 날개를 달고 오른손에는 종려나무잎새 왼손에는 밀을 들고 황도를 따라 길~게 누워있는 모습이다. 이 처녀자리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문명시기부터 대지와 곡식의 여신으로 여겨저 왔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아름다움과 전쟁의 여신이면서 인간에게 풍작도 가져다주는 이슈타르를 나타내고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아프로디테와 아테나 데메테르의 합본판이네) 그리스에서는 초기에는 이집트의 이시스여신과 동일시했다. 그러나 후기에 오면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로 여겼다. 그런데 로마시대에 오면 이별자리를 케레스(데메테르)라고 여겼다. 인도에서는 처녀자리가 크리슈나신의 어머니 카냐로 알려졌는데 이 여신은 불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기독교에서는 처녀자리를 성모마리아와 동일시했다. 가장 밝은별인 스피카는 어머니 팔에 안긴 신의아들 즉 예수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피에타가 생각난다. 이별자리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페르세포네의 이야기이다.
어느 맑게 개인 가을날 지하세계 즉 지옥의 왕인 하데스가 산책을 나왔다. 하데스는 마침 그곳에서 꽃을 구경하고 있는 페르세포네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땅이 갈라진 틈을 통해 자신의 나라인 지하세계로 페르세포네를 납치해서 강제로 자기 아내로 삼았는데 페르세포네는 항상 땅위를 그리워 했다. 한편 페르세포네를 유독 사랑했던 데메테르는 슬픔에 빠져 땅을 돌보지 않아 대지가 많이 황폐해졌다. 제우스는 대지가 더 이상 방관할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형이자 지하세계의 왕인 하데스를 함부로 대할수 없어서 둘을 화해시키는 방법을 썼다. 결국 제우스의 중재로 페르세포네는 1년의 반은 지하세계에서 보내고 또 1년의 반은 지상에서 보내기로 하였다. 그렇게 되서 페르세포네는 매년 봄이면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지하세계로부터 동쪽하늘로 올라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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