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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8월 23일
8월 23일은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이다. 한 낮에는 여전히 따갑지만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서 문을 열고 잠을 잤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찌는 듯한 더위가 누그러질 뿐만 아니라 장마가 지난 지 오래라 점점 땅이 말라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구온난화현상은 이러한 우리의 상식을 뒤집고 있다. 처서가 지난 다음에도 비가 계속 오고 온도는  더운 날엔 35도가 넘어 연일 폭염주의보이다. 예전에는 8월 초순이 제일 덥고 중순이 되면 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면서 8월 말이 되면 이제 가을에 들어서는 구나 느낄 정도 였는데 올해는 8월 하순이 초순보다 오히려 더 덥다. 뉴스를 보니 해수욕장 폐장이 늦춰졌다고 한다. 이제 지구온난화가 우리 생활양식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여름휴가철은 8월 초순에 몰려있는데 이대로라면 8월 말이 본격적인 휴가철이 될지도 모르겠다.

처서의 농사력에 대해서 살펴보자
밭농사를 보면 참깨를 베어 말리고 김장용 무·배추를 심고 논농사는 피뽑기, 논두렁풀 베기를 한다.
옛날에는 처서가 지나면 풀이 더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논 밭두렁에 풀을 베고 산소에 벌초도 하는 것이다.  
이 시기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맑은 날이 많았기 때문에 여름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말린다.

처서에 관한 속담을 보면 날씨에 관한 것이 압도적이다. 처서절기에 비바람이 없는 것이 일 년 농사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닐하우스의 영향으로 벼꽃이 일찍 패지만 예전에는 처서 때 벼꽃이 패기 때문에 이 때 비가 오면 수정이 어렵고 또한 광합성에 많은 지장을 받기 때문에 벼쭉정이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이 시기 날씨에 관한 속담에 맑은 날씨에 대한 강한 바람이 담겨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 안 곡식 천 석을 감한다.”
“처서에 비가 오면 항아리 쌀도 준다.”
“처서에 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 곡식도 준다.”
“처서에 비가 오면 천 가지가 해롭다.”  
“처서에 비바람 치면 폐농한다.”

이 시기에는 밤낮의 온도차가 심하기 때문에 냉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논물을 관리하는 것 역시 중요했는데 다음의 두 가지 속담은 논물 관리에 관한 지혜를 담고 있다,

“처서에 물은 먼저 대게 마련이다.”  
“처서 물은 오전 오후가 다르다.”  

처서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 이다. 산골짜기에 살면서 자연과 민감하게 교류하면서 살아온 농민들은 자연현상에 대한 예민한 관찰을 통해서 이 시기를 파악했는데 다음의 속담들이 바로 그것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
그런데 입추절기 보다 처서가 더 날씨가 더워 모기가 더욱더 기승을 부리는 요즘의 날씨에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처서에 하늘 한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별자리는 입추와 마찬가지로 미수이다. 그래서 오늘은 칠석이 지난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견우직녀성을 찾기로 했다.
직녀별은 찾기가 아주 쉽다. 여름하늘 한가운데에 떠있는 별들 가운데 가장 밝은 별을 찾으면 된다. 워낙 밝아서 서양에서는 ‘여름밤의 여왕’ ‘전 하늘에서 하나 뿐인 다이아몬드’ 등의 형용사가 붙어있다. 이 별자리는 서양에서는 거문고자리의 알파별인 베가이다. 직녀별 밑에는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작은 별이 두 개가 있는데 선녀와 나무꾼 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나무꾼이 자식 셋을 낳은 다음에 날개옷을 돌려주라는 사슴의 말을 무시하고 두 명의 자식을 낳은 선녀의 간청에 못 이겨 날개옷을 돌려준 이야기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날개옷을 받은 선녀는 양팔에 아이들 하나씩을 끼고 하늘에 올라갔는데 그 선녀가 직녀별이고 작은 별 두 개가 두 명의 아이들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슴은 자식 셋을 낳은 다음에 날개옷을 돌려주라고 했을까? 아이가 셋일 경우 하나를 남겨둘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선녀가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할 것이라는 사슴의 판단 (당시 사람들의 집단적 의식)이었던 것인데 여성 해방론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볼 건지 궁금하다.

다음은 견우별자리를 찾아보자 견우별은 서양별자리로는 염소자리의 으뜸별인 알게디이다. 알게디는 3등성 이어서 어둡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다. 직녀성에서 하고대성(요즘 견우별자리로 오인되고 있는 그 별) 사이에 직선을 긋고 약간 꺽은 다음 그 반 정도의 길이를 직선으로 연결하면 어두운 별 몇 개가 X자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견우 별자리이다. 견우별자리는 하늘나라에서 농사를 맡고 있는 별자리이기 때문에 주변에는 논에 물을 대는 도랑 물자리인 구감, 하늘나라의 밭인 천전, 저수지별자리인 나언, 닭장 별자리등을 찾을 수 있다. 이 견우직녀별자리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아주 먼 옛날 하늘나라 옥황상제에게는 직녀라는 예쁜 딸이 있었다. 직녀는 하늘을 장식하는 옷감을 짜는 일을 하는데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새로운 색깔의 옷감을 짜서 하늘을 장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직녀는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강둑으로 소를 끌고 가는 견우를 보았다.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고 이 사실을 안 옥황상제는 소를 잘 돌보는 부지런한 견우가 마음에 들어 사위로 삼았다. 그런데 혼인을 한 후부터 견우는 전혀 소를 돌보지 않았고 직녀는 옷감을 짜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하늘의 색은 초라해지고 노을은 전혀 아름답지 않게 된 것을 안 옥황상제는 너무 화가 나서 둘을 떼어 놓았다. 그래서 견우는 은하수 너머에서 소를 몰게 되었고 직녀는 여기에서 옷감을 짜게 만들었다. 직녀는 하루하루 눈물로 옷감을 짰고 이로 인해 하늘 옷감은 전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옥황상제는 직녀를 불러서 음력 7월 7일에는 만나도 좋다고 허락했는데 대신 옷감을 열심히 짜지 않으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직녀는 이 말을 듣고 열심히 옷감을 짰다 덕분에 하늘은 다시 예쁜 색을 되찾았고 드디어 음력 7월 7일이 되었다. 그런데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7월 7일이 되면 은하수 물길이 거세져서 도저히 만날 수 없었다. 결국 일 년에 한 번도 만날 수 없게 되자 견우와 직녀는 밤새도록 울기만 했다. 그 눈물이 큰 비가 되어 지상에 내렸다. 이를 불쌍히 여긴 까마귀와 까치는 직녀와 견우를 만나게 해주려고 자신들의 몸으로 다리를 놔주었다. 그래서 칠월 칠서기 지나면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깃털이 벗겨진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때가 털갈이를 하는 시기라서 뒷산에 올라가면 까치의 털들을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왜 전해져 내려왔을까?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4세기 후반에 그려진 덕흥리 고분벽화에 견우직녀그림이 있다. 견우는 한쪽 손을 들고 소와 함께 서있는데 은하수 건너편에는 직녀가 하염없이 견우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을 볼 때 적어도 1600년 전에는 널리 알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데는 사회적 기능이 있다. 어른들이 일보다는 연애와 놀기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에게 노동의 중요성과 규율을 강조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실제로 옛날에는 남자일은 농사일이고 여자의 일은 베를 짜는 일이라고 했으니 모든 사람들에게 노동의 규율을 교육하고 강요하기에 적절한 캐릭터와 이야기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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